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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능력에 감사하라
신명기 8:11-20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창조절의 절정과 같다.
지난 목요일에 대학수능시험을 치뤘다. 색동가족은 8명이 모여 기도회로 함께 하였다. 엄마가 내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또 특별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든 엄마는 내 자녀의 매니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녀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입장에서 들려주는 값비싼 코칭을 그저 잔소리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참 억울할 것이다.
‘마더’란 영화가 있다. 국민 어머니라 불리는 배우 김혜자 님이 엄마 역할을 하였다. 못난 아들은 수시로 사고를 치는데, 행여 아들이 억울할까 싶어 엄마는 악착같이 감싸고 편든다.
한번은 아들이 우연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경찰도, 변호사도 믿을 수 없으니 엄마는 아들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모진 애를 쓴다. 결국 자기 아들은 혐의를 벗지만, 엉뚱한 다른 사람이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린다.
그때 어머니는 그 어수룩하고 억울한 범인에게 묻는다. “넌 엄마가 없니?”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힘인가?
만약 지금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누가 저렇게 응원해줄까? 엄마만이 지닌 능력이 있다. 엄마는 내 인생의 매니저, 코치, 소속사이다.
1)
감사주일은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성찰하는 시간이다. 감사절의 가장 큰 주제어는 ‘기억하라’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아왔다.
어느 것 하나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 모습이지만, 지금 내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감사를 통해 은총의 하루, 은총의 평생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색동교회의 올해 수요기도회는 신명기를 공부한다. 제목을 ‘신명기 세계관’이라고 붙였다. 재미없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행 중이다.
본문인 8장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기억하라, 잊지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11).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14).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
모세는 거듭거듭 말한다. 그는 엄마의 마음으로 권면한다.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를 향해 광야 시절의 고난을 잊지 말고, 그 은혜를 기억하라고 한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11).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내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사람은 저마다 능력이 있다. 돈 잘 버는 것만 능력이 아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도 능력이고, 착하게 사는 것도 능력이고, 사랑하는 일도 능력이고, 공감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사실 내 자녀에게 엄마는 가장 대단한 능력자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엄마가 꼭 필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큰 그늘이더라.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라면, 만약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적 고아와 같다. 엄마의 마음 없이 살기도 벅찬데,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각박할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일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아기의 옹알이에도 귀를 기울이는 엄마처럼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있고, 고장 난 내 인생을 고치고 다시 회복할 소망을 품게 하시는 능력있는 분이 계시니,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신비이다.
신명기 8장은 모세가 자기 백성에게 한 마지막 말들이다. 죽음에 임박하여 그를 따르던 백성에게 한 말들이어서 모세의 고별설교라고 부른다.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가 임박하였지만, 모세는 함께 갈 수 없다. 지난 40년 동안 백성들을 입히고, 먹이고, 돌보던 엄마와도 같던 모세는 동행할 수 없다.
이제 모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백성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마치 엄마의 잔소리처럼 지극히 단순하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겠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다른 길을 간다면 망할 것이다.
2)
신명기의 말씀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신명기 세계관의 핵심은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모세는 하나님과 언약 백성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한다. 지금 모세는 출애굽의 경험이 없는 신세대를 향해 말한다. 장차 하나님을 잊고 살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는 것이다.
너희는 광야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누구나 자기만의 광야 시절이 있지 않던가? 과연 여러분의 광야는 언제였는가? 또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했는가?
모세의 메시지가 참 귀하다. 얼마나 중요했으면 예수님도 신명기 8장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실 때 일이다. 마귀, 곧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을 유혹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고 떠보았다.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을 유혹하기 가장 쉬운 것은 음식일 것이다.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는 순간, 예수님은 모세가 말한 광야의 교훈을 떠올리셨다.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광야 40년 동안, 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다.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과 물을 얻으려면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다. 늘 하늘만 바라야 했다. 모두가 고생하던 그때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던 시기였다.
광야의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살던 시절에는 남다른 부자도, 남다른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힘들수록 누구나 하나님을 떠올리고, 간구한다.
시어도어 베케트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눈은 바깥세상이 어두울 때 내면을 보게 된다.” 힘들고 괴로울 때, 나를 도우실 하나님을 바라게 된다.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지면 과거 고생하던 시절을 쉽게 잊어버린다. 모세는 백성들이 나중에 형편이 나아져 행여 하나님을 잊게 될까 염려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경계하고, 경고한다.
