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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肖像
최 일 남
기차가 한강 철교를 건너는지 갑자기 우르렁우르렁 소리를 내면서 창가로는 삐죽삐죽 솟은 우람한 철골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성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졸음은커녕 난생 처음 서울에 간다는 긴장으로 하여, 가슴이 와랑와랑 떨리고 사타구니께가 곰실곰실 가려운 것 같은 느낌으로 잔뜩 굳어 있기는 했지만, 막상 말로만 듣던 한강 다리를 건너는 마당에는 몸의 어느 한 구석이 가볍게 떨리기 까지 하였다.
성수는 얼른 철교 아래를 굽어다보았다. 아 한강, 성수는 얼핏 입 밖으로 소리를 굴릴 뻔했다. 얼음에서 갓 풀려난 3월의 한강물은 푸르고 잔잔했다. 그리고 멍청하게 넓고 망망해 보였다. 어쩐지 기가 탁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한강이 유치하게도 고향의 한계천(寒溪川)보다는 백 배는 더 커 보이고 수량(水量)도 그만큼 도도하다는 따위 객적은 비교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서울을 의미하는 데서 오는 주눅들림이었다.
성수는 이런 자신을 부추기듯 아무도 몰래 깊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림으로써 어떤 결의를 다졌다. 야코죽어서는 안 된다. 기죽어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적개심을 태웠다. 우습게도 그는 이 대목에서 고향역을 떠날 때 초라한 역사(驛舍)의 목책에 기대서서 연방 손을 흔들던 못난 누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님은 울고 있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면서 뭐라고 입만 달싹거렸다. 이별의 장면치고는 그럴 듯했으나 어쩐지 성수는 그것이 예정된, 아니면 너무 흔해 빠진 장면의 재연 같아서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나 가슴이 얼얼하고 목이 뜨끔뜨끔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살붙이 하나 없는 서울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이 동시에 일렁 이었다. 가기는 간다마는 전혀 발붙일 곳이 없다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다. 자기는 끝끝내 서울에 주저앉아 뭔가를 뭉뚱그려 보아야 한다.는 옹골진 오기가 범벅이 되어 성수의 마음을 이래저래 흩뜨려 놓았다.
성수가 고향에서 일 년 동안 그력저럭 전시 연합 대학(戰時聯合大學) 생활을 마치고 수복과 함께 서울로 복귀하는 학교를 따라 서울에 달라붙기로 작정했을 때 주착 없는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놈아, 네 형편에 대학물만 먹어도 어디냐. 서울? 아아나 서울. 돈도 없이 맹깽깽이로 서울 가면 누가 널더러 아이구 총각 잘 왔소. 기다리고 있던 참이오. 이럴 줄 아냐. 서울놈들이 어떤 놈덜인디. 작파해라. 다 때려치우고 밭뙈기나 갈면서 여기서 능치고 사는 거다. 갈 수만 있고 돈만 있다면야 좋지. 허나 너도 아다시피 그나마 대학을 일 년 당긴 것도 억지 중의 억지였지. 그런디 서울 가서 유학을 해?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어머니도 펼쩍 뛰었다.
“야야. 서울은 멀쩡한 사람 코도 베어 간다는데 너 같은 촌놈이 어디 가서 빌붙을 것이냐. 욕심부리지 말고 네 아버지 말대로 농사나 짓다가 좋은 시악시 만나서 아들딸 낳고 살면 안 좋겠냐. 공부하러 가겠다는데 나무랄 수도 없다마는 그것도 형편이 닿아야 말이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무얼 갖고 서울을 갈 것이냐. 애시당초 맘 돌려 먹거라.”
성수도 하루면 골백 번도 더 끙끙 앓았다. 가자니 너무 하품이 나올 만큼 까마득하 고 눌러 있자니 서울에의 어떤 들쑤심 같은 것으로 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일단 발을 붙일 수만 있다면 어떻게 딩굴든 한세월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구석에 몸을 쑤셔박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자기는 겨우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알탕갈탕 애를 태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가고 싶었다. 그 날이 그 날 같은 채위지지 않는 안타까움으로 하여 노상 미열 같은 미흡감을 안고 사느니보다는 깨질 때 깨질망정 일단은 그런 지신지신한 속앓이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다. 그것은 반드시 서울 가서 깃발 날리는 날에 대비한다는가, 몸에 걸치고 다니는 가난이나 촌스러움을 추스려 보겠다는 따위 공회심에서만은 아니었다. 가슴 밑뿌리에 있는 서울에의 고개돌림 이나 얼얼한 충동임 때문인지도 몰랐다. 물론 기왕 시작한 것 이대로 물러날 수만은 없다는 안간힘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새롭게 자리잡아 가는 마당에서 자기도 뭔가 옴치고 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마음의 펄럭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더 많이는 서울이 끌어들이는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는 흡인력에 그 까닭이 있는 듯이도 보였다. 마음 어느 구석엔가 모락모락 타오르고 있는 서울을 직접 밟아 보고 핥아 보고 싶었다.
