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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 계시의 원인과 결과 (단5:18-31절)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겸손하며 청렴하고 충성스러웠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은사로 재물의 습득이나 권세를 얻기 위하여 왕명을 수행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오로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존재와, 바벨론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했습니다.
*단5:18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다니엘은 벨사살의 선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의 체험을 들어 하나님의 징계를 망각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함으로써 벨사살의 행동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여’라는 말은 ‘아느테 말르카’인데 문자적으로는 ‘그대 왕이여’라는 뜻으로 준엄한 비난과 경고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엄한 충고의 말로 절대 주권을 가지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선왕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힘이 아닌, 자신의 능력이 아닌, 자기가 스스로 얻은 권세가 아닌, 그 주권의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 권세를 받아 백성들과 나라들과 방언하는 자들을 다스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그것이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임의대로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단5: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임의로’라는 말 ‘체바’는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왕으로서 모든 대상에게 절대 주권을 행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느부갓네살은 자기 백성과 정복지의 백성들의 생사화복을 자기가 마음대로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전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며 종교적 범죄인 것입니다. 종교적 범죄의 결과는 교만이요 거만이며 완악함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높아지며’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을 격찬하다.’ 라는 뜻으로 그의 전 인격이, 그의 모든 사고가, 그의 모든 행위가 극히 거만했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자랑이 도가 넘치고 자기를 너무 과시했다는 말입니다.
‘뜻이 완악했다.’라는 말은 ‘영혼이 단단하다.’라는 말로서 그의 행위의 근간이 악의적인 아집이라는 것으로 양심이 화인 맞아서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애굽의 바로 왕이 그 마음이 강퍅해진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이런 내적, 외적 모습을 모두 합하여 하나님은 ‘교만’이라고 정의하시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교만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입술로는 찬양을 했지만 그 마음은 멀리 있었습니다.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느부갓네살의 교만은 패망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의 왕위가 폐하여지고,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들나귀와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의 이슬에 젖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정당하게 행사했을 때는 명예롭고 영광스럽게 왕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했을 때는 그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가 회개할 때까지 인간으로서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심한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징계는 하나님께서 선왕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벽보를 해석하기 전에 이렇게 먼저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 무슨 기회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 증거의 기회로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자기 사명을 언제나 의식하고 살았으며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도 세상의 왕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1. 이제 다니엘은 벽보 계시의 원인을 규명합니다.
그것은 벨사살 자신의 죄 때문이었으며 그의 죄는 고의적이고 악한 범죄였습니다.
첫째, 알고도 범한 악습의 죄라고 하였습니다.
*단5: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이 말은 벨사살이 선왕 느부갓네살의 일들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죄로 인해 받을 징계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간접적으로 받고도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허하게 낮출 줄 모르고 자고하는 벨사살에게 준엄한 선지자적 견책을 하였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무의식중에 저지른 죄는 회개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 행동은 심판의 필연적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라는 말 속에는 그가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는 것과 선왕을 닮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왕하25:27-30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 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 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2년 후 에월므로닥은 궁중의 반역에 의해 피살되고 그의 처남인 네르갈사레셀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렘39: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그가 죽자 그의 어린 아들 라바시말둑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못되어 그는 음모단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 음모단의 주동이었던 나보니더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신흥 제국인 메데가 강성한 때이므로 나보니더스는 국방 강화에 힘을 쏟았고 북아라비아에 위치한 데마를 점령하여 바벨론 제2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신 말둑보다는 아라비아의 월신을 더 숭배했기 때문에 그곳에 정주했던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모든 왕권을 아들 벨사살에게 맡기고 데마에 기거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바벨론의 통치는 벨사살이 담당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B.C 562년에 죽었고 나보니더스는 B.C 556-B.C 539년까지 통치했으며 그의 재위 기간은 17년이 됩니다. 그렇다면 벨사살은 적어도 10년 이상 왕의 자리에서 나라를 다스린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부갓네살 왕과 나보니더스 왕의 관계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보니더스가 느부갓네살의 사위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당시 제사장이었다고 합니다만 전혀 근거가 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이라고 한 것은 그가 혈통적으로 느부갓네살의 손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왕위 계승의 후계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왕권 다툼은 세상 제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바벨론 제국의 음모와 살인, 권력 쟁탈의 악순환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벨사살은 월신을 숭상하는 부친과 함께 우상을 철저히 숭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밖에 없고 자기를 극대화 하며, 자기를 숭배하며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하늘의 주재를 모독하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단5:23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하늘의 주재’는 ‘마레 쉐야마’라는 말인데 직역하면 ‘하늘에 계신 권세 있는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전능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벨사살의 행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인 것입니다.
