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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 90년생들하고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릴때라 이 세사람의
인기를 실감못할거라 생각됩니다.
그때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생이니...)
Entertainer
김국진
사실상 자타공인 최고의 예능인이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예능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짜 전국민적 인기에 김국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떠돌정도였고..
90년대에 이분의 인기는 진짜 나는 새도 떨어뜨릴정도였죠.
김국진의 당시 인기는 지금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두 MC 유재석,강호동 두사람 합친 인기보다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화계쪽은 몇번 까메오 출연한것 외에는 진짜 TV에 안나온데가 없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거의 MBC에선 예능 간판으로써 거의 MBC예능을 먹여살릴정도였죠..
전국적으로 연령대를 초월하여, 그 시대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라는 키워드의 이상형을 만들어냅니다.ㄷㄷ
대한민국 예능사에 도미네이트한 1인 천하의 시대를 열었던 사람이 3명있습니다.(전체 통틀어서)
그 사람이 시대순으로 이경규.김국진.신동엽인데요.
그 중에서도 단연 탑은 김국진이었죠.
우스갯 소리로 김국진 섭외할려구 pd들이 김국진 집앞에서 일주일동안 밤새가면서 기다릴 정도였다고합니다.
김국진 전성기때 연예인의 이름을 내건 식품이 딱 2개 있었습니다.
HOT랑 김국진씨 였는데 당시 가요계의 독보적 1인자는 HOT, 방송계의 독보적 1인자는 김국진씨 였었습니다.
국진이빵 잘나갈때 하루 70만개 팔렸었는데 말 다한 거죠.
김국진이 무릎팍 나와서 얘기했었는데 전성기때 스케줄이 1월 1일 ~ 12월 31일까지 다 차있었을 정도였다죠.
잘나갈 당시 찍은 CF만 100편이상이 넘으며 하루에 스케줄이 넘처나다못해 CF촬영이 6시간이상이 넘어가면
CF촬영을 중단할정도였습니다. CF의 한편의 힘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스타들도
CF한편 못찍어서 안달이죠..
요즘 방송인들 유행어 만들려고 기를 쓰죠.
김국진씨 전성기때 그냥 던진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쉽게 말해 1회 방송분에 유행어가 수십개씩 나왔죠.
당시의 인기도 인기지만 안티팬도 없었죠.
1.정부수립 1948년이후 50년동안(100년은 아니구요..광복이전은 연예계라는게 의미가 없으니..)가장
사랑받은 연애인 1위였구요..2,3,4위가 최불암,최진실,조용필로 기억됩니다..말 그대로 전국민적인
초특급 스타였습니다.(갤럽조사)
2.또한 MBC에서 조사한 20세기를 빛낸 코미디언 1위로 선정.
3.당시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였습니다..연예인뿐만 아니라 스포츠스타,유명인사 합한 설문조사에서도
1위를 독차지...
4.이러한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구매력을 발생시키는 cf스타로도 활약했구요..
그유명한 국진이빵등을 비롯한 100여편의 cf및 이로인한 유행어들(밤새지마란 말이야-컴퓨터cf,
나 소화 다 됬어요-소화제,짜장면 시키신분..-이동통신 cf 등등)
5.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1인천하시대-그당시 다른 개그맨은 솔직히 명함도 못내밀었다고 보시면..
그 인기의 제일 1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테마게임입니다.다양한 캐릭터와 어려운시절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준 테마게임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예능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그당시 드라마와 코메디를 합했다고
해서 드라메디라고 불리기도 했구요.(그밖에 당시 21세기위원회,칭찬합시다.일밤등 여러프로가 다 인기를
얻었구요)
Actress
故 최진실
자신의 이름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낸 최초의 연예인.
자타공인 한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 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90년대 인기가 절정을 달리던 시절 남녀노소 상관없이 다 최진실을 좋아했고,
개런티나 CF출연비용도 여자스타중에 A+급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출연시키려고 난리도 아니었죠,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연예인이었습니다. (방송 3사를 휩쓸고다녔죠..)
