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제(林悌)
〇 무어별(無語別) - 林悌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열다섯 살의 아리따운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사람이 부끄러워 말도 못 하고 이별했네.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돌아와 겹문을 닫아 걸고는
泣向梨花月 (읍향이화월) 배꽃처럼 하얀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 이 시는 임제의 대표작으로, 왕사정(王士禎)이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수록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진 시이다
〇 무제(無題)
酒肆風流跡已虛(주사풍류적이허) 술집의 멋스런 풍류 자취도 까마득하고
雄心寥落寄樵漁(웅심요락기초어) 큰 뜻도 다 가라앉아 시골사람 되었네
雲宵舊識音書斷(운소구식음서단) 출세한 옛 친구들은 소식이 끊기도
水竹新居契濶踈(수죽신거결활소) 물가 대숲 집엔 찾아오는 이도 없구나
蘇小縱輕貧孟浩(소소종경빈맹호) 소소(蘇小)는 가난한 맹호연을 소홀히 했다지만
文君猶托病相如(문군유탁병상여) 탁문군(卓文君)은 병든 사마를 돌보지 않았던가
名編玉籍團圓少(명편옥적단원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나볼 수 없거늘
割盡柔腸一寸餘(할진유장일촌여) 애간장 다 끊어져 한 치나 남았겠나.
〇 패강가 십수 (浿江歌 十首) - 林悌
其六 (기륙)
浿江兒女踏春陽(패강아녀답춘양) 대동강의 계집아이 봄볕에 거니노라니
江上垂楊政斷腸(강상수양정단장) 강 위에 드리운 버들에 정말 애간장이 끊어지네
無限煙絲若可織(무한연사약가직) 한없는 가는 버들가지로 만약 베를 짤 수 있다면
爲君裁作舞衣裳(위군재작무의상) 임을 위해 춤출 옷을 짓고 싶네요”
◀ 임제(林悌)가 1583년 평안도 도사였을 때 대동강에 나가 놀면서 지은 시이다.
〇 추천곡 삼수 (鞦韆曲 三首) - 林悌
其一
白苧衣裳茜裙帶(백저의상천군대) 흰 모시 의상에 붉은 띠 두르고
相携女伴競鞦韆(상휴녀반경추천) 서로 이끄는 처녀들 다투어 그네 탄다
堤邊白馬誰家子(제변백마수가자) 둑 가 흰 말을 탄 사람은 누구 집 자제인가?
橫駐金鞭故不前(횡주금편고불전) 금채찍 움켜쥐고 일부러 앞으로 가지 않네
其二
粉汗微生雙臉紅(분한미생쌍검홍) 붉은 두 볼에 땀이 조금 배이고
數聲嬌笑落煙空(수성교소락연공) 고운 웃음소리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네
指柔易著駌鴦索(지유역저원앙삭) 부드러운 손가락은 원앙줄에 뚜렷하고
腰細不堪楊柳風(요세불감양류풍) 가는 허리는 버들에 부는 바람도 견디기 어려울 듯
其三
誤落雲鬟金鳳釵(오락운환금봉채) 구름 같은 머리채의 금봉 비녀 잘못해서 떨어지니
游郞拾取笑相誇(유랑습취소상과) 놀던 도령 주워서는 웃으며 들어 보인다
含羞暗問郞居住(함수암문랑거주) 부끄러움 머금고 몰래 도령 사는 곳을 묻기를
綠柳珠簾第幾家(녹류주렴제기가) “푸른 버들 옥 주렴이 있는 몇 번째 집인가요?”
〇 황진이 - 林悌
청초(靑草) 욱어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 35세때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홍진이의 묘에 들려 읊었다.
〚작자〛 임제(林悌, 1549∼1587) 본관 나주. 자 자순(子順). 호 백호(白湖)·겸재(謙齋).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인. 조선중기 시인 겸 문신. 황진이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와 기생 한우(寒雨)와 화답한 시조 <한우가(寒雨歌)〉등이 유명하다.
□ 정도전(鄭道傳)
〇 고의(古意) - 鄭道傳
蒼松生道傍(창송생도방) 해묵은 솔이 길가에 자라니
未免斤斧傷(미면근부상) 도끼의 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리
尙將堅貞質(상장견정질) 아직도 굳고 곧은 바탕을 지녀
助此爝火光(조차작화광) 횃불의 빛을 도와줄 수 있다네
安得無恙在(안득무양재) 어쩌면 병 없이 조용히 있어
直榦凌雲長(직간릉운장) 똑바로 구름을 뚫고 자라
時來竪廊廟(시래수랑묘) 때가 와서 큰 집을 지을 적이면
屹立充棟樑(흘립충동량) 우람한 저 대들보에 충당할 것인가
夫誰知此意(부수지차의) 누가 이 뜻을 미리 알아
移種最高岡(이종최고강) 가장 높은 산에 옮기어 심어 줄 것인가
〇 단오일 유감(端午日 有感) - 鄭道傳
野父田翁勸酒頻(야부전옹권주빈) 농삿집 늙은이들 술을 자주 권하면서
謂言今日是良辰(위언금일시량진) 오늘은 바로 좋은 날이라 일러 주네
頹然醉臥茅簷下(퇴연취와모첨하) 쓰러져 취하여 초가집 처마 아래에 누웠으니
還愧醒吟澤畔人(환괴성음택반인) 도리어 홀로 깨어 읊조리는 택반 사람 부끄럽네
◀ 귀양을 간 농촌에서 단오를 맞아 느낌이 있어서 지은 시이다.
〇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 - 鄭道傳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가을 그늘 아득아득하고 사방 산은 비었는데
落葉無聲滿地紅 (녁엽무성만지홍) 지는 잎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시내 다리에 말 세우고 갈 길을 묻노라니
不知身在畫圖中 (부지신재화도중)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을 모르네
◀ 시골에 은거하고 있는 김거사를 찾아 나선 도중에 맞은 가을 경치를 노래하고 있다.
