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보리밥 -
권다품(영철)
일요일이면 차에다가 자전거를 싣고가서 삼락동 강변 그 넓은 공원에서 놀다가 올 때가 더러 있다.
자전거 타기도 좋고, 잔디밭에 앉아서 놀기도 좋은 곳이다.
걷기도 하고, 두세 시간 운동을 하고 올 때가 더러 있다.
거기 삼락동 공원 가까운 곳에 소문난 보리밥집이 있다.
지난 일요일날도 갔다왔다.
유명한 집이라 찾기 쉬운 큰길가에 있는 줄 알았더니, 길눈 어두운 나는 몇 번을 가도 혼자서는 못 찾아 가겠다 싶을 만큼,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돌아서 물어서 물어서 찾아가야만 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많았다.
아마 이 사람들도 어릴 때 먹던 그 보리밥이 생각났나 보다.
음식이 나온 걸 보니, 어릴 때 큰 밥상에 둘러앉아 큰 양재기에 비벼먹던,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고향에서 먹던 그 보리밥 그대로였다.
반찬들도 쌉쌀한 머구 쌈에 씸냉이(씀바귀)무침, 다시마 쌈도 나왔고, 쌈을 싸먹으라고 짭짤하게 끓인 된장이 나왔고, 땡초고추를 썰어넣은 멸치 젓갈도 나왔다.
그외에도 시골에서나 먹던 나물들이 이것저것 나와서 영락없이 옛날 시골 밥상 그대로였다.
어디로 들어가는 지를 모를 만큼 맛있었다.
물도 보리밥을 퍼낸 솥에서 누룽지와 함께 끌여낸 숭늉이라 구수하고 맛있었다.
먹으면서 나누는, 보리밥 먹던 시절의 얘기들도 맛을 더했다.
옆자리에는 이젠 고생을 다 하셨을 것 같은 일흔정도 돼 보이는 내외가, 며느린 지 딸인 지, 젊은 새댁과 손자를 데리고 와서 먹고는, 여유롭게 숭늉을 마시는 모습도 참 보기가 좋았다.
우리 앞자리에는 40대 후반정도 돼 보이는 자매가 같이 먹고 있고, 뒷자리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사 내외가 아는 사람들 몇을 데리고 와서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주인 아저씨를 보고 "아저씨 우리 알겠는교? 우리는 늘 배달을 시켜 먹었는데...... OO 아파트 905혼데......" 한다.
주인 아저씨도 시골 출신답게 무뚝뚝한 말투로 "아~, 그라고 보이 맛네예." 하고 대답을 하는데, 무뚝뚝한 말투이긴 한데, 자기 딴에는 반갑게 맞이하는 것인가 보다.
또, 어떤 여자분은 30대 초반일 것 같은 이쁜 딸을 데리고 와서 먹고 있고, 또, 어떤 여자분은 가까이 사는 지 슬리퍼에 양말도 안 신은 채로 츄리닝을 입고 혼자 와서 먹기도 하고.....
그 외에도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
어릴 때가 생각난다.
양식이 한창 궁할 때는, 남은 보리밥 덩이에 물을 많이 붓고, 군내나는 김치를 썰어 넣어 끊인 '갱죽(김치나 나물 등을 넣어 끓인 죽)'이라는 것을 많이 먹었다.
당시 시골에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 점심이나 저녁을 죽으로 떼우는 때가 많았다.
그렇게 먹다가 저녁상에 봄나물에 보리밥이 나오면, 마치 요즘 무슨 회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큰 양재기에다 겉절이나 나물들을 있는대로 넣고 비벼서 웃으면서 나눠 먹기도 했다.
"보리밥을 먹으면 각기병도 안 걸리고 건강하다." 며 도시락 검사를 하던 국민학교 시절도 생각난다.
그 때 추억들을 떠올리며 먹다보니 맛은 더 있었다.
'여기 모여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추억이 있는 분들이리라!'
언제 시간이 되면, 학생들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 학원 선생님들도 한 번 데려 가서, 우리 시골 추억들을 얘기해 줘야겠다 싶다.
나 혼자 맛보고 말기에는 너무 맛도 있었고, 추억또한 너무 많이 얽힌 보리밥이다.
참, 언제 울 엄마가 내려오시면, 어릴 때 고생 많이 한 큰누나랑 여자 형제들도 같이 데리고 가서, 비벼 먹을 수 있는 큰 양재기를 하나 달라고 해서, 옛날처럼 같이 비벼서 이야기 하면서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어이, 시간나거든, 옛날 추억들도 되살릴 겸, 형제나 또,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한 번 먹어보라꼬.
진짜 맛있더라.
밥 다 먹고나서 나오는 그 집 슝늉은 꼭 먹어보라꼬.
2011년 4월 18일 저녁 10시4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