"대스타" "국민배우"의 수식어를 달고다녔으며 한때 일화로는 지방에 있는 최진실의 남성팬들은 최진실의 얼굴 한번 볼려고
서울에 올라와서 텐트치고 기다렸다는 말도있고.. 골수 남성팬이라던가 엄청난 매니아층 팬을 보유했었습니다.
80년대 90년대를 통틀어 연기자로써는 그렇게 오래 인기를 누리고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톱스타로 살아온 연예인은
최진실밖에 없었다고 보면됩니다.
cf, 영화, 드라마 전부 섭렵했었죠..
당시엔 상당히 신선하고 귀여운 마스크였고,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호감형의 외모를 지녔다는 평도 받았죠..
진짜 초창기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라는 소리를 들었을정도였고 오랜세월 탑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무리 톱스타라도 10년이상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기힘듭니다.
평론가들은 최진실을 가리켜 앞으로 대한민국 연예계에 나오기 힘든 인물이라고했죠..
당시 잘나간다는 여배우들 김혜수,심은하,김희선,고현정,고소영등등 있었지만 최진실의 인기는 못따라갔습니다.
특히 97년도 별은 내가슴에 할때 인기층이 중고등학교 학생부터 40대 50대 심지어 60대 노인분들도 최진실씨를 좋아할정도였죠...
90년대를 느낄수 있었던 세대는 최진실 싫어하는 사람없을 정도죠, 그만큼 이미지, 인지도, 히트작, 대중성 무엇에도 떨어지는 것 없었던 탑이였죠.
2000년도 결혼할 당시만해도 최고의 톱스타 결혼식으로써 전 언론과 전국민의 관심을 받았죠.
최진실=신세대의 상징, 인기의 상징
90년대 한때 모방송에서 실시했던 국민인기투표에서
1위가 최진실 2위가 서태지와 아이들 3위가 김영삼 대통령을 차지했었다고 할정도였죠.
故 최진실씨..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inger
서태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가수이며,
대한민국 가요계의 한획을 그은가수.
서태지의 등장으로 이전에도 없었던 가요계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를 봐꾼 가수가 바로 서태지입니다.
90년대 데뷔할 당시 서태지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르며
데뷔곡 "난 알아요" 가요차트 17주 1위 (현 대한민국 가요차트 기록중 공식 1위기록)을 달성하며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14주 1위를 깨며 그 누구도 넘을수없는 벽을 만들어냅니다.
서태지가 앨범을 내는 모두 신세대들의 정신과 의상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레전드이자 대부로 불리는 조용필이 자기 입으로 인정한 신승훈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몇안되는 뮤지션입니다.
현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10대나 20대들 대부분이 서태지의 영향을 받아 서태지같은 연예인이 되고자하는게 꿈이라고 말하고
가수의꿈을 키우는 청소년들 대부분이 롤모델로 꼽는게 서태지라고 하네요.
90년도 당시 대한민국 가요계가 미국에 비해 10년이나 뒤쳐져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했고,
"서태지 한사람에게 대한민국 가요계가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라는 말까지 있을정도로
당시 서태지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가요계에서의 위치는 가히 신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있지만 매니아 팬층이라던가 팬덤은 대한민국 가요계 단연 1위로 꼽고싶은 가수가 서태지입니다.
서태지의 가요계 등장 이후 연예기획사들의 아이돌 프로모션에 있어 중요한 모델이 됩니다.
90년대 후반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다양한 아이돌들의 형태는
서태지와 아이들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즉 다수의 그룹, 랩댄스 장르, 사회비판적 메세지, 자극적인 패션과 프로모션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광복 50주년 대한민국을 바꾼 저명인사 50명에 서태지가 최연소로 뽑혔구요.
(가수로서 유일했죠.. 정치인들 경제인들 무리에서 ㅋㅋ)
또 광복이후 최대 히트상품이 서태지와아이들 앨범이라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했구요 (새우깡 쵸코파이 바카스 다 제치고~)
또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은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음반판매량도 기록이 많은데요.