〇 월야봉회동정(月夜奉懷東亭) - 鄭道傳
半夜獨起立(반야독기립) 한밤중 일어나 홀로 서있으니
長空澹自寂(장공담자적) 높은 하늘은 해맑아 고요하다.
一片海上月(일편해상월) 바다 위 한 조각 밝은 달이
萬里照茅屋(만리조모옥) 만 리 멀리 오두막을 비춘다.
冷影故依依(랭영고의의) 차가운 그림자 짐짓 한들거리니
還如憐竄客(환여련찬객) 귀양살이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는 듯.
爲憶東亭翁(위억동정옹) 미루어 동정옹을 생각해보니
應共此幽獨(응공차유독) 응당 이러한 고독을 함께 맛보리라.
〇 추림(秋霖) - 鄭道傳
秋霖人自絶(추림인자절) 가을장마라 사람 절로 끊기니
柴戶不曾開(시호불증개) 사립문은 일찍이 열지를 않네
籬落堆紅葉(이락퇴홍엽) 울타리엔 붉은 잎이 쌓이고
庭除長綠苔(정제장록태) 뜰에는 푸른 이끼 자랐네
鳥寒相並宿(조한상병숙) 새들은 추워 서로 맞대고 자고
鴈濕遠飛來(안습원비래) 기러기도 젖어 멀리서 날아오네
寂寞悲吾道(적막비오도) 슬프다, 우리 도 적막한 것
惟應泥酒杯(유응니주배) 오직 응당 술에 빠져야겠네
◀ 이 시는 가을장마를 노래한 것이다.
〚작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 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정적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 왕조의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신원 되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 정두경(鄭斗卿)
〇 단군사 (檀君祠) - 鄭斗卿
有聖生東海(유성생동해) 성인께서 동해에 나셨으니
于時竝放勳(우시병방훈) 시절은 요임금과 나란하다네
扶桑賓白日(부상빈백일) 부상에서 흰 해를 맞이하노라면
檀木上靑雲(단목상청운) 박달나무가 푸른 구름 위로 솟았으리
天地侯初建(천지후초건) 천지에 처음으로 제후가 세워질 때
山河氣不分(산하기불분) 산하의 기운은 나뉘지 않았다네
戊辰千歲壽(무진천세수) 무진년부터 누린 천 년의 수명을
吾欲獻吾君(오욕헌오군) 나는 우리 임금님께 바치고 싶네
〚작자〛 정두경(鄭斗卿, 1597, 선조 30~1673, 현종 14):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교리로서 풍시 20편을 찬진하여 왕으로부터 호피를 하사받았다.
용문관제학에서 예조참판 ·공조참판 겸 승문원제조 등에 임명되었으나 노환으로 나가지 못했다.
□ 정사룡(鄭士龍)
〇 기회(紀懷) - 鄭士龍
四落階蓂魄又盈(사락계명백우영) 명엽초(蓂莢草) 네 번 계단에 지고 달이 또 찼는데
悄無車馬閉柴荊(초무차마폐시형) 찾아오는 사람 없음 근심하며 문을 걸어 두었네
詩書舊業抛難起(시서구업포난기) 시서의 옛일은 버려두어 다시 일으키기 어려운데
場圃新功策未成(장포신공책미성) 농사짓는 새로운 일은 계획이 아직 서지 않았네
雨氣壓霞山忽暝(우기압하산홀명) 비 기운이 노을을 눌러 산이 갑자기 어두운데
川華受月夜猶明(천화수월야유명) 강물은 달빛을 받아서 밤인데도 오히려 밝구나
思量不復勞心事(사량불부로심사) 근심이 다시는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니
身世端宜付釣耕(신세단의부조경) 신세 오로지 마땅히 낚시와 밭갈이에 부쳐야겠네
〇 석민종필(釋悶縱筆) - 鄭士龍
隨意攤書坐(수의탄서좌) 마음대로 책을 편 채 앉아 있다가
孤吟對晩暉(고음대만휘) 외로이 읊조리며 석양빛 보네
岸風帆腹飽(안풍범복포) 둑 바람에 돛배는 잔뜩 부풀고
沙雨荻芽肥(사우적아비) 모래 가 비에 갈대 싹은 오동통하네
籬缺通江色(이결통강색) 울 터져 강 풍경 통해 보이고
簾垂礙燕飛(염수애연비) 발 내려져 제비 날 때 방해되겠네
誰知浴沂節(수지욕기절) 누가 알랴? 기수에 목욕하는 계절에
和病試春衣(화병시춘의) 병중에 봄옷으로 갈아입는 걸
〇 대탄(大灘) - 鄭士龍
轟輵車千兩(굉갈차천량) 우릉우릉 마차 천 량이 달리는 듯
喧闐鼓萬槌(훤전고만퇴) 쿵쿵 북을 만 번이나 치는 듯
篙工心欲細(고공심욕세) 뱃사공은 마음 졸아들려 하고
病客膽先摧(병객담선최) 병든 객은 담이 먼저 꺾일 듯하네
振鷺衝巖起(진로충암기) 날던 해오라기 바위에 받혀 솟아오르고
跳山入座回(도산입좌회) 뛰는 산 자리 들어 휘돌아 가네
片帆愁激射(편범수격사) 한쪽 돛배 격한 파도 근심스러워
欹側岸邊來(의측안변래) 엎어질듯 강둑 가로 돌아오누나
〇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 鄭士龍
擁山爲郭似盤中(옹산위곽사반중) 산을 끼고 이룬 성곽이 소반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명색초침동학공) 노을이 막 지자 골짜기는 텅 빈 듯하네
峯項星搖爭缺月(봉항성요쟁결월) 봉우리에 별빛이 반짝이며 이지러진 달과 다투니
樹巓禽動竄深叢(수전금동찬심총) 나무 끝에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네
晴灘遠聽翻疑雨(청탄원청번의우) 맑은 여울 소리 멀리서 들려 빗발이 뿌리는 듯
病葉微零自起風(병엽미령자기풍) 병든 잎 살짝 떨어지자 절로 바람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차야공분음탑료) 이 밤 시를 읊는 침상 값을 함께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명조가마연진홍) 내일 아침이면 붉은 흙길에 말방울소리 울리겠지
〇 춘흥(春興)
花滿園林葉未齊(화만원림엽미제) 뜰쭉날쭉 뜰에 가득 꽃은 피고
恰回殘夢有鶯啼(흡회잔몽유앵제) 꾀꼬리 울음소리, 꿈 깬 것 같아라
蝦鬢不碍東風過(하빈부애동풍과) 주렴이 봄바람 지나는 것 막지 못하니
無柰輕陰壓額低(무내경음압액저) 이마에 그늘 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작자〛 정사룡(鄭士龍, 1491, 성종22~1570, 선조3): 본관은 동래.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1509년 생원을 거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숙부 정광필(鄭光弼)이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로,
중종과 명종대에 관각(館閣)을 이끌었으며, 시문에 뛰어나고 글씨도 잘 썼으나
탐학리(貪虐吏)라는 비난을 들었다 저서로 『호음잡고(湖陰雜稿)』가 있다.
