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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산문집 [☆설화를 품은 꽃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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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를 품은 꽃들]
유준호 시산문집 / 도서출판 이든북(2019.07.05)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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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꽃의 삶은
사람의 삶과 닮았다고 보기에 꽃은 사람이요, 사람은 꽃이라고 비유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유전자를 몸에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나 나름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며 살다가 한 알 씨를 맺어놓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사람과 꽤나 닮았다.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로 숨은 이 꽃들처럼 한 사람이 살다가 간 자취 뒤에도 모두 다는 아니지만 드물지 않게 전설이 서려 내려온다. 그래서 이런 꽃들에 애착이 간다. 그 꽃 가운데 78개를 골라 한편의 자작 시조와 꽃말, 전설, 현대시인의 시를 곁들여 나름의 생각을 썼다. 마음의 향기를 느꼈으면 한다. 이 책을 내는데 도움을 주신 대전문화재단과 표지화를 제공해주신 한국화가 공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백인현 교수님께 감사한다.
기해년 새울정사에서
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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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붕이
하늘에 빗금 치며 아기별이 내려왔다
안개 속에 또르르 굴러서 구슬 됐다
마음을 당겼다 푸는 요요한 요정이다
중국 삼가호라는 호수에 하늘의 용이 내려와 앉았는데 물이 말라버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을 운명에 처했다. 이 때 마을 주민들이 이웃의 연못에서 물을 길러다 용이 승천할 수 있도록 이 호수에 물을 채워주어 용은 승천하였다. 이듬해 호수주변에 보라색의 처음 보는 꽃이 피어났다. 그 뿌리의 맛을 보니 너무 쓴 맛이났다. 마을 사람들은 용이 보낸 약초로 생각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이 풀을 먹이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 후 곰의 쓸개보다 쓴 이 풀을 용의 쓸개인 용담(龍膽-구슬붕이)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우리나라 전설로는 옛날 금강산에 심성 고운 나무꾼이 살았는데 그는 사냥꾼에 쫓기는 노루, 사슴을 많이 구해주었다. 어느 날 땔감을 구하고 있는데 토끼가 눈을 헤치고 무엇을 캐고 있어 물어보니 주인의 약을 캔다고 하고 사라졌다. 그는 이상해 그 뿌리를 입에 대보니 몹시 썼다. 속았다싶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네가 약한 짐승을 많이 구해줘 네게 내리니 가서 이뿌리로 약을 빚으라 하였다. 그는 그 뿌리로 약을 빚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슬붕이, 요정의 이름 같지 않은가. 실제로 이 꽃은 숲의 요정만 같다. 저마다의 빛깔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이라서 움직일 수 없지만 씨를 통하여 이사는 할 수 있다. 씨가 되어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뿌리를 내린 구슬붕이는 이른 봄에 가을부터 쌓인 낙엽더미에서 마치 빛나는 구슬처럼 핀다. 아마도 봄날 산길에 파란 보석이 땅에 떨어진 듯 반짝이는 그 앙증맞음에서 아마도 그리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용담과에 속하는 이 구슬붕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되어 사는 두해살이풀로 산과 들 비탈지고 양지바른 곳의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이 꽃은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다. 