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8장 19-21절
주제 : 죽은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주제 1 예수를 따르겠다는 서기관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19절)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선생으로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서 시험에 빠트리거나 올무에 걸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볼 때 서기관은 진정으로 따르려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기관의 심중을 꿰뚫어 보신 예수께서 집도 없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다니며 고난 받는 제자의 길을 네가 갈 수 있겠느냐? 는 반문으로 20절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서기관의 의도를 추론 할 수 있다. 백부장의 하인을 말씀으로 고쳐주시고,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해주셨으며, 또한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예수께서 권능을 행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며 예수를 따르게 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서기관이 권능과 인기와 명예등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르겠다고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길은 네가 생각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힘든 고난의 길인데 네가 감히 따를수 있겠느냐고 반문 하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님께서 거처할 집이 없다는 처량한 메시지가 결코 아니며,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품이 거처할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분명 아니다. 또한 성도들이 거할 처소가 이곳이 아니라 나그네요...
어쩌고 저쩌고 하는 해석도 본문 마태복음 8장 20절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다.
주제 2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20절) 십자가의 도에 관한 이 말씀을 듣게된 제자가 예수님께 요청하는 말이 21절이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22절) 말씀하신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아버지를 장사하고 따르겠다’는 제자의 말에 율법과 도덕에 맞지 않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의 말씀을 하셨을리 없다.
주석과 강해 여러 권 살펴보았는데 대부분 복음 사명의 우선순위로 해석하고 있다. 몇 권 더 살펴보다가 다시 본문의 배경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서기관에게 답변하신 직후 한 제자가 ‘아버지의 장사(葬事)얘기를 꺼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죽은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어떻게 죽은자가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아버지를 장사하겠다는 제장의 말은 지금 당장 장례를 치려야 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제자의 아버지가 실재로 돌아가셨다면 예수님과 및 동료들도 함께 장사하러 갔을 것은 자명하다.
또한 제자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중했었다면 앞서 고쳐 달라거나 살려달라고 간구라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없는 것을 보면, 한 서기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전에 대한 부정과 두려움이 엄습하자 주님이 가시는 길을 가기가 두려우니 가장 확실한 아비를 핑계로 주의 길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앞서서 한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캠벨몰간, 마태복음 주석’과 ‘아담스미스 목사의 강해’와 또한 당시 ‘성서시대의 생활과 풍습’에는 ‘연로한 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다는 의미로서 장사하게 하다’ 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율법과 도덕을 무시하거나 아버지를 장사하는 일보다 복음 전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며 ‘서기관에게 답변하는 말씀을 듣고 제자의 길이 두려워 벗어나고자 했던 제자에게 제자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할 것을 말씀하심과 동시에 함께하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제자의 도(제 십자가를 져야하 한다)를 교훈하고자 하셨다'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