□ 정약용(丁若鏞)
〇 구우(久雨) - 丁若鏞
窮居罕人事(궁거한인사) 궁벽하게 사노라니 사람 보기 드물고
恒日廢衣冠(항일폐의관)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敗屋香娘墜(패옥향낭추)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기어가고,
荒畦腐婢殘(향휴부비잔) 황폐한 들판엔 팥꽃이 남아 있네.
睡因多病減(수인다병감) 병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秋賴著書寬(추뢰저서관) 글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 보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날 맑아도 또 혼자서 탄식할 것을.
〇 애절양(哀絶陽) - 丁若鏞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급하게 가서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皁(이정포효우거조) 향관은 으르렁대며 마구간 소 몰아가네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이치기에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녀) 하늘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지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불깐 말 불깐 돼지도 서럽다 할 것인데
況乃生民思繼序(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이나 즐기면서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같은 백성인데 왜 그리도 차별일까?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이 시는 어느 백성이 자신의 양근(陽根)을 끊은 것을 슬퍼하며 지은 시로,
당시 심각한 군정(軍政)의 문란을 노래한 다산의 대표적인 사회시(社會詩) 중 한 수이다.
〇 荒年水村春詞十首 (황년수촌춘사십수) - 丁若鏞
- 거친 해 물 마을의 봄
東風吹綠草離離 (동풍취록초리리) 푸른 풀 파릇파릇 봄바람 불자
花柳依然似昔時 (화류의연사석시 ) 꽃 버들도 그대로 지난번 같아
只是寂寥春更甚 (지시적요춘갱심) 다만 내 삶 쓸쓸해 봄은 더 깊어
冷煙衰屋日華遲 (냉연쇠옥일화지) 차운 연기 낡은 집 햇살 늘어져
〚작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籜翁)·태수(苔叟)·
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한.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으로
주요 저서는《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있다.
□ 정여창(鄭汝昌)
〇 두견 (杜鵑) - 鄭汝昌
杜鵑何事淚山花(두견하사루산화) 두견은 무슨 일로 산꽃에 눈물을 뿌리나?
遺恨分明託古査(유한분명탁고사) 남은 한 분명 옛일인 것을
淸怨丹衷胡獨爾(청원단충호독이) 원한이나 충성스런 마음 어찌 너 홀로뿐이랴?
忠臣志士矢靡他(충신지사시미타) 충신지사 또한 맹세코 딴 마음이 없네
〇 유악양(遊岳陽) - 鄭汝昌
風蒲獵獵弄輕柔(풍포렵렵농경유) 부들에 바람 살랑살랑 가볍게 나부끼고
四月花開麥已秋(사월화개맥이추) 사월의 화개 땅엔 이미 보리 벨 때라
看盡頭流千萬疊(간진두유천만첩) 두류산 천만 봉 다 보았는데
孤舟又下大江流(고주우하대강유) 한 척 배는 또 아래 큰 강으로 흘러간다
〚작자〛 정여창(鄭汝昌, 1450, 세종 32~1504, 연산군 10):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경성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 정이오(鄭以吾)
〇 남산팔영(南山八詠) - 鄭以五
「雲橫北闕(운횡북궐)」
玉葉橫金闕(옥엽횡금궐) 옥빛 구름은 금빛 대궐에 비껴 있고
朱甍照碧天(주맹조벽천) 붉은 지붕은 푸른 하늘에 빛나네
丁東傳促漏(정동전촉루) 똑똑 급한 물시계 소리 들려오는데
戌北釀霏煙(술북양비연) 북쪽에서는 안개가 뭉게뭉게 일어나네
佳氣晴相擁(가기청상옹) 아름다운 기운 갠 날 서로 둘렀는데
高標望更連(고표망갱연) 높은 기상 바라보니 다시 잇따랐네
南山將獻壽(남산장헌수) 남산 같은 높은 복을 우리 임금께 드리니
穆穆萬斯年(목목만사년) 오래오래 만년을 누리소서
〇 작안산객관(酌安山客館)
海上芙蓉幾朶山(해상부용기타산) 바다 위에 연꽃 같은 몇 개의 산봉우리
淸光欲滴酒杯間(청광욕적주배간) 맑은 빛이 술잔에 떨어질 듯 하구나
登樓六月炎威變(등루육월염위변) 다락에 오르려니 유월의 무더위도 변하는가 보다
直欲乘風入廣寒(직욕승풍입광한) 곧 시원한 바람 타고 광한전에 들어가고 싶구나
〇 차운기정백형(次韻寄鄭伯亨) - 鄭以五
二月將闌三月來(이월장란삼월래) 이월이 다하고 삼월이 오려 하니
一年春色夢中回(일년춘색몽중회) 일 년의 봄빛이 꿈속에서 돌아가네
千金尙未買佳節(천금상미매가절) 천금으로도 아름다운 시절 살 수 없으니
酒熟誰家花正開(주숙수가화정개) 누구 집에 술 익고 꽃이 한창 피었는가?