성수의 이런 갈망에 조그마한 불씨를 당겨 준 것은 H 라는 고향의 선배였다. 운수 좋게도 시골에 피난 와 있던 서울 아가씨와 결혼하여 서울에 거점을 마련한 선배는 성수의 얘기를 듣자 많이는 안 되고 딱 보름만 자기 처가에 기식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다. 종군 기자였던 H 선배는 항상 일선 취재로만 돌아다니는 바람에 처가에 자주 들를 새도 없어서 처가 집에 그런 뜻만 정해 놓고 성수에게는 따로이 편지를 들려 주었던 것이다. 그는 그 편지를 써 주면서 말했다.
“모처럼 서울 구경이나 하고 내려가거라. 전쟁으로 쑥밭이 되어서 볼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너에게는 볼 만한 것이 많을 테니까.”
말하자면 어차피 서울에 눌러붙어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잠깐 맛만 보고 내려가라는 말로 들렸다. 성수는 어쨌거나 우선 다행이다 싶었다. 겨우겨우 등록금은 마련되었으니까 그거나 마치고 친구들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하여 결강이나 메우면서 시험 때 다시 올라와도 무방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결심일 뿐 일단 서울에 교두보를 확보한 바엔 천하 없어도 거기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 무렵 성수는 이상하게도 그런 맹랑한 고집에 매달려 있었다. 서울 생활에서의 탈락은 곧 삶의 한 모서리가 무너지는 것이며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끈이 끊어져 내리는 것과 같다는 강박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보면 성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또래들이 다 같이 지니고 있는 견고한 고집이었다.
서울역에 내린 성수는 휑뎅그렁한 역사며 아직은 찬 이른 봄의 깐깐한 바람 때문에 으스스 떨었다. 군용 담요로 만든 외투를 걸친 늙은 여자가 ‘깨끗한 하숙 있어요.’ 했을 때도 그는 아직 그런 썰렁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 여자가 다시 ‘이쁜 색시도 있어요.’ 했을 때도 아직 첫 서울이 주는 당혹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 따라붙으며 앞을 가로막는 여자를 밀치고 역전의 잡답 속으로 자진해서 휘말렸다. 얻어 들은 지식으로도 멀거니 서 있거나 사방을 뜰래뜰래 훑다가는 영 락없는 촌놈으로 치부되어 괜한 곤욕을 치르기 알맞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이유 없이 갑자기 몰아닥친 황폐감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여자가 다가왔을 때는 미리 값을 묻는 자세로 나갔다.
“여자까지 끼어서 하룻밤 자는 데 얼마요?”
“값은 나중에 따지고 나만 따라오세요. 총각이 반할 만한 아다라시가 하나 들어왔으니까.”
여자는 헤실헤실 웃었다.
“아닙니다. 나는 단골집이 따로 있어요.”
성수는 말해 놓고 나서 스스로 웃었다. 상대방에게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얼결에 그런 이골난 오입장이 같은 말씨를 놀려 댄 자신이 우습게 비쳤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댓바람에 촌놈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짓거리였으나 따지고 보면 그것도 상촌놈의 허세일지 모를 일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H 선배의 가회동도 어지간히 깔끔했다. 다행히 폭격으로 어느 한쪽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금이 간 데도 없었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는 끝나지 않은 마당이었고 한동안 식구들이 집을 비운 데서 오는 약간의 누르테테한 황량감이 감돌기는 했으나 그만하면 훌륭한 집이었다. 적어도 성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성수를 맞은 H 선배의 부인과 장모는 예상했던 대로 그의 방문을 매우 떨떠름해했다. 마지못해 들어오라는 소리를 하면서도 연방 성수의 아래 위를 살폈다. 그제서야 성수는 자기의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색한 잠바며 무릎이 튕겨져 나온 바지가 영락없이 서울역에서 갓 보고 온 껄렁한 건달과 진배 없다는 생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H선배의 장모가 그닥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불쑥 물었다.
“학생은 언제까지 있을 거유?”
잘 늙은 노인네의 기품 있는 어투에 조급은 곤비(困憊)의 빛이 역력했다. 검은 머리보다는 흰 머리가 더 많은 머리를 쪽 동여매어 비녀를 꽃았는데 그 머리가 불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글쎄요. 조금만 있다가 나가겠읍니다.”
성수는 H 선배의 말로는 보름 동안이라고 들은 터라 이 댁 할머니의 말이 좀 엇갈린다고 생각했으나 우선은 이렇게 엉거주춤하며 능칠 수밖에 없다고 치부했다.
“서울 살림이라는 게 시골과는 달라요. 여기 생활은 시골처럼 어수룩하지가 않아서 식구 하나가 여간 무서운 게 아니라오.”
“알고 있읍니다.”
“여기를 나가면 있을 데는 있수?”
할머니는 성수를 걱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냥 해 보는 소리 같은 건조한 어법으로 물었다.
“네 자취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보려고 궁리 중입니˙다.”
그것은 진혀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니었으나 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마당에 그런 말말고는 달리 돌려 댈 말이 없었다.
“잘 됐수. 너무 어려워 말고 있는 동안이나마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요.”
“고맙습니다.”
