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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누렁이
제4회 목포문학상 동화부문 신인상 (가작)
이상윤(대구시 달서구)
정말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감나무가 아무리 가지를 흔들어도, 매미들이 아무리 맴맴 노래를 불러도 쟁기질을 하는 아빠의 어깨는 소나기를 맞은 듯 땀으로 푹 젖습니다.
더운 것은 아빠만이 아닙니다. 앞에서 쟁기를 끄는 누렁이의 몸에도 어느새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힙니다.
“아빠, 누렁아, 이리 와 앉아.”
밭둑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 그늘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민지가 안 되겠다는 듯, 기어이 아빠와 누렁이를 부릅니다.
민지는 이제 겨우 다섯 살입니다. 도시 아이들 같으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나이이지만, 민지가 사는 이곳 시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민지는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집에서 엄마 아빠에게 책 읽는 법을 배웁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오늘처럼 엄마 아빠가 일하는 데 와서 놀다가, 일이 끝나면 함께 집으로 갑니다.
아빠가 앉자마자 민지는 작은 손으로 아빠의 이마를 가만히 닦았습니다. 그러고는 누렁이에게 가서 누렁이의 얼굴도 닦아 주었습니다.
아빠는 그런 민지가 너무 착하고 기특해서, 땀에 젖은 팔로 민지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누렁이도 민지가 고마운지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민지네 식구는 누렁이를 합해서 모두 네 명입니다. 누렁이는 소이지만, 아빠도 엄마도 민지도 누렁이를 식구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누렁이는 아주 이름 있는 우리나라 소입니다. 어른들은 누렁이와 같은 우리나라 소를 한우라고도 불렀는데, 한우는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길러온 소의 이름입니다.
한우는 다른 나라 소에 비해서 아주 성질이 온순하고 일도 잘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뛰어납니다. 그리고 몸도 아주 건강하고 튼튼합니다.
민지네 식구들은 이런 훌륭한 전통을 가진 누렁이를 아주 사랑했고, 늘 한식구로 소중히 대했습니다.
“민지야, 여기서 누렁이와 놀고 있어라. 아빠가 엄마와 함께 맛있는 점심 가져올 게.”
잠시 땀을 식힌 아빠가 민지를 보며 말했습니다.
“응, 아빠. 나 누렁이와 놀고 있을 게.”
아빠는 누렁이를 옆에 있는 작은 감나무 둥치에 매어놓고는 종종 걸음으로 언덕길을 내려갔습니다.
지금 엄마는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엄마 혼자서도 쉽게 점심을 가져 올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아빠는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일부러 집에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 민지는 엄마가 행복해하듯이 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아빠가 보이지 않자 민지는 슬쩍 자리에 누웠습니다. 언제 왔는지 산에서 내려 온 바람이 살랑살랑 얼굴을 간질이며 지나갔습니다. 햇빛을 받은 감나무 잎들은 머리 위에서 황금빛으로 반짝 거렸습니다. 누렁이를 보니 어느 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아, 잠이 오네.……’
민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습니다.
스르륵스르륵, 갑자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누렁이는 번쩍 눈을 떴습니다. 보기에도 무섭게 생긴 뱀이 슬금슬금 민지에게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앗! 큰일이다.’
깜짝 놀란 누렁이는 얼른 두 발로 땅을 치며 민지를 불렀습니다.
“민지야, 일어나!”
누렁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민지는 누렁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뱀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더 무섭게 민지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누렁이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코가 찢어지는 아픔을 참으며 줄을 당겼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팽팽하게 누렁이의 몸을 잡고 있던 줄이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줄이 끊어지자 누렁이는 얼른 뱀을 향해 두 발을 번쩍 들었다 내리쳤습니다.
“저거, 우리 누렁이 소리 같은데?”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집으로 내려온 아빠는 갑자기 들려오는 누렁이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점심을 준비하던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까지 누렁이가 저렇게 큰 소리로 운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누렁이가 왜 저러지? 무슨 일이 났나?”
아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점심 광주리를 집어든 채 허겁지겁 민지와 누렁이가 있는 콩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도 정신없이 아빠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평소에는 가깝기만 하던 콩밭이 오늘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겨우 오르막길을 오르자 저만치 콩밭이 보였습니다. 밭둑의 감나무가 보이고 누렁이가 보였습니다. 누렁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감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엄마 아빠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보자 누렁이가 반가운 듯이 음매, 하고 울고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민지는 엄마 아빠가 온 줄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 아빠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어마, 뱀!”
하고 엄마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엄마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아빠가 엄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몸이 두 토막으로 잘려진 뱀이 민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아빠는 얼른 막대기로 뱀을 풀숲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민지의 몸을 살폈습니다. 다행히 뱀에 물린 흔적은 없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다시 한 번 누렁이를 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누렁이의 몸을 메어 둔 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가 찢어졌는지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습니다.
