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맞대고 꽃과 잎을 들여다본다. 가장 아름다운 것 앞에서 한번 심술도 부리고 가장 귀한 사람을 한번 끌어안는다."
나는 우리나라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특히 아름다운 우리 낱말들은 나를 완전히 무릎 꿇린다. 어떻게 옛사람들은 이런 말을 상상했을까. 세상에 이처럼 무해한 질투가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꽃샘 + 잎샘'이라니, 이처럼 연거푸 거듭되는 시샘이라니. 꽃샘잎샘, 꽃샘잎샘 중얼거리다 보면 묘하게 리듬감이 피어오르며 어느샌가 오종종하게 봄이 걸어와 양손으로 꽃과 잎을 감쌀 것 같다. 이런 낱말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한국어가 훨씬 근사하고 우아해 보인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겨울의 마음을 낱말로 대변하다니! 가만히 보면 이 말 속에는 지난겨울을 향한 은근한 존중심이 깃들어있다. '맞아요. 꽃이 곧 필 거예요. 연한 잎이 돋네요. 겨울 씨, 이제 떠나야 합니다. 섭섭하지요? 저희도 그래요. 그래도 며칠은 목도리를 두르고 개화(開花)도 늦춘 채 당신의 꽃샘, 잎샘을 다 받아줄게요.' 겨울의 투정을 다 받아줘야 제대로 봄이 온다는 듯 조금은 귀엽게, 조금은 산뜻하게 추위를 맞는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정중하게 찬 계절과 송별하고는 했다. 겨울이나 자연을 사람처럼 대하며 손을 힘껏 흔들고 봄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샘'이라는 말을 붙인 것일까. 아마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것 아닐까. 첫째, 샘은 질투나 시기보다 귀엽게 느껴진다. 귀여워야 추위도 잘 견딜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추위를 잘 달래보려고 이렇게 '가벼운 질투'의 의미로 샘을 쓴 것이 아닐까. 둘째, 샘은 시기나 질투보다 일시적이다. 오래 지속되기보다는 심술을 실컷 부리되 금방 끝난다.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에는 어떤 위계나 차등이 존재하는데 샘은 그보다는 얕은 순간적인 반응과 같다. 그래서 샘이 난 사람은 조금 귀엽고 때로는 사랑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어감에서 특히 큰 차이가 있다. 샘은 질투나 시기보다는 어쩐지 앙증맞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말이 자꾸만 다른 뜻의 '샘'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샘은 옹달샘처럼 작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샘물처럼 투명하게 속이 비칠 것 같다. 여과 없이 마음을 드러내는 것. 입술을 삐죽 내밀거나 상대를 흘겨보면서 샘이 났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건 '눈앞'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한 행동이다. 그래서 샘을 내는 존재는 역설적으로 아주 소탈하거나 영혼이 맑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들은 '눈앞'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나 강아지는 시샘의 대가(大家)다. 그들은 거침없이 샘을 부리고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마음 안에는 미움이 없다. 더 사랑해 달라고, 아쉬웠다고 표현하는 존재는 상대 앞에 충실한 사랑의 존재다. 그래서 꽃샘, 잎샘 같은 말은 사전에 있지만 '꽃질투'나 '잎시기' 같은 말은 없다. 시샘은 부려봐야 채 며칠을 가지 못한다. 꽃샘추위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만약 꽃샘이 아니라 꽃질투나 잎시기였다면 사월에도 팔월에도 눈이 펑펑 내렸으리라. 만약 꽃샘추위 대신 '꽃질투추위' 같은 말이 있었다면 세상은 어쩌면 벚꽃도 장미도 수박도 없는 하얗고 냉혹한 세계가 1년 내내 지속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질투가 많지 않은 편인데 어느 겨울에 한 번 깊이 질투했던 적이 있다. 임대아파트에 살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와 동생은 아랫집을 참 부러워했다. 분식집 일을 하느라 바빴던 우리 부모님과 달리 그 집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른스러운 척 씩씩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밤, 계단을 오르다가 우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놀라운 광경에 우뚝 멈춰 섰다. 크리스마스트리였다. 밝게 빛나는 온갖 장식으로 휘감긴 채 서 있는 나무는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다. 저토록 찬란하게 반짝이는 게 집 안에 있다니. 그걸 보고 동생과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집에 와서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때때로 아름다움은 아이들을 울린다. '행복의 이미지'가 아이들을 울린다. 그리고 다음 해 나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직렬과 병렬 개념을 배우기 시작했고, 겨울이 왔을 때는 '꼬마전구 실습 세트'를 보물처럼 품에 꼭 안고 다녔다.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동생과 나는 미농지를 사서 그림을 그리고 별도 그리고 색을 칠해 나뭇잎을 만들었다. 원뿔 형태로 그림을 그린 미농지를 휴지심에 두르고 꼬마전구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그러고는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숨죽인 채 초코파이를 먹으며 스위치를 눌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종이 트리. 형형색색 눈동자를 채운 아름다운 빛. 그것이 내 최초의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우리는 직렬로 건전지와 전구를 연결하여 거실을 환하게 밝혔다. 그날 우리는 엄마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거실 불을 꺼두고 엎드려 있었다. "엄마 아빠가 오면 스위치를 누르는 거야. 우리가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여주자." 동생은 한껏 기대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스위치를 누르지 못했다. 가게 일이 늦어져서 자정이 넘도록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곱게 잠이 들었다. 겨울은 이미 지나있었다. 세상 모든 추위를 지나온 맨발의 아이들은 두꺼운 이불을 덮고 한껏 사랑에 들뜬 채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글 고명재(시인)
|
첫댓글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좋은친구 님 !
고운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롭게
복된 휴일보내세요
~^^
사랑천사 님 !
감사합니다 ~
올 한 해도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추운 주말이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롭고
편안한 날들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자 님 !
입춘의 좋은 기운 듬뿍받아
늘 행복하시고 모든 일
만사형통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