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유감
김 정 자
엊그제 지인의 어머니께서 영면하시어 문상을 갔다.
천수를 다하셨다고는 하나 초상집이 마치 잔칫집처럼 웅성거렸다. 세상이 각박해져서일까 아니면 정이 메마른 탓일까? 상주들의 눈물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상주들의 모습은 ‘당연히 올 것이 왔으며 가셔야 할 곳으로 가셨을 뿐이라는 표정으로 내겐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평생토록 그녀의 어머니는 깊고 그윽한 사랑으로 자손들을 성장시켰을 텐데 그들에게서 슬픈 표정을 읽을 수 없다니.
문상을 갔던 나로서는 왠지 씁쓸하고 민망하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초상집에는 곡을 하던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곡소리는 듣기 어렵고 메마르고 의례적인 장례 문화로 변해 가는 듯 느껴져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물론 모든 것이 시대의 흐름에 변해가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앞에 뜨거운 눈물을 가끔 닦는 상주들의 모습이 우리네 정 깊은 사는 냄새가 아니던가.
문득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 손을 잡은 채 지푸라기처럼 스르르 스러져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과 온 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삼일장이 끝날 때까지 멈추어 지지 않았다. 눈물과 울음은 슬픔의 봇물이 터지 듯 속절없이 흘렀다. 더구나 어머님이 떠나신 전날 밤이 아버님의 제삿날이어서 마치 당신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으시려는 듯 그렇게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더욱 오열은 깊었다.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진 날은 다름 아닌 큰 시숙의 제삿날이었다. 요강에 볼일을 보시다가 쓰러지셨는데 이내 걷지도 못하시고 여성의 모든 것을 며느리에게 내보이셔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실 그날부터 모든 생활 리듬이 엇박자를 이뤘지만, 무엇보다 어떻게든 회복하시도록 온힘을 다하려 했다. 입맛을 잃은 어머님은 며느리가 떠 넣는 죽을 한 숟갈씩 받아 잡수셨다. 때론 어르고 달래며 때론 아양도 부리며 그렇게 시중을 드린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고개를 저으시다가도 ‘네 정성에 먹는다, 고생한다, 미안하다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시며 입을 벌리실 땐 한 마리의 어린 제비가 되시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몸의 순환이 순화롭지 못해 자연히 큰일을 보실 때마다 어머님은 숫제 소리 내어 우신다. 장에 가득 찬 변을 손으로 제거하는 내게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당신의 심중을 그렇게 표현하셨으리라. 그리곤 일이 끝나면 ‘에미야 이젠 살 것 같다며 천진스런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돌아보면 나나 어머니에게 그런 고통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님에게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한 시간은 남편이 귀가하는 오후였다. 온종일 휠체어에서 아니면 요 위에서 무료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면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언제 고통의 시간이 있었냐는 듯 얼굴이 밝아지시던 모습이 나는 좋았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님은 시어머님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게 깊은 사랑을 주신 분이셨다.
모든 것을 내게 믿고 맡겨 주셨고, 허물은 감싸 주셨던 어머님! 생각하면 생전에 더 잘해 드리지 못했음이 죄송스럽기만 하고 늘 그리워진다.
죽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기에 어떤 죽음 앞에서도 아쉬움과 가눌 길 없는 슬픔으로 눈물이 흐르는 것이리라. 왜냐면 살아서 서로 사랑을 했든, 미워했든 망자와 어떤 감정의 여운은 남는 것인데 어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으리. 말을 못하는 강아지도 어미가 보이지 않으면 며칠을 먹지 않고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물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지금 우리 가슴은 너무 삭막하지 않은지.
몇 년 전, 3년 시묘 사리를 하는 어떤 분이 방송되었던 적이 있다. 직장을 버리고 가족과 떨어져 어머니의 묘를 지키고 있던 그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찌 생각하면 옛이야기 같은 아니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무심히 지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어머니 묘를 3년 동안 지켜 드리겠노라 던 약속을 지켜가는 어떤 사람을 통해 인간의 도리와 효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로 다시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모두 바빠지고 갈수록 살기도 어려워 진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이 물질 만능이요 새로운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해 지기 위해서이리라. 누가 행복해지려 하느냐 물론 나와 가족들이겠다. 가족의 제일 위에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 주셨던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이 있으며 나를 둘러싼 많은 인연이 있어 살 수 있다. 어떤 인연이든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어느 날 소중한 인연이 내 곁을 떠났을 때 어찌 기쁜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어찌 떠들고 잔칫집 같이 웅성거릴 수 있을지.
적어도 곡소리나 눈물이 나지 않더라도 조용히 고인의 생전을 그리며 고개 숙여 애도함이 인간의 기본 예의가 아닐까한다.
