수백당 대청마루 아래 누워 있는 문인석
마루 밑에서 / 신동옥 며칠째 가로등 아래 늙은 개가 누워 있습니다. 자리를 갈아주고 따뜻한 국을 떠먹이며 함께 울어주고 함께 노래하는 이웃들이 거기 살기 때문입니다. 밤은 춥고 화단이 꽝꽝 얼었는데도 다정한 향기가 스미는 이유입니다. 팔레트를 펼친 듯 켜지는 불빛들은 북극광 같습니다. 골목을 따라 남쪽 바닷가 음식 내음이 퍼지면 오래전 떠나온 고향 집 마당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마법 같은 조화가 일어나는 밤이 올 것도 같습니다. 어릴 적엔 귀뚜라미 개구리를 주머니에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해가 지면 끔찍이도 고요했거든요. 폭탄을 키워도 군말 없이 자랄 것 같은 항아리 속 마을이었습니다. 이파리를 떨군 상추 줄기와 마름병에 걸린 고추 그리고 쓰다가 만 시가 있습니다. 남은 햇빛도 사위어가는데 화단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았나 봅니다. 누가 골목에 소금을 뿌립니다. ‘한 줌의 삶’이라는 인용부호를 벗기고 보면 저마다 시큼한 서정. 어둠 속에서 고요히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 꽃송이 송이처럼 피어나는 안간힘 속에서 몇 사람의 얼굴이 스쳐 갑니다. 이렇듯 비약을 무릅쓰고 까닭 모를 고통을 사랑을 무릅쓰고 노래해도 그릴 수 없는 대문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무수한 대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밖은 여전히 시리고 아름다운 것투성인데 대문으로 비가 새면 어디 서서 세상을 바라보나요. 마루 밑은 언제고 보드라운 황토 먼지에 덮인 담요와 짚 덤불이었습니다. 거기 숨어서 영영 나가지 않겠다 마음먹은 적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만큼 나이를 먹고부터는 그늘을 찾아 헤맸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서늘한 그늘을 찾아 떠났습니다. 낮에는 숨죽이던 부산함이 깨어납니다. 아직은 낯선 세상이 많은 골목이 눈뜹니다. 빵 봉투를 품에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 이마 위로 눈이 내립니다. 눈더미 아래로 녹아 흐르는 물길을 따라 가로등이 켜집니다. 먼바다까지 이어지는 물살을 응시하듯 가만히. ㅡ계간 《청색종이》(2023년 겨울호) -------------------------
* 신동옥 시인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2001년 《시와반시》 등단. 시집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밤이 계속될 거야』 『달나라의 장난 리부트』 『앙코르』 등 2016년 노작문학상, 2020년 김현문학패 시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