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비공개 사연이 궁금하다.
너른마당에서 우리밀국수와 녹두전으로 점심을 하고 1km 정도 떨어진 조선왕실 태실에 도착했다. 예약시간 1시 정확
하게 맞추었다. 그런데 탐방객은 우리뿐이다. 복잡할 거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따로 주차장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한적
한 시골길이라 보니 공터, 담벼락에 재주껏 주차하면 된다. 간단한 예약조회를 마치고 해설사를 따라 답사길에 오른다.
(13:20) 조선왕실 태실과 분묘군 정문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과 세자의 아기가 태어나면 생명은 태아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믿으며 아기의 건강과 왕실의 번
영을 위해 풍수와 의례에 따라 胎(태반과 탯줄)를 항아리에 담아 명당에 묻고 胎室을 만들어 주위에 금표를 세워 관리
했다. 태실은 풍수를 따라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 전국에서 태실이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서진산으로 13基의 태실이 있었다고 한다.
들어가는 길
탐방로는 참나무가 울창하고 발길 마사토가 억세게 느껴진다. 이는 사람의 방문이 뜸했던 까닭이 아닐까? 가까운 종마
장에서 특유한 향기와 날짐승들이 바람에 날려 온다.
▶胎室
태실 전경
서삼릉 태실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대한제국황실 관리기간인 '이왕직'에서 1928~1929년 사이 전국 각지에 흩어
져 있던 국왕, 왕자, 왕녀 등 태실 54位의 항아리와 태지석을 서삼릉 내 집단 태실군을 조성하여 모아놓은 곳이다.
태실 현황 안내판
형황판에 따르면 오석 비군과 황강석 비군으로 나누는데 오석 비군은 왕, 황제, 황태자의 태실이고 화강석 비군은 왕실
과 황실의 가족 태실이다. 오석 비군은 총 22기로 조선왕 27분에 추존왕 2분(장조, 익종)과 의민 황태자와 이구 황세손
을 포함하여 31분인데 위치 부재(단종, 연산군, 광해군, 인종, 효종, 현종) 6기와 소재 불명(추존익종, 철종, 고종) 3기
를 빼고 22기가 모셔져 있다.
태실 측경(右)
태실 측경(左)
태실 비석 오석군
태실 비석 화강석 군
그중 한 분 오석 비석(王世子胎室)
태항아리
胎(태반과 탯줄)를 내항아리에 담아 3일간 길방에서 보관하다가 향일주로 세척해 항아리에 동전 한 잎을 넣고 그 위에
태를 올려놓고 기름종이로 덮고 비단으로 봉항한 후 외항아리에 담아 솜을 채워 움직이지 않게 하고 태 주인의 이름과
생년월시를 기록해 길방에 보관하다가 명당이 정해지면 묻는다.
▶왕자 왕녀묘
왕자와 왕녀묘 전경
왕자 왕녀묘 현황판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왕자와 왕녀의 묘 22기를 모아 놓았다.
왕자와 왕녀묘 석물(문인석, 장명등, 망주석, 상석, 비석)
왕자와 왕녀묘 후경
그중 한 분 정소공주(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제1녀) 묘와 비석
▶후궁묘
▷숙의묘역 정문
숙의묘 현황판
숙의묘 전경
숙의묘 측경(左)
숙의묘 측경(右)
▷빈, 귀인묘역 정문
빈, 귀인묘 전경
빈, 귀인묘 측경(左)
빈, 귀인묘 측경(右)
빈, 귀인묘 상단
해설사의 안내
후궁묘는 숙의묘역과 빈,귀인묘역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해설사는 조선시대 후궁의 지위를 설명하고 있다. 후궁
의 품계는 嬪(정 1품), 貴人(정 2품), 昭儀(정 3품), 淑儀(종 3품), 昭容(정 4품), 淑容(종 4품), 昭媛(정 5품), 淑媛(종
5품) 이상 내명부 품계로 8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500년 왕실 그 많던 후궁은 다 어디에 묻히고 고작 21基만 서
삼릉 후궁 묘역으로 돌아왔다. 혹시 서울 북한산 자락에 버려진 석물들이 이들의 묘는 아닐까? 다행히 후손을 잘 둔 묘
주들만 후궁묘의 상징이 되고 역사문화가 되어 나라가 관리하는 혜택을 받고 있다.
골치 아픈 中殿보다 놀기 좋은 嬪이 되고픈 여자들!
빈, 귀인묘 후경
▶회묘(懷墓)
懐墓는 폐비 윤 씨(1455~1482)의 묘이다. 윤기견의 딸로 1473년(성종 4)성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476년(성종 7)에
성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연산군의 생모인데 투기가 심하고 왕비로서 품위를 잃었다 하여 1479년(성종 10)
에 폐위되고 3년 후에 賜死되었으나 연산군이 즉위 후 제헌왕후로 추존하고 묘호를 회릉으로 높였다. 1506년 중종반
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회릉은 다시 회묘가 되었다. 1969년 회기동에 있던 회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회묘 전경
연산군에 의해 회릉의 지위까지 높아져 능침은 웅장하고 장엄한데 현대에 와서 이장하다 보니 묘역은 초라하다. 해설사
의 양해를 구해 능침의 석물들을 가깝게서 일일이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
무석인
좌우 무석인
문석인
좌우 문석인
석마
망주석, 석양, 석호
장명등
석상(혼유석)
병풍석
(14:40) 나가는 길
1시간 20분 간 해설사의 안내와 해설을 들으며 답사를 마쳤다. 요산의 조선왕릉 답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서삼릉 태
실 옆에 있는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은 비공개구역으로 묶여있다가 얼마 전 예약제로 공개되었다가 다시
비공개가 되었다. 인근 종마장의 안전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모양이다. 언제 개개방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조선
왕릉 홈페이지를 자주 드려다 보라고 한다. 다행히 2025년 8월 08일 오전 10시 30분 종친회에서 효릉제가 열리니 그
때 방문하면 예약 없이 제례식까지 같이 볼 수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한다.
2025년 08월 12일
첫댓글 늘~~편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