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1년)
환영받지 못했던 신중현의 초기 창작 활동
비틀즈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1964년은 한국 록 음악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가장 먼저 정규 앨범을 발표한 키보이스에 이어 신중현이 주도한 에드포의 앨범이 연속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틀즈’를 표방했던 키보이스에 비해 에드포의 음악에 대한 당대 대중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비틀즈의 히트곡을 커버했던 키보이스와는 달리 에드포의 첫 앨범은 창작곡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것보다 선진국의 문화와 문물을 선호하는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사회분위기가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1966년에 생계를 위해 미군클럽 무대로 돌아간 신중현은 5인조 밴드 블루즈테트를 결성해 패키지 쇼 활동과 더불어 급조된 밴드 조우커스, 액션스 등을 통해 일반무대 활동을 병행했다. 창작곡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갈망했던 신중현은 당대의 히트곡과 흘러간 옛 노래들을 연주한 경음악 음반(당시 연주음반을 그렇게 호칭했다) 발표에 머무는 소모적 음악활동을 강요당했다. 활동 동력이 식어가던 신중현은 AFKN(주한미군방송)에 출연하면서 싸이키델릭 기법의 독특한 촬영과 화면 처리에 매료되며 장르에 빠져들었다. 둘째아들 신윤철이 가족여행 때 멀리 농가에서 들려오는 돼지 울음소리에 “지미 핸드릭스 기타연주 소리가 난다”는 말은 당시 신중현이 얼마나 싸이키델릭 사운드에 경도되었는지를 알려준다.
펄시스터즈의 성공이 안겨준 대반전
새롭게 빠져든 싸이키델릭 음악에 한국적 이미지를 접목하는 실험을 시도하기 위해 신중현은 밴드 덩키스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은 그의 음악스승 이교숙이 ‘당나귀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작명해 주었다. 1968년 미8군 클럽 넉아웃 쇼단의 하우스밴드로 활동할 당시 덩키스의 멤버는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 기타 이태현, 드럼 김호식, 키보드 김민랑, 리듬기타 오덕기로 구성한 5인조 라인업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싶은 신중현의 음악적 야심은 뜨거웠지만 베트남으로 떠나는 쇼단 참여를 심각하게 생각했을 만큼 당시 그의 활동 영역은 협소했다. 덩키스 멤버들과 함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참여했던 펄 씨스터즈 데뷔 앨범이 예상치 못한 대박흥행을 기록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인지도가 높아진 신중현은 1969년 5월 김응천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푸른사과」에서 처음으로 영화음악감독을 맡으면서 활동 영역을 차츰 넓혀 나갔다.
객원보컬로 영입한 넉아웃 쇼단의 이정화
신중현은 최대 관심사인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펼쳐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창작 작업에 몰두하면서 미8군 클럽 넉아웃 쇼 단원이었던 22세의 부산출신 신인 여가수 이정화를 밴드의 객원보컬로 영입했다. 1969년 신향음향제작소에서 발매된 이정화와 덩키스의 첫 정규앨범이 그 결과물이다. 음반에 소개된 ‘노아웃 쇼단’은 신중현 등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넉아웃 쇼단’의 오기이다. 남자보컬을 앞세워 흥행실패를 맛봤던 신중현이 이정화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대성공을 거둔 펄시스터즈와 미군들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냈던 미8군 클럽 패키지 쇼의 구성을 고려했던 흥행전략으로 보인다. 이 앨범이 이정화와 덩키스의 공동 독집이라는 모호한 음악적 정체성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신중현사운드’ 브랜드 로고를 표기한 첫 음반
이 앨범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이번에 재발매된 개체수가 더 희귀한 초반의 재킷은 녹색 바탕에 녹음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취입하는 이정화의 사진으로 장식된 버전이다. 재반의 재킷 디자인은 밤색 바탕에 미군클럽 무대에서 착용했을 서구적인 드레스 차림의 이정화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초반 커버의 ‘사이크 델릭’ 표기는 재반에서는 처음으로 신중현의 브랜드 파워를 상징하는 ‘신중현사운드’ 로고로 교체되었다. 이는 펄씨스터즈의 성공 이후 히트 작곡가로 떠오른 신중현의 위상이 반영된 결과물로 현재까지도 믿고 듣는 브랜드 파워로 인정되고 있다. 초반과 재반은 녹음을 다시 시도한 점이 특이한데 5곡이 수록된 초반과는 달리, 재반엔 <싫어>가 추가된 6곡이 수록되어 있다.
