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대해
글 김광한
호칭이란 상대의 인격과 사람 됨됨이,그리고 사회적 직위,직장에서의 위치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름과는 달리 호칭은 살아가면서 얻는 개인에 대한 칭호를 말한다. 사람의 이름도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아명(兒名)이 있고, 어느 정도 자라 철이날 즈음 이름과 함께 자(字)와 호(號)가 따라붙게 되는데 살아가면서 사회적인 직위와 벼슬이 변할수록 그 사람의 호칭도 여러 가지가 된다. 그 가운데서 호칭에 가장 걸맞은 것을 골라 써주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흔히 쓰는 선생님이란호칭은 학교 선생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학식이 있고 점잖은 사람에게 주는 호칭인데, 이런 점잖은사람이 사정에 있어서 아파트의 경비원이라도하게 되면 호칭의 등급이 금방 낮아져서 '씨'가 되고 만다. 물론 씨(氏)란 호칭이 아주 하위급 호칭이 아닌 일반적 호칭이겠지만 어쩐지 남을 얕보는 어감이 들어 있어서 기분이 유쾌해지지 않는다.
더구나 아들이나 딸뻘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씨라는 호칭을 들으면 그것이 틀린 호칭은 아니더라도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상대의 호칭을 너무 신분과 인격에 비해 높여 부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엄연히 그럴 듯한호칭이 있는데 씨(氏)나 그밖에 유사한 호칭을 붙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대학교수가 정년 퇴직했다고 해서 그 이튿날부터 '씨' 자를 붙이는 것도 그렇고 흔히 의사에게 붙이는 학터(Doctor)란 호칭을 일반 학원 강사나 중학교 선생에게 붙이는 것도 조금 어색하다. 물론 일반 학원강사나 중학교 선생이라고 닥터 칭호를 갖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호칭은 나이와 사회적 지위와 인격에 맞추어 붙이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갓 연수원을 나온 젊은이에게 흔히 영감(令監)님이란 호칭을 써 줘 젊은 사람들에게는 기분을 좋게 만들고 쓰는 사람은 아첨(?)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풍조가 있는데 당사자 이외에는 비린내가 풍기는 호칭이 아닐까 한다 영감이란 나이가 들고, 인격도 완숙해서 시골의 존장(尊長)쯤 되는 사람이 들어야 합당한 호칭인데, 이마빼기에 피도 마르지 않은,오직 사법고시에 합격해 범죄자의 잘잘못을 판단해 벌을 준다고 해서 옛날의 군수영감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그것 역시 일제의 잔재인 권위주의의 답습이 아닐 수 없다.
또 의사(醫師) 계통에서 널리 쓰여지고 있는 닥터 호칭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골 마을에서 수십 년째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는 이모 의사가 있는데, 이 의사 영감님은그 마을의 젊은이들이 태어날 때 대부불 손을 봐 줬던,마을의 유지였다 이 사람에게는 여기에 걸맞는 호칭이 따라다녔다.각종 단체의 자문위원은 물론, 정화위원, 무슨 위원 같은 임명장과 감사패가 박물관이라도 만들어 놓아도 좋을 만큼 많았는데, 문제는 이름 앞뒤에 붙는 '닥터'란 호칭(닥터란 박사이다)
이었다.
일제시대 때 의전(醫專)을 나와 개업한 후, 그 흔한 박사코스를 밟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 이유였다. 이 선생은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의 출산을 위해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고 진료를 했다. 이에 비해 막 개업한 젊은 의사는 박터란 호칭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하면 출산실수를 해서 신생아를 병신으로 만들곤 했다. 모임에 나가게되면 '닥터'라는 호칭 때문에 늘 언잖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의사들 모임에서 저희들끼리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첫고 「닥터김은 요즘 어떤가」 하며 덕담이 오가는데 늙고 경험이 많은 자신에게만 유독 이 선생이나 이씨로 호칭하는 데는 도대체 살맛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의사협회나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에서 초대장이 오면 마음이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느 날 어떤 사기꾼이 이런 그의 의중을 간파하고이 선생 앞에 나타났다. 미국의 어느 의과대학에서 돈만 내면학위를 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이 선생은 그 제의를 받고 박사학위를 취득(?)해 학위 원본을 아예 표구해서 집무실에 걸어왔다. 그리고 의사들의 모임에 나타나서 그 학위증의 사본을 들고 긴급동의를 구했다.「한마디 말씀드릴 게 있소. 앞으로 본인을 입에 올릴 때 반드시 닥터란호칭을 쓰도록 하시오. 여기 증거가 있소. 똑똑히보시오.」
하면서 젊은 의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후레자식들 같으니라
고. 의료사고는 도맡아 저질러놓고,뭐 닥터라구?」
이 선생은 회의도끝나기 전에 모처럼 만에 어깨를 펴고 걸어 나갔다.
옛날 남사당(男寺黨) 패거리에서 흔히 부르던 동모란 호칭이있다. 동모란 동무와같은 뜻인데,여기에 '암' 자를 붙인 암동모라는 호칭도 있다(동성연애가 성행하던 이 패거리에서의 암동모란 '꼭두쇠'라는 패거리 두목의 남자 첩을 말한다). 동무란 호칭은 어린 친구란 말도 되고,신분,지위 고하를 떠난 친구의 의미도 된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동무란 호칭을 쓴다. 평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란 말과 자매란 호칭은 교회계통에서 신자들에게 유통이 된다. 그런데특히 형제란 말은 들어서 친근감을 주는 사람도 있고,그렇지않은 사람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동무는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아버지 동무니 어머니 동무니 해서 듣기가 거북한데 반해 형제 자매는 같은 교(敎)를 신봉하고 그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됨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이질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순서를 침범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천주교에서 어떤모임이 있거나 대화의 장소에서 나이가 수십 년 아래인 사람이 저희 맏형이거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에게 터놓고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거북함을 느끼게 해 준다.
김수환 추기경이 연세가 들어서 은퇴하셨다고 하자 이를 잘못 해석한 물지각한 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김수환 형제' 라고 호칭한 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김수환 추기경이 은퇴한 것은 서울 대교주장을 그만둔 것이지추기경마저 사퇴한 것은 아니다. 추기경이나 주교 같은 직위는그 자리를 물러났다고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명예와 함께 후세에까지 지켜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제란 호칭은 언뜻 보면 친근감을 주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호칭할 때는 어떤지 동무와 같은 사회주의적인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조금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생님이나 교수님,박사님,의원님 같은 개성과 적위에 맞는 좋은 호칭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형제님 이라고 부르는 일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교수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손해나는 일은 없지 않은가. 호칭이란 당사자가 듣기도 좋고 부르는 사람의 부담도 털어주는 쪽에서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청소원이나 노동계에서 흔히 부르는 '십장' , '미장 같은 호칭도 그대로 부르기보다 는 십장,미장에 '선생님' 자를 하나 덧붙여 주면 듣는 사람이그만큼 기분이 좋아지고 하는 일에 긍지를 갖게 해 줄 수 있을것이다.경비원 김씨보다, 경비원 선생님이 조금 과한 호칭이라면 경비원 아저씨 정도로 급을 높여 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