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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과서 5학년 2학기 3단원 '유교 문화가 발전한 조선' 단원에서 '임진왜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다. 조선이 세워지고 200년이 지났을때, 일본의 침략인 임진왜란이 있었으며 높고 험한 고개의 지형의 특성을 살려 국방의 요충지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의 전개와 극복 방법에 대해 공부 할 수 있다.
진한 흙냄새 풍기는 옛길을 만나러 가는 길. 아스팔트가 주는 화려함 속에 고즈넉한 향기를 품은 길. 문경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포장되지 않은 고즈넉한 옛길의 멋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새재의 호젓한 흙길은 빼어난 자연 풍광과 정취로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나그네에게 마음을 열고 쉬어갈 수 있는 "멋진 안식처" 가 되어 준다. 옛길, 그 고즈넉한 멋을 찾아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시작해 보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진남교반을 굽어보고 있는 고모산성
기쁜 소식 먼저 듣는다 하여 '문경(聞慶)'이라 하니...
'나는 새도 쉬어 넘어간다'는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 하여 지어진 이름 '새재' 그 의미도 다양한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태종 때 열려 500여 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제1의 대로,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남아 있다.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었던 새재는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희망이었고, 낙향하던 관리들의 허탈함을 달래주던 조금은 쓸쓸한 고개였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갔던 선비들이 장원 급제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듣는 곳이 또한 문경이었다. 특히, 영남의 선비들은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이요, 죽령을 넘으면 쭉쭉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문경새재를 거쳐 갔다고 한다. 더욱이 그 이름도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인 까닭에 옛사람에게 문경새재는 경사스러움과 반가움이 가득한 곳이다. 옛길 그대로의 모습을 밟을 수 있는 새재의 3개의 관문을 따라 옛사람들의 발길을 쫓아가 보자.
남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설관된 주흘관
호젓한 옛길을 걸으며…- 제 1관문(주흘관)에서 제 3관문(조령관)까지
새재에는 3개의 관문이 있는데, 제 1관문인 주흘관에서 고갯마루인 제 3관문 조령관까지 10Km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는 흙길로 맨발로 올라갈 수 있어 최고의 트래킹 코스로 꼽히고 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맨발로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흙길 바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은 너무나 투명해서 바닥까지 보인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멋스럽게 올려진 기와지붕 성문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바로 주흘관으로 남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설관 된 곳이다. 문경새재에 KBS 촬영장이 건립 되어 있는 용사 골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촬영장으로 고려민속촌을 겸한 사극 촬영을 중심의 테마 관광지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2000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태조 왕건'을 필두로 무인시대 등 현재에도 다양한 사극이 촬영 중이다.
[왼쪽/오른쪽]조령원터 원형 / 교귀정 전경
제 1관문에서 제 2관문까지 펼쳐지는 길은 맑은 계곡과 함께 울창한 소나무와 전나무 군락지로 산책로로 주목받고 있어 가족,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 2관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관에서 운영한 숙박시설인 조령원터 (현재 원형만 남아 있음)를 만날 수 있으며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 길을 오르던 선비들을 비롯한 보부상들의 쉼터인 옛 주막. 그 외에도 새로 부임한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하던 교귀정을 만날 수 있다. 기암절벽이 굽어보며 우람하게 서 있는 제 2관문인 천연의 요새로 기암 절벽의 협곡을 이룬 조곡관은 약수 맛이 좋아 길손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 주는 영약 수로 알려져 있다. 조곡관을 지나면 촌로의 애절한 민요 가락인 문경새재 민요 비가 보인다.
[왼쪽/오른쪽]기암절벽을 굽어보며 서 있는 천험의 요새 '조곡관' / 영험스러운 곳으로 전해지는 '책바위'
제 2관문과 제 3관문 사이에 위치한 '책바위'는 소원을 빌면 장원 급제 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지금까지도 입시철이며 소원성취를 비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취업난 때문인지 '올해 취업 꼭 하게 해 주세요' 란 소원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고, '올해 노처녀 딱지 좀 떼게 해 달라', '애인과 헤어지게 해 달라'는 등 이색소원도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했다.
마지막 남은 고갯길인 제 3관문 조령관
마지막 남은 고갯길 제 3관문인 '조령관'으로 가는 고갯길은 더욱 가파르지만 조금 더 힘을 내어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벗어나면 산신각과 약수터가 나와 길손의 땀을 식혀준다.
옛사람의 흔적 가득한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문경새재 말고도 문경의 멋진 옛길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2군데인데 하나는 '고모 산성'이요, 또 다른 하나는 '토끼비리'다.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진남교반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는 고모 산성은 임진왜란 때 우리 군사 한 명 없이도 만 하루 동안의 진격을 지연 시킬 만큼 천험의 지세를 이용해 쌓은 철옹성이며 구한 왜병과의 전투, 그리고 6·25 동란 때에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게 했던 민족 수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천년고성이다. 성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면 1,500여 년 전 옛 선인들의 지혜와 혼 그리고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그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왼쪽/오른쪽]왕건이 처음으로 낸 옛길 '토끼비리' / 화석처럼 새겨진 옛 선인들의 발자국
고모산성에 있는 '토끼비리'라는 길을 처음 낸 사람은 왕건으로 견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내려가다가 문경새재 남쪽 길이 막혀 궁극에 몰렸을 때, 토끼 한 마리가 계곡 사이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벼랑을 잘라 길을 텄다는 얘기가 전해져 '토천', '토끼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유독 경사가 심한 벼랑길인 토끼비리엔 짚신을 신었던 옛 선인들의 발자국이 마치 화석처럼 남겨져 있는데 달리 디딜 곳이 없던 좁은 길에 남은 선인들의 흔적이 아니겠는가… 괜시리 옛 선인의 감정이 이입되는 듯 그 아슬아슬한 경국이 눈에 선해 몸서리가 쳐졌다. 가기 힘들고 두려운 이 길을 걸어간 선인들의 청운의 꿈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