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5,10.16-21 마태오 13,44-46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귀한 보물이라는 사실과, 그 보물을 발견한 이의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값비싼 보물을 집이 아닌 땅속에 묻어 보관하던 팔레스타인에서는 가끔 전쟁이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땅 주인이 바뀌는 일이 있었습니다. 땅 주인이 바뀌면 땅속에 묻힌 보물은
새 주인의 소유가 되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모를 수 있기에 오늘 복음의 상황처럼
주인이 아닌 소작농 같은 이들이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 생깁니다.
주인의 땅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땅을 사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파는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보물은 움직입니다.’ 과거의 보물이 지금은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별스럽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큰 보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8).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보물의 움직임을 체험하고 있는지요?
한편 오늘 복음에서는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의 기쁨이 중심 주제임에도, 보물의 존재를
모르고 밭을 판 사람과 값진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판 이들의 속상함도 크게 느껴집니다.
보물이 묻힌 밭과 좋은 진주를 알아보지 못한 이들은 신앙이라는 보물, 하느님 말씀과 교회와
성사라는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과 같습니다.
나와 교회, 세상 안에서 보물을 찾고자 더욱 노력하고, 또 그 보물을 얻기 위한 선택과
포기가 좀 더 과감해져야 하겠습니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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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5,10.16-21 마태오 13,44-46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는 ‘우연히’ 발견된 보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밭을 가는 사람은
보물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밭을 갈다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보물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보물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만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을 차지하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본 이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상인은 주도적으로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발견하자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차지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고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발견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좋은 진주를 찾고자 길을 나선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삶,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함께 그 말씀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삶,
주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 미사 안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삶,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선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우연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신앙생활로 우리 삶 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들을 차지한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2티모 3,16-17).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아멘.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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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바오로 신부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5,10.16-21 마태오 13,44-46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서 15,10.16)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우리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면 한번씩 내뱉는 소리이지요.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에게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답니다.
예레미아도 하느님의 예언자로 불림받아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답니다.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렇지만 예레미아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위로와 기쁨과 즐거움을 맛봅니다.
그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도 삶이 너무 힘드시나요? 예레미아처럼 한탄이 나오나요?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가 참으로 어렵답니다.
내 맘과 같지 않고 참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답니다.
그때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희망은 하느님의 말씀이랍니다.
오늘도 말씀의 힘으로 힘들지만 하루를 또 살아보자구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이 나와 함께 있어주신다니 그것 하나만 믿고 그냥 웃어보자구요.
여러분의 얼굴에 작은 기쁨과 즐거움이
살~짝 멤도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