이튿날부터 성수는 서울 시내를 이리저리 쏘다니기 시작했다. 미안하고 겸연쩍어서도 집 안에 처박혀 있을 수가 없기도 했으려니와 처음 밟아 본 서울의 땅을 자기 것으로 굳히기 위해서였다. 자취나 하숙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찾아가 보고 전차를 타고 할 일 없이 원효로에서 효자동까지 청량리에서 마포까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고 무엇을 거머잡은 것 같은 녹록함을 맛보았다. 우습게도 며칠 동안에 자기는 서울 사람이 다 된 것 같고 덜 떨어진 몸짓으로, 또는 때가 낀 꼬락서니로 뒤뚱거리고 있는 고향 친구들이 한 단계 밑으로 내려다보여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서울 바닥에서 뭉그적 거리고 서울을 단단히 부여잡음으로써 자기를 확인하려는 생각을 키워 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몰려나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구석으로 밀려나는 것이라는 엉뚱한 생 각으로 스스로를 달구질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거나 장사치들과 우연히 건네는 한 마디 말에도 깍듯한 서울 말씨를 섞으려 애썼다.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으나 성수는 그런 일에 열심히 자기를 몰고갔다. 뒤집어보면 그것은 촌놈의 열등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처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모처럼 밟아 본 서울 땅을 끝내 자기 것으로 오그려 놓으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성수가 H 선배의 처가에 몸을 담은 지 열흘쯤 되었을까. 성수의 이런 각오에 조금씩 틈이 벌어지는 일이 생기고 있었다. 이미 짐작한 일이지만 그 집 가족들의 눈치가 심상치가 않고 노골적으로 이제 그만 나가 주었으면 하는 기색 이 보였다. H선배의 부인은 성수에게도 일부러 들릴 만한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빈 밥상을 들고 부엌 쪽으로 가면서 말이다.
“시골 사람들은 염치가 없다니까. 자기가 무슨 상객이라고 나갈 생각도 않는 거야. 아주 뻔뻔스럽 다니깐.”
이옥고 밥그릇을 요란스럽게 부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 수 없었다. 성수는 친구 둘이 자취하고 있는 방으로 끼어들기로 했다. 그는 이런 일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미리 그들에게 귀띔해 주었었다. 우선 자기 수중에 있는 돈을 얼마 건네주고 피차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보자고 얘기를 해 두고 있었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은 다만 하루라도 더 가회동 집에서 퉁겨 보자는 심사에서였다. 이때 성수는 H선배의 부인 말마따나 염치를 키워 가고 있었다. 원래도 배짱이랄까 배포는 좀 있는 편이었으나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조금씩 두터워져 가고 있었다. 성수는 그것을 도리 없는 일로 여겼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아 가면서 심약하게 지내다가는 파팍하기 그지없는 서울 바닥에서 하루도 버텨 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취하는 친구들은 뜻밖에도 우선은 그를 홀가분하게 맞아 주었다.
“잘 왔다. 거덜날 때까지 버티어 보자.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젊으나 젊은 놈들이 그렇게 쉽게 항복하겠냐? 견디어 보는 거야,”
성수의 고등 학교 동기 동창이자 건어물상의 아들인 기철이가 허세를 부리듯 말하자 고향에서는 유일한 외과 의사의 아들로 제법 유복한 축에 드는 필구도 맞짝구를 쳤다.
“옳거니. 같이 한 번 부대껴 보자. 어떻게 되겠지 뭐. 빌어먹을 서울 바닥이 아무리 각박하다키로 우리를 굶어 죽이기야 하겠냐. 어쩌면 이 시대가 주는 이런 멜랑콜리와 시련은 우리 자신을 더 튼튼히 동여매는 조건이 되어 줄지도 몰라. 두고 봐라. 언젠가는 우리가 옛말 하면서 살게 뉠 날이 있을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어려움쯤 문제가 아냐.”
그들은 우선 세 사람이 합류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술판을 벌이기로 했다. 이웃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 되를 받아다 놓고 시장에서 사 온 김치 한 접시로 치르는 것이었지만 기분들만은 그렇게 춥고 삭막한 것이 아니었다.
“자 들자.”
