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에서의 단상
기술경영연구원장 권오갑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우방이라 특별히 여행기라는게 다소 어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멀고도 가까운 우리의 혈맹으로서, 또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생으로서, 대사관의 과학참사관으로서 5년을 근무하면서 느낀 미국과, 여행자로서 느낀 최근의 미국은 종전과는 또 다른 개인적인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보스톤에 유학중인 딸이 보스톤, 시카고, 메인주 등에서의 오디션 및 음악회를 갖게되어 10월에 3주 정도에 걸치는 장기간의 여행이었다.
때마침 여행기간동안은 워싱톤 해군기지에서의 무차별 살인사건으로 15명의 사상자를 내어 전국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기간이었다. 미국은 한마디로 도가니(melting pot)의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여러 인종과 소수민족이 통합되어 합중국을 이루어 세계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태의 나라다. 그러나 이러한 총기 사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주로 저소득층과 소수민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현지의 매스컴 논조를 보면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비난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게 아니라 이를 선도하고 화합하는 것이 바로 미합중국의 존재 이유라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 총기협회(NRA)의 강력한 총기 규제반대 로비와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권리측면에서의 보수당 입장은 총에 대한 개념이 다른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여행기간동안에는 또한 한국에도 많이 보도된 건강보험개혁법안(일명오바마케어)에 대한 여야 합의실패로 정부가 폐쇄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전면적인 건강보험제도는 문제도 많지만 미국에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오바마가 도입 추진 중인 건강보험개혁안은 중산층 이하의 건강보험도입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특히 워싱톤 등 대부분의 주는 흡연자에 최대 50%의 추가보험료를 징수하게 된다. 그러나 공화당으로부터 시장주의를 벗어난 사회주의적 발상이란 반발에 부딪쳐 오바마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였고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의원은 21시간 19분의 기록적인 반대토론을 한 바 있다. 나아가 공화당의 베이너 하원의장은 ‘민주당이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복지예산 축소등 광범위한 협상을 하지 않으면 연방정부 문을 다시 열지않고 부채한도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며 오바마를 압박했다.
결국 동 법안은 지난 10월부터 시작되는 2014년도 예산안과 연계되어 정부폐쇄를 초래한 바 있고 부채한도 조정 시한인 10월 17일 이전에는 미국재정의 디폴트(국가채무 불이행) 우려까지 제기되기도 하였다. 현재 미국의 채무한도는 16조 7000억 달러로 부채규모가 한도에 이르러 내년 국가운영을 위해서는 부채한도를 17조 8000억 달러까지 증액해야 한다. 금번의 미봉책으로 정부폐쇄는 일단 풀렸으나 또다시 정부폐쇄, 디폴트를 볼모로 한 양당의 대치국면은 내년 초에도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부폐쇄는 77년이후 모두 17번이 있었고 특히 클린턴 정부시절에는 95.12.16부터 21일간의 최장기간 폐쇄가 있었다. 정부 폐쇄기간 동안 긴급하지 않은 연방 정부업무는 중단상태에 있게 되며 각 지역의 국립공원이 폐쇄되고 심지어 종업원 2만명의 항공우주국 55주년 기념행사조차 취소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정부샷다운 발생은 한국의 예산제도와 달리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행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을 국회가 승인하는 형식으로서 법률로 다루지 않고 있으며 승인이 안 되더라도 전년도 예산에 준해서 예산을 지출하는 준예산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필자는 마침 보스톤 해군기지 근처에 있는 USS Constitution호를 승선해 보려고 했으나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동 전함은 초대 조지워싱톤 대통령이 명명하고 1812년 영국 전함과 싸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금도 운항이 가능한 군함이다. 이 전함은 3중 목재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철갑선이라 불릴만큼 당시 영국 전함이 쏜 총알이 튕겨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금년 6월에는 한국에서도 6.25 전쟁과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종래 6.25를 “잊혀진 전쟁”이라면서 한국에 대한 섭섭함도 많이 보였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워싱톤의 참전기념비 건립을 비롯해서 여행 중 머물렀던 보스톤, 시라큐스, 심지어 워싱톤 근교의 루래이 동굴에까지도 참전용사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고, 기념 도로표지판까지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에 미국 최대의 참전기념비를 2015년까지 세운다고 하니 아이젠하워 대통령,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들까지도 희생시킨 미국의 6.25참전에 대한 관심을 볼 때 아직도 6.25의 남침, 북침을 구분 못하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인 부의 혁명(Revolutionary Wealth)에서 속도의 충돌이론으로 지적했듯이 미국사회에서 기업은 100마일 속도로 무섭게 달리고 있는데 미국의 정치는 3마일의 속도로 기어가고 있다.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구호아래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가 왜 이리 국민을 비참하게 하는 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최소한 미국에서는 한국의 대결과 갈등의 여의도 정치와는 또다른 표결에 의한 대결과 승복의 정치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의 사회문화질서는 뉴욕 등 일부 도심을 제외하고는 문자 그대로 선진국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항상 옷깃만 스쳐도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누구든 서로 마주치면 눈인사는 보통이고, 문을 드나들 때는 상대방을 철저히 배려하며, 운전시에는 우리처럼 몰상식하게 끼어들기는 상상할 수도 없고 건늘목에서 보행자만 보이면 무조건 정지하는 교통문화를 생각할 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특히 자동차 선팅의 경우, 대부분의 주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일부 인정하더라도 운전석 앞 부분은 금지돼 있는데 한국은 몇년 전부터 최소한의 교통단속과 뒷차의 안전을 위해서 규제한다더니 어쩐 일인지 잠잠하다.
우리도 지금은 문화가 변하고 있지만 공원에서의 음주, 가무는 물론 생각할 수도 없다. 나는 아침에 한 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주위를 개들이 정신없이 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궁금해서 물어 보기도 하고 간판도 읽어보니 일종의 Green Dog Program이었다. 한국에서도 이제 애완견에 대한 관리가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애완견들을 대동할 때는 반드시 끈을 매고 용변 주머니를 지참해야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아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애완견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게하고 주인들이 여러 가지 정보들을 교환하는 만남의 자리였다. 물론 일정액의 회비를 내고 애완견의 용변에 대해서는 각자 책임을 지면서...
귀국 즈음해서는 딸이 단원으로 있는 메인주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참석하였다. 홀입구에는 70대 이상의 자원봉사 노인들이 친절히 팜플렛을 나눠주면서 안내하는 것을 보고 그들보다 젊은 사람으로서 미안함이 들기도 하였다. 특히 스코트랜드 환상곡(Scottish Fantasy)의 멋진 오케스트라 운율도 문자그대로 환상적이었지만 피츠버그 오케스트라의 거장으로서 미국은 물론 유럽에도 잘 알려진 바이올린 연주자인 Noah는 훤칠한 키에 바이올린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한편으로는 한음 한음에 온갖 정열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오랜만에 멋진 음악에 도취될 수 있었다.
첫댓글 아주 좋은 여행하셨습니다.
내용이 좋아 정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알아두어야할 이야기를 많이 정독했습니다.
목재로 건조된 군함의 내부를 보셨더라면 더욱 감동하셨을 터인데 아쉽내요. 목재로 건조했기에 200년이 넘은 지금도 운행이 가능하지 철재로는 아마도 불가능하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최근 미국의 생생한 소식을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염려되는 것은 미국이 옛날 같지 않아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따님에 마음 뿌듯하시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좋은 정보가 많이 담긴 단상입니다. 고맙습니다.
훌륭한 딸을 두셨네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여행기라기보다 훌륭한 논문을 읽는것 같읍니다.많은 상식 얻고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