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승리하리라!
바룩 4,5-29; 루카 10,17-24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23.10.7; 이기우 신부
오늘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중엽에 오스만 터어키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려고 유럽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리스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정치적 대결이면서도 종교적 한 판 승부의 양상을 띠고 벌어졌습니다.
전력은 오스만 터어키가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당시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투의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전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로써 승리를 응원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다행히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유럽 연합군이 가까스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오스만 터어키군 함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비오 5세는 전투의 승리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 마리아의 전구 덕분이라고 여기고, 이 날을 제정했습니다. 유럽인들만이 아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유럽 그리스도인들의 편만 드셨을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 일 이후로 유럽 가톨릭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기도가, 특히 묵주 기도가 성모 마리아를 움직여서 자신들이 바라는 지향대로 전구해 주시는 영적 은사가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매듭을 기도의 힘으로 풀고 싶은 정신현상이지요.
그래서 “기도로 승리하리라!”. 레판토 해전의 교훈입니다. 그 사건 이후 가톨릭 신앙인들은 비오 교황의 지향과 당부에 따라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굳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그렇게 성모 마리아께 전구드리는 주된 수단이 묵주기도가 되었습니다.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열심히 드리던 신자들은, 뜻밖에도 성모 마리아의 축일인 몽소승천 대축일에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된 데다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국제연합이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는 경사가 겹치자,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 민족을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신념이 굳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독서인 바룩서에서도 바빌론 유대에서 돌아와 하느님의 율법을 선포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룩 예언자가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이민족에게 팔린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희가 하느님을 진노하시게 하였기에, 원수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사실 너희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너희를 만드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 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바룩4,6-7).
아마도 일제의 패망과 해방을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맞이했다고 믿었던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바룩 예언자가 전해 주었던 그 옛날의 예언을 자신들의 현실에서 들었을 것입니다. “한민족이라 부르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왜인들에게 종살이를 한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너희를 다스리던 조정과 양반들은,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인들을 무수하게 죽이는 박해의 악행을 백년이나 가하여, 반만년 전부터 한민족을 이끌어주셨던 하느님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일반 백성들도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한민족을 동방의 빛으로 이끄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그리고 바룩 예언자가 전해 준 다음과 같은 격려를 아울러 들었을 것입니다. “한겨레여,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를 기억해 주시리라.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바룩 4,27-29).
하지만 아직은 이 땅에 활개치는 마귀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과거 예수님께서 파견하셨던 일흔두 제자의 기쁨이 아직은 우리 교회에 자리잡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사도들에게도, 즉 성직자와 수도자는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셨습니다(루카 10,19). 분단을 조장한 강대국 패권 추구의 마귀, 서로 증오하게 만들었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마귀,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서로 다투게 만들었던 탐욕의 마귀, 출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지역 갈등을 부추겼던 지역 감정의 마귀가 아직도 설치고 있지만, 우리 교회의 사도들은 뱀 같은 강대국들의 야욕을 밟고 전갈 같은 남북 간의 이념 경쟁도 밟고 나서 민족의 화해와 복음화를 가로막아온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 원수들을 몰아내는 과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일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께 기도하며 통공함으로써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일이야말로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바치신 기도를 우리 믿는 이들의 기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 복음화의 신비를 감추시고 철부지 같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그날이 오면, 우리 역시 민족이 화해하는 감격스런 장면을 보는 눈이 행복할 것입니다. 마침내 한 세기 전 나라가 일제에게 굴복하기 전 남북이 하나였던 온전한 상태로 완전한 광복이 이루어져서 남녘과 북녘의 온 겨레가 부르는 함성을 드는 귀가 행복할 것입니다. “대한 독립 만세! 통일 코리아 만세!”
통일을 이루어야 완전한 독립이자 온전한 해방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로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