이 꽃을 두고 이상인 시인은「봄 구슬붕이 꽃」이란 시에서 ‘고흥 천둥산 자락/봄이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 이들/……올해도 서럽게 고운 봄은 와서/천둥산 양지바른 산자락마다/서둘러 파란 별들이 피어났는데/기쁜 한 소식 기다리듯/하루만 또 하루만 그렇게 떠 있다가/슬그머니 지고 있다’고 하여 이 꽃을 인간과 자연에 비유하여 고단한 삶을 살다가 떠나는 별로 표현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들이 하루하루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지만 매일 반복되는 아쉬움이 있듯 이 꽃도 그러함을 표현하고 있다. 내 눈에 비친 구슬붕이 꽃은 깊은 산골에 별이 떨어져 해맑게 웃는 것만 같다. 이 꽃은 봉오리가 포속으로 숨어들어가 보랏빛과 푸른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피어나 우리에게 신비감을 자아내주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이 꽃은 계절의 요정이다. 보면 볼수록 눈에 삼삼 어리는 꽃이다. 구슬붕이는 꽃보다도 약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뿌리는 한약재로 간과 담의 열이 생겼을 때 간과 담의 열을 내려주고 항암효과가 있는 우리 몸에 유익한 약초라고 한다. 그러나 맛이 쓰다. 논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 良藥苦口利於病했는데 이 뿌리가 쓴 것이 바로 그 좋은 약이란 증거인가 보다.♥
도라지꽃
⁂꽃말-기품, 따듯한 애정
초봄부터 해와 달에 풋정을 바칩니다
무더위 땡볕아래 몸을 푼 도라지꽃
연보라 가슴을 열어 젖내를 풍깁니다
산기슭에 몸 숨기고 돌아앉아 삽니다
뿌리를 다칠세라 웅크린 도라지꽃
향기를 지긋 누르고 가슴을 펴봅니다
아득히 먼 옛날인 신라시대, 동해 어느 마을에 오빠와 단둘이서 사는 도라지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오빠 공부를 도와주었다. 도라지의 오빠는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는데 그날 도라지 오빠 옷 보따리를 챙겨 주면서 “오라버니, 1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오빠가 간 후 그녀는 절에 가서 여러 스님들의 심부름을 하며 오빠를 기다렸고, 10년이 지나자 오빠가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와 그녀는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도라지 오빠는 중국 조정에서 벼슬까지 얻어 정착한 상태여서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세월이 흘러 도라지는 아주머니가 된 어느 날 도라지는 스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오빠가 돌아오시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도라지야! 오빠가 왔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녀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으나, 오빠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크게 실망한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스님은 도라지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내 주었는데 이듬해 무덤에서 작은 보랏빛 꽃이 몇 송이 피어났다. 그 꽃을 사람들은 도라지 처녀의 영혼이 깃든 꽃이라 해서 도라지꽃이라 불렀다.