데뷔앨범 최다 판매량 기록 170만장 기록입니다.
1집이 이렇게 많이 팔린 가수는 아직도 없죠.
국내최초 더블 밀리언 셀러요 하여가가 한국앨범으로 최초 200만장 팔렸죠.
4집이 한나절만에 40만장인가 다팔려서 뉴스에 나왔고.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배우시면 년표를 보다보면..
199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 근현대사 년표에 나옵니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엄청났었습니다... 한국이 온통 보름 내내 공항상태였죠.
첫댓글 80후반에서 90년초까지 최진실 90년 초부터 90중반까지 서태지 9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김국진.. 서로 전성기는 그닥 겹치지 않는것 같습니다.
최진실은 80년대 후반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90년 우리들의 천국에 등장하면서 신드롬을 몰고왔죠. 특히 91-92년에 남학생 사이의 최진실 인기는 그 후 누구도 없었던 것 같네요. 인물들이 더 많아진 탓도 있겠지만 그 전엔 보기 드문 캐릭터였던 최진실이라는 배우의 신드롬은 가히 대단했죠. 97년 정도 부터는 커리어 우먼 -> 결혼하는 여자 역할을 맡으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젊은이 층의 인기가 조금 내려갔고 젊은이들에게는 심은하, 고소영, 김희선이 치고 들어왔지만 최진실은 상대적으로 장년층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죠. 3명중 유일하게 90년대 내내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90년대 중반부터는 김희선 고소영처럼 톡톡튀는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상당수 겹치는 이미지)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안했는데 당황스럽네여
그래서 제가 썼잖아요 ^^ 90년대 중반, 특히 <홀리데이인 서울>이라는 영화로 연기 변신을 시도하고 <그대 그리고 나>로 조금 나이든 커리어 우먼 역을 맡으며 이제 자기가 인기를 얻던 영역을 고소영, 김희선 등에게 넘기고 자기는 장년층 타겟으로 넘어갔죠. 젊은 사람들만 사람은 아니니까 3-40대 이상에게 인기도가 올라가며 그들에게 독보적인 지위를 얻게 된 것도 독보적이라고 보는 거죠.
장년층의 인기도 감안 한다면 수긍이 가네요.
그러고보니 최진실이 우리들의 천국에 나왔었던 것 같네요. 당시 홍학표와 상대역이였던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생각보다 빨리 하차하고 당시 미스코리아 선인 염정아가 투입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들의 천국에 등장에서 신드롬을 몰고왔다기 보다는, 삼성전자 CF에서 '남자는요~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멘트 날린다음부터 급스타가 됐구, 그 신드롬으로 우리들의 천국이던 뭐던 드라마 주연을 꿰찬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정말 독보적인 인기였죠. 3~4년 이상 계속 여자 탤런트 No.1 인기를 지켰을 겁니다.
농생 형님 전혀는 아니에요. 저 국딩때인 89년도 어린이 만화잡지 부록에 이미 최진실 브로마이드가 있었거든요 ㅋㅋ
페자/ 그게 그 다음 신드롬 생각하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거지 ㅋ 그 뒤 엄청낫으니까. 그리고 킹스 고고님/ 여자하기 나름 그 씨에프로는 그저 화제만 몰고 온 거지 그 뒤에 그녀 인기에 비하면 그정도 화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죠. 결정적으로 우리들의 천국 이었습니다. 완전 난리도 아니었죠. 그 이유는 최진실이라는 캐릭터, 극중 캐릭터가 아닌 인간 캐릭터가 그 전에 없던 캐릭터였어요. 초절정 미인이 아닌 귀여운 이미지로 어필한데다가 수제비로 상징되는 고난을 이겨낸 이미지, 게다가 힘들게 (결손가정 포함) 산 그걸 노골적으로 방송에서 말하고 (그전엔 아무도 안그랬죠), 그리고 배병수의 플레이가 겹쳐서 완전 초절정이었죠.
