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a Tudor 의 아름다운 삶,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
Tasha Tudor는 미국을 대표하는 90이 넘은 동화작가지만 지금은 가드닝으로 유명해져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모두 별세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 집은 미국 북동부 지역 뉴잉글랜드에 있습니다. 언덕 경사면에 세워져 포도나무나 덩굴장미 등으로 덮인 낡은 건물. 지붕 위에는 비둘기, 헛간 마당에서는 산양이나 닭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는 허브 정원이 있고 집 앞의 경사면에는 꽃들이 가득히 심어져 햇살을 담뿍 받고 있습니다. 이 개척시대의 농가 같은 집에서 화초를 키우고 무엇이나 직접 만들어 살아가면서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타샤는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정원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 차를 직접 만들고 재배한 아마를 자아 천을 짜고 염색을 하고...
"살벌한 세상 속에서 나는 정원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정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행복은 물질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왜 그토록 행복을 바라는걸까요? 아마 그건 텅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땅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시킨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Tasha Tudor)
타샤 튜더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 작가인데, <비밀의 화원>과
<세라이야기>의 삽화를 그린 작가로 70여 년 동안 100여 권이 넘는
그림책을 내 놓았다.
백악관의 크리스마스카드나 엽서에도 사용되는 탸샤의 그림은 미국인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독특한 생활 방식으로 더 유명한데,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삶을 보여 주고 갔다
버몬드 주 시골에 집을 짓고, 30여 만 평의 단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타샤는 손수 천을 짜고 옷을 만들며 염소 젖으로 요구르트를 만들고,
19C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 옷을 입고 골통품 가구와 그릇을 쓰고 장작 난로에
음식을 만들었다.
우울하게 지내기엔 인생이 짧다는 이 부지런한 할머니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공연하고
직접 말린 허브를 끓여서 오후의 차 마시는 시간을 즐겼다.
요즈음 사람들은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타샤는 여유를 가지고
조용히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고운 노래를 듣고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저녁에는 촛불을 켜서 늙은 얼굴도 예쁘게
보이게 하고 울렁이는 초와 등잔을 켜서 춤을 추게 하는 타샤의 생활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서가 넘치는 삶이었는데, 계절이 깊어지면 타샤는
저녁 내내 불가에 앉아 흰 수선을 옆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겨울에는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하고 옷을 깁는 그녀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리속에는 항상 꿈이 넘쳤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인생은 짧은 것. 내키지 않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기란 어렵다.
평생을 맨발로 자연 친화적으로 산 그림 동화 작가이자 화가인 타사 튜더는
명상적 에세이집인 < 맘먹은 대로 살아요>를 펴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타샤 튜더 할머니의 말이다.
책, 소공녀의 그림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녀는 버몬트주의 시골에 살면서,
1,000평에 이르는 정원을 가꾸고 닭을 키우고, 양의 젖을 짜며 치즈를 만들고
푸성귀를 심고 거두며 밤에는 책을 읽고, 낮에는 아흔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손수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추억을 많이 심어 줬다며 내 아이들도 반드시
그렇게 믿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모성의 향기를 강하게 지닌 타샤이다.
타샤는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정원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 차를 직접 만들고 재배한 아마를 짜서 천을 만들고 염색을
하고, 그녀는 1830년대의 삶을 살면서, 농가에서 그 시대의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하고 생활하며, 전기나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구식 오븐에서 빵을 굽고
직접 키우는 염소의 젖을 짜 치즈를 만든다.
그래서 손수 가꾼 빅토리안 풍의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녀의 골동품 의상 수집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수집가로 불린다.
튜더가 낸 요리책, 정원 가꾸기 책, 수공예품 책들도 역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타샤 튜더는 이미 하나의 생활 방식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생을 보내고 싶어요."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이 화가라는 직업이 가진
장점이랍니다. "
늘 새로운 세상을 만드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고, 정원에 심은
꽃의 알뿌리를 더 많이 사고자 입니다."
"인생은 결코 긴 것이 아니랍니다. 우물쭈물 멍하게 있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끝나버리지요. 잠시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답니다."
그의 가족은 결코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물질로 행복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마음으로 채워진다는
타샤 튜더는 맹목의 행복을 쫓는 것은, 텅 빈 마음을 가득 싣기 위함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것 집, 정원, 친구 같은 가족의 일원이 된 가축과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날씨에 까지도 만족하고 감사해 하며
살아가는 할머니. 아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 소녀 같은 여자다움을 잊지 않고
극히 자연 일부가 되어 순간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그림 동화작가이자 화가이며 원예가인 그는 1915년생으로
시골 생활의 풍경 하나라도 놓칠세라 스케치했으며, 꾸준한 어린이 동화작가
생활을 한 네 자녀의 어머니다.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집, 정원이 지상의 낙원이라고 단호하고 자신 있게 그는 말한다
"나는 정원을 가꾸면서 생각지 않았던 많은 것을 얻었지요.
내게는 두려운 것이 없어요. 죽음조차도 무섭지 않아요.
