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가 남긴 연수회후기도 보고 그뒤에 신앙고백을 읽어본다 몇차례 되풀이해서 생각해본다
지난날 저를 되돌아본다 말씀봉사를 위해 한시간이상 전철을 이용하고 갔던 본당에 모인 청년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기다리고 기다려 간신히 하고 돌아섰다. 그이후에 도저히 감당못하고 그만두었다
쌍문동성당에 파견되었다. 그곳에 가기위해 한시간이상 전철을 이용했다 대학생들이었다 더러는 모임에 불참하기도 하였기에 그의 상황을 알기위해 수원에 있는 성균관대학을 찾아가서 먼발치에서 여러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는 그 자매를 발견했지만 아무이야기도 하지 않은채 돌아섰다.
그이후 그팀이 무사히 저와 인연이 끝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모임을 끝냈다 그런데 그들중에 청년성서모임 연수회에 참석하는 이가 있다는 소식에 연수장으로 달려가서 축하를 해드렸다 그 과정은 연수를 마쳐야 그룹모임의 봉사자가 될수가 있다.
몇년이 지나서 그 본당에서 저를 초대했다. 청년모임이 새롭게 출범한다고해서 기쁜마음으로 가서 축하해드렸다. 그곳에서 알게된것은 이런 애기가 돌고있었다.
본당에서 청년모임이 거의 이루어지지않을때 성서모임을 한다면서 외부에서 어떤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본당에서 전설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저는 그런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제가 열심히 준비하고 열성적으로 대하는 팀은 깨어지는 고통을 겪게하고 어려움속에 끝나기만 바랐덕 그팀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셨다
주님은 필요하시면 들어 쓰시는구나 예전의 성서모임이 중심이 되어서 청년모임이 이끌어져간다고 했다 주님의 일이라 신비하게느꼈다
지도신부님이 본당에 충실하라고 하시면서 교구일을 맡기지않았다 본당으로 돌아와보니 다들 저를 반겨주셨다 선배와 누나뻘되시는 자매님들이 저를 귀여워해 주셨다 저는 구역모임에 충실히 참여하면서 사목위원과 레지오모임과 독서단에서 활동했다.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가졌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당시는 심각했다 이상한소문도 퍼트리고 있었던 저는 한때 이로 인해 활동하는 것을 접기도 하였다. 어떤신부님으로 부터는 청년들을 기죽이지 말라고 하셨다. 청년미사에 참여하면서 미사때 성가대신에 복음성가를 부르고 미사중에 청년들과 함께 제대앞에 나가서 율동도 하였다.
청년들은 본당의 형뻘되는 선배봉사자들의 자녀들이었다
제가 있던 본당은 등록신자가 만명이 넘는것인지 보좌신부도 두명이 있었다 제관할구역에는 등록된신자가 서른명이 넘었는데 구역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열명도 채 되지않았다
서울교구에서 청년모임이 시작할때라서 그모임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다 그때 알게된것이 성령기도모임이었다. 그때는 성령기도도 할줄 몰랐지만 청년사목위원이라 계속 참석하였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성령기도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저는 레이첼자매님처럼 본격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혈기로 사목회의때 본당신부님께 건의도 많이 하였지만 묵살되었다. 전교우를 상대로 성서를 가르쳐주신 신부님은 봉사자들이 어려워하였고 행사등을 많이하고 국수잔치에 참여하는 이는 많았다
레이첼자매님이 하시면서 좌절된 것에 공감이 됩니다
여성으로 많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헌신이 본당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이 납득이 잘 안되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분들은 공동체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을 봅니다
필요하다고 여겨서 비용을 들어서 교육훈련을 시키면 정작 그일을 맡은사람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저는 주일학교를 눈여겨봅니다 주일학교교사는 신앙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손에 의해 아이들이 교리를 배웁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중에는 열성적인 분들이 자모회활동을 합니다 그분들은 신앙적인경험과 지식이 많은 분들이지만 본당에서 맡은 역할은 아이들 간식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분들 특히 자모회와 주일학교 교사는 그 기간이 끝난후에는 본당에서 봉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본당에서 청장년층의 수를 대폭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제가 지식이 짧아서 표현을 잘못하는편이라서 그런데 레이첼자매님의 그동안의 경험과 고백이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우리모두가 합심해야 할것이라 여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