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에서 계속>
4. 명성황후 시해에 하버드 대학과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 최고지식인들 참여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를 당했다. 이 사건은 일본 천황 직속 기관인 대본영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대장과 조선 공사와 외무대신을 지낸 이노우에 가오루 등이 지휘했다. 이들은 현 아베 총리의 정치적 본거지인 야마구치 현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표적으로 조선 정벌을 주장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 고향 야마구치 현 출신의 극우 거물인 육군 중장 출신의 자작 미우라 고로에게 친러 정책의 명성황후를 죽이라는 밀명을 주고 1895년 9월 조선공사로 부임시켰다. 미우라의 명성황후 암살 계획참모는 시바 시로란 자로 미국 명문 하버드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고지식인이었다. 미우라와 시바는 일본군대가 명성황후를 암살하면 비난받을 것 같아 민간인들 중심의 암살집단을 구성하였다.
4. 명성황후 시해에 하버드 대학과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 최고지식인들 참여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를 당했다. 이 사건은 일본 천황 직속 기관인 대본영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대장과 조선 공사와 외무대신을 지낸 이노우에 가오루 등이 지휘했다. 이들은 현 아베 총리의 정치적 본거지인 야마구치 현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표적으로 조선 정벌을 주장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 고향 야마구치 현 출신의 극우 거물인 육군 중장 출신의 자작 미우라 고로에게 친러 정책의 명성황후를 죽이라는 밀명을 주고 1895년 9월 조선공사로 부임시켰다. 미우라의 명성황후 암살 계획참모는 시바 시로란 자로 미국 명문 하버드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고지식인이었다. 미우라와 시바는 일본군대가 명성황후를 암살하면 비난받을 것 같아 민간인들 중심의 암살집단을 구성하였다.
- 명성황후 살해 실행 총책 미우라 공사와 이시즈카 에조의 암살 보고서.
명성황후 암살 작전은 “여우사냥” 이라고 명명했으며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에 작전 개시했고 명성황후는 새벽 6시경에 시해 당했다. 이 작전에 흥선대원군, 개화파 유길준,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 등 조선인들 여럿이 가담하여 조력하였는데 황후 시해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5.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국부 검사와 성폭행 당했는가?
45세의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의 칼을 맞고 즉시 숨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칼을 맞고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기록이 우리에게는 없다. 위에 보이는 조선 정부의 일본인 고문관 이시즈카 에조 보고서를 근거로 황후가 사망 직전에 능욕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 기록과 주장이 진실이든 아니든 또 설사 황후가 성폭행을 당하고 죽었다고 해도 군사력이 없는 황후의 남편 고종은 통곡하는 길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조선 정부 고문관 이시즈카 에조는 “낭인들은 왕비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힌 후 왕비를 발가벗기고 국부 검사를 한 후에 기름을 부어 소각시켰다” 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일본에 보냈다(위키 백과).
김진명씨의 소설 “신황태자비 납치사건” 의하면 이시즈카 에조는 “낭인들은 훤히 드러난 조선 왕비의 가슴을 밟고 짓이기고 왕비 몸을 칼로 상처를 낸 후 왕비를 완전히 발가벗겼다. 그리고 한 낭인이 발가벗겨진 왕비의 음부를~~(중략)~~ 꿈틀거리는 조선 왕비를 앞에 놓고 낭인들은 대일본제국 만세를 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일본의 법제국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잔인성과 변태성으로 보아 명성황후 시해 주범자들은 일본 최고지식인들이지만 능히 명성황후의 음부를 검사하고 성폭행했을 것이다. 731 부대에서 보듯이 일본인들은 의사와 과학자 등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의 빈 깡통의 두뇌가 되어 상부조직의 프로그램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었다.
- 명성황후 시해 모습(왼쪽). /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시해 행동대원들. /위키백과
6. 일본의 한국 재침략 대비해 경제력과 국방력 증강해야
명성황후 시해 주도자들이 시해 사건 후 아래 그림과 같이 출세한 것을 보면 명성황후 시해의 모든 것은 일본 정부의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자행된 것임이 확실하다.
해방 직후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아베 총리와 혈연관계 없음)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한 말 “나는 반드시 조선에 다시 온다”를 명심하여 일본 상품 구매를 자제하고 경제력과 국방력 증강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첫댓글 우범선은 명성황후신신에 몹쓸짓 까지했다지요?우범선이 바로 그 유명한 우장춘박사의 아버지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