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과 개장국
삼복(三伏)은 초복, 중복, 말복을 말하는데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때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세 번 엎드려 있는 날이다.
그런데 이 ‘엎드려 있다’는 삼복이란 말을 개장국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삼복에는 개장국을 많이 먹기 때문에, 개가 죽을까 두려워 바짝 엎드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삼복이 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삼복이란 말이 개가 엎드려 있다 하여 생긴 말은 아니다.
삼복은 2600여 년 전 중국의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진나라 덕공 2년에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를 막았다는 기록이 사기에 전한다. 이로 보아 개를 잡아 개장을 먹는 것이 삼복의 습속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가 죽는 것이 두려워 엎드려 있기 때문에 삼복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삼복은 동양의 고유 사상인 오행설과 관련되어 생긴 말이다. 삼복 날은 십간(十干) 중에서 경(庚) 자가 들어가는 날 곧 경일(庚日)이다. 지난날에는 연월일을 간지로 나타냈는데, 연도를 갑자년, 을축년 등으로 나타내듯이, 날짜도 갑오일, 을미일 등으로 나타냈다. 경일은 이 중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 즉 경진(庚辰), 경인(庚寅) 등과 같은 날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경일을 기준으로 삼복 날을 정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경(庚)이 지니는 오행상의 특성 때문이다. 경(庚)은 오행의 금(金)에 해당하는데, 계절로는 가을이다. 반면 여름은 오행의 화(火)에 해당된다. 불[火]은 쇠[金]를 녹인다. 그러므로 금(金) 즉 가을 기운에 해당하는 경(庚)은, 여름의 화(火)에 꼼짝을 못하고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 오행의 상극(相剋) 중에 화극금(火剋金)이란 용어가 있는데, 불은 쇠를 녹인다는 뜻이다. 쇠에 해당하는 경일(庚日) 곧 복날은 화에 해당하는 여름 동안에는 녹지 않기 위하여 바싹 엎드려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일인 삼복은 엎드려 있는 날이 된 것이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것은 단순히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실은 거기에도 오행의 원리가 숨어 있다. 오행으로 보면, 개는 서쪽에 해당하며 금(金)에 속한다. 강한 불의 기운에 약해진 경일(복날)에는 금의 기운을 북돋우어 화기에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금의 기운인 개고기를 먹어 부족해진 쇠의 기운을 보충하여 불에 녹지 않고자 한 것이다.
삼복이 생긴 유래가 이러하므로, 초복은 하지가 지난 세 번째 경일(庚日)로 정하고, 이로부터 열흘 뒤의 경일을 중복으로 삼았다. 그리고 입추 뒤의 첫 경일을 말복으로 정하였다. 이로 보면 초복, 중복, 말복은 열흘을 간격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십간(十干)으로 세는 경일은 10일 만에 한 번씩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20일 안에 삼복이 다 들면 이를 매복(每伏)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복이 정기적인 날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길 때가 있다. 원래 말복은 중복 열흘 뒤에 오는 경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복은 입추 뒤의 첫 경일을 기준으로 정하는 규정 때문에, 그 열흘 뒤에 설령 경일이 있다 하더라도, 입추가 그 경일 뒤에 오게 되면 그날을 말복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경일을 걸러 입추 다음에 오는 첫 경일을 말복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정상적인 복(伏)을 넘었다고 해서 월복(越伏)이라 한다. 이렇게 되면 중복과 말복 사이가 열흘이 아니라 20일이 된다. 월복이 드는 해는 늦더위가 심하다고 전해 온다.
이와 관련하여 개장국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개장국은 원래 개장, 구장(狗醬) 등으로 일컬었는데, 개고기를 금기시하는 시대상에 따라 지금은 보신탕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개고기 식용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거리가 되고 있다.
개고기는 우리의 오랜 전통 음식이었다.
안동 장씨의 음식디미방이란 책에는 개장국, 개장찜, 개 삶는 법과 고는 법 등 각종 개고기 조리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고,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증구법(蒸狗法)이라 하여 개장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풍습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삼복이 되면 개장국 먹는 것이 유행했다고 적혀 있다.
또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도, “며느리 말믜 바다 본집에 근친(覲親)갈 제, 개 잡아 살마 건져 떡고리와 슐병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며느리가 여가를 얻어 친정에 부모님을 뵈러갈 때, 개를 잡아 삶아 건져서 떡고리와 술병을 갖추어 뵈러간다는 뜻이다. 이에서 우리는 개고기가 당시에는 귀한 음식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그 효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개고기는 널리 식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시대에 따라 문물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개고기 식용 문제는, 우리의 그러한 전통문화가 그 밑동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