<봄비>, <꽃잎> 등 두 글자 노래로만 구성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수록곡 제목이 <싫어>, <봄비>, <꽃잎>, <먼길>, <내일>, <마음> 등 두 글자란 점이다. 이는 음악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기획된 콘셉트 음반임을 말해준다. 앨범의 백미는 신중현식 싸이키델릭 진수를 들려주는 <마음>이다. 초반의 러닝타임은 8분 29초이고 재반의 뒷면을 가득채운 버전은 15분 45초의 실험적인 대곡이다. 전반적으로 초반은 즉흥 연주의 애드리브에 강점이 있고, 재반은 퍼즈와 와와 이펙트를 사용해 싸이키델릭 사운드의 향기가 진해졌다.
신중현의 첫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담긴 이 앨범은 박인수의 <봄비>, 김추자의 <꽃잎> 두 명곡의 오리지널 가수가 이정화임을 증언한다. 익숙한 박인수의 <봄비>가 거센 소낙비라면, 이정화의 오리지널 <봄비>는 가랑비로 비유된다. 은근한 맛을 풍기는 이정화의 담백하고 잔잔한 여성적인 음색은 밋밋하게 느낄 청자도 있겠지만 편안함을 안겨주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박인수와 김추자가 들려준 강한 임팩트가 없기에 제작사의 기대와는 달리 앨범 발표 이후 당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 결과, 앨범 발표 후 별다른 활동 없이 쇼 단과 함께 베트남 위문공연을 떠난 이정화의 흔적은 희미하다. 이정화는 앨범에 소개된 ‘미8군 노아웃 쇼단 출신 부산출신 22세의 아가씨’라는 정보 외에는 알려진 기록이 거의 없는 신중현사단의 베일에 가려진 여성보컬리스트로 남아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 싸이키델릭 록 앨범
이 앨범의 두 버전은 모두 실물접견이 난망한 신중현의 희귀앨범리스트에 등재되었다. 2003년에 두 버전을 함께 복각한 LP가 처음 재 발매된 이후 2006년, 2011년에는 CD버전, 2018년에는 재반 커버 LP가 두 번째로 제작되었다. 이제는 재발매음반들도 희귀해졌기에 초반 버전으로 제작된 세 번째 재발매 LP 제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신중현의 명곡 <봄비>와 <꽃잎>이 최초로 수록된 사실만으로 이 음반의 가치는 크다. 또한 당시로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두 글자 제목으로만 구성한 콘셉트 앨범이자 의미 있는 음악실험이 담긴 본격적인 한국 싸이키델릭 록 앨범의 시작이란 사료적 가치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윤용균 / 내 곁에 있어주오, 거짓말이야(THE MEN) 8월 19일 입고 예정 가격/44,500원
Side. 1 (윤용균)
1. 내 곁에 있어주오
2. 나만이 걸었네
3. 그 사람은
4. 나의 연인
5. 봄은 오더니
Side. 2 (THE MEN)
거짓말이야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1년)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의 선배 윤용균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의 이름을 기억할 대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가수라 하면 이용복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사실 윤용균은 이용복보다 앞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로 기록되었을 수도 있었다. 인천 출신인 윤용균은 3살 때 실명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부모님이 일보러 나간 뒤 혼자 집안에 남은 윤용균은 찬장에 있는 통조림을 꺼내어 먹었다가 탈이 났다. 3개월 동안 계속되는 설사로 인해 여러 약을 복용했지만 영양섭취가 힘들어 결국 영양실조에 걸려 실명하고 말았다.
서울맹학교 시절 합창단과 사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기타, 피아노,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를 습득한 그는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과 열의를 보였다. 이용복의 서울맹학교 2년 선배인 그는 ‘켁터스(Cactus)’ 즉 선인장이라는 의미의 스쿨 밴드를 결성해 주도했다. 맹학교 재학당시 미국으로 봉사 공연활동을 떠났던 그는 현지에서 7인치 싱글 바이닐 한 장을 발표했었다. 한국 시각장애인 사중창단(The Korean Blind Quartet)이란 그룹명으로 제작된 그의 데뷔음반은 정식 유통이 되지 않은 비공식 발매인지라 최근 음반의 존재가 발견되기 전까지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희귀음반이다.
연기된 공식 데뷔음반 발표 기회
서울맹학교 졸업을 앞둔 윤용균은 정식 가수로 데뷔하고 싶은 꿈을 품었다. 1969년 4월 주목받는 작곡가로 급부상한 신중현의 서울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의 노래를 들은 신중현은 음악성을 발견해 창법 지도를 해주었지만 데뷔의 길은 쉽게 열리질 않았다. 1970년 2월 서울맹학교를 졸업한 윤용균은 서울 중구 북창동에 위치한 지 다방을 비롯한 서울 시내의 다방과 살롱 무대에서 가수가 아닌 무명 피아니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2월 천신만고 끝에 솔로가수로 데뷔음반을 취입할 기회가 찾아왔다. 원래 맹학교 중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았던 저음의 윤용균은 신중현의 지도와 맹렬한 연습과정을 통해 고음 창법을 소화해냈다. 신중현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성량이 풍부하고 보이스 컬러도 좋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그를 평가했다.
