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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은 대구의 자존심이다. 바위 봉우리 펼쳐진 산세의 기상이 웅혼하고,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문화를 꽃피웠으며, 봄의 신록을 가득 머금어 여유와 휴식이란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팔공산은 높고 크다. 바위 봉우리가 보여주는 웅장함도 그렇지만, 산이 품은 역사도 깊고, 그 속에 둥지를 튼 사찰도 격이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제 모든 것 다 주어 사람을 평화롭게 하는 심성이다. 그런 까닭에 등산로를 오르거나 절 앞마당을 찾는 이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Day 1 파계사 → 군위삼존석굴 → 팔공산온천 길 따라, 절 따라 봄이 가득 팔공산을 여행할 때는 동화사를 중심으로 좌우를 나누어 여행하면 편리한 동선을 확보할 수 있다. 좌측의 칠곡, 군위 방면으로 길을 정했다면 그 첫 여행지는 파계사다. 조선 숙종과 인연이 깊은 이 절은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꽤나 고즈넉하다. 그러나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동루의 중수 공사. 절은 어수선하고 진동루 밑에서 원통전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래도 구석구석 볼 만한 것이 많다. 중심 법당인 원통전의 불단 위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이 봉안되어 있다. 크지 않은 아담한 불상이지만 황금빛을 내는데다 몸에 걸친 천의와 영락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특히 머리 위의 보관은 앞면에 정교한 꽃무늬를 새기고 여러 개의 보석을 박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하다가 영조의 도포가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파계사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칠곡에서 군위를 연결하는 한티재를 넘으면 거짓말처럼 한적한 시골 풍경을 만난다. 간혹 폼을 재는 여관이 눈에 거슬릴 뿐 작은 밭과 과수원,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여간 목가적인 게 아니다. 산 하나를 두고 반대편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다. 천천히 차를 달리며 충분히 즐겨야 여행의 묘미가 배가된다. 그렇게 길을 가면 규모가 작은 식당가가 나오면서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석굴은 식당가 뒤편 계곡의 바위절벽에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작은 동굴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편에 관세음보살, 오른편에 대세지보살이 있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진 석굴사원으로,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는 귀중한 유산이다. 외견상으로는 석굴암에 훨씬 못 미치지만,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불상도 보존 상태가 좋아 보여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사람이든 불상이든 잘생기고 온전한 이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군위의 삼존석굴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000년 이상을 한자리에서 수없이 찾아오는 이들의 신원을 들어주었을 불상. 석굴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지나온 세월만큼, 아니 그 이상 오래도록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되기를 소원해 본다. 석굴을 돌아 다시 산을 넘어 동화사 시설 지구로 돌아와 온천욕으로 하루를 깔끔하게 마감한다. 온천은 팔공산온천관광호텔 내에 있는데, 알칼리성 탄산나트륨 성분의 온천은 이미 물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전국 최대 규모인 노천온천에서 여독을 풀면서 내일 산행을 준비한다. [Travel Story] 파계사에는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숙종은 대궐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아주 선명해 신하에게 남대문 밖을 살펴보게 하니, 정말 꿈에서 본 승려가 그 앞에서 쉬고 있었다. 승려는 바로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은 선사에게 왕자 탄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부탁했고, 그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었다. 이듬해에 건강한 왕자가 탄생했으니, 이가 훗날의 영조다. 크게 기뻐한 숙종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렸으며, 이런 인연으로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 사찰이 되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Day 2 스카이라인 → 동화사 → 은해사 → 관봉(갓바위부처) 신원 품고 오르는 길 팔공산에 와서 정상인 비로봉이나 그 옆의 동봉에 오르지 않으면 산의 진면목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산행을 위한 여행이 아닌 이상 등산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 이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한 방법이 스카이라인(053-982-8801)을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보는 일일 게다. 크게 기대할 바는 아니지만 리프트를 타고 해발 820m까지 올라가면 팔공산과 대구 시가지 전경이 펼쳐진다. 동화사는 입구가 두 곳이다. 일주문이 있는 곳과 관광안내사무소가 있는 곳. 이중 관광안내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사찰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물론 승용차를 타고 가면 주차비는 내야 한다. 주차장에서 가깝고 편리해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길의 운치나 풍치는 일주문을 통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편이 훨씬 좋다. 파계사와 마찬가지로 동화사도 대웅전이 많이 훼손되어 한창 보수 공사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화사를 유명하게 만든 대웅전의 꽃문살은 그대로여서 공사 구역 밖에서나마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웅전 위 조사전과 칠성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요한 정취를 그대로 품에 담을 수 있다. 여행객의 발걸음이 뜸해 조용하고, 건물 뒤편의 푸른 대숲이 시야를 맑게 해주며, 댓잎에 부딪혀 부서지는 바람 소리는 상상으로 그려내던 바로 그 모습이다. 동화사에서 영천 방면으로 순환도로를 따라 움직이면 신라시대의 고찰 은해사가 나온다. 은해사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의 원찰로 809년에 창건되었다. 헌덕왕은 조카인 애장왕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행한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숨진 원혼을 달래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은해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전해지지만, 무엇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대웅전’과 ‘보화루’ 그리고 ‘불광’이라는 친필 현판이 모두 추사의 친필이다. 또 다른 즐거움을 찾자면 여덟 개의 산내 암자다. 일제 말 항일학생운동의 본거지였던 백련암, 국보 제14호인 영산전과 526나한상이 모셔진 거조암은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발의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의 암자에도 저마다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 팔공산에서 가장 유명한 갓바위부처에는 새벽이나 저녁 무렵에 오르는 게 좋다. 