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떡
어머니 께서는 명절음식으로 빈대떡을 빼놓지 않으셨다. 불린 녹두를 갈아서 간단한 야채나 약간의 고기를 넣어 부친 우리 고유의 음식을 겹겹이 쌓아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려진 모습이 아련히 떠 오른다. 껍질 벗긴 팥 고물을 입은 찰떡, 미나리로 장식한 하얀 찹쌀 부꾸미와 나란히 쌓아올린 빈대떡의 추억속엔 어머니 ! 하고 불러보고픈 어머니 젊으신 날의 모습이 보인다.
부산의 부산진 시장 옆 철길 건너에는 아주 오래된 *평양집*이 있다. 한국전쟁때 월남한 피난민이 터 잡아 시작한 이래 한번의 자리옮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반백년을 넘어 육십여년의 세월동안 빈대떡 하나만을 고집하는 이름 있는 집이다. 빈대떡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몇번인가 그집을 들락거렸는데 어머니의 빈대떡 맛이 나는것이 놀랍기도 하고 어머니를 보는양 반갑기도 했다. 요즈음은 중국산 녹두가 주를 이루는데 반해 평양잡 빈대떡 은 아직도 국산 녹두에 돼지기름을 사용하고 자른 파 몇개와 돼지고기 딱 한점을 넣어 밥공기 테두리 만하게 부쳐내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고 자존심 이라면 자존심 이다. 할머니와 안면이 익어선 어느날 농으로, 고기 한점이 뭐냐고 했더니 두조각만 들어가도 맛이 틀어져서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달랑 한조각 들어있는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과연 세개나 네개가 들어 있다면 느낄수 없는 살뜰한 맛 이라고나 할까. 적게 넣어 아쉬운듯 하면서도 모자라서 더 귀한맛이 나는 묘한 이치이다.
노랑노랑한 녹두 반죽위에 구어진 붉으스레한 고기 한점은 누가 봐도 맛깔 스럽다. 하지만 때로는 마주 않아 눈치를 보게 만드는것도 바로 이 한점의 고기다.
나만 먹을수도 없고 너만 먹을수도 없어 그렇다고 주인까지 불러내 쪼개내라고 까지야 할수 없잖은가. 희소가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작에 읽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찰랑찰랑한 맛이 우러나오는것은 아닐까. 지금도 평양집에는 고향이 그리운이들과 텁텁한 부산 사람들의 소탈한 웃음소리가 넘치고 주방에선 돼지기름에 녹두를 지지는 풍미와 함께 한점 고기가 익고 있을 것이다.
날씨도 마음도 찌뿌등한 날이면 남편의 호주머니 속 손을 꼭 잡고, 후덥한 정과 생동감 있는 재래시장엘 간다. 경기도의 한 재래 시장, 유난스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빈대떡집을 발견한것은 어느날의 순전한 우연 이었다. 빈대떡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의 관심이 아니더라도 가게를 포위 하다시피한 사람들이 빈대떡 지지는 지짐판을 드려다 보고 있는 모습에 저절로 발길이 머물러졌다. 그 맛이 궁금도 하고 우르르 몰린 사람들속에 섞이는 재미도 느끼고 싶어 지날때 마다 자리를 탐색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만 하다가 마침 어제, 지짐판 주위의 한구석에 가까스로 끼어 앉는 영광을 잡았다. 앉아있던 손님이 '이렇게 복잡하게 끼어 앉아 먹어야 제맛이에요' 하고 말을 건네는것도 정 스러웠다. 막걸리와 빈대떡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 울을 만들고 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글 거리는 빈대떡을 드려다 보고 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끌시끌 복잡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있는 안온함, 입맛의 공유를 위함이 아니더라도 수수한 사람들속에 파묻혀 있는것이 즐겁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것이다. 썰렁한 마음이 봄볕을 쪼이는것 같이 따스해 진다.