〚작자〛 정이오(鄭以吾, 1347, 충목왕 3~1434, 세종 16):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 또는 우곡(愚谷),
시호는 문정(文定),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성균관대사성·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성석린, 이색, 정몽주 등과 교유하였으며, 신유학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문물을 정비하는 데 주력하였는데,
1398년 경사(經史)를 간추려 올렸고, 『사서절요(四書節要)』를 찬진(撰進)하기도 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정철(鄭 澈)
〇 대화만음(對花漫吟) - 鄭澈
花殘紅芍藥(화잔홍작약) 붉은 작약꽃이 시들고
人老鄭敦寧(인로정돈녕) 정돈녕이 늙었네
對花兼對酒(대화겸대주) 꽃을 대하고 아울러 술을 대하니
宜醉不宜醒(의취불의성) 마땅히 취해야지 깨서는 안 되네
〇 산사야음(山寺夜吟) - 鄭澈
蕭蕭落木聲 (소소락목성)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에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성근 비라고 착각했네
呼僧出門看 (호승출문간) 스님 불러 문을 나가 보게 했더니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달이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려 있다네
〇 서산만성(西山漫成) - 鄭澈
明時自許調元手(명시자허조원수) 밝은 때라 스스로 정승감을 자부했는데
晩歲還爲賣炭翁(만세환위매탄옹) 늘그막에 도리어 숯을 파는 노인이 되었네
進退有時知有命(진퇴유시지유명) 진퇴는 때가 있어 운명이 있음 알겠고
是非無適定無窮(시비무적정무궁) 시비는 일정이 없어 끝이 없구나
膏肓未備三年艾(고황미비삼년애) 고황병에 삼 년 묵은 쑥 갖추지 못하고
飄泊難營十畝宮(표박난영십무궁) 뜬 생활에 열 이랑 집 마련하기 어렵네
惟是老來能事在(유시로래능사재) 오직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百杯傾盡百憂空(백배경진백우공) 백 잔의 술잔을 다 기울여 온갖 근심 없애는 것이라네
◀ 이 시는 동인(東人)들의 탄핵을 받아 강계(江界)로 위리(圍籬) 안치(安置)되었을 때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〇 추야(秋夜) - 鄭澈
蕭蕭落葉聲 (소소낙엽성)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를 듣고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소나기 내리는 줄 잘못 알고서
呼童出門看 (호동출문간) 아이더러 밖에 나가 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달빛만 나무 위에 걸려 있다네
〇 추일작(秋日作) - 鄭澈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비가 밤에 대나무를 울리니
草虫秋近床(초충추근상) 풀벌레가 가을에 침상에 다가오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잡으랴?
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 백발이 자라는 것을 금할 수 없다네
〚작자〛 정철(鄭澈, 1536~1593) 《관동별곡(關東別曲)》 등을 지은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 정 호(鄭 澔)
〇 추일우성(秋日偶成)
閑來無事復從容 (한래무사부종용) 한가로이 하는 일 없고 다시 조용하니,
睡覺東窓日已紅 (수각동창일이홍) 잠에서 깨면 동창에 해 이미 붉음이라.
萬物靜觀皆自得 (만물정관개자득) 만물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두 스스로 득의해 함이요,
四時佳興與人同 (사시가흥여인동)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는 남들과 더불어 한가지이다.
道通天地有形外 (도통천지유형외) 도는 천지의 형체 가진 것 밖으로 통하고,
思入風雲變態中 (사인풍운변태중) 사색은 바람과 구름이 변하는 가운데로 들어감이라.
富貴不淫貧賤樂 (부귀불음빈천락) 부귀에 빠지지지 않고 빈천을 즐기나니,
男兒到此是豪雄 (남아도차시호응) 남아가 이에 이르면 바로 영웅호걸임이라
〚작자〛 정호(鄭澔, 1648년(인조 26) ~ 1736년(영조12)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정철(鄭澈)의 현손이다. 조선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 정희량(鄭希良)
〇 사충암증장(謝沖菴贈杖) - 鄭希良
似嫌直先伐(사혐직선벌) 곧으면 먼저 베임을 꺼린 듯
故欲曲其身(고욕곡기신) 일부러 그 뿌리를 굽게 하였네
直性猶存內(직성유존내) 곧은 성품 여전히 안에 지니고 있으니
那能免斧斤(나능면부근) 어찌 도끼질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 이 시는 충암 김정(金淨)이 지팡이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지은 시이다.
〇 춘일서회(春日書懷)
莎草尙含凍(사초상함동) 잔디에는 아직 냉기 서려있는데
春風吹欲生(춘풍취욕생) 봄바람이 부니 다시 피어나려하는구나
輕陰連海暗(경음연해암) 가벼운 구름 바다에 닿아 어둡고
薄日漏雲明(박일누운명) 엷은 햇빛 구름사이로 환히 비친다
遊子思親淚(유자사친루) 떠도는 자식은 부모 생각에 눈물 흘리고
孤臣去國情(고신거국정) 외로운 신하는 나라 떠난 걱정이 된다
感時仍獨嘆(감시잉독탄) 시절 형편 느끼니 홀로 탄식되나니
愁緖政崢嶸(수서정쟁영) 시름의 실마리가 진정 많기도 하다
〇 차계문운(次季文韻) - 鄭希良
過眼如雲事事新(과안여운사사신) 구름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일마다 새로운데
狂歌獨立路岐塵(광가독립로기진) 먼지 낀 갈림길에서 미친 듯 노래하여 홀로 서 있네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륙천일) 백 년은 삼만 육천 일이요
四海東西南北人(사해동서남북인) 사해에는 동서남북으로 오가는 사람이라네
宋玉怨騷悲落木(송옥원소비락목) 송옥의 원망하는 초사는 지는 잎을 슬퍼하고
謫仙哀賦惜餘春(적선애부석여춘) 이백(李白)의 슬픈 부는 남은 봄을 아까워했네
醉鄕倘有閒田地(취향상유한전지) 취향에도 거닐 한적한 땅이 있으니
乞與劉伶且卜隣(걸여유령차복린) 빌려 유령과 장차 이웃하리라
◀ 이 시는 계문 성중엄의 시를 차운한 것
〚작자〛 정희량(鄭希良, 1469, 예종 1~1502, 연산군 8):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菴),
산은(散隱)으로 해주 사람이다. 27세에 과거에 급제한 뒤 무오사화로 1498년 가을에 의주로 유배를 가고,
1500년 5월에 김해로 이배되는 등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조강(祖江)에 투신자살하였다.