알루미늄 밥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부은 술잔을 들고 먼저 기철이가 외쳤을 때, 성수는 기분이 묘하게 엇갈리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이 고맙다든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하는 불안 따위가 순서도 없이 뒤섞이는 그런 벙벙하면서도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런 자리가 감미로왔다. 고향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나고 서로가 치고 받는 살얼음판에서 용케 살아 남아서 이런 정도로나마 욱신거리는 젊음을 달래고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달콤새콤하였다. 한강 철교를 건너올 때처럼 사타구니께가 곰실곰실 가려운 느낌도 들었다. 언 이런 에 끼지 못하고 일찍 죽어 간 동감내기 사촌형을 생각했다. 나이는 같으나 생일이 앞서기 때문에 형이라고 불렀었는데 그는 인민군이 들어오고 나서 금방 죽었다. 인민 위원회 사람들이 그를 의용군로 끌어가려 하자 숙모는 부끄러움두 모르고 그들 앞에서 사촌형의 부자지를 까 보였다고 들었다. 느닷없이 자식의 아랫도리를 벗기더니 ‘보시오. 하직 부자지도 안 영근 아이를 어떻게 군인으로 끌어간단 말이오.’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붙들려 갔고 전선으로 가는 길에서 도망치다가 참 억울하게도 인민군 대장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성수는 이런 생각들을 지울 양으로 막걸리를 마시며 고개를 흔들어 댔다. 연거푸 그 자신들의 죽을 둥 살 둥 도망다니던 피신 생활이나 하루 한 끼의 풀데죽만으로 연명하던 시절이 떠올랐으나 그것도 고개를 저으면서 뭉개 버리려고 애썼다. 어찌 됐건 전쟁은 끝났고 그 와중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기특하고 소중했다.그러니까 다시 시작은 해야겠는데 디딜 땅이 물컹물컹하고 비벼댈 언덕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대로 살아남은 자의 허위적거림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피곤과 궁핍이 얼룩진 누르텡텡한 얼굴들에서는 아직도 어떤 희망 같은 걸 찾아내기 힘들었으나 적어도 그들의 눈에서는 지금까지 달고 다니던 초조함이나 공포는 사라져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이나 아구아구 먹고 체면이나 도사림 같은 건 애시당초 집어던진 채 자신을 곧추세워야겠다는 탐욕스러움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전쟁 마당을 갓 지나온 사람들의 눈빛에는 아직도 살벌함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물어뜯고 밀어 냄으로써 잃었던 자기 자리를 찾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으려는 기세들이 등등했다.
이런 판국에서 기철이와 필구가 종삼과 르네상스 얘기를 꺼낸 것은 좀 과장하면 구원이었다. 술이 얼마큼씩 들어가자 기철이가 불쑥 엉뚱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야 우리 언제 기회 봐서 종삼 한번 안 가 볼래?”
말해 놓고 스스로도 약간 겸연쩍었는지 소리내어 히히히 웃었다. 필구와 성수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호기심과 충동질을 그 표정에서 감추지는 않았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피차 괴상한 웃음으로 흘려 버리는 듯하기는 했지만 서로 그전부터 묻어 두고 섰던 내색을 쉽게 거두어 들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구의 다음 말에 여실히 드러났다.
“괜 찮을까.”
“왜?”
기철이 다그쳤다.
“학생 신분인데.”
“미친 소리 마. 손님의 팔 할은 학생이라더라.”
기철이 어떤 근거로 8 할설을 내세우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얘기는 성수나 필구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일찌감치 그런 면에 눈이 밝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경험담을 듣고 있었련 것이다. 그러므로 필구가 학생 신분을 내세워 일단 얘기에 제동을 거는 것처럼 말한 것은 단호한 거부나 망설임이 아니라 그런 일에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사람의 괜한 허세였다.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성수까지도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먼저 꺼내 주기를 기대했다는 쪽이 옳았다. 비단 기철이나 필구 그리고 성수만이 아니라 그 무렵의 또래들은 대개가 그랬다. 어느 때라고 나이가 차면 그런 충동이나 호기심이 없을까마는 엊그제 전쟁 마당을 지나온 젊은이들은 유난히 그 쪽을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걸핏하면 마음이 산란해지는 처지에서는 그런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위안이자 삶의 확인이 되어주었다. 이판사판의 경지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있어 무르고 따뜻한 살덩이를 사는 일은 그래서 아주 합당한 행위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런 것도 경험 아니냐.”
다시 기철이가 두 사람의 마음을 쑤삭거리듯이 말했다.
“좋구말구. 서울에 와서 그런 경험을 갖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성수가 말하자 필구가 잠시 멈칫거리다가 엉뚱한 제의를 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르네쌍스 얘기는 안 들었냐?”
“르네쌍스?”
성수가 물었다.
“그래. 클라식 음악만 트는 다방인데 학생들이 많이 온다드라. 분위기두 괜찮은가 봐.”
“듣기는 들었어. 그런데 우리가 음악을 알아야 말이지.”
“야, 음악을 알고 모르고가 무슨 상관이 있냐. 가서 분위기에 젖기만 하면 되지. 특히 여학생들이 많이 온다니까 그것도 재밌잖아.”
그들은 종삼과 르네상스를 놓고 한동안 화제를 사르다가 한 번씩 가 보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 날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늦은 봄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자 기철이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으며 또 그 얘기를 꺼냈다. 입가에 빙긋이 웃음을 띠며,
“얘들아, 어때 오늘 밤.”
성수와 필구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일단은 그걸 묵살하고 담배만 피워 대었다.
“싫으면 그만두라. 나 혼자 갔다 올란다.”
기철은 미리 작심이라도 하곤 있었는지 벽에 걸린 웃옷을 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필구와 기철이 앞으로 돈이 부쳐져 온 것이 그날이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필구도 슬며시 일어나 옷을 입었다.
“너는 안 갈 거야?”
필구가 성수에게 물었다.
“다녀와. 갔다 와서 재밌는 얘기나 많이 해 줘.”