벨사살은 신성 모독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의 이전의 어떤 왕도 이런 패역한 일을 범한 적은 없었습니다. 설령 그 신이 우상이라 할지라도 신전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가 술을 마시는 행위를 저지른 왕은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셋째,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단5:23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다니엘은 금속과 나무로 만든 신상은 생명이 죽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며 인간의 생명과 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우월하심을 버리고 죽어 있는 우상을 의지하며 찬양하는 벨사살의 우매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사람된 본분을 망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들을 도리어 찬양하고 숭배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벨사살은 타락한 인류의 전형적인 본보기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부 잃은 채 사탄의 하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벽보 계시의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결코 역사는 우연의 산물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역사의 주인은 벨사살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인류는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을 타작마당에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맞은편 분벽에 나타난 사람의 손, 글을 쓰는 손은 우연이나 착각이나 환상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의미요, 거짓이 아니라 참이며,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라 중요하고 긴요한 것이었습니다. 일국의 제국의 운명과 왕권을 심판하는 사건입니다.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이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 말입니까. 벨사살 왕의 죄 때문에 벽보에 글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2. 다니엘은 벽보에 나타난 글을 해석합니다.
*단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이 단어를 아람어로 해석하면 ‘한 미나 한 미나 한 세겔 그리고 반 세겔’ 이렇게 해석이 되는데 ‘한 미나’는 60세겔이므로 다시 말하면 ‘육십 세겔 육십 세겔 한 세겔 반 세겔’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해석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히브리어로 읽었을 때 그 해석은 ‘세어지고 세어지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누어진다.’라는 뜻입니다.
*단5:26-28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메네’는 ‘계수한다’ 라는 말로 벨사살의 통치 햇수가 하나님께 계산이 되어 종국에 이르렀다는 것인데 이 말이 반복된 것은 바벨론 제국의 종말이 급박하게 다다른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과 벨사살의 모든 것을 세어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바벨론은 이제 수에 칠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추수를 하고 탈곡을 해 보니 알맹이가 될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수명이나 벨사살 왕의 권력을 더 이상 유지시킬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허락하실 때부터 그 연한을 70년으로 계획하셨습니다.
*렘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제 바벨론 제국과 벨사살 왕은 시간상으로 그 한계점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70년 이 다 지나고 종말의 운명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기 없기 때문에 손익 계산을 하고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의 지경을 정하시고 서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브라데 강변에 바벨론 제국이 건설되도록 도우시고 소아시아 지방과 메소포타미아 지방, 그리고 팔레스틴 지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을 그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공간은 메데와 바사가 사용할 때입니다. 바벨론은 그 사용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땅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속에서 기동이 가능하고 그 정하신 뜻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독재자들이 아주 광포하고 자제할 줄 모르고 탐욕과 잔인한 압제를 즐기고 있지마는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이러한 소행은 자신들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잠정적으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메네, 메네의 하나님! 참으로 정확하신 하나님, 엄위하시고 자신의 뜻을 변개하시지 않는 하나님, 그는 창조주요, 통치주요, 심판주이신 것입니다. 누가 주의 세심을 거역할 것이며 누가 그의 손 밖에서 임의로 방종하게 살 것입니까.
‘데겔’은 ‘저울로 무게를 단다.’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벨사살의 무게를 달아보니 무게가 극히 가벼운 자, 곧 종교적 도덕적 저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엄중한 심판을 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울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소행을 저울에 올려놓으십니다. 바벨론 제국의 영광도, 벨사살 왕의 영예와 권위와 업적을 저울에 올려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들의 빛나는 가문의 역사와 전통, 자신들이 차지한 넓은 땅과 제국의 판도, 그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 제국의 모든 왕관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저울질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인간의 저울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가치 기준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제국과 벨사살 왕은 저울에 올려놓자 그 무게가 전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텅텅 빈껍데기요, 알곡이 없는 바람에 나는 겨뿐이었습니다.
적군을 눈앞에 두고도 1,000여명의 귀족들을 불러 배설한 왕의 잔치는 지극히 화려하고 풍성했습니다. 거기다가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으로 술잔을 대신하여 마실 때의 기분은 하늘도 땅도 다 가진 자의 기분이었습니다.
벨사살 왕과 바벨론 제국의 위엄은 세계적인 제국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부친이 북부 아라비아 지방을 점령하고 전장에서 변방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국방에 아무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힘을 합하면 세상에 겁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 이런 강대한 제국이 어디 있으며 이만큼 중량이 나가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 진 벨사살은 허울 좋은 왕이요, 빈껍데기 왕이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캄캄한 흑암의 인생이었습니다. 자기가 타 죽을 것도 모르고 불을 향하여 날아드는 불나방 같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울에 표준 미달이라는 판정을 받고 만 것입니다.
‘베레스’는 ‘우바르신’과 같은 말로 ‘나누어진다.’ ‘조각낸다’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나누신다는 것입니다. ‘우’는 접속사이고 ‘바르신’은 ‘나누었다.’라는 뜻으로 복수입니다. 그리고 ‘베레스’는 ‘바르신’의 단수 표시입니다.