□ 조수삼(趙秀三)
〇 북행백절(北行百絶)
其七(기칠) (麥灘(맥탄))
舂白趁虛市 (용백진허시) 흰 것은 찧어서 텅 빈 시장에 나아가고
殺靑充夜餐 (살청충야찬) 푸른 것은 베어서 저녁을 때우네
麥嶺斯難過 (맥령사난과) 보릿고개 넘어가기 어려운데
如何又麥灘 (여하우맥탄)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 이 시는 61세에 함경도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풍속을 노래한 것이다.
〚작자〛 조수삼(趙秀三) 조선 후기의 시인(1762~1849). 초명은 경유(景濰). 자는 지원(芝園)ㆍ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ㆍ경원(經畹). 중인 출신으로, 문장과 시에 뛰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시명(詩名)을 떨쳤다.
작품에, 장편시 <고려궁사(高麗宮詞)>, <추재기이>와 시문집 ≪추재집≫이 있다.
□ 조식(曺植)
〇 만성(漫成)
平生事可噓噓已(평생사가허허이) 한 평생의 일들에 한숨만 나올 뿐인데
浮世功將矻矻何(부세공장골골하) 뜬 구름같은 세상 부귀공명 힘써 무엇하나.
知子貴無如我意(지자귀무여아의) 알겠노라, 그대는 귀하여 나 같은 뜻 없음을
那須身上太華誇(나수신상태화과) 어찌 몸이 화산에 올라 과시해야만 하는가.
〇 德山卜居(덕산복거) / - 조식(曺植)
春山底處无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날 어디엔들 방초가 없으리요마는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옥황상제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천왕봉만을 사랑했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흰 물줄기 십리로 뻗었으니 마시고도 남겠네
〇 매하종목단(梅下種牧丹) - 曺植
栽得花王來(재득화왕래) 화왕을 심고 보니
廷臣梅御史(정신매어사) 조정의 신하는 매어사로세
孤鶴終何爲(고학종하위) 외로운 학은 끝내 무엇을 하는가?
不如蜂與蟻(불여봉여의) 벌이나 개미만도 못하구나
◀ 이 시는 매화 아래에 모란을 심고서 지은 시이다.
〇 우음 (偶吟) - 曹植
高山如大柱(고산여대주) 높은 산은 큰 기둥과 같이
撑却一邊天(탱각일변천) 한쪽의 하늘을 받치고 섰네
頃刻未嘗下(경각미상하) 잠깐도 일찍이 내려앉은 적이 없기에
亦非不自然(역비부자연) 또한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네
◀ 이 시는 우연히 지리산을 보고 노래한 것이다.
〇 서일병(書釰柄) - 曺植
离宮抽太白(이궁추태백) 불 속에서 하얀 칼날을 뽑아내니
霜拍廣寒流(상박광한류) 서릿발 칼빛이 달을 치고 흐르네
牛斗恢恢地(우두회회지) 견우성과 두우성 넓디넓은 곳에
神游刃不游(신유인불유)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놀지 않네
〚작자〛 조식(曺植, 1501~1572) 본관 창녕(昌寧). 자 건중(楗仲,健中). 호 남명(南冥).
시호 문정(文貞). 김우옹·곽재우는 그의 문인이자 외손녀 사위이다. 조선 중기 학자.
출사를 거부하고 평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경상우도의 특징적인 학풍을 이루었으며,
퇴계 이황의 경상좌도 학맥과 더불어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 조위(曺偉)
〇 자경(自警)
道在須臾日用間(도재수유일용간) 진리라는 것은 잠깐의 생활에 있어
求而卽至是希顔(구이즉지시희안) 구하면 이르니 곧 안자의 경지도 바라본다.
苟能從事於精一(구능종사어정일) 진실로 정신일도로 공부에 종사할 수 있다면
天理分明也復還(천리분명야복환) 진리는 분명히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니라
〚작자〛 조위(曺偉, 1454~1503) 본관 창녕(昌寧). 자 태허(太虛). 호 매계(梅溪). 시호 문장(文莊).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도승지, 충청도관찰사, 중추부동지사 등을 지냈다. 문집에 《매계집(梅溪集)》,
글씨로는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 《정부인문화류씨묘지명지석》이 있다.
□ 조준(趙浚)
〇 차모량역시운(次牟良驛詩韻)
鷄林山水欲淸秋(계림산수욕청추) 계림의 산수는 맑은 가을이 되려는데
萬古興亡客倚樓(만고흥망객의루) 만고의 흥망에 나그네는 누각에 기대는구나
尙使後人還不鑑(상사후인환불감) 뒷 사람이 거울삼지 못할까 두려워하노니
有誰知得我悠悠(유수지득아유유) 누가 있어 아득한 내 마음을 알게 할까
〚작자〛 조준(趙浚, 1346~1405) 본관 평양(平壤). 자 명중(明仲). 호 우재(吁齋)·송당(松堂). 시호 문충(文忠).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고려 말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개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전 후로 이방원의 세자책봉을 주장했으며,
태종을 옹립하였다. 토지제도에 밝은 학자로 《경제육전(經濟六典)》을 편찬하였다.