차마 수중에 돈이 없다는 얘기는 못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같이 가자. 돈은 내게도 있어.”
기철이 성수의 심충을 꿰뚫 듯 말하면서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성수의 어깻죽지를 일으켜 세웠다.
“자식 새침 떨고 있네. 어떻게 우리만 가냐. 돈은 걱정 마.”
필구도 그렇게 농담처럼 거들었다. 성수는 못 이기는 척하고 그들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덮어놓고 들어갈까?”
돈화문 앞을 지나면서 필구가 약간 걱정이 된다는 투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셋은 조금씩 떨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도 있으려니와 자기들이 지금부터 저지를 일이 그런 떨림을 수반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있었다.
“너희들 처음이지?”
성수가 물었다.
“그럼 임마.”
“자식들 육갑 떨지 마.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러 간다고 미리부터 겁먹고 야단이야. 아무거나 하나 골라 잡으면 되지.”
“너무 큰소리 치지 마라. 너라고 지금 마음이 평온하지는 않을걸.”
“맞아. 솔직히 고백하면 조금은 떨려. 하지만 늬들 거기 가서도 머뭇머뭇 촌놈 행세해서는 안 된다. 백전 노장처럼 당당히 굴어.”
“어떻게?”
“그걸 몰라서 묻냐. 우선 흥정부터 해. 나도 들은 얘긴데 막 깎아야 한다드라.”
“인정사정 없구나. 걔네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그것은 일종의 전술이기도 하다고. 내가 이런 데 처음 드나드는 사람이 아니다. 서울 토박이로 굴어먹어서 이런 방면에는 달통한 사람이다. 이거 왜 이래, 기세를 보여야 한다 이 말이지.”
“금방 들통이 날 텐덴?”
“들통날 때 들통이 나더라도 일단은 기죽지 말아야 한다. 이런 뜻이지.”
“촌놈들 출세하러 가는구나.”
“맞아, 그런 거지. 이것도 다 서울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의 하나로 생각하면 된다.”
셋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골목에는 이미 여자들이 널려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팔짱을 끼고 검을 짝짝 씹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셋은 그러나 얼른 그녀들 앞에 나서지를 못했다. 주춤거리면서 서로 뒤로만 빠지려고 했다. 아무도 선뜻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에 어지간히 겁을 먹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까짓것 무엇이 대수로우냐고 총알이 핑핑 날고 대포알이 꽝꽝 터지는 전쟁을 지켜 본 몸인데 여자와 맞닥뜨리는 일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타이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집마다 걸려 있는 빨갛고 뿌연 전등이나 무어라고 새살을 까면서 왔다 갔다 하는 여자들에게 약간의 무서움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기철이가 결심을 굳힌 듯 앞장을 섰다.
“자식들. 천하의 오입장이들이 병신같이 떨고 있네. 우리 이렇게 하자. 셋이 몰려다니다가는 꼭 촌놈 소리 듣기 십상이니까 각자 흩어져서 각개 격 파루 나가자고. 일이 끝나면 저기 보이는 다방 있지? 비둘기 다방이라고. 거기 모이도록 하자. 알았지?”
“……”
성수와 필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 없고 한번 부딪쳐 보는 도리밖에 없다는 희미한 체념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설레임 따위가 얼굴에 좍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은 기철이 댓바람에 어느 여자와 만나 자기 말대로 홍정을 벌이는 것 같더니 곧 손을 흔들면서 어느 집 대문을 들어서는 걸 보고서야 여자들 앞에 나섰다. 그러자 골목 안에서 서성거리던 두 여자가 쪼르르 달려와서 아주 익숙하게 필구와 성수의 팔을 하나씩 끼었다.
“단골 있어?”
숫제 반말이었다.
“……”
“잘 해 줄께.”
가타부타 할 것까지도 없었다. 그 때 필구가 약간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얼마야?”
“어머 숫내기. 그런 걸 여기서 따지면 어떡해. 시골서 왔나부지?”
“아냐. 나는 서울내기야.”
“호호호, 아무려면 어때.”
“나는 벌써 여기가 다섯 번 째라고.”
“열 번째는 아니고?”
그들은 각각 다른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성수는 여자에게 끌려가면서 이것도 서울에 길들여지는 한 방법이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렇게 해서 자기는 조금씩 닳아지고 무디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아주 이악스러운 꼴로 변모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서울이 주는 냄새나 꼬드김이라면 무엇이든지 맡고 핥고 싶은 그였으니까.
세 사람이 약속한 비둘기 다방에 모인 건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그들은 다소 빳빳하고 불쾌한 얼굴들을 해 가지고 당장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로 실실 웃으면서 분위기를 녹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서울에 와서 처음 가진 아주 떨리는 경험을 그렇게 쉽게 풀어먹지는 않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이 우선은 입들을 다물었다. 이윽고 성수가 약간 게슴츠레하고 느끼한 음색으로 말했다.
“어땠냐?”
“자식 쑥스럽게 별걸 다 묻네.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겠어.”
기철이 아주 능숙한 톤으로 받았다.