시각장애인 가수라는 이유로 취입일정은 설명도 없이 미뤄졌다. 결국 3년이 지난 1972년 2월이 되어서야 윤용균은 신중현의 곡을 받아 정식 녹음에 들어갔다. 세션은 기타 신중현, 베이스 이태현, 드럼 문영배, 키보드 김기표, 오보에, 테너 색소폰 손학래로 구성된 신중현밴드 더 맨이 맡았다. 윤용균은 신중현이 창작한 신곡 <내 곁에 있어주오>, <나의 연인>, <봄은 오더니> 3곡을 녹음했다. 음반 발표에 앞서 1972년 5월 KBS 라디오「오후의 로터리」에 출연한 그는 청취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들을 미리 불러보았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방송을 타면서 좋은 반응을 접한 그는 주간경향과 선데이서울에 ‘제2의 맹인 가수’로 소개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가수의 음반 흥행에 자신감이 없었던 제작사가 발매를 연기하면서 그의 공식 데뷔는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신중현사단의 전설적인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의 데뷔 앨범
속절없이 1년이 흐른 1973년에 윤용균은 이미 녹음했던 3곡에다 신곡 <그 사람은>,<나만이 걸었네>를 추가 녹음했다. 독집을 내기엔 곡이 모자라자 신중현과 더 맨은 부족한 곡수를 채우기 위해 B면 전체를 당시로서는 대중가요 사상 가장 긴 곡으로 채웠다. 우여곡절 끝에 윤용균과 신중현과 더 맨의 스플릿 앨범이 세상에 나왔다. 앨범 커버의 앞면은 윤용균의 사진으로, 뒷면은 신중현의 사진으로 꾸며졌다. 앨범 수록곡은 총 6곡에 불과하다. 앞면에는 윤용균이 노래한 신중현의 창작곡 5곡이, 뒷면은 신중현과 더 맨의 <거짓말이야>를 수록했다. 윤용균은 앨범 발표 이후 시각장애인 가수란 이유로 몇몇 언론에 소개되는 관심을 받으며 <내 곁에 있어주오>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약간의 히트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에 실력만큼 조명을 받지 못해 그의 활동을 지속되질 못했다.
23분에 가까운 앨범의 백미 <거짓말이야>
이 앨범의 화두는 뒷면을 가득 채운 신중현과 더 맨이 노래하고 연주한 <거짓말이야>이다. 김추자가 이미 히트시켰던 이 앨범의 수록 버전은 신중현 사이키델릭의 정수가 담긴 22분 53초의 환상적인 음악 여정을 듣는 이에게 제공한다. 신중현의 보컬로 시작하는 이 곡은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가는 현란한 키보드와 신중현의 기타 애드리드가 끝없이 이어진다. 곡을 시작한 지 7분쯤 되면 이국적인 분위기로 접어들며, 10분이 임박할 무렵 느리고 묵직한 베이스와 리드 기타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후 지루할 만큼 반복적인 리듬이 계속되다 15분에 접어들면, 곡은 환각적인 분위기로 접어든다. 무려 18분 30초가 넘어서야 이 노래가 <거짓말이야>임을 알게 하는 본래의 멜로디로 되돌아간다. 이후 다시 풀어지듯 몰입하는 환각적인 엔딩으로 곡이 끝난다.
당대 가요계의 관례를 깬 선구적 실험
2003년 재발매된 LP도 희귀해진 이 앨범은 18년 만에 두 번째 재발매가 성사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이 LP의 초반은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200만 원이 넘는 고가에 낙찰되어 수집가들 사이에 뜨거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973년에 발표된 이 음반은 당시로서는 대중음악계의 관례를 깬 실험을 담은 선구적인 앨범이었다. 당시는 보통 히트곡의 요건으로 ‘3분’을 넘기지 말아야 미덕인 시절이었다. 3분을 넘기면 방송에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관례를 깨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고 실험이다.
취입할 곡이 부족한 현실이 연출한 비정상적인 결과이지만 당시로는 대중가요 사상 최장 곡을 수록했다는 사실은 이 앨범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신중현사단의 전설적인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의 유일 음반이라는 사실도 오랫동안 수집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출중한 음악적 재능을 지녔던 윤용균은 사회적 편견 탓에 가수로서 대성하지 못했고, 평생 안마사로 살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가수로 남았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첫댓글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두장다요!
입고되었습니다,
모두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예약이요
입고되었습니다,
모두예약요
입고되었습니다,
@전선위의 곰 입금할께요
@천사의 향기 네~내일발송하고 발송번호 말씀 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20 16:19
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이정화 1장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두장 모두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윤용균판 신청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정화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윤용균1장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이정화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