□ 차천로(車天輅)
〇 간성영월루(杆城詠月樓) - 車天輅
愁來徙倚仲宣樓(수래사의중선루) 시름이 일어 중선루에 배회하는데
碧樹凉生暮色遒(벽수량생모색주) 푸른 나무에 찬 기운 생겨 저녁 빛이 다가드네
鼇背島空風萬里(오배도공풍만리) 자라 등의 섬은 비었는데 바람이 만 리에서 불고
鶴邊雲散月千秋(학변운산월천추) 학 주변의 구름은 흩어졌는데 달은 천 년 동안 밝네
天連魯叟乘桴海(천련로수승부해) 하늘은 노나라 늙은이가 뗏목 타려던 바다로 이어져 있고
地接秦童採藥洲(지접진동채약주) 땅은 진나라 동자가 약 캐던 섬에 이어져 있네
長嘯一聲凌灝氣(장소일성릉호기) 길게 휘파람 부는 한 소리에 천상(天上)의 기운 가로지르니
夕陽西下水東流(석양서하수동류) 석양은 서쪽으로 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 일본에 갔을 때 지은 시
〇 강야 江夜) - 車天輅
夜靜魚登釣(야정어등조) 밤이 고요해 물고기가 낚싯대에 뛰어오르고
波深月滿舟(파심월만주) 물결이 깊어 달이 배에 가득하네
一聲南去雁(일성남거안)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한 소리가
嗁送海山秋(제송해산추) 가을의 바다와 산을 울어 보내네
〇 만흥 謾興)
欲坐而坐欲眠眠(욕좌이좌욕면면) 앉고 싶어 앉았다가 졸리면 잠을 자니
看卽林巒聽卽泉(간즉림만청즉천) 보이는 건 숲과 산, 들리는 건 물소리라.
蓬屋草庭人不到(봉옥초정인불도) 초가집, 잡풀 난 뜰을 찾는 이 하나 없고
往來風月與雲烟(왕래풍월여운연) 오가기는 바람과 달, 구름과 안개뿐이로다.
〇 봉황대(鳳凰臺) - 車天輅
千仞岡頭石骨分(천인강두석골분) 천 길 봉우리에 단단한 바위가 나뉘어
迥臨無地出塵氛(형림무지출진분) 아득히 임한 곳에 먼지가 솟았네
江通碧海生潮汐(강통벽해생조석) 강은 푸른 바다와 통해 밀물과 썰물이 일고
山近靑天合霧雲(산근청천합무운) 산은 푸른 하늘에 가까워 안개와 구름이 합치네
不盡鳥飛平楚外(부진조비평초외) 평야 밖에 끊임없이 새들이 날고
遙看日落大荒垠(요간일락대황은) 큰 황야 끝에 지는 해가 멀리 보이네
蘊眞協遇堪留眼(온진협우감류안) 참됨을 쌓아 어울린 모습 계속 바라보니
笑撥人寰幾聚蚊(소발인환기취문) 우습다, 속세에는 모기떼가 얼마나 모였는가?
◀ 경주에 있는 봉황대에 올라 지은 시이다
〇 우음(偶吟) - 車天輅
蝸角爭名戰未休(와각쟁명전미휴) 달팽이 뿔에서 이름을 다투느라 싸움은 끝이 없는데
幾人談笑覓封侯(기인담소멱봉후) 몇 사람이나 봉후자리를 구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까?
劍頭螘血流千里(검두의혈류천리) 칼끝 개미 피는 천 리에 흐르고
甲外鯨波沒十洲(갑외경파몰십주) 군진(軍陣) 밖의 고래 파도는 열 모래섬을 삼켰네
莫問是非身後定(막문시비신후정) 시비가 죽은 뒤에 정해지는지 묻지 마라
從知勝敗掌中收(종지승패장중수) 승패는 손바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을 알 것이니
若敎畫像麒麟閣(약교화상기린각) 만약 기린각에 초상을 그리게 한다면
上將奇功在伐謀(상장기공재벌모) 상장공의 기이한 공은 적의 계책을 무찌름에 있다네
〚작자〛 차천로(車天輅, 1556~1615)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귤실(橘室)·청묘거사(淸妙居士). 송도(松都) 출신으로 교리, 봉상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 최경창(崔慶昌)
〇 고봉산재(高峰山齋) - 崔慶昌
古郡無城郭(고군무성곽) 옛 고을이라 성곽은 없고
山齋有樹林(산재유수림) 산집이라 나무숲만 있네
蕭條人吏散(소조인리산) 쓸쓸히 사람과 관리 흩어진 뒤
隔水搗寒砧(격수도한침) 물 건너엔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네
〇 영월루(映月樓)
玉檻秋來露氣淸 (옥함추래로기청) 옥을 새긴 난간에 가을이 오니 이슬 기운 맑은데
水晶簾冷桂花明 (수정렴랭계화명) 수정 발은 차갑고 계수나무 꽃은 밝네
鸞驂不至銀橋斷 (난참부지은교단) 난새가 끄는 수레 오지 않고 은빛 다리 끊어졌으니
惆悵仙郞白髮生 (추창선랑백발생) 슬프다, 선랑은 흰머리만 자라나네
〇 차송월(三叉松月) - 崔慶昌
手持一卷蘂珠篇 (수지일권예주편) 손에는 한 권 도가 경전 예주편을 들고서
讀罷空壇伴鶴眠 (독파공단반학면) 빈 단에서 읽고나 학을 친구하여 잠들었구나
驚起中宵滿身影 (경기중소만신영) 깊은 밤 놀라 일어나니 몸에 가득한 그림자
冷霞飛盡月流天 (냉하비진월류천) 차가운 노을은 달빛 흐르는 하늘로 살아지는구나
〚작자〛 최경창(崔慶昌, 1539~ 583)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예조 · 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대동도(大同道) 찰방을 거쳐 1582년에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숙종 때에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 표연말(表沿沫)
〇 承召赴京 途中述懷 (승소부경도중술회) - 表沿沫
- 왕의 소명을 받고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느낌을 읊음
新築書堂壁未乾(신축서당벽미건) 새로 짓는 서재의 벽이 미처 마르지도 않았는데,
馬蹄催我上長安(마제최아상장안) 말은 나를 재촉해 서울 가자 하네.
兒時但道爲官好(아시단도위관호) 어릴 적에는 벼슬길이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老去方知行路難(로거방지행로난) 늙어 가는 이제야 인생살이 어려움을 알겠구나.
千里關山千里夢(천리관산천리몽) 천리 험한 길이라 갈 일이 아득한데,
一番風雨一番寒(일번풍우일번한) 비바람 치고 또 추위 닥치는 괴로움을 번갈아 겪네.