전국의 산지나 들에서 자라는데 뿌리가 굵고 뿌리에서 모여 나는 원줄기를 자르면 백색 유약이 나온다. 도라지는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즐겨 먹는 산나물이다. 향이 좋고 영양도 좋아 반찬으로 많이 먹는다. 특히 오래 된 도라지는 약효가 뛰어나 산삼과 같다고도 한다. 7-8월에 짙은 하늘색이나 흰색의 꽃이 피는데 도라지꽃은 아주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꽃 속에 개미를 넣은 뒤 꽃잎을 오므려 닫고 좌우로 흔들면 꽃잎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개미가 위험을 느꼈을 때 뿜어내는 개미산이 도라지꽃의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와 섞여 색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도라지꽃은 산성에는 분홍색으로, 염기성에는 푸른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산성과 염기성을 판별하는 ‘천년 지시약’으로도 쓰였다고 하니 신기하고 신비로운 식물이다. 시인 이해인은 「도라지꽃」이란 시에서 ‘보랏빛 고운 적삼/찬 이슬 머금은/수줍은 몸짓//사랑의 순한 눈길/안으로 모아//가만히 떠올린/동그란 미소//……내 무덤가에 언젠가 피어/잔잔한 연도를 받혀 주겠니’하여 도라지꽃을 잔잔한 미소가 빛나는 여인네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죽음 길까지 밝혀주기를 바라는 애잔함을 표출해 보이고 있다. 한적한 산비탈에 남보랏빛 향기를 가득 채워주는 도라지꽃. 그 꽃은 어느 한국 여인을 빼닮았다. 다섯 겹 치마폭을 남색 줄무늬가 쳐진 블라우스를 가려 입었는데 그 고운 옷자락을 바람이 와 흔든다. 아니, 밤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저만치 펼쳐진 회색마을을 환히 밝히고 있다.♥
붓꽃
⁂꽃말 - 좋은 소식, 신비로운 사람, 존경
붓꽃이 허공에 그려놓은 묵화 한 폭
무지개로 휘어져 바람에 나부낀다
벌새가 향낭을 쏘자
열리는 싸한 세상
이 꽃에 얽힌 전설은 그리스의 신 가운데 누가 봐도 아름다움에 빠져들 정도의 미모를 지닌 아이리스라는 딸을 가진 신이 있었는데 제우스의 아내 헤라도 반할 정도였다. 그 미모에 반한 헤라는 아이리스를 자신의 시녀로 삼았다. 그런데 올림포스 산 위에 자리잡은 신전에 살며, 인간 세상과 신들의 세계를 관장하는 바람둥이 제우스이 눈에 잘 띄었다. 아이리스는 외모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예절도 바르고 몸가짐 또한 아주 단정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바람둥이 기질의 제우스는 아이리스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총명한 아이리스는 제우스이 계략으로부터 번번이 빠져 나갔다. 제우스는 애가 닳아 발을 동동 굴렀다. 이를 보고 있던 헤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이리스가 재치있게 제우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아이리스가 마음에 들었던 헤라는 아이리스에게 선물을 주었다. “자,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무지개라고 하는 것인데 너의 목걸이로 하여라. 그리고 이것으로 다리를 놓아 하늘을 건너는 영광도 너에게 주마.” “황공하옵니다. 헤라여!” 헤라는 향기로운 입김을 세 번 뿜어서 아이리스를 축복하였다. 그 때 입김에 서린 물방울 몇 개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물방울이 떨어진 곳에서 꽃이 피어났다. 바로 그 꽃이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지녔으며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아이리스 즉, 붓꽃이라고 한다.
붓꽃은 전설에서 유래한 무지개의 여신이란 뜻인 아이리스라고 한다. 그래서 붓꽃을 무지개 여신이라 불렀다. 붓꽃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꽃대와 꽃술이 붓 같다고 하여 그리 부른다고 한다. 여러 해살이 식물로 그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 시베리아 동부 등 동아시아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잘 자라는 꽃이다. 5-6월에 개화하며 줄기 끝에 2-3개씩 달리는 꽃은 보라색을 비롯하여 노랑, 빨강 등 여러 가지로 잎같은 포가 있다. 얼핏 보면 창포와 비슷하다. 그런데 붓꽃은 꽃대가 대나무처럼 곧게 뻗는데, 창포는 꽃대가 작은 각을 이루어 약간 굴곡져 있다. 이 꽃은 그림에서 향기가 나게 그린 이탈리아 화가와 미망인 사이에 사랑을 나누게 한 매개체이기도 하다고 한다. 우리 집 뜰에도 이 붓꽃이 꽃대를 세워 꽃을 피워 보랏빛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어 한참 감상의 늪에 빠지려 하는데 얄궂은 비가 뿌리기 시작하더니 그 모습을 망가뜨려 시들게 하였다. 자연은 이 땅에 아름다움을 주고 또 앗아가 다음을 기약하라 하나 보다.
