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리히의 명물 건물, 그런데 모양이?
스위스 최대 도시 취리히의 서쪽은 `취리히 웨스트'라고 불립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 영등포 문래동 일대 같은 곳입니다. 원래 각종 공장들이 밀집한 곳인데 지금은 새로운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최고의 명물 건물은 뜻밖에도 아주 간단하고 부실해보이기까지 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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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도로와 골목 사이로 보이는 저 건물, 불빛으로 반짝이는 묘한 기둥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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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요즘 유럽과 일본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방 업체 `프라이탁'의 매장입니다. 콘테이너 박스를 쌓아 탑처럼 만든 매장입니다.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유명해진 건물입니다. 이 지역의 분위기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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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가는 바람에 영업 시간이 지났는데 매장을 사진으로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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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건물 하나로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낸 프라이탁의 감각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프라이탁은 저 건물만이 아니라 그 회사 자체가 그야말로 아이디어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동시에 친환경 재활용을 중시하는 스위스 디자인적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하겠습니다.
# 쌍동이 형제의 아이디어, 개성파 젊은이들을 사로잡다
1990년대 초반, 취리히에 사는 쌍동이 마르쿠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비올 때 자전거에 싣고 다니기 좋은 방수 가방이 필요했습니다. 맘에 드는 것이 없었던 두사람, 아예 직접 만들어봅니다.
디자이너답게 뚝딱뚝딱 이것저것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손재주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재료는 트럭 위에 씌우는 질긴 천으로 골랐습니다. 질기고 젖지 않는데다, 페인트 자국이며 흠집 등이 남아있는 느낌 그 자체도 좋았겠지요.
가방 손잡이는 버리는 자동차의 안전벨트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방 안에 들어가는 지지대는 못쓰는 자전거 바퀴의 튜브였습니다. 그야말로 100% 재활용 핸드메이드 DIY 가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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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가방을 본 주변 사람들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너도 나도 자기것 만들어 달라고 졸랐고, 쌍동이 형제는 만들어주기도 바빠집니다. 본업인 디자인이 뒷전이 될 지경이었겠죠. 두 사람은 이 가방을 아예 사업으로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프라이탁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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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는 가방 하나 하나 디자인을 모두 다르게했습니다. 거친 천에 밝고 경쾌한 색깔을 입혀 매번 디자인을 바꾸고 다품종 소량으로 변화를 줬습니다. 어차피 재활용하는 재료들이 처음부터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 컨셉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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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실용성이 좋은데다 다른 가방에겐 없는 수수하고 독특한 멋이 있는 이 가방에 많은 사람들이 반했습니다. 특히 예쁘고 질겨 젊은 층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렇다고 가격이 싼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방 하나에 20만원 이상입니다. 폐품 수집과 제작에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가방에 담은 아이디어 자체와 친환경성이란 컨셉에 공감해 가방을 사고 있습니다. 고객이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으로도 주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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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가 재미로 만들었던 가방은 이제 세계 수백여 매장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하도 잘팔려 못쓰게된 트럭천을 전세계에서 사오는 전담팀을 뒀는데도 트럭천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합니다. 디자이너의 재미있는 착상 하나가 놀라운 발상의 전환과 재활용 가치의 우수함을 입증해낸 것입니다.
이제 프라이탁은 스위스 특유의 재활용 정신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대표상품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그린-디자인, 에코-디자인의 대명사가 된 거죠. 이런 인정에 힘입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도 어엿한 디자인 작품으로 소장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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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영채 사진가
이 프라이탁 매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이 취리히웨스트의 저 콘테이너탑 매장입니다. 밤이면 저렇게 불을 밝혀놓아 랜드마크 역할도 합니다. 정말 자기네 가방스러운 건물 하나로 또다시 점포 마케팅 대박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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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에 가는 김에 꼭 저 매장에 들러 가방도 하나 사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밤에 가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워낙 바쁜 출장 일정이어서 다른 매장에는 들러보지도 못했죠.
비록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저 매장과 프라이탁 브랜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디자인 아이디어의 힘입니다. 그냥 버려지던 방수천과 안전벨트, 자전거 튜브가 되살아났습니다. 프라이탁을 표현한 `재활용의 재발견'이란 말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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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중요한 것은 저런 아이디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존재입니다. 조금 비싸고 그렇다고 모양이 아주 뛰어난 것이 아니어도 재활용, 친환경 아이디어란 그 자체에 돈을 쓰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능성과 친환경성을 유독 중시하는 저 가방이 세계적 유명 브랜드가 된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분들이 저 가방을 즐기고 있고 팬카페까지 있습니다.
사실 정말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 아닌가요?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프라이탁은 잘 보여줍니다.
국내에서도 버리는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터치포굿'이나 헌 가죽소파로 가방을 만드는 등의 재활용 브랜드 `메아리'가 있습니다.
이런 곳들의 선전을 바라며, 한국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이런 `개념 디자인'들을 더 많이 선보여줄 것을 기대해봅니다.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