“나는 허망하고 괜히 눈물이 나올라고 하더라! 기분도 그렇고 하니 어디 가서 한 잔 하자. 오입장이들은 사후에 한 잔씩 한다드라.”
필구가 다시 어색한 분위기를 벙벙하게 뒤섞어 놓았다.
그들이 종삼을 겪은 후 르네상스로 진출한 것은 그런 일이 있은 지 1 주일 후였다. 그 날은 이런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필구가 앞장을 섰다. 그는 르네상스에 가기 전에 몇 마디 주의를 달았다.
“거기는 약간 데카당들이 모이는 곳이란다. 분위기도 고급이고 모이는 애들도 남녀 가릴 것 없이 뭣 좀 안다는 치들이라니까 괜히 깝죽저리다가 촌놈 티 내지마. 특히 K 여고 출신들이 많이 모인다니까 알아서들 혀.”
“야, 말끝마다 촌놈 촌놈 해서 우리 스스로를 낮추지 말자. 어떤 놈은 처음부터 서울놈이라드냐.”
그랬다. 그들은 그들이 두르고 다니는 시골 티에 노상 움츠러들었다. 고향에 있을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서울의 한 귀퉁이를 차치하고 나서부터는 노상 그들을 옥죄이고 붙어다니는 촌놈 냄새를 의식해야만 했다. 하루 빨리 자기를 서울의 살갗에 갗다 붙이고 더불어 휩싸이고자 애썼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길바닥에서도 그랬다. 그 때는 지금처럼 시골 사람들이 득시글거리지 않았고 지금처럼 서을을 덮치지도 않을 때였으니까 걸핏하면 티가 나고 모나 보여서 어지간해서는 그 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그들이 덜 바래고 매사에 숫기가 없어서 더 그런 경우도, 이리저리 부데끼고 씻기다 보면 간덩이도 붓고 뭉글뭉글하게 모가 없어져서 적당히 달아 빠진 서울나기로 행세할 수도 있었을 톈데, 아직은 쉼게 부끄러위하고 염통이 덜 쇠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이 인사동에 있는 르네상스에 들어섰을 때, 아닌게아니라 분위기는 무척 가라앉고 처져 있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뭐랄까 조금은 느적지근하고 사람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고급스런 냄새가 났다. 함부로 막걸리 냄새가 풍긴다든가, 되나캐나 쇠똥말똥 밟은 흙발로 들어서서는 안 될 것 같은 가라앉은 치장으로 휩싸여 있었다. 우선 전후의 막돼먹은 다방과는 달리 디스크 플레이어를 따로 유리 복스에 가두어 두고 그 옆으로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 작은 산더미 같은 레코드 판이 그들의 기분 꺾어 놓았다. 어지간한 다방에 들어서면 공기부터가 텁텁하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소리들로 하여 쇠전이나 장바닥에 들어온 느낌이었는데 르네상스는 안 그랬다. 모두가 차분히 가라앉아 있고 박힐 것들이 제 자리에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대개는 고개를 모로 꼬거나 같잖게도 눈을 지그시 감음으로써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자기를 맡기고 있는 것 같았는데 성수 일행에게는 그것이 대뜸 이상한 감동의 파장을 안겨 주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이나 겪어 온 세상과는 판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성수는 감정의 기묘한 엇갈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겪은 종삼과 르네상스의 거리가 한량없이 먼 것 같기도 하고 턱 없이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서울이 갖고 있는 이 두 얼굴이 여간해서는 서로 교차되지가 않았다. 떨어졌다간 붙고 붙었다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기는 서서히 서울의 체질을 익히고 그것에 맞닿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서울에서는 종삼도 있고 르네상스도 있으며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찾으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그와 유사한 놀랄 만한 일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고무와 확신이 그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고향의 소도시는 눈 감고도 짚을 수 있었다. 읍사무소 옆에서는 털털이 불자동차가 한 대뿐인 소방서가 있고 그 소방서와 엇비슷이 마주 보는 자리에는 경찰서가 있었다. 경찰서 옆으로는 순태 아버지가 차리고 있는 잡화상이 있었다. 성수는 그 순태네 잡화상에 널려 있는 물건들까지도 다 욀 수 있었다. 쌀, 명태, 멸치, 세탁 비누, 칫솔, 공책, 박하 사탕, 콩나물, 전구, 빨래판, 연탄 등, 다시 그 잡화상 옆으로는 얼굴이 제법 반반한 순옥이란 작부가 있는 태화옥이 있고 태화옥 건너편에는 미장원이 있으며 미장원 옆으로는 전기 수리상이 있었다. 전기 수리상이 기르는 개는 항상 태화옥 골목에서 똥을 싸는 바람에 두 집이 가끔 다투었다. 그처럼 손바닥 뒤짚듯이 훤히 알고 있는 고향에 비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서울은 너무 넓고 그만큼 모르는 곳이 많았다. 성수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곳에 자기를 밀어붙이고 싶었다. 그런 관심이나 호기심의 확산이 곧 장차의 자기를 지탱해 줄 것이라 믿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턱걸이를 해서라도 서울에 눌러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져 갔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레지가 차 주문을 받으면서 조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친절을 베풀 듯이 말했다.