새벽에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한 광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저녁에는 팔공산 능선 위를 붉게 물들인 일몰의 선경이 갓바위부처와 잘 어울린다.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길이 단조롭지만 30분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오르는 코스는 입구 관리소를 지나 오르는 길과 경산시 와촌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길의 난이도나 소요 시간은 와촌에서 오르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갓바위부처는 ‘신심을 다해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소문으로 전국의 치성객이 줄을 잇는다. 특히 갓바위부처가 경남 양산과 부산 쪽을 바라보고 있어 양산이나 부산 사람의 소원을 더 잘 들어준다고도 한다. Day 3 신숭겸 유적지 → 불로동 고분군 → 옻골마을(경주 최씨 종가) 옛 문화와 현대 문명의 공존 팔공산의 깊은 품에는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터를 잡고 있고, 산자락에는 시대와 성격을 달리하는 여행지가 포진해 여행자의 발길을 바쁘게 한다. 팔공산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은 신숭겸 장군 유적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바친 신숭겸의 혼을 기리는 곳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이 신숭겸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그의 무덤은 춘천에 있고 유적지 내에는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표충사와 팔공산 전투 당시 입었던 피 묻은 무복과 피 흘리며 충절을 지킨 장소의 흙을 모아 만든 순절단이 있다. 시내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경주에서 봤음직한 커다란 불로동 고분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면 그저 10여 기의 고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분 구역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수를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현재 외형이 뚜렷한 고분만 211기에 달한다. 고분의 주인공은 삼국시대, 즉 신라 초기에 이 지역에서 세력을 잡았던 토착민으로 추정된다. 그 형태는 돌방무덤으로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과는 차이가 난다. 이들 고분은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화장 문화가 생기고 중앙의 강력한 통치력이 미치게 되면서 점차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고대의 기억을 간직한 옛 무덤에 오르면 봉긋하게 솟은 봉분 너머로 현대식 건물이 솟아오른 대구시의 모습이 겹쳐진다. 고대와 현대의 시간을 초월해 옛 문화와 현대 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은 대구에서 맛보는 특이한 경험이다. 대구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것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옻골마을이다. 옻골은 경주 최씨의 후손이 모여 사는 동성 촌락이다. 경주의 양동마을이나 아산의 외암리마을처럼 번듯하게 꾸며지진 않았지만 시골 농가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 20여 호가 생활하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집을 둘러싼 흙 돌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흙의 부드러운 질감에서 시골길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옻골은 조선 인조 때 학자 대암 최동집이 정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여행자가 돌아볼 수 있는 곳은 400년 이상 된 종택인 백불고택과 보본당, 사당 등이다. 다른 고택은 생활하는 사람이 있어 함부로 구경할 수 없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350년 가량 된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최초로 마을을 일군 최동집의 이름을 따서 최동집나무라고 불린다. [맛집] 산중 팔공산 자락의 식당 중 열에 아홉은 송이요리 간판을 내걸었을 정도로 버섯요리를 하는 식당이 많다. 스카이라인 아래에 위치한 산중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식당이다. 인기 메뉴는 버섯모둠과 송이모둠. 느타리와 양송이, 표고 등의 버섯과 차돌박이를 돌판에 구워 먹는 버섯요리는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 누구에게나 잘 맞는다. 특히 울릉도에서 직접 가져다 간장에 절인 명이에 고기를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주 요리와 함께 내는 찬도 봄에는 원추리, 두릅, 취 등 나물이 많이 올라와 신록의 싱그러움이 물씬하다. 송이버섯은 제철에 팔공산에서 나는 것을 쓰기도 하지만, 철이 지나면 북한산 송이를 냉동시켜 사용한다. ●053-982-0077 ●09:50~22:00, 명절 전날 휴무 ●버섯모둠 1만5000원, 송이모둠 1만8000원●http://ofood. co.kr/sanjoong [숙박] 호텔인터불고 팔공 동화사 시설 지구 내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호텔. 3층의 화사하고 밝은 외관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객실이 3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 투숙객이 적은 게 최대의 장점.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는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객실의 전망은 팔공산 쪽은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고 정면의 시내 방향이 탁 트여서 좋다. 5월 31일까지 제공되는 웰빙 패키지와 봄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 ●053-985-0808 ●웰빙패키지 12만원, 봄패키지 10만원(각 2인 기준) ●http://palgong.inter-burgo.com [How to Go] 첫째 날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구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다가 여주휴게소를 약 1km 지나 충주 방면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어 김천에서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으로 갈아탄 뒤 북대구 IC에서 나오면 된다. 대구 시내를 통과해 909번 지방도를 따라 팔공산으로 가다 파군재에서 파계사 이정표를 보고 가면 된다. 둘째 날 동화사를 구경한 뒤, 909번 지방도를 이용해 와촌 방면으로 간다. 919번 지방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 청통 IC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고속도로를 지나 청통에서 은해사 이정표를 보고 들어간다. 은해사에서 간 길을 되돌아 나와 신한리 삼거리에서 갓바위부처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봉으로 오르는 입구가 나온다. 셋째 날 동화사에서 대구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공산터널을 지나면 곧이어 파계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신숭겸 장군 유적지 입구가 보인다. 시내로 진입하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부근에 불로동 고분군이 눈에 들어온다. 옻골마을은 대구국제공항 동쪽의 외곽도로를 따라 1km 정도 가면 둔산동이고 경주 최씨 종가는 이 도로 제일 끝에 위치한 마을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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