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칡넝쿨을 제거하며 작은 텃밭을 가꾸는 촌노가 언급할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한줄 올립니다. 가급적 국내 정치 상황 언급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 사안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더불어 민주당 곽상언 의원 이야기입니다. 곽상언의원은 얼마전 총선에서 정치 일번지라는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됐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위입니다. 그는 총선에 나서기 전부터 장인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한국의 정치 민주화를 기필코 이루겠다고 공언한 인물입니다. 현재는 더불어 민주당 원내부대표이기도 합니다.
곽상언의원은 지난 2024년 7월 2일 박상용 검사 탄핵소추안의 법제사법위원회 회부 동의의 건에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더불어 민주당내에서 유일합니다. 박상용 검사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더불어 민주당측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이뤄지는 검찰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수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당의 특정인을 죽이기 위한 음모라고 하고 검찰은 말도 안되는 언급이라고 반박합니다. 어느쪽이 맞는 것인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대북 송금 사건은 2019년 쌍방울이라는 회사가 북한에 모두 800만달러를 보냈는데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 달러를 제삼자에게 준 뇌물로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공모하여 쌍방울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고 쌍방울은 그 대가로 북한에 80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더불어 민주당은 박상용 검사가 대북송금사건 수사과정에서 이화영 부지사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회유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당연히 박 검사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응했습니다. 결국 더불어 민주당은 박검사를 포함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에 들어간 것입니다.
물론 쌍방울 사건이나 회유 의혹 사건이나 모두 최종적으로 아직 진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안입니다. 저는 이 사안의 진실여부나 탄핵여부를 둘러싼 당위성을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곽상언의원의 기권표를 보면서 느낀 점을 적는 것입니다. 곽의원은 기권표를 행사한 이후 입장문을 통해 추후 법사위 탄핵 조사를 통해 탄핵 사유가 충분히 밝혀지면 최종 표결에서 마땅히 찬성으로 표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곽의원의 말로 미뤄보면 탄핵 사유가 충분히 밝혀지지 전에는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다시 말하자면 충분히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난 뒤에서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률가다운 판단입니다. 법률가다운 판단이지 정치가다운 판단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곽상언의원은 정치가입니다. 변호사출신일 뿐입니다. 법률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곽상언의원의 행동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한 정치인이요 특정 당의 원내부대표이기도 합니다. 원내부대표는 더불어민주당소속 국회의원들을 규합하고 당론에 의해 잘 움직이도록 독려하는 그런 위치입니다. 물론 당 지도부에 충직한 소신을 전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만은 놓고 볼 때 상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곽의원이 법률가출신이니 잘 알 것입니다. 세상에 사유가 충분히 밝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또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충분히 사유가 밝혀집니까. 특정 집단이 만일에 어떤 건전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을 뒤집어 밝혀내는 데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까요. 여러사람들이 모의해서 특정인을 모함하고 그를 곤궁에 빠지게 할 때 그것이 아니라고 밝혀내는데 또 얼마나 시간이 소비될까요. 더불어 민주당에서 특정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당론으로 정했을때 그가 회유사건에 깊숙히 간여한 빼도박지도 못할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주변인들의 의견과 당시 정황을 감안해 판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민주당 입장에서는 의혹을 살만한 사안이 발생했고 그것이 검사의 탄핵사유가 된다고 판단했기에 결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곽의원은 지금 한국 정치가 평화로운 시절이라 판단합니까. 정치적 전시상황 즉 비상상황이라고 판단합니까. 물론 그것은 곽의원의 개인적 생각이겠지만 말이죠. 국민들 상당수가 거리에 나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곽의원도 판단할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 탄핵요구 국민청원이 13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정치적으로 평화로운 시절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전시와 평화시에는 판단과 사고방식에 조금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전시에는 중간과정이 간혹 생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메뉴얼대로 갈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코로나 사태때 그 메뉴얼 찾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예를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더불어 민주당에서 당론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토론과정이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지도부가 너무 강성일변도 아니냐는 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더불어 민주당과 전혀 관련 없는 저같은 인물의 입장에서 볼 때 더불어 민주당은 지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전시상황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내 원내부대표는 그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지도부에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어야 마땅합니다. 원내부대표는 그런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고 막상 표결에 들어가자 기권한다 이건 당을 이끄는 인물로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곽의원은 더불어 민주당의 그런 분위기를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때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전시체제를 구성하고 당의 앞날을 위해 이른바 수박세력을 걷어내는 그런 과정을 바로 옆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본 곽의원아닙니까. 더 민주당은 대단한 여소야대를 만든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래저래 허송세월만 보냈다는 날선 비난을 받은 당 아닙니까. 상당수 국민들이 동상에 걸리면서도 추운 겨울 광화문과 전국 각지의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그 정신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당에 대한 원성이 높아 결국은 정권을 그대로 헌납한 것 아닙니까. 이리저리 살피고 주춤거리고 망설이는 사이 세월을 흘려버린 것 아닙니까. 뭔가 혁신적이고 개혁적이고 추진력있게 사안을 처리하라는 지지자들의 간곡한 소망으로 22대 총선에서도 여소야대를 이뤄준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욕을 먹었을까 잘 알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곽의원의 성격상 그런 당 분위기가 싫다면 더불어 민주당에서 나갔어야 합니다. 공천도 받지 말았어야 합니다. 자기 성향에 맞는 그런 당을 찾아갔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곽의원은 더불어 민주당을 택했습니다. 장인인 노대통령의 후광도 없다고 볼 수는 없었겠지요. 더불어 민주당의 분위기와 앞으로의 향방도 몰랐다면 정치적 감각이 아주 부족한 것이고 알고 들어갔지만 다른 행동을 했다면 해당적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곽의원은 상황이 심각해지고 비난이 일자 결국 원내부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스스로 그만 두었는지 당지도부가 그만두라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그 지위에서 나가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리고 곽의원은 이제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흉내만 낼 것인가는 곽의원 스스로 판단할 일입니다. 하지만 곽의원은 무엇이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살리고 이 나라 정치를 괜찮은 수준으로 올릴 것인가를 이제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에서 왜 오류가 없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뒤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랬다면 시작이 가능했겠습니까. 시작초기부터 숱한 지적과 비난을 받았지만 묵묵히 밀고 나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이 정치적 전시인지 태평성대인지 그리고 민주주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공부해 보시길 바랍니다. 큰 나무는 강한 바람에 간혹 흔들리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혹독한 가뭄과 혹한에도 묵묵히 견디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막 정치문턱을 넘은 곽상언의원에게 너무 가혹한 채칙은 무리인 것을 알지만 곽상언의원에게 이번 사태가 더 큰 나무로 자랄 절호의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4년 7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