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요셉 신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코린토 9,6ㄴ-10 요한 12,24-26
초세기부터 교회는 라우렌시오 성인을 공경하여 왔습니다. 성인을 그린 대표적인 성화를 보면,
부제복(달마티카)을 입고 한 손에는 불타는 석쇠가, 다른 한 손에는 교회의 ‘보물’을 담은
꾸러미가 들려 있습니다. 이것은 석쇠 위에서 오랜 고통을 겪으며 화형을 당한 그의 순교와,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보물로 여기며 돌보았던 애덕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또 다른 성화에는 한 손에는 석쇠가, 다른 손에는 월계관이 들려 있습니다.
이것은 라우렌시오라는 이름이 가진 뜻처럼 사랑의 삶과 거룩한 순교로 하느님께
월계관을 받은 성인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3세기 중반 교회의 재산을 탐내던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칙령에 저항하여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바로 이들이 교회의 보물들입니다.”
이때 성인이 가리킨 이들은 가난한 이들, 병자들, 소외된 이들, 이방인들로 성인이 날마다
교회의 재물로 돌보던 이들이었습니다. 황제는 그를 석쇠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서서히 죽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이 라우렌시오 성인의 삶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애덕의 실천이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행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제1독서 참조).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사실 오늘 복음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이웃에게 선물로 내주는 인생에 대하여 성찰하게 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삶,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아낌없이 내주고
기쁘게 주는 삶에 대하여 생각하여 봅시다.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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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코린토 9,6ㄴ-10 요한 12,24-26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순교하였습니다. 성인의 순교에 대한 교회의 전승이 있습니다.
식스토 2세 교황이 미사를 드리다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하여졌는데,
라우렌시오에게 “사흘 뒤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던 성인에게 로마 총독이 교회의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협박하자,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한 뒤 모든 보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사흘 뒤에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바로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하였고, 이에 격분한 총독은 석쇠 위에 눕혀
구워 죽이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성인은 오히려 형리들에게 “자! 한쪽은 다 익었으니 나 좀 뒤집어 주시오.”
하였고, 마지막에는 법관을 향하여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모두 재물과 생명에 대한 너그러운 자세를 통하여
라우렌시오 성인의 삶을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즐겨 사용하시던 씨앗의 비유로 뜻밖의 수확을 말씀하시며,
당신의 희생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강조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바오로 사도도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일의 요점을 말하며 씨앗과 수확의 비유를 듭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거저 받은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고만 있던 손을
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라우렌시오 성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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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코린토 9,6ㄴ-10 요한 12,24-26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매주 평화신문을 읽습니다. 1면부터 20면까지 꼼꼼히 읽습니다.
이유는 제가 신문사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읽어달라고
권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무감으로 신문을 읽을 때는 귀찮기도 했고,
시간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농부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하면 가진 것을 팔아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평화신문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았습니다. 그 지면들에는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땀과 눈물도 있었습니다.
가톨릭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글들이 교회의 보물이라 생각하니 신문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며칠 여행을 갈 때면 꼭 신문을 챙겨서 갔습니다.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신문을 읽으니 시간도 금세 지나갔습니다.
공부도 그랬습니다. 성격상 미리 준비를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는
늘 먼저 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과제가 있으면 동창 중에서 가장 먼저 하곤 했습니다.
해야 하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과제는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 동기부여가 한번 있었습니다. 10등 안에 들면 자전거를 사준다는 달콤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했었고, 원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공부는 의무가 아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선생님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수업시간이 졸리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20문제 중에 아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나뭇잎의 운명이듯이 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유혹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했던 추억과 기억은 제게는 문신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논문주제를 ‘설교’로 정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제가 되면 꼭 필요한 논문이라 생각하니
준비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는 말처럼 즐겁게 하니
논문도 동창 중에 가장 먼저 제출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저는 주변에서 신앙의 기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대부, 대모를 서는 것이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자, 대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대자, 대녀의 축일을 챙겨주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대부, 대모를 보고 신앙 생활하는 대자와 대녀들은 신앙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지난번 ‘신앙 강좌 기획팀’의 모임도 그랬습니다.
그분들은 비행기가 연착되었어도, 길이 막혀 12시간 넘게 운전을 하였어도
전혀 짜증내지 않았습니다.
복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오히려 기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미사가 없는 날은 미사가 있는 미국 성당으로 가서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그분들에게 미사는 의무가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니 멀어도, 언어가 달라도 기쁘게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들만 중독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나눔도, 봉사도, 희생도 기쁘게 하면 중독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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