“신청곡이 있으면 적어 내세요.”
짐작하기로는 그들이 이 다방에 초행임을 담박 알아차리고 자기 딴엔 짐짓 친절을 베푸는 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야 우리가 촌놈인지 금방 알아 버렸는갑다.”
레지가 다녀가자 기철이가 혀를 빼물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이미 그럴 만한 곳까지 다녀온 몸인데 섣불리 알지 말라는 허세가 담겨 있는 듯이도 보였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드니 뭘 알아야 적어 내고 말고 하지.”
성수의 말에 필구가 웃으면서 보탰다.
“유행가는 안 되겠지.”
“자식 누구를 망신시킬려고 그래.”
“신청 안 하면 어떠냐. 남들처럼 고개 축 처박고 고민하는 척만 하면 되지.”
“그 말 잘 했다. 클라식 음악이란 게 그런 거지 머. 우선 우리 고개부터 젖히고 눈부터 감자.”
성수의 말에 따라 세 사람은 우습게도 일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제안한 성수 자신도 곧 몸이 비틀리는 것 같고 머리 속이 지끈지끈 아파 올 지경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성수와 동시에 눈을 뜨고 여전히 석고상처럼 앉아 있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야. 이 치들이 뭣 좀 알아서 이럴까?”
필구가 스스로의 어색함을 뿌리치듯 말하자, 성수가 뱉듯이 받았다.
“알기는 뵐 알아. 지나 내나 유행가 쪼가리 몇 개 아는 것밖엔, 다만 그런 포즈가 좋아서 그런 것뿐일 꺼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마당에 이 자리에 오면 어쩐지 안온하고 구원받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은 들지 않냐? 나는 들어오자마자 그런 걸 느꼈다.”
“너 해석이 제법이다.”
기철이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런 기철이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마당에 어느 밀실에 앉아 한가하게 음악을 듣고 있다는 도착된 여유, 배는 여전히 고프고 옷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한량없이 찬데 베토밴이니 모차르트니 하는 전혀 객 적은 소리에 자신을 맡기고 있는 한정된 여유는 잠시나마 그들의 한기에 차 있는 가슴을 다독거려 주고 쓰다듬어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나같이 자기 집 안에서 죽음을 겪고, 피난이요 의용군이요 하는 것으로 삶의 벼랑을 헤매다가 우연히 찾아든 곳, 그것이 이런 형태의 모임으로 발전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는 또 하나의 피난처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셋의 이런 주눅들리고 떨떠름한 기분을 깨고 나선 것은 석수였다. 그가 엉뚱깽둥하게도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말을 붙인 것이다.
“실례지만 말 좀 물음시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목이 무엇입니까?”
마치 거리에서 길을 묻는 것과 같은 말투였다. 여학생은 움찔 놀라는 것 같았다.
놀란 것은 여학생만이 아니었다. 필구나 기철이도 그랬다. 큰일이나 난 것처럼 그리고 자식이 하필이면 누가 촌놈 아니랄까 봐 그런 걸 다 묻고 지랄이라는 투로 성수를 쏘아보았다. 여학생은 그러나 곧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퍽 짧게 대답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 아예요.”
세 사람은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이고 소리를 내질렀다. 서울 여자는 다르구나. 그러나 그들이 더욱 놀란 것은 그 여학생이 이마에 달라붙은 파리 한 마리를 쫓아 버리듯한 대답을 마치고는 곧 담배를 빼어 문 것이다. 아까다마로 불리어지던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양담배였는데 여학생은 핸드백에서 담배갑을 꺼내자 익숙하게 성냥불을 그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싶었지만 세 사람은 그다지 경험해 보지 못한 터라 잠시 벙벙한 눈초리로 여자가 맛있게 한 모금을 빨고 연기를 날려 보내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성수는 내친 김에 더 말을 붙여 보고 싶었다. 그것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데서 얻은 용기일 것이 분명했다. 새파란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어딘가 허튼 구석이 있을 거라고 나름대로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학생이신가요?”
“왜요?”
“아니 그냥.”
“맞아요.”
“아, 그러세요.”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여자가 예상과는 달리 퍽 깐깐하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대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수는 그 여자와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친구들과 한번 와 본 그는 르네상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들뜨지 않고 아픔이나 상처 따위를 조용히 삭이고 있는 것 같은 가라앉은 분위기와 거기서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의 조금은 위악(僞惡)스럽게 타락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모습이 구미에 당기던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는 혼자 찾아갔었는데 그 여자는 그 때도 혼자 와 있었다. 앞자리가 비어 있었으므로 그는 서슴없이 자리에 앉았다. 앉으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제법 어른스립고 땟물 벗은 인사를 잊지 않았다.
“또 나오셨군요. 요전에는 실례했읍니다. 좀 앉아도 될까요?”