최진실의 절정기는 그.. 최수종하고 나왔던.. 넌 대체 누굴보고 있는거야 내가 지금 여기 니앞에 서있는데.. 아!! 질투!! 그때 아닌가요?
80년대 후반(88이후)부터 cf모델로 꽤 성공했습니다.....;;;; 모델출신이라 정극에 늦게 데뷔했을뿐..... 물론 전성기는 질투때부터라고 보고요.... 근데 농생님 말씀도 틀리진 않아요.... 그때 저희 누나들도 홍학표 좋아했고 아마 최진실이 백혈병드립치는 거짓말소녀로 나오고 중고생들 사이에서 꽤 이슈가 있었죠...
모 인정 안할수야 안할수 없는 세 분이시네요..
정말.. 다시 이런 분들이 또 나타날수 있을까 생각도 듭니다.
본좌 3분이군요.
세 명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네요.. 서태지를 저 중에서 가장 좋아했지만.. 저 세 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최진실의 복귀작 '장미빛 인생'이었다는... 진짜 이전의 이미지 모두 버리고 억척 아줌마로 완벽 변신했는데.. 완전 눈물 펑펑 ㅠㅠㅠㅠ
22222 드라마보면서 운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진짜 김국진의 포스는 엄청났죠 다만 짧았을뿐..
그러고보면 이경규는 김국진만 없었다면 당당히 이 본좌에 끼실 인물인데. 최진실이 거의 8년 연속 탤런트 부문 1위를 독차지하는 동안 이경규도 7년동안 개그맨 1위였는데. 김국진의 포스가 워낙에 신적인 수준이었던 관계로 이 본좌 자리에 끼지 못하네요. 그때 김국진의 존재감은 유재석 + 강호동에 곱하기 2 해도 못따라갈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개그맨 본좌 계보가 심형래 - 이경규 - 김국진인데 반짝 단기 포스로 치자면 이휘재도 엄청났죠. 차인표나 구본승도 그랬지만 절정의 자리에서 군대 가는 바람에 전성기 끝나버린 대표적 케이스. 물론 웃기지는 않았지만 '인생극장' 할 동안만큼은 제왕이었습니다.
김국진씨가 있다고해도 이경규씨가 본좌라고 생각합니다..커리어로는 도저히 적수가 안됩니다..계속해서 이렇게 빵터지는 예능감을 가지고잇는 노장 흔치 않다고 봅니다..이경규 본좌
김국진 최고!!! 그 맛난 빵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책상에 스티커 붙이는 재미도 솔솔~
단기포스는 정말 김국진이 뛰어났지만 커리어상으로는 여전히 경규옹에게 손을 들어 주고 싶네요. 최진실도 인기가 대단했는데 영화에서 좀 활약이 약했다란 단점이 있네요.서태지는 뭐 세상이 바뀌었으니 할말이 없고..김국진이 정말 대단했던것 같습니다.남자 개그맨이 드라마 주연까지 하고 그 상대가 송윤아에다가 cf로 기업을 살리고 솔직히 imf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고 하죠.
2001년 <연인들>이라는 시트콤만 안했어도... 시트콤은 성공이었으나 거기서 만난 한 여자로 인해 결국 <연인들> 이 김국진 커리어의 정점이 되었네요. 다시 부활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동감합니다. 윗에 어떤분이 김국진이 없었음. 하면서. 안타까워 하시는데.. 경규옹의 영향력도. 엄청났죠.. 그냥 김국진과 달리 약간 얄미운 캐릭터 이미지가 있어서.. 임팩트가. 떨어져 보이는거 같애요... 김국진은 정말 선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많은 어필을 한 반면 이경규는 호불호가 좀 갈리는 스타일이라서...