언젠가 나에게도 다가올 사랑 하는 내 가족과의 이별을 생각해 본다. 슬픈 눈물을 흘리는 삼 남매가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진다. 아무리 성장해서 저들 자신이 어미 아비가 되었다 해도 내겐 애틋한 자식이요 그들에겐 하나뿐인 어미인 것을. 어미 잃은 삼 남매의 가슴이 나로 하여 깊은 상처라도 입을까 걱정되는 것은 아마도 내리사랑 때문일 게다.
하지만 마지막 이승을 떠나는 어미의 장례식 날 잔칫집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장례 일은 이따금 삼 남매의 슬픔을 표하는 뜨거운 눈물로 예를 갖추어 성숙한 상주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부모 잃은 슬픔을 다독여 주는 문상객의 모습과 진실 어린 슬픔을 딛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의젓한 모습의 장례 예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수고하셨어요. "어머님은 시어머님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게 깊은 사랑을 주신 분이셨다. 모든 것을 내게 믿고 맡겨 주셨고 허물은 감싸 주셨던 어머님! 생각하면 생전에 더 잘해 드리지 못했음이 죄송스럽기만 하고 늘 그리워진다."
"언젠가 나에게도 다가올 사랑 하는 내 가족과의 이별을 생각해 본다. 슬픈 눈물을 흘리는 삼 남매가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진다. 아무리 성장해서 자신이 어미 아비가 되었다 해도 ... 그들에겐 하나뿐인 어미인 것을. 어미 잃은 삼 남매의 가슴이 나로 하여 깊은 상처라도 입을까 걱정되는 것은 아마도 내리사랑 때문일 게다. 하지만, 마지막 이승을 떠나는 어미의 장례식 날 잔칫집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적어도 장례 일은 이따금 삼 남매의 슬픔을 표하는 뜨거운 눈물로 예를 갖추어 성숙한 상주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겠지. 그리하여 부모 잃은 슬픔을 다독여 주는 문상객의 모습과 진실 어린 슬픔을 딛고 힘차...."
교수님 아직도 미흡한 글을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좋은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안순례선생님 읽어주시는 정성만 해도 감사한데 댓글로 용기를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저도 느꼈던 적이 있는 마음을 훌륭한 글로 지으셨네요. 같은 마음이 되어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좋은글에 감사 합니다.
랑랑선생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그 열정에 찬사를 드립니다. 글도 잘쓰시고 모든면에 완벽하신 랑랑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봄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연륜이 배어있는 선생님 모습이, 어머님을 향한 지극한 정성이, 곱게 표현되었군요 잔잔한 감동에 머물다 갑니다.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집선생님 닉네임도 좋아요. 선생님의 효성심은 따라가지 못한것 같습니다. 댓글 달아주심에 감사드려요
인간으로서 내게 깊은 사랑을 주신 어머님를 그리신 선생님 글, 진한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요.
상규선생님. 대전에서 부터 다니시는 그 열정에 감복입니다. 선생님처럼 살아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정말로 보기드믄 효부신것 같습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어머님을 극진하게 모신 선생님의 글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소정선생님. 시간 틈내어 읽어 주신것만도 감사한데 댓글 까정 달아 주시니 고맙고 감사하네요. 전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님과 정이 더 들었답니다. 그분이 떠나신후는 그렇게 살가운 사랑을 받지 못하니 늘 허전하답니다. 이봄에 건강 유의하소서.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임미옥선생님 고맙습니다.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오는 임선생님 사랑합니다. 반짝이는 선생님의 글이 훨씬 좋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이곳에서 만나는군요.
하정님 안녕하세요? 가끔 이곳에도 오시나보네요. 맞아요. 이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따랑해요
가끔 옵니다. 교수님 안부도 궁금하고 푸른솔 회원님들 글도 감상하고. 무엇보다 교수님 뵙고 싶어서요. 제가 교수님을 무척 존경합니다. 우리 문단사에 한획을 그으시고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하시느라 늘 노고가 많으신 교수님이 자랑스럽고 그분이 계셔서 든든하답니다. 푸른솔 문학의 발전과 교수님의 건강을 늘 기원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동감입니다 언제쯤인가 부터 사라지는듯한 아쉬움을 예쁜글로 잘 표현해주셔서 잘읽고 갑니다
소녀아줌마님. 동감으로 읽혀지셨다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댓글도 감사합니다.
철이 덜 들어선지 아직은 시어머님께 불편한 맘이 많은데 선생님 글을 보고 반성많이 하게 됩니다. 친정부모님같은 애잔함이 생기도록 노력해보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고장미선생님 저는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살았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오빠만 좋아하시고 절 편애하셨거든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진정 딸을 사랑하시는 마음이란것도 지금에야 알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