이 꽃을 두고 이윤훈 시인은 「붓꽃이 있는 풍경(자화상)」이란 시에서 ‘앞뜰의 노란 붓꽃이/잠시 실바람을 그리고/고양이의 줄무늬 건반을 살짝 치다 지우고/허공에 방울새를 띄었다 지우고/나를 금생의 한 풍경으로 쓸쓸히 앉혔다//누가 후생에서 쓸쓸히 나를 보고 있다’고 하여 붓꽃을 통한 시인의 자화상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가 보는 붓꽃의 모습을 붓꽃이 보는 시인의 모습으로 역발상으로 묘사하여 새롭게 느껴진다.♥
족두리꽃
⁂꽃말-시기, 질투, 불안정
햇빛으로 날개 달고
초례청에 나온 낭자
족두리 사뿐 쓰고 다소곳 앉아 있다
원삼 깃 살짝 내리고
눈썹 떠는 새 아씨
꽃과 같이 예쁘고 깜찍스러운 낭자가 어느덧 자라나 혼인할 나이가 됐다. 어느 날 키 크고 힘이 아주 센 장수가 나타나 궁중에서 궁녀를 뽑는다며 홀어머니를 남기고 낭자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궁녀로 뽑혀간 낭자는 얼마 후 다시 중국으로 뽑혀 가는 신세가 됐다. 예쁜 얼굴을 가진 것이 운명을 나쁘게 했던 것이다. 그 후 낭자는 머나먼 나라에서 들판에 굴러다니는 꽃잎 같은 신세가 됐다. 낭자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죽었다. 낭자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맞았다. 낭자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혼자 집을 지키면서 딸이 잘 되기만을 기도하였던 어머니는 딸을 먼저 잃은 슬픔 때문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느 날 낭자의 어머니도 슬픈 죽음의 날을 맞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낭자의 집 뒷동산에는 이상한 꽃들이 피었다. 다른 꽃과는 달리 잎과 꽃이 함께 땅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시집갈 때에 머리에 쓰는 족두리 같은 모습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이 소문은 온 고을에 순식간에 퍼졌고, 그래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을 낭자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낭자 어머니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했다는 동양 전설이다.
‘족두리’하면 새색시를 연상하고 새색시하면 싱싱한 아름다움을 품은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쩌다 꽃말은 ‘시기, 질투, 불안정’이란 명예롭지 못한 언어를 매달고 있을까. 질투의 화신은 여자라더니 그래 그런 걸까. 층층 따라 변색시킨 연분홍 꽃잎을 달고 있는 품이 전통 혼례식 날 신부 머리에 얹힌 그 장식을 꽤나 빼닮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인 성싶다. 바람에 살랑대며 핀 꽃무리들 곁에 접시꽃이 큰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 집 화단은 어느새 혼례장이 된 듯하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벌 나비는 그 하객들일까. 이를 두고 바람돌이란 필명을 가지 어느 시인은「풍접초」란 시에서 ‘나비 날개를 닮은 너/풍접초!/아침 샛바람에 하늘하늘 유혹해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는 꽃//족두리를 닮은 너/족두리꽃!/밝은 햇살엔 움츠려 있다가 해가 지면 화려한 유혹의 달맞이 꽃//백일홍보다 더한 너/클레오메!/백일을 훨씬 지나서 5개월간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꽃//하얀 너 붉은 너/취접화!/취하지 않으면 희고, 취하면 붉어지는 꽃/내 마음 흔든다’고 하여 이 꽃의 이칭異稱인 풍접초風蝶草, 족두리꽃, 클레오메(Cleome), 취접화醉蝶花란 말을 시 속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꽃 모양이 색색 나비 같고 아름다워 시인은 마음이 흔들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꽃은 장인匠人의 정교한 손으로 빚어 각종 보석을 박아놓은 휘황한 왕관 같기도 하다.♥
할미꽃
한겨울을 땅속 깊이 은둔해 지내더니
보릿고개 굽은 등 펴지도 못한 채
검붉은 핏덩어리로 말없이 봄을 떤다
헝클어진 흰 머리칼 하염없이 날리며
떠나는 바람에 할 말을 다 못한 듯
빈손을 높이 쳐들고 한참을 머뭇댄다
