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할땐 공격수도 수비하고 공격할땐 수비수도 공격하러 갑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감이 잘 안오죠. 참고로 초기의 토탈 사커는 그 색채가 훨씬 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력적 한계와 안정성을 감안하여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네요. 일전에 어떤 분 글을 읽고 82년 월드컵 결승전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풀경기는 아니었던걸로..) 그 경기에서 터진 타르델리의 골을 현재 스쿼드에 비유해 설명하면서 당시 원초적인 토탈사커의 모습을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대략 인자기가 수비가담하여 공을 뺐고 네스타에게 넘겨주니 네스타가 공을 가지고 돌진, 그때 이미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받는 칸나바로.... 대략 이런식입니다.
토탈사커는 1966-1971년까지 아약스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 (Rinus Michels)가 실전에 도입한 것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토탈사커란 한마디로 전원공격 전원수비이고, 공간창출의 위해 선수들이 끊임없이 뛰고 패스하는 전술입니다. 미헬스의 토탈사커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신개념의 전술이었습니다. 야약스는 토탈사커로 1971, 1972, 1973년 챔스 3회 연속우승이라는 황금기를 맞게 되고 이 때가 바로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아약스 선수들은 끊임없이 공간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후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감독을 하면서 4년 연속 리그 우승과 1992년 바르샤 사상 최초의 챔스우승이자 더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룰 때, 미헬스식 토탈사커에 선수 개인들의 기술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함으로써 변형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히딩크가 우리나라에 적용한 전술 또한 네덜란드 토탈사커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엄청난 체력과 활동량을 요구하죠. 윗분이 말씀하신 이탈리아 축구가 토탈사커의 예가 되는 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축구는 Helenio Herrera가 정착시킨 카테나치오 즉 빗장수비였고 이 카테나치오식 이탈리아 축구는 아리고 사키의 공격축구가 나오기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제가 예를 든 장면이 나온 시기는(제 예도 아니고 다른분의 글을 읽은 것이지만요^^;) 이미 80년대 입니다. 그때쯤이면 토탈 축구의 기본적인 이념은 유럽 전역에 퍼져있었다고 봐야 될겁니다. 이탈리아도 흔히 말하는 "포스트 토탈 칼치오" 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었죠. 카테나치오 역시 이탈리아에서 시작이 되었을뿐 어느 팀이나 그 중추적인 형태와 이념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될겁니다. 사키의 축구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론만 주워 들어가지고 이야기 하려니 좀 그렇네요^^;)
아리고 사키는 1987년부터 밀란의 감독이 되면서 공격적 수비라고 하는 전술로 이탈리아 축구에 혁명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1989, 1990 챔스 2회 연속우승을 차지하며 공격 축구와 역습 이론에 새 장을 엽니다. 하지만 밀란은 1991년 카펠로가 감독이 되면서 카테나치오의 부활을 선언하죠.
첫댓글 3 - 4 - 3 시절 쩔엇는데
최진철-홍명보-김태영
이영표-김남일-유상철-송종국
이천수-황선홍-박지성
한국국대의 황금라인
설기현-황선홍-박지성임
을룡 리는 후보였나요??
영표형 초반에 아파서 을룡 리
영표형이랑 을룡리랑 경쟁했었죠....... 영표형 초반에 부상도 있고 해서 경기 출장 횟수는 비슷했던것으로 암......
영표형의 부상원인은 차두리.. 연습도중 부딪혔는대.. 차두리는 멀쩡ㄹ하고 영표형은 부상...
김태영의 끈질기면서 투지넘치는 수비는 끝내줬음
김태영이 왼쪽 스토퍼 였어요.. 그리고 설이 주전..
히딩크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트루시에는 톱니바퀴같은 조직력........
전원공격 전원수비가 아마 토탈사커아닌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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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할땐 공격수도 수비하고 공격할땐 수비수도 공격하러 갑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감이 잘 안오죠. 참고로 초기의 토탈 사커는 그 색채가 훨씬 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력적 한계와 안정성을 감안하여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네요. 일전에 어떤 분 글을 읽고 82년 월드컵 결승전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풀경기는 아니었던걸로..) 그 경기에서 터진 타르델리의 골을 현재 스쿼드에 비유해 설명하면서 당시 원초적인 토탈사커의 모습을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대략 인자기가 수비가담하여 공을 뺐고 네스타에게 넘겨주니 네스타가 공을 가지고 돌진, 그때 이미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받는 칸나바로.... 대략 이런식입니다.
오우 이렇게 들으니 정말 실제로 감이 오네요.........ㄷㄷㄷ
토탈사커는 1966-1971년까지 아약스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 (Rinus Michels)가 실전에 도입한 것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토탈사커란 한마디로 전원공격 전원수비이고, 공간창출의 위해 선수들이 끊임없이 뛰고 패스하는 전술입니다. 미헬스의 토탈사커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신개념의 전술이었습니다. 야약스는 토탈사커로 1971, 1972, 1973년 챔스 3회 연속우승이라는 황금기를 맞게 되고 이 때가 바로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아약스 선수들은 끊임없이 공간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후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감독을 하면서 4년 연속 리그 우승과 1992년 바르샤 사상 최초의 챔스우승이자 더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룰 때, 미헬스식 토탈사커에 선수 개인들의 기술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함으로써 변형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히딩크가 우리나라에 적용한 전술 또한 네덜란드 토탈사커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엄청난 체력과 활동량을 요구하죠. 윗분이 말씀하신 이탈리아 축구가 토탈사커의 예가 되는 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축구는 Helenio Herrera가 정착시킨 카테나치오 즉 빗장수비였고 이 카테나치오식 이탈리아 축구는 아리고 사키의 공격축구가 나오기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제가 예를 든 장면이 나온 시기는(제 예도 아니고 다른분의 글을 읽은 것이지만요^^;) 이미 80년대 입니다. 그때쯤이면 토탈 축구의 기본적인 이념은 유럽 전역에 퍼져있었다고 봐야 될겁니다. 이탈리아도 흔히 말하는 "포스트 토탈 칼치오" 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었죠. 카테나치오 역시 이탈리아에서 시작이 되었을뿐 어느 팀이나 그 중추적인 형태와 이념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될겁니다. 사키의 축구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론만 주워 들어가지고 이야기 하려니 좀 그렇네요^^;)
아리고 사키는 1987년부터 밀란의 감독이 되면서 공격적 수비라고 하는 전술로 이탈리아 축구에 혁명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1989, 1990 챔스 2회 연속우승을 차지하며 공격 축구와 역습 이론에 새 장을 엽니다. 하지만 밀란은 1991년 카펠로가 감독이 되면서 카테나치오의 부활을 선언하죠.
토탈싸커는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전원 공격 전원수비를 기본으로 하고있습니다 한 선수가 앞으로 나가면 뒷 선수가 채워주고 모든 선수가 끝임없이 움직이면 공간을 창출해 가는 전술이죠....
토탈싸커 = (토)달지 말고 (탈)진할때까지 경기장구석구석 (싸)돌아다니며 공격수비에 걸쳐 자기편 영역을 서로서로 (커)버해주는 플레이.
오오 에드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