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따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向側の座席から娘が立ってきて、島村の前のガラス窓を落した。
雪の冷気が流れこんだ。
娘は窓いっぱいに乗り出して遠くへ叫ぶように、
「駅長さあん、駅長さあん。」
明りをさげてゆっくり雪を踏んで来た男は、襟巻で鼻の上まで包み、耳に帽子の毛皮を垂れてい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여자는 한껏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는 듯이,
"역장니임, 역장니임ー"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목도리를 콧등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모피를 드리우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 대단히 유명하다.
설국의 도입부는 일본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리는데,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 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주입시킨다.
특히 첫 문장인 '국경의~' 부분은 일본 국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문장으로 각종 문장론 서적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며, 이 문장만 연구한 논문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사실 가와바타가 퇴고하면서 탄생한 문장으로, 처음에 썼을 때는
"국경의 긴 터널을 넘어서자, 그곳은 설국이었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越えたら、そこは雪國だった)“
였다고 한다.
일본 대중매체에서도 라이트노벨, 만화 등에서 자주 이 구절을 패러디하곤 한다.
가와바따를 별로 존경하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그의 아름다운 문장 만큼은 사랑한다.
이렇게 대설이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가와바따는 내 소년 시절 일본 문학전집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그의 소설, ‘이즈의 무희’를 읽고 일본 유학 시절 직접 이즈반도에 가 봤을 정도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에 일본 오사카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뜨거운 감정을 나눠도 언젠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인간의 삶의 유한함과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허무주의적 가치관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주제의식이 되죠.
설국 줄거리에는 특정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보다는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 그리고 허무함 속 갈등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요.
설국 줄거리 속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도쿄에 사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서양 무용에 대한 비평을 쓰는 것을 소일거리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산으로 둘러싸인 북쪽 지방의 온천 마을로 여행을 가는데요. 그 곳에서 고전춤을 배우기 위해 마을에 머무르고 있던 '고마코'라는 19살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날 밤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보겠다면서 고백을 하듯 시마무라의 이름을 수없이 끄적이고 다음날 새벽 급히 그의 여관방을 떠나죠.
홀로 남은 시마무라는 도쿄로 돌아가고, 1년 뒤 겨울이 되어서야 다시 기차를 타고 온천 마을을 방문합니다.
여관에서 다시 만난 고마코는 기생 신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시마무라가 떠난 날부터 그와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녀는 시마무라를 보자마자 자신들이 다시 만난 지 199일째라고 말하죠.
하지만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자신을 애타게 기다린 것이 헛수고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과 고마코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 싹터도 영원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그 후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시마무라는 그녀의 빨간 볼을 보며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과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고마코의 빨간 볼은 시마무라에게 삶의 유한을 지각해서 생겨난 허무함에서 벗어나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에 빠져들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언젠가 사라지게 되는 덧없는 감정 앞에 흔들리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마무라는 마을 사람으로부터 고마코가 고전춤 선생의 병든 아들인 '유키오'와 약혼 관계이고 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유키오에게 '요코'라고 하는 새 애인이 있다는 얘기도 듣는데요.
사실 시마무라는 온천 마을로 오는 길에 기차에서 요코라는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시마무라는 이런 삼각관계도 유키오가 병으로 죽게 되면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는 생각에 허무함에 빠져듭니다.
시마무라가 늘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고마코는 매일 밤 따뜻한 등불처럼 그를 찾아와 함께 밤을 보냅니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자신을 향한 고마코의 마음이 갈수록 커져가는 것을 느끼고, 기차역까지 따라오며 자신을 배웅하는 고마코를 남겨두고 서둘러 도쿄행 열차에 오릅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문득 외로움에 빠집니다.
헛수고 같이 여긴 감정에 거리를 두려 했지만, 고마코의 빨간 볼과 그녀가 설원 위에서 느낄 쓸쓸함이 이미 시마무라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1년이 지나 다음 해 겨울이 되고, 시마무라는 다시 설국의 온천 여관을 찾습니다.
1년이 지난 사이, 유키오는 결국 병으로 세상을 이미 떠났는데요. 다시 만난 고마코는 작년에 시마무라를 역에서 배웅할 때 배웅이란 것이 그토록 괴로운 것인지를 깨달았다며 이별하던 순간의 쓸쓸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고마코는 여관의 연회에서 손님들을 받을 때마다
수시로 빠져나와 시마무라의 방을 찾게 되죠. 그럼에도 시마무라는 여전히 사람의 감정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그녀와 거리를 둡니다.
고마코가 자기에게 빠져 들어오는 것이 시마무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마코의 모든 것이 시마무라에게 통해 오는데도, 시마무라의 아무 것도 고마코에게 통하지 않는 듯 했다.
고마코가 허망한 벽에 부딪치는 메아리 같은 소리를 시마무라는 자기 가슴 속에 눈이 쌓이듯이 듣고 있었다.
유키오의 애인이었던 요코도 시마무라가 머무는 여관의 주방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시마무라는 그녀에게도 묘한 호감을 느끼지만 고마코에게 그러했듯이 계속 거리를 두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죠. 요코는 날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유키오의 무덤가를 찾으며 우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영화를 상영하던 창고에서 불이 나는데요.
화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여관 근처에 있던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눈밭을 달려 불이 난 곳을 향해 갑니다.
눈밭을 지나가던 중, 문득 두 사람은 눈밭 가까이에 내려앉은 은하수를 올려다 봅니다.
그리고 시마무라는 은하수를 보며 대자연의 무한함과 광활함을 느낍니다.
”밝은 은하수가 시마무라를 빨아들일 듯이 가까웠다.
발가벗은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맨살로 감싸려고 가까이 내려와 있다.
무섭게 요염했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조그만 그림자가 지상에서, 반대로 은하수에 비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이 하나하나 보일 뿐 아니라 곳곳에 광운의 은모래도 한 알 한 알 보일 만큼 맑았고 더구나 은하수의 한없는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시마무라는 한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무한하면서도 담담한 대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갈망으로 은하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고마코는 은하수로 빨려 들어갈 듯한 시마무라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혼자 쓸쓸한 설원에 남겨질 것을 직감하죠.
시마무라는 대자연 속에 일부가 되길 꿈꿨고, 한 사람은 유한한 사람들이 몸을 기대며 살아가는 설원 속에 남기를 꿈꾼 것입니다.
설원을 달려 불이 난 창고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불구경을 하는 인파 속에 섞여 들게 되고 갑자기 2층 객석에서 요코가 떨어집니다.
고마코가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지는 요코에게 뛰어가고, 시마무라가 불구경 하는 인파에 밀려 고마코에게 멀어져 가면서 설국 줄거리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