손녀 둘을 데리고 살던 할머니가 곱상 손녀는 부잣집에 밉상 손녀는 가난한 집으로 여위었다. 가까이 사는 곱상 손녀가 살림이 넉넉함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그런데 모시며 심한 구박은 물론 굶기다시피 하므로 이러다가는 그냥 죽겠다싶어 할머니는 밉상 손녀를 찾아 가다가 그만 고갯마루에서 기진맥진하여 숨을 거뒀다. 그 때 밉상 손녀가 고갯길에 쑥을 캐러 왔다가 보고 보리밭가에 묻어드렸는데 이듬해 봄 그 무덤에서 검붉은 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할머니의 한이 서린 넋이 꽃송이로 피어났다고 하여 할미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할미꽃은 ‘뒷동산의 할미꽃 호호백발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하는 우리 정서를 잘 보여주는 소박한 전래동요가 있다. 그만큼 친근하고 우리 생활에 젖어 있는 꽃이다. 위 설화는 식물의 생김새에 관한 설명에 초점을 두고 짜이어진 이야기만, 가난과 가부장제도라는 가족제도 때문에 겪는 가난한 하층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얼핏 무력하고 늙어 소외당하고 밤낮 고개만 숙이고 사는 것만 같은 이 꽃이지만 고개를 쳐들어 화심을 하늘에 들이대기도 하는 꽃이 이 꽃이기도 하다. 겉모습이 백발 할아버지 같아 백두옹白頭翁이요, 허기 굽은 할미 같아 노고초老姑草란 이름으로 불린다. 붉다 못해 검붉음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의 기개를 보여주는 한사화寒士花로 선비들이 흠모欽慕하는 꽃이다. 한겨울은 만상이 봄을 기다리며 숨죽여 움츠려 사는 계절이다. 이 할미꽃도 뿌리 밑에 웅크려 숨어 앉아 기다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의 봄은 가난하고 배고팠다. 그래서 할미꽃을 보면 배곯은 채 일에 지쳐 허리가 굽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 때의 그들은 서러운 삶에 핏덩이를 쏟으며 울지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고달픈 삶을 세월과 함께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흰 머리칼이 늘어나고 누군가에게 살아온 날에 대한 회한을 하소연하고 싶지만 다 같은 처지이기에 그럴 사람도 없다. 그래 끝내 말 못하고 참고 견디며 고개를 숙이고 마는 그 처량한 모습이 바로 할미꽃으로 환생還生하여 나타난 것만 같지 않은가?
‘은근’이 한국의 미요, ‘끈기’가 한국의 힘이라고 한 국문학자 조윤제 박사의 말 같이 우리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에 라정희 시인은 「할미꽃」이란 시에서 ‘꽁꽁 얼어서도/깊이 간직한 말 못할 사연/언 몸 녹으면/님 그리워 목 길게 뽑았건만/수줍어 부끄럼에/고개 숙여……/산들 바람결에/못 이기는 척 님을 훔쳐보네//어느 새/백발 되어/기다림에 지친 님 놓칠세라/고개 들고 임 찾은 들/아~!/애타는 추억이리’라고 하여 할미꽃에서 님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추억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이 꽃은 참음의 꽃인 듯하다. 이 꽃은 참고 견딘 한이 많아서인지 성질이 독하기로도 이름이 자자하다. 혀에 이 꽃을 대면 그 독에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꽃은 뿌리 즙을 내어 하수구나 외양간에 뿌리면 벌레가 생기지 않고, 종기나 창瘡에 바르면 낫는다고 한다. 요즘 충남대 팀에서 부작용 없는 항암제를 이 꽃 뿌리에서 발견했다 한다. 이 꽃은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서는 미혹迷惑의 여인 장미에 대립된 포의한사布衣寒士 차림의 충간신忠諫臣으로 등장한다. 이 꽃은 선비적 기개氣槪가 있어서 일까. 어느 날 화분에 심어놓은 이 꽃이 그 본연의 피맺힌 색을 봄 한철 잠깐 보여주고 가기에 내년을 기약하였더니 성질머리 고약하게도 비 내릴 때 덜 챙겨주었다고 뿌리부터 썩어 자결을 하지 않았던가. 어쩌든 세월은 기쁨보다 슬픔을, 흡족함보다는 부족함을, 남음보다는 모자람을 더 많이 남겨놓고 간다. 할미꽃 이야기에 등장하는 할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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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꽃의 삶은
사람의 삶과 닮았다고 보기에 꽃은 사람이요, 사람은 꽃이라고 비유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유전자를 몸에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나 나름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며 살다가 한 알 씨를 맺어놓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사람과 꽤나 닮았다.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로 숨은 이 꽃들처럼 한 사람이 살다가 간 자취 뒤에도 모두 다는 아니지만 드물지 않게 전설이 서려 내려온다. 그래서 이런 꽃들에 애착이 간다. 그 꽃 가운데 78개를 골라 한편의 자작 시조와 꽃말, 전설, 현대시인의 시를 곁들여 나름의 생각을 썼다. 마음의 향기를 느꼈으면 한다. 이 책을 내는데 도움을 주신 대전문화재단과 표지화를 제공해주신 한국화가 공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백인현 교수님께 감사한다.