이는 바벨론이 메데 지역과 바사 지역으로 분할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메데의 짧은 통치에 이어 바사의 통치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국이 망하고 나라가 없어지는 것은 민족적으로 큰 비극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사람들은 그동안 열방을 통치하며 괴롭히고 압제를 가했지만 이제는 두 나라를 섬겨야 하는 운명적인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생전에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은 겨우 2년간 재위에 있었지만 병사도 아니고 자연사도 아니고 그의 처남인 네르갈사레셀에게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그의 후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고 또 다시 피의 숙청에 이어서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느부갓네살의 후손이 겨우 2년간 왕위에 앉았다가 신하에게 피살되고 가문이 멸망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은 세상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나라인 유다를 침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 가고,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고 그 기물을 탈취하여 자기 신의 신전에 두었던 죄의 대가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킨 죄가 그의 이들의 왕위가 겨우 2년에 그치고 친척인 처남에게 피살되어 자손의 대가 영영 끊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멸망시킨 유다는 부흥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이제 벽보 계시에 나타난 문제의 초점은 확실합니다. 이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입니다. 바벨론 제국과 벨사살 왕의 종말을 고하는 계시였던 것입니다.
*시62:9 아, 슬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시62:12 주의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욥31: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 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3. 다니엘에게 주어진 축복
*단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진리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언자요, 선지자요, 선구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것을 이 세상에 정확하게, 완전하게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의 역사가 언제나 하나님을 반역하고 도전하며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회개, 구원,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범죄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의 마음과 역사는 그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배척합니다. 오히려 악행을 더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죽음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있으면서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의 계시를 정확하게 받아 그것을 세상에 예언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그 예언이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칭찬과 영예를 얻을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고난과 핍박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 구약의 예언자의 역사이며 교회 2,000년의 산 역사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치고 고난의 기름 가마에 그 몸을 적셔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을 영예로 여기면서 말씀 예언과 말씀 파수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투자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이제 그의 나이 80세가 된 백발의 노인입니다. 그는 66년 간 바벨론에 살면서 위대한 선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에는 언제나 생명의 위기와 위협이 있었지만 항상 히브리인의 승리와 축복을 안겨다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벨사살 왕을 책망하고 신랄하게 탄핵하였습니다.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검사의 논고처럼 그의 논리 정연한 책망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벨사살과 바벨론의 종말을 선언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길조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흉조를 예언한 것입니다. 바로 그 날 밤 그 시간에 메데와 바사 연합군은 바벨론 도시의 중앙부로 흘러가는 강의 물줄기를 막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고 바닥이 드러난 강으로 침입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다니엘에게는 승리와 축복의 영광이 주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의 무대에 다니엘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심판과 죽음의 흉조를 알려준 다니엘에게 죽음 대신에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첫째는 자주색 옷이 입혀졌습니다. 이 옷은 왕이나 왕족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것은 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23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역사의 무대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던 다니엘은 다시 화려하게 등극한 것입니다.
둘째, 금 사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것은 요즈음 말로 하면 훈장이나 금메달 같은 것이며 존귀한 자의 표상입니다.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자에게 주는 영예입니다.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한 사람에게 보국훈장이 수여된 것입니다.
셋째, 나라의 셋째 치리자가 되었습니다. 벨사살을 이어 최고의 권좌에 오른 것입니다. 조금 후에 나라가 망하지만 이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그 찬란한 위엄이 끝을 보는 그 순간에 1,000명의 귀족들 앞에서 다니엘에게 권세가 돌려진 것입니다.
제국의 종말과 새 시대의 벽보 앞에 다니엘이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데와 바사 제국의 국왕들 앞에 자신의 사람 다니엘을 선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니엘을 높이 받들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역사의 변천은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의 상상이나 계획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는 흥하고 망하는 역사의 무대 뒷면에는 항상 그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기가 막히고 극적인 한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단5:30-31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그 날 밤은 두 제국의 운명이 교차하는 날이었습니다. 망하고 흥하는 순간이 밤의 경점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날 밤은 바벨론 제국에 범죄가 무르익던 밤이었습니다. 육체적인 방탕과 교만과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던 밤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그동안 2년간이나 성을 포위하고 있던 메데와 바사 연합군은 유브라데 강줄기를 막고 강물의 흐름을 완전히 돌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말라버린 강바닥을 걸어서 성 안에 깊숙이 침투하여 궁중 연회석 코앞에 당도하였습니다.
마치 트로이 전쟁 때 목마를 타고 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간 그리스 군대와 같이 메데 바사 연합군은 소리도 없고, 소문도 없이 한 밤에 성 안으로 잠입했으며 술에 만취한 바벨론 귀인들은 누구도 왕을 보호하지 못하고 다 함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황금의 제국 바벨론이 한 밤에 그 운명적인 종말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성을 포위하고 있는 메데의 왕 다리오는 나이가 육십이 세가 될 정도로 노인이었기 때문에 젊은 벨사살은 염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성 안에는 20년 동안 먹을 식량이 준비되어 있었고 강물이 성 안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철벽같은 성을 공격하기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결국은 정복자들이 스스로 지쳐서 퇴각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더욱 잔치를 열고 흥을 즐긴 것입니다.
밤은 영적인 어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고 불신앙하는 죄악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밤은 자연 환경만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령도 어둡게 하기 때문에 밤에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미3: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사탄은 밤에 인간의 심령 속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타락과 방종을 밤이라고 하였습니다.
*롬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밤은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밤에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 왕국은 밤에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새 아침에 도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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