何時靜坐雲林下(하시정좌운림하) 언제 시골 자연 속에 고요히 앉아,
翠竹蒼梧仔細看(취죽창오자세간) 푸른 대와 소나무 들을 자세히 살피며 살게 되려는고.
◀ 시제목을 위관술회 (爲官述懷)이라고도 함
〇 산루소서 이수 (山樓消暑 二首) - 表沿沫
- 산속의 누대에서 더위를 피하며 쓴 2수
其 一
一年消暑試登樓 (일년소서시등루) 해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누대에 오르니
草色蟬聲又晩洲 (초색선성우만주) 풀빛과 매미소리와 또 늦어가는 모래톱일세.
蕉葉雨晴空院淨 (초엽우청공원정) 파초 잎에 비 개니, 텅빈 집안은 깨끗해지고
梔花風軟小溪幽 (치화풍연소계유) 치자 꽃에 바람 스치니 작은 시낸 고요하네.
紅塵謝絶心如水 (홍진사절심여수) 티끌세상 멀리 떠나니 마음은 물같이 맑고
白首低廻氣尙秋 (백수저회기상추) 흰머리 나직이 돌아보며 기운 높이려 하네.
今日荷花生日是 (금일하화생일시) 오늘 때마침 연꽃이 피어나고 있는 날인데
恨無綠酒泛江流 (한무록주범강류) 술 싣고 강물에 배 띄우지 못함이 한일세.
其 二
詩酒琴棋病未能 (주금기병미능) 시와 술, 거문고와 장기들 병들어 못 하는데
逢君且話片心氷 (군차화편심빙) 그대 만나 깨끗한 마음을 서로 이야기하였네.
冷泉供我深山侶 (천공아심산려) 차가운 샘물은 깊은 산속에 벗을 만들어주고
明月閑於悟道僧 (월한어오도승) 밝은 달은 도를 깨달은 승려보다 한가로우이.
滿地蟬聲人白髮 (지선성인백발) 세상 가득한 매미소리에 사람은 늙어만 가고
一年柳色路金陵 (일류색로금릉) 오늘의 버들 빛에 중국 금릉길이 그리워지네.
洞天玉笛仙何在 (동옥적선하재) 골짜기 속의 옥 통소 소리, 신선은 어디 있나?
鶴去巖空擬白登 (거암공의백등) 학 떠나고 바위 빈 곳에 이백이 오른 듯하네.
〚작자〛표연말 [表沿沫, 1449~1498] 본관 신창(新昌). 자 소유(少游). 호 남계(藍溪). 김종직 (金宗直)의 문인.
1471년(성종 2) 식년문과 (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그 후 1478년 봉교(奉敎)시작하여
1484년 공조좌랑 이 되고, 1486년 장례원 (掌隷院) 사의(司議)로서 문과중시 (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 장령(掌令)·사간(司諫) 등을 거쳤다. 1495년연산군 1) 응교(應敎)로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
《성종실록 (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이듬해 직제학(直提學)으로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추숭(追崇)을 반대하였다.
그 뒤 승지 ·대사간 을 지냈다.
소릉(昭陵:文宗妃 顯德王后陵) 추복(追復)에 관한 사실을 사초(史草)에 적은 것과 김종직의 행장(行狀)을
미화(美化)해 썼다는 이유로 1498년(연산군 10)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은계역(銀溪驛)에서 죽었으며, 1504년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부관참시 (剖棺斬屍)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로서 유호인(兪好仁) 등과 함께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뒤에 신원(伸寃)되고, 함양(咸陽)의
구천서원(龜川書院), 함창(咸昌)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남계문집(藍溪文集)》이 있다.
□ 한용운(韓龍雲)
〇 독야(獨夜) - 韓龍雲
天末無塵明月去(천말무진명월거) 해맑은 하늘 끝으로 밝은 달은 넘어가고
孤枕長夜聽松琴(고침장야청송금) 외로운 잠자리, 긴긴 밤 솔바람소리 들린다.
一念不出洞門外(일념부출동문외) 이 생각도 동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惟有千山萬水心(유유천산만수심) 오로지 온갖 산과 물과 함께 하는 마음 뿐.
玉林垂露月如霰(옥림수로월여산) 숲에 내린 이슬에 달빛 싸락눈 같은데
隔水砧聲江女寒(격수침성강녀한) 물 건너 다듬질소리에 강가 여인의 마음 차다.
兩岸靑山皆萬古(양안청산개만고) 두 언덕 푸른 산들은 모두가 옛과 같아
梅花初發定僧還(매화초발정승환) 매화꽃 피어날 때면 정녕 다시 돌아오리라.
〇 등선방후원 (登禪房後園) - 韓龍雲
兩岸寥寥萬事稀(양안요요만사희) 양언덕 고요하여 만단사가 쉬는 듯
幽人自賞未輕歸(유인자상미경귀) 숨어 살아 스스로 즐기니 돌아가지 않네.
院裡微風日欲煮(원리미풍일욕자) 절 안에 미풍 일고 햇살은 따가워
秋香無數撲禪衣(추향무수박선의) 가을 향기 셀 수 없이 옷을 휘감네.
〇 別玩豪學士(별완호학사) - 韓龍雲
萍水蕭蕭不禁別 (평수소소부금별) 떠도는 인생이기 이별은 있어
送君今日又黃花 (송군금일우황화) 그대를 보내노니 국화 설운 빛!
依舊驛亭惆悵在 (의구역정추창재) 텅 빈 역사(驛舍)와 슬픔만 남고
天涯秋聲自相多 (천애추성자상다) 하늘가 가을 소리 몸에 스며라.