기해년 새울정사에서
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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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ㄱ~ㄴ
가시연꽃 / 갈대꽃 / 개나리 / 개망초 꽃 / 과꽃 / 구슬붕이 / 구절초 / 글라디올러스 / 금은화 / 꽃무릇 / 꽃창포 / 나리꽃 / 나팔꽃 / 냉이 꽃 / 능소화
ㄷ~ㅁ
다래꽃 / 다알리아 / 달맞이꽃 / 대추 꽃 / 도라지 꽃 / 동백꽃 / 맨드라미 / 메밀꽃 / 명자나무 꽃 / 모란꽃 / 목련꽃 / 무화과 / 물망초 꽃 / 민들레
ㅂ~ㅅ
밤꽃 / 배꽃 / 배롱나무 꽃 / 백합 / 벗꽃 / 복수초 / 봉숭아꽃 / 부처꽃 / 분꽃 / 붓꽃 / 뻐꾹나리 / 샐비어 / 산솜다리 / 산수유 / 산철쭉 / 살구나무 꽃 / 서향 / 석류꽃 / 소나무 꽃 / 수련 / 수선화 / 쑥부쟁이
ㅇ~ㅊ
안개꽃 / 앵두꽃 / 양귀비꽃 / 억새꽃 / 엉겅퀴 꽃 / 원추리 / 유채꽃 / 은방울꽃 / 이팝나무 꽃 / 접시꽃 / 제비꽃 / 족두리 꽃 / 찔레꽃 / 채송화
ㅋ~ㅎ
카네이션 꽃 / 칸나 / 코스모스 / 큰꽃으아리 / 패랭이꽃/ 프리지어 / 할미꽃 / 해당화 /
해바라기 꽃 / 해오라비 난초 / 호박꽃 / 홍매 / 히아신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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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로 숨은 꽃들처럼
사람의 삶과 닮았다고 보기에 꽃은 사람이요, 사람은 꽃이라고 비유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유전자를 몸에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나 나름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며 살다가 한 알 씨를 맺어놓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사람과 꽤나 닮았다.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로 숨은 이 꽃들처럼 한 사람이 살다가 간 자취 뒤에도 모두 다는 아니지만 드물지 않게 전설이 서려 내려온다. 그래서 이런 꽃들에 애착이 간다. 그 꽃 가운데 78개를 골라 한편의 자작 시조와 꽃말, 전설, 현대시인의 시를 곁들여 나름의 생각을 썼다. 마음의 향기를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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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준호 시조시인∥
∙아호 청사청사. 시조문학 3회 천료(1971년 이태극 추천).
∙전국대학생 현상문예 시 당선(1964년 김춘수 선).
∙토요시조 동인(한국최초 회람노트 시집『흙』발간(68년~71년)
∙ 한얼문우회 회원(70년대초 교원수필문핚) 가람문학회 회장. 한국시조문학작가회협회 부회장. 중도문인협회 부회장. 대전시조시인협회장 등 지냄
∙한국시조작가협회장상, 대전광역시문화상(문학부문),세계문학상 대상, 한밭시조문학상, 대전펜문학상, 한국시조협회문학상, 모범공무원증(국무총리), 홍조근정훈장 수상.
∙시조집『바람 한 필』『시월 꽃나무들』등 7권
∙평설문집『운율의 미학을 찾아』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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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orn Birds Theme - Henry Mancini / 가시나무새(TV) The Thorn Birds(1983)
제작 1983년 (Mini), 미국 // 감독: Daryl Duke // 음악 : 헨리 맨시니 (Henry Mancini)
#출처: 관악산의 추억( http://cafe.daum.net/e8853/MVDb/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