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는
정연덕
나의 시는 알몸으로 엷은 초록색이다
벗겨진 머리 위로 밀려다니는 몇 포기 나의 시는 곤한 잠 속에서도 웃는다
훔친 바람 같은 나의 시는 잡초밭에 풀꽃을 피운다
어지럼을 잘 타는 나의 시는 파밭에 빠져 나를 숨차게 한다
그래 나의 시는 똥이 덜 빠진 시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는 그런 시다
시의 길을 50년을 걷는다는 건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품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좋고 전부를 품어도 좋지만 물을 품는다는 행위는 어떻게 하여도 자신의 몸을 적셔 매마름을 축이는 일이다. 50년의 물 적시기 전집을 받고 축하의 말씀을 바로 하지 못한것은 시의 길을 뒤따르는 내게 얼마만큼의 강물이 젖어들었는지 가늠하지 못해서 였다. 시는 삶의 세계를 밝힐 뿐만 아니라 사람됨을 이뤄낸다. 시의 언어가 현실을 창조하는 것과 사람됨을 창조하는 것은 서로 불가분의 필연적인 보충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는 서로 대응의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의 창조적인 기능은 외부 세계보다 내부 세계에 있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낸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성이 선험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주어져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의 언어생활을 통해서 이성과 정서와 정신적인 기능이 발전하게 됨을 말한다. 정연덕 시인의 내부 세계의 발전은 외부 세계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언어를 통해서 외부 세계를 파악하고 정리하고 형성하는 시 쓰기를 통해서 정신적인 기능으로 발전하여 읽는 이의 삶의 재구성하게 한다. 전부 12권의 시집을 발간하면서 권마다 이러한 특성이 뚜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삶의 이해와 해석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시를 알몸의 엷은 초록색이며 바람 같은 잡초밭의 풀꽃이라고 한껏 낮추는 자세는 삶의 겸손이 넘친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찌거기가 덜 빠진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는 시의 결정체를 밝힌다. [이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