전체적 커리어로 이경규옹을 넘어서기에는 김국진씨가 많이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아직도 그떄 왜 김국진의 한마디 한마디가 유행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면서 저게 웃긴가라고 생각한적이 많았거든요. 대신 정말로 본좌의 가능성이 보였던 신동엽은 활동을 많이 자제하는거 같은 인상이라 아쉽더군요.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을 처음에 그렇게 최고인기시트콤으로 만들었고 초반 데비때 '안녕하시렵니까?' 이 한마디가 그렇게 큰 파장 일으킬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또 재치있는 말투로는 단연 최고였었는데..ㅠㅠ 아무튼 1년전 최양락씨가 돌아왔을때 황제가 돌아왔다 하면서 기사들이 나왓는데 조용히 다시 최양락씨가 묻힌걸
본다면 야심만만에서 강호동의 옆에 잇었지만 정말 눈에 띠지 않고 사그러들었지요. 계속해서 최고의 천재력을 과시하는 이경규옹에게 적수는 전성기 심형래..그리고 최근의 유재석(몇년간 더 포스를 유지한다면)밖에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심형래가 들어갈 정도면 김국진도 들어갈만 하다고 보는데요........;;;;;;; 김국진도 거의 10년가까이 정상급이었어요......;;;
송혜교가 뜬거 최정상의 김국진과의 cf였죠. 밤새지말란말야!
김국진 유행어 들어보면, 진짜 별 의미도 없고, 그닥 재미도 없는데, 김국진이 하면 다 터지죠. 이게 어렸을 때도 너무 신기했음. 그냥 여보세요~ 한마디면 다 쓰러짐.(물론, 저도 쓰러졌음) 진짜 지금 생각해도 신기.
개인적으로 김국진씨 개그코드가 저하곤 좀 안맞아서 그닥좋아하진않지만,,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분이신것같아요
간첩은 더 잘알겠죠 ㅋㅋ
당시 북한 간첩이 난알아요 부르는게 훈련과정에 있다고 할정도로...
89년생인데 최진실씨 인기는 그닥 실감 못했지만 (그냥 엄청 유명해서 이름은 아는정도) 서태지씨랑 김국진씨 인기는 느끼면서 자랐죠 ㅋㅋ
궁금한게 김국진은 왜 잘나가다가 쇠퇴기를?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나요?
이혼후 잠시 쉬고 싶다고 해서 잠시 연예계 떠나 있었죠
프로 골퍼 도전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 세분 90년대 본좌 였지
진정한 빅3네요. 그나마 유반장이 이들의 아성과 맞먹을듯.
국찌니 형님의 전성기를 96년부터 99년 정도로 보면 되나요? 2000년부터 공 치기에 재미 붙인 걸로 알고 있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조용필도 90년대에는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이후에 작품앨범활동이 없는게 아쉬움.
근데 경규옹은 잠깐 내려앉았을때 빼면 쭉~ 김국진 전성기만큼의 포스를 유지하지 않았나요? 심형래 조만간 따라잡을 커리어라 생각하고 유재석도 아직은 좀더 꾸준해야 경규옹 따라잡을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경규는 이미 예전에 커리어로 심형래보다 위였습니다.....;;;; 커리어로만 따지면 독보적입니다.... 데뷔가 81년인데요..... 제가 81년에 태어났습니다.....;;;; 유재석도 2020년까지 해먹으면 동급이라고 봐지고요... 거의 유일한 후보입니다..... 그리고 포쓰면에서 90년대 후반 김국진 임팩트는 전성기 심형래말고는 없었다고 봅니다....;;; 몰래카메라 초창기때도 이경규인기가 그정도는 아니었지요....;;;;
이경규가 지금까지 길게 가도 심형래는 못넘을 듯..이주일 심형래는 레전드임..심형래 겪은바로는.돈번것도 엄청났고..지금은 영화로 투자해서 ㅠ...이주일-심형래- 그다음이 누구냐가 개그맨 본좌인거같음....개인적으로 김국진은 인기가좋았지만 너무 짧앗고 이경규 아주 정점은 미비했지만 연속으로 쳐내는게 좋았고 그다음이 강호동 유재석인데..제생각에는 일단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 세사람중에...이주일-심형래-( ? ) 이자리에 오를듯하네요..일단 더지켜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