그러나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웃을 듯 말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그가 앉는 것을 묵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도 성수는 이상하게 가슴이 찌뿌듯하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두 번째 만났을 뿐이며 단지 여자와 함께 마주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 감청을 느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일방적인 것이요, 염치 없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성수로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렇게 만나는 것이 이번으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일이며 이런 만남이 물이 될지 산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나 적어도 상대는 그가 서울 바닥에 굴러 들어와서 처음 만나 얘기를 주고 받은 처지라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떤 풍물이나 거리, 그리고 막연한 인심보다는 구체적으로 사람과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고도 있었다. 이런 인연이 자기를 서울에 붙잡아매 두는 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얍삽한 생각은 차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시골서 오셨나요 ?”
한 이십 분은 피차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고 있었는데 여자가 먼저 물어 왔다.
무언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심심한데 구슬려나 보자구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어떻게 아셨읍니까. 나한테서 그런 냄새가 풍깁니까?”
“짐작이에요. 우리도 이번에 시골로 피난 갔다 왔거던요.”
“그러세요. 고생이 많았겠읍니다.”
“고생이라…….”
여자는 웃으면서 꼭 성수의 그런 말을 잠시 희롱하듯이 되뇌었다.
“시골 좋지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여자가 또 말문을 열었다.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데데하고 구질구질하고.”
“휴전 회담이 끝나고 살림이 정리되면 우리는 시골 가서 살 거예요. 잘은 모르지만 같은 전쟁이라도 도시에서 치르는 전쟁은 더욱 삭막하고 시골서 치르는 전쟁은 아이들의 전쟁 놀음 같다는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네에? 착각이겠지요.”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말을 마치자 가지고 있던 책을 듬성듬성 넘겼다.
“실례지만 그게 무슨 책입니까?”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이에요.”
“그게 무슨 책인데요?”
“나 가 봐야겠어요.”
여자는 성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잘 있으라든가 또 만나자든가 하는 말도 없었다.
성수가 세 번 네 번 르네상스를 찾았을 때도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성수는 그제야 도리납작하면서도 눈이 이지적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잠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손에 쥔 살아 있는 서울을 놓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서울의 그럴 듯한 내력을 지닌 집안의 딸로서 아버지가 전쟁 통에 죽고 오빠가 납북당하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멍멍한 채 자기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확일 거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성수는 별것 아니라면 별것도 아닌 이런 일에 오래 자기를 담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같이 자취를 하고 있는 필구와 기철이가 그만 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인 때문이었다. 그는 곰곰 생각했다. 자, 나는 여기서 서울 밖으로 나딩구는 것이냐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서울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는 이런 때에 대비해서 그뿐 아니라 학생들이 누님이라고 부르는 대학 근처 ‘보리수’다방 마담에게 가정교사 자리를 부탁해 두고 있었다. 오래 전 일이었으나 아직 전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아무리 전쟁이 일단 끝막음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당장은 전쟁으로 입은 이런저런 상처들을 다스리고 허기졌던 배를 채우는 일에 골몰했기 때문에 자식 새끼들의 공부에는 그닥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그런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며 우연찮게도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보리수 마담이 그 일을 떠맡고 있었다.
보리수는 언제나처럼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그들은 너나 없이 추레하고 후줄근해 보였다. 그래도 입과 눈들은 살아서 줄창 씨부려 대고 큰 소리를 쳐대고 있는 것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성수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때였다. 막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고 느끼는 순간인데, 어느 새 누님이 쪼르르 달려와서 그의 팔을 잡았다.
“마침 잘 왔어.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연락을 할까 하던 참인데, 자리가 하나 났거던, 그런데 조금 빡빡해. 보수는 물론 없고 점심 빼고 하루 두 끼만 주겠대.”
“가정 교사 말이군요.”
“그것도 경쟁이 대단하다구.”
“고맙습니다.”
성는 참으로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님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소개받은 집은 가내 공업으로 세탁 비누를 만드는 집이었는데 장사가 망하는 바람에 반 년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성수가 서울에 달라붙기 위해 치른 이런 요행과 불운은 그가 마침내 학교를 졸업하
고 출판사 교정원으로 취직하기까지 무려 열 두 번이나 거듭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무수한 서울과 만났다. 종삼과 만나고 르네상스와 만났으며 동대문이나 남대문 그리고 청량리나 영등포와도 만났다. 르네상스에서 만난 그 여대생과 같은 여자들과도 여러 번 조우(遭遇)했다. 그리고 용케도 그가 그렇게 갈망하던 서울에 남는 일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요즈음에 와서야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렸던 서울이 그에게 어떤 의미와 빛깔을 던져 주었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고 있다.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잘못한 것 같기도 한 오리무중의 감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 안에서 혼자만 쑥죽을 찾아 먹는 그에게 아들놈이 말하는 수가 있다.
“아버지는 그런 풀을 어떻게 잡수세요. 아버지는 촌사람이야.”
술 마시면 ‘타향살이’를 흥얼거리는 자신에게 여편네가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수가 있다.
“당신은 갈 데 없는 실향민이로군요.”
이 말에서, 성수는 서울은 아직도 자기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잠겨 볼 때가 있다. 그리고 까닭없이 고향에 대한 미안함을 지닌다. 따지고 보면 서울에 눌러붙은 그 많은 촌놈들도 돌아서면 제각기 조금씩의 미안함을 안고 살 것이다. 고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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