드디어! 바싹하게 구운 따끈따끈한 빈대떡이 나왔다. 와! 이 상큼한 기대감! 막걸리 한 모금에 갖구운 빈대떡 모서리를 떼어 숭숭 양파 띄운 양념장을 콕 찍어 입안에 넣어본다. 궂이 어머니 손맛이나 평양집 빈대떡 에 비하자면 더욱 소박하고 대중적인 맛이긴 해도 그대로 또 다른 일색이다. 게다가 맏며느리 손바닥 만큼이나 두텁고 평양집의 두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값은 절반 수준이니 이 얼마나 푸근한가.
옆자리에 앉은 허름한 복장의 중년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오늘은 어느 노동 시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왔을까. 남편이 그남자에게 막걸리 한잔을 권한다. 꾀재재한 얼굴에 씻은듯 맑은 웃음이 안쓰럽다.
"춥고 출출할땐 젤이에요" 어디사는 누구인지 모를 그남자가 고마운 인사를 한다.
사람사는 정이 별것인가. 모르는 이들속에 스며들어 소소한 것이라도 나누며 더불어 사는것이리라. 나뭇잎 모여 한 나무 되고 한 나무 모여 숲을 이루듯 한 사람 한사람이 모여 한 세상을 만들고 한점 한점의 따듯한 정과 온유한 사랑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것 아니겠는가.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가게안 탁자에서소란 스럽다.
"여기요! 빈대떡 두장 추가요!"
2009년 4월 5일
첫댓글 '막걸리 한 모금에 갖구운 빈대떡 모서리를 떼어 숭숭 양파 띄운 양념장을 콕 찍어 입안에 넣어본다. 어머니 빈대떡맛이나 부산진 빈대떡 맛보다는 확실히 더 소박하고 대중적인 맛이지만 그 만의 또 다른 일색이다. ....... "여기요! 빈대떡 두장 추가요!" .....'
랑랑선생님 군침돌아 빈대떡 부침이 만들까 합니다. 그러니 성공하신 글이지요. 잘 읽고 갑니다.
랑랑 선생님! 인정이 넘치는글 잘 감상 하였습니다. 빈대떡 한접시에 막걸리한잔 거기에 듬직한 남편까지 옆에 계시니 평양감사가 무에 부럽겠습니까?. 저도 재래시장으로 가봐야 겠습니다. 마음이 츨출해서...
잔잔한 마음과 인정이 훈훈하게 넘치는 랑랑씨의 부부를 그려봅니다. 너무나 부럽군요...... 맛갈스러운 용어도 잘도 찾아 쓰시고 빈대떡에는 막걸리가 제격이지요. 빈대떡 두장 추가하는 자리에 성큼 끼어들어 한잔 얻어먹고 싶습니다.
사람사는 정이 별것인가. 모르는 이들속에 스며들어 소소한 것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것이리라. 빈대떡에 막걸리 제격입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고 있으니 침이 꿀걱 넘어갑니다. 훈훈한 시골장터 인심이 넘쳐서 더 그러나 봅니다. 감상 잘하고 갑니다.
두분의 다정하신 모습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갑자기 시장으로 달려가 빈대떡이 먹고싶어지내요 오후엔 무심천 벗꽃구경도 할겸 튜리닝 바람에 뒷짐짖고 어스렁 시장을 가보렵니다 예쁜글 잘 보고 갑니다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감가득한 글 잘 읽고 갑니다. 더불어 열정적으로 글을 쓰시는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나뭇잎 모여 한 나무 되고 한 나무 모여 숲을 이루듯 우리도 한 사람 한사람이 모여 한 세상을 만들고 한점 한점의 따듯한 정들이 모여 세상을 데우는것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의 가슴은 언제나 따뜻하시네요.
갑자기 침이 꼴각넘어가네요. 푸근하고 정이 넘치는 재래시장으로 달려가고 싶기도 하고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