죽음이라는 것도 일종의 경험이나 즐거움이 아닐까요.?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후회가 없답니다."
1957년에는 "일" 은 하나다(1 is one)로
뛰어난 작가에게 주어지는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했다.
행복은 물질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득해지는 것인데,
모든 사람은 왜 그토록 행복을 바라는걸까요?
아마 그건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참새 우체국을 만들어 인형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모성의 자상함으로
자녀를 특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남편과의 사랑은,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힘에 밀려 이혼을 하였고, 후에는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1971년에 우수한 책을 제작하는데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리자이느 메달을
받기도 했다.
날씬한 몸매를 가꾸기 위해서 다이어트도 할 필요도 없었고, 별스레 아팠던 기억도,
두통으로 고생한 적도 없었다는 그녀가 그 나이에도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확신 하는것은 정원을 가꾸는 고된 육체노동과 양젖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
"난 서리가 내릴 때를 짐작할 수 있어요.
맨발로 걸으면 차가워진 대지 온도가 내 발에 소식을 전해 주거든요 ."
타샤 튜더 할머니는 아흔이 넘는 나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은, 세월의 흔적이
그를 비켜 갔던 건, 소박한 식생활과 부지런함 때문일거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
타샤는 소녀 같은 마음으로 여생의 두려움도 잊고 행복한 꿈을 꾸며
그만의 정원을 가꾸었다 .
그림 같은 정원에서 동화처럼 살아가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이자
원예가인 타샤 튜더의 행복론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함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타샤 튜더의 감동적인 삶의
방식을 우리는 기억한다.
자신을 '마음에 걱정을 담지 말고 편안하게 생활하자'는 신조의
'스틸워터(고요한 물)'교 신자라고 소개하는 위트가 매력적이다.
부서질 듯 아름다운 감수성의 소유자가 특유의 호흡을 담아 친숙한 느낌을 더해서
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정원과 그림, 동화 같은 삶의 풍경들이 더욱 우리에게 다가온다.
타샤 튜터(Tasha Tudor)
2008년 6월 19일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난 타샤 튜터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저자의 집안은 마크 트웨인, 소로,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
쟁쟁한 지식인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9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15살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독립해서 살기 시작한다. 23세에 결혼하여 "호박 · 달빛"을 출간했다.
42세에는 "1 Is One" 으로 우수한 그림책 작가에게 수여하는 칼데콧 상을
수상하였다.
46세에 이혼하여 10년 후 가장 살고 싶어하던 버몬트 주의 산속에 농가를 짓고
혼자 살기 시작하였고 리자이너 메달을 수상하였다.
83세에 "완전 문헌 목록"이 출간되었고 87세에 신작 그림책「코기빌에서 가장
즐거운 날」을 발표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요 동화다.
나지막한 새 소리와 향긋한 꽃 내음에 잠을 깨고, 이름 모를 나비가
춤을 추고, 이름 모를 벌들이 붕붕거리는 정원을 맨발로 산책을 즐기는
타샤 튜더. 그의 삶이야말로 오늘의 도시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웰빙 라이프이다.
'커티지풍 가드닝’의 대가인 타샤 튜더는 친자연적인 삶과 그의 생활 속에서 정원가꾸기로 세상을 보냈다.
타샤의 한국인 며느리 김은임 씨가 이야기하는 타샤 튜더 내가 타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2남 2녀 중 차남인 남편과 1994년 결혼하면서였다. 미국 공군 자문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시어머니께 인사드리기 위해 브래틀보로로 찾아갔다. 서울을 출발, 열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국(異國) 사람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자동차로 보스턴 교외를 빠져나갈 때는 불안감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세 시간쯤 달리자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도로에 이르자 “이 길은 우리 가족들 사이 비밀의 오솔길”이라며 남편이 내려서 걷자고 했다. 이때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앞으로 계속해서 경이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남편과 나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은 숲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은 달빛을 받아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올빼미가 등 뒤에서 가르릉거리며 적막을 깨뜨려 혼비백산케 했다.