죽은 뱀과 누렁이의 모습을 본 엄마 아빠는 그제야 모든 일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누렁아, 고맙다. 네가 민지를 지켰구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누렁이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아빠도 붉어진 얼굴로 누렁이의 등을 쉼 없이 쓸어내렸습니다.
누렁이는 그 큰 눈을 끔뻑이며 조용히 민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습니다.
“민지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2
지난여름 그 일이 있고 난 뒤. 엄마 아빠는 더욱 누렁이에게 정성을 쏟았습니다. 누렁이도 민지네 식구가 된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누렁이의 소문은 온 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렁이를 보러 왔습니다. 신문사에서도 오고 방송국에서도 왔습니다.
“누렁이가 아이를 구했다지요?”
“정말 대단해요.”
사람들은 모두 누렁이를 칭찬하였습니다.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제 누렁이의 이야기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떠나가고,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하늘은 날마다 크레파스 색처럼 파래지고, 들판의 곡식들도 벌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엄마와 함께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민지이지만, 오늘은 사정이 다릅니다. 민지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와 있습니다. 소들의 큰잔치인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올림픽 경기장은 구름처럼 모여 든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질서를 지키며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지금부터 세계 소 올림픽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팡파르가 울리고, 오색 풍선들이 새처럼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뒤이어 오늘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들어오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각 나라와 지역을 대표하는 세계의 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미 몇 차례 예선 대회를 거쳤기 때문에 한눈에 보아도 모두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렁아, 잘 해!”
민지는 보모님과 함께 응원석에 앉아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함께 올라 온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도 질세라 모두 누렁이를 응원하였습니다.
오늘 여기 온 다른 소들처럼, 누렁이도 여러 힘든 고비를 넘기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누렁이는 민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응원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 대회는 모두 세 가지를 겨루는 경기입니다. 그래서 세 경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선수가 영예의 금메달을 받게 됩니다.
맨 처음 시합은 누가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가졌는지를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선수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오자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 선수 할 것 없이 모두가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도 가슴을 펴고 씩씩한 모습으로 섰습니다.
“우리 누렁이가 제일 잘 생겼지?”
민지는 엄마 아빠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하며 예쁘게 웃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열심히 선수들의 몸을 살폈습니다. 카메라를 갖다 대자 몸속의 모습이 환히 보였습니다. 또 현미경이 달린 주사기로 살짝 귀를 찌르자 금세 병이 있는지 없는지 결과가 나왔습니다.
첫 번째 심사가 끝나고 커다란 점수판에 선수들의 점수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빼들고 점수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첫 번째 시합에서는 어느 선수라 할 것 없이 모두 점수가 비슷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합은 커다란 운동장을 다섯 바퀴씩 도는 달리기입니다. 탕! 하는 출발 신호가 울리자 모두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누렁이는 평소에 연습해온 대로 침착하게 달렸습니다. 날마다 농사일을 위해서 험한 산길과 가파른 언덕길을 다녔기 때문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세 바퀴쯤 지나자 앞서 달리든 선수들이 힘이 드는지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습니다. 그렇지만 누렁이는 이제부터라는 듯이 오히려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에 단 태극기가 바람처럼 펄럭거렸습니다.
“와, 최고다!”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습니다. 함께 구경하던 외국 사람들도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아빠, 엄마, 누렁이가 일등이에요.”
응원석에 있던 민지는 너무나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누렁이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꾹 참았습니다. 누렁이는 다른 선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기록으로 결승점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시합은 누가 힘이 센지를 겨루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들이 준비되고 선수들이 자동차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끙끙거리며 선수들이 힘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런가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머릿속으로 쟁기질을 생각하였습니다. 논을 갈고 밭을 갈던 때를 생각하며 두 어깨에 힘을 주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누렁이는 마치 박자를 맞추듯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갑자기 응원석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이제 경기장 안은 누렁이의 발자국소리만이 남았습니다.
‘누렁아, 힘 내!’민지는 조그만 주먹을 힘껏 쥐며 속으로 외쳤습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손에 땀이 촉촉이 배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긴장된 모습으로 누렁이만 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침내 결승점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누렁이는 있는 힘을 다해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민지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누렁이의 가슴이 하얀 테이프에 닿는 순간 탕! 하는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뒤이어 사람들의 함성과 만세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누렁이, 만세!”
“대한민국 한우 만세!”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누렁이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뻐서 꽃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경기가 모두 끝나고 누렁이의 목에 눈부신 금메달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누렁이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누렁아, 힘들었지?”
민지는 너무 기뻐서 힘껏 누렁이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평소에도 잘 생긴 누렁이였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더욱 빛나고 돋보였습니다.
누렁이는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렁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보다, 자기를 이렇게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습니다.
우리나라 소 한우가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된 것이, 더 자랑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