첫째는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13)이다. 내 배가 지금 만족스러우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내 배가 부르면 고생스런 과거를 쉽게 잊는 법이다.
둘째는 “네 마음이 교만하여”(14), 그러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본인이 잘나서 이만한 성취를 이루고, 쉽게 성공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만족과 교만에 빠지는 순간,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17).
그러나 성경은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18).
그러기에 하나님은 광야에서 사람들의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셨다. 광야의 시험을 치룬 후 곧 다다르게 될 가나안 땅은 복을 주시려는 과정이었다.
사람에게는 역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슨 자격시험을 통과하려는 역사 공부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역사 수업을 일깨워 준다.
예배는 일종의 ‘기억의 제사’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일은 대표적이다. 모세의 고별설교가 계속되는 신명기 26장에 보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제사장의 입을 통해 자기 조상들의 과거를 회상한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신 26:5).
그들은 애굽에서 겪은 고난과 출애굽, 40년 광야 생활과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 그리고 첫 열매인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신 26:10).
그리고 나서 감사의 잔치를 벌였다. 이런 점에서 감사는 역사적이고, 삶의 중심축이며, 공동체적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해보라. 마음이 넉넉해지고, 어떤 경우든 긍정적인 마음을 품으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이웃을 돌볼 마음을 갖도록 한다.
3)
교회는 한 해의 절기를 마무리하며 감사절로 지킨다. 다음 주일은 올해 교회력 끝인 영원한 주일이고, 대림절을 시작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는 한 마디로 ‘감사하는 사람’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감사란 하나님을 향한 열린 태도다. 감사하는 생활은 곧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는 우리를 온전하고 거룩하게 만든다.
세상이 점점 각박하고, 살기가 팍팍해진다는 말을 한다. 세상에서 우리보다 잘 먹고 사는 나라가 없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에 뭘 먹을지 설레는 사람들이다.
예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사는 것은 맞는데, 급속히 성장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다.
색동교회는 인덕대학교 감사절 신앙문예전을 후원한다. 인덕대학교 교목실장으로 일하는 장형철 목사님 덕분에 서울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아닌, 색동교회가 그 소중한 사역을 감당한다. 올해 시 당선작의 제목은 ‘빚쟁이’다.
“길을 걷다 보면/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노력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가진 게 이 정도밖에 없는 걸까/ 나는 왜 뛰어난 재능이 없는 걸까/ 나는 왜 성격이 소심한 걸까/ 생각하다가도/ ...”
그리고 반전이 있다.
“... / 나는 어쩌면 부자일지도 모르겠다/ 받은 사랑들이 너무 많고/ 소중한 경험들이 너무 많아서/ 그를 통해 만들어졌던 나라는 존재도/ 누구보다 든든한 주님의 사랑도/ 잠시 멈춰 둘러보면 감사한 것들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평생 감사를 베풀고 갚아야 할 빚쟁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학교 채플 설교가 참 어렵다. 핸드폰을 예배하고 섬기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숙인 학생들이 나를 좀 보라고 노랠 한 곡 부른다. 그러면 값비싼 눈초리로 한 번쯤 쳐다본다.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이삭/ 우거 우거져 파도치지/ 에헤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왓싹 왓싹 자라나게”.
이 노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노동요이다. 나라 없는 설움과 가난으로 쫓겨난 고려인들은 메마른 광야에 물길을 내고 논농사를 지었다. 그들의 광야 생활에서 삶의 감사와 신명이 느껴진다.
우리 시대의 위기는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대로 가면 저마다 홀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본 만화 <미생> 속 회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우리 사회에 다툼이 많다. 점점 가족은 해체되고, 따듯한 공동체를 찾기 힘들다. 지금과 같은 탐욕의 경제로 우리 사회는 결코 온전할 수 없다.
모세는 네 하나님이 친밀히 너와 동행하신 광야공동체를 생각하라고 한다. 거듭거듭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20)라고 한다.
감사는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가난해도 감사할 수 있고,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기에 감사하는 마음은 나를 다시 설계하게 한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서로 축복하라! 서로 사랑하라! 분명히 내일이 다시 보일 것이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이라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러 가지 능력을 장착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능력, 감사하는 능력, 칭찬하는 능력, 공감하는 능력, 축복하는 능력,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에서 은총의 힘을 누리며 살기 바란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하셔서 언제나 주신 능력에 감사하며, 평생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