흠칫흠칫 놀라는 내게 남편은 “올빼미들이 당신을 반기는 소리”라고 했다. 그 다음엔 승냥이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사립문이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빛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 아래 거무스름한 집의 윤곽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물가물한 호박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이 시어머니의 집이란다. 종이 달린 작은 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현재의 삶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웨일스산(産) 작은 개인 귀여운 코기(corgi) 두 마리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계셨다. 집 안은 초가을 숲 속 냉기를 몰아낼 만큼 훈훈했다. 화덕에는 구수한 닭고기 수프가 끓고 있었고, 향긋한 옥수수 빵 냄새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시어머니의 집과 생활, 그리고 정원 손질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금방 그곳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시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손수 키우는 닭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먹이를 주고, 양젖을 짜서 버터나 치즈,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셨다. 낮에는 정원을 거닐며 꽃에 물을 주고, 잡초를 일일이 뽑으셨다. 그러면서 꽃들의 색깔, 높낮이의 조화를 살피셨다. 정원은 시어머니가 마음 가는 대로 채색하는 캔버스였다.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내게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느냐?”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 “영국 문학작품 중 즐겨 읽는 게 있느냐?” “집에는 어떤 꽃들을 심었느냐?” “어떤 애완동물을 키우느냐?”고 물으셨다. 한국 부모님들과는 삶의 의미와 중심을 전혀 다른 곳에 두고 계셔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대표적인 외유내강 인물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계획을 세운 시어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동물을 사들여 농장생활을 준비하셨다. 시어머니는 화가 어머니와 수학자이자 발명가 아버지로부터 감수성과 창의력을 물려받았다. 8학년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자신의 글과 그림을 출판하며 독립된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두 독립을 이룬 분이다. 시어머니의 식량 창고에는 직접 재배하고 가공한 야채와 과일 통조림이 겨우내 먹을 수 있을 만큼 쌓여 있다. 해가 긴 여름이면 낮에 화초를 가꾸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신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키운 양털로 천을 짜고 정원의 화초로 천연염색을 한 후 담요와 셔츠를 만들기도 하신다. 남편이 어릴 때 시어머니는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각본을 쓰고 무대를 꾸며 아이들과 인형극 공연을 다니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요리와 바느질을 잘한다.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서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백발, 주름진 얼굴인 시어머니는 여전히 지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계시다. 일 때문에 거칠어진 손과 발조차도 멋스러워 보인다. 그분의 요리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때면 10인분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만들어 내곤 하신다.
음식이나 옷,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데 그분은 아주 까다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고수하신다. 시어머니가 매일 입는 드레스는 1980년대 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외화 <초원의 집> 배우들과 같다. 오스트리아산(産) 옷감으로 전통의상 전문가인 친구들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정원 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어머니는 화초를 구하러 네덜란드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그 외에는 모두 자급자족하는 게 원칙인데, 자급자족이 안 되는 식료품의 경우 농장에서 생산한 무공해 달걀이나 사과 주스 등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웰빙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시어머니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해 오셨다.
시어머니의 섬세하고 예술가적 기질은 자녀들에게 골고루 전해진 것 같다. 남편 역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요리 솜씨와 식탁 차림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남편이 들려주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너무 색달라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 착각할 때가 많다. 그중 생일파티 이야기는 정말 이채로웠다. 어린 시절 남편이 살던 집에는 ?邦? 시내가 하나 있었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시냇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드신 후 나무판과 이끼 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붙여 시냇물에 띄우셨기 때문이다.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케이크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환호하던 순간을 남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형극 순회공연을 했던 것이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남편은 말하곤 한다. 남편이 그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서울에서 살던 우리 부부는 남편이 미국 국방부에서 근무하게 돼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됐다. 미국에 가면 시어머니부터 찾아뵐 생각이다. 이번에는 시어머니를 위해 내가 맛있는 옥수수 빵을 만들어 볼 참이다.
원문기사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0508100002&catecode=B&cpage=1 |
If i could change the world for just one day, To make it better for one moment, I'd lift the sorrowful veil, And recount the tale Of a people Longing for laughter, Longing for love.
If i could change the world for just one day, I'd free the prisoners of sadness, So they can sing in the street To music so sweet, And they'll naver Look back in sorrow, Onl y in love.
Beautiful world, Light of love, Light of life, just like a star Meant to guide us To the safety of a harbour known paradise.
Beautiful world, It's just a beautiful dream, Beautiful dream.... If i could change the world for just one day, I would embrace the broken-hearted, I'd take the pain that they felt, And make it all melt To a river Raging with laughter, Raging with love.
If i could change the world.....
내가 만약 단 하루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되어 한 순간이나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면 슬픔의 장막을 걷어 내고 웃음과 사랑을 그리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겠어요
내가 만약 단 하루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슬픔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풀어 주어 감미로운 음악에 맞추어 그들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게 할거에요 그러면 사랑에 젖어 과거를 잊겠죠
사랑과 생명이 빛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 천국이라 불리어 지는 안전한 항구로 우리를 인도하도록 운명 지어진 별처럼 말이에요
아름다운 세상 그건 단지 아름다운 꿈에 불과해요
내가 만약 단 하루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상심한 사람들을 안아 주어 그들의 고통을 가져다 웃음과 사랑으로 넘실대는 강물에 녹여 버리겠어요
사랑과 생명이 빛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 천국이라 불리어 지는 안전한 항구로 우리를 인도하도록 운명 지어진 별처럼 말이에요
내가 만약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
첫댓글 행복은 물질로 가득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가득채워져야 한다는 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조수미의 배경음악이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 주셔 찐한 감동을 받게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Beautiful World와 타샤의 정원, 타샤의 삶이 어우러져 마음속에 낙원을 가꾸게 해 주신 님께 고운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 타샤튜더의 아름다운 삶이 귀감되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행복은 물질로 이루지는 것이 않이라 마음의로 이루어 진다믐 말씀 마음에 와 닿내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