◀ 別玩豪學士(별완호학사) - 한용운 완호 학사와 헤어지며
〚작자〛 한용훈(韓龍雲, 1879~1944)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 허균(許筠)
〇 문파관작(聞罷官作 二首) - 許筠
其二
禮敎寧拘放(예교녕구방) 예교에 어찌 묶이고 놓임을 당하리오
浮沈只任情(부침지임정) 잠기고 뜸 다만 정에 맡길 뿐
君須用君法(군수용군법)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 법을 쓸 게고
吾自達吾生(오자달오생)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이루리라
親友來相慰(친우래상위) 친한 벗은 와서 서로 위로하는데
妻孥意不平(처노의불평) 처자식은 뜻이 불평하구려
歡然若有得(환연약유득) 흐뭇하여 소득이 있는 듯하니
李杜幸齊名(이두행제명)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다행히 이름 나란하네
◀ 허균이 불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파면된 다음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〇 신안(新安) - 許筠
向夕笙歌散(향석생가산) 저물어 가자 생황 노래 흩어지니
燒香閉客房(소향폐객방) 향을 피우고 나그네 방을 닫는다
關河孤雁逈(관하고안형) 변방 강에 외로운 기러기 아득하고
風雨一燈涼(풍우일등량) 비바람에 등잔불 하나 싸늘하다
雪入朱絃冷(설입주현랭) 눈은 붉은 거문고에 들어차고
花飄綵翰芳(화표채한방) 꽃은 채색 붓에 날려 향기롭다
人生貴懽笑(인생귀환소) 인생이란 즐거움과 웃음이 소중한데
何地是吾鄕(하지시오향) 어느 곳이 내 고향일까?
◀ 이 시는 여행 도중 신안에 들러 지은 것
〇 조향천안(早向天安) - 許筠
黃泥滑滑馬行遲(황니활활마행지) 황토 진흙 미끄러워 말은 더디지만
從旅相攀莫怨咨(종려상반막원자) 같이 사는 사람들아 서로 끌어주며 원망하지 말게나
自有文章娛寂寞(자유문장오적막) 적막을 즐길 만한 문장을 지녔으니
肯於名位恨差池(긍어명위한차지) 어찌 명예와 지위가 어긋난 일을 한하리오?
人中懷璧元堪罪(안중회벽원감죄) 사람 틈에서 옥을 품으면 원래 죄를 얻는 법이고
暗裏投珠却見疑(암리투주각견의) 어둠 속에 진주 던지면 도리어 의심을 받는 법이지
此去不愁身更遠(차거불수신갱원) 이번에 가면 몸이 더욱 소외됨을 근심하지 않으리니
梅花消息已南枝(매화소식이남지) 매화 소식이 이미 남쪽 가지에 왔을 텐데
〇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 許筠
田園蕪沒幾時歸(전원무몰기시귀) 전원이 묵었는데 언제 돌아가지?
頭白人間官念微(두백인간관념미) 하얀 머리의 인간 벼슬 생각 적어지네
寂寞上林春事盡(적막상림춘사진) 적막한 상림원에 봄빛이 다하려 하기에
更看疎雨濕薔薇(갱간소우습장미) 다시 성긴 비에 젖은 장미를 보노라
懕懕晝睡雨來初(염염주수우래초) 몽롱한 낮잠 비가 막 내리는데
一枕薰風殿閣餘(일침훈풍전각여) 머리맡의 따뜻한 바람 전각에 남아도네
小吏莫催嘗午飯(소리막최상오반) 서리(胥吏)여, 점심밥 어서 들라 재촉 마소
夢中方食武昌魚(몽중방식무창어) 꿈속에 한참 무창 물고기 먹고 있는데
〇 해산선몽요(海山仙夢謠)
溟波隱隱浮鰲島(명파은은부오도) 푸른 바다에 은은히 뜬 오도여
瓊草漫山春不老(경초만산춘불노) 온갖 기묘한 풀 산에 가득하고 봄이 한창이라.
帝遣小玉驂靑鸞(제견소옥참청란) 상제는 소옥을 보내 푸른 난새 태워서
吹笙夜下紅雲端(취생야하홍운단) 피리 불며 한밤에 구름 끝을 내려온다.
裙衩半謝芙蓉帶(군차반사부용대) 저고리는 부용띠를 절반만 가기고
遠岫凝愁抹蛾黛(원수응수말아대) 먼 봉우리에 엉긴 시름 눈썹에 발리었다.
陸郞倚醉隔煙語(육랑의취격연어) 육랑은 취한 기운에 안개 밖에 속삭이며
仙袂笑拂三珠樹(선몌소불삼주수) 신선의 소매 웃으며 삼주수를 휘젓는구나.
丁當瑤瑤韻空冥(정당요요운공명) 쟁쟁 패옥 소리 공중에 울리니
鞭龍踏鯇多娉婷(편용답환다빙정) 용 타고 잉어 밟으니 너무나 아름답다.
彩蟾春桂香入骨(채섬춘계향입골) 월궁의 계수나무 그 향기가 뼈를 뚫고
鮫綃一點薔薇血(교초일점장미혈) 교초의 붉은 무늬 한 점은 장미꽃 핏빛이다.
蓬萊重結千年期(봉래중결천년기) 봉래산에 또다시 천년 기약 맺었으니
碧桃花落生孫枝(벽도화락생손지) 벽도화는 떨어져 손자 가지가 나오는구나.
寶枕瑤衾生曉寒(보침요금생효한) 옥베개 비단 이불에 새벽 추위 차가운데
祥雲繚繞歸巫山(상운료요귀무산) 상서로운 구름 얽혀 무산으로 돌아간다.
憑誰寄語陽雍伯(빙수기어양옹백) 누구에게 부탁하여 양옹백에게 말 전하여
種玉藍田餉書客(종옥람전향서객) 남전에 옥을 심어 글 손님을 배불리 먹일까.
〚작자〛 허균(許筠, 1569, 선조 2~1618, 광해군 10):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
조선중기 문신으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하였다.
그외 작품으로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 허난설헌(許蘭雪軒)
〇 감우(感遇) - 許蘭雪軒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枝葉何芬芳(지엽하분방)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西風一被拂(서풍일피불)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縱凋悴(수색종조췌)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淸香終不死(청향종불사)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涕淚沾衣袂(체루첨의몌)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〇 강남곡(江南曲) - 許蘭雪軒
其二
人言江南樂(강언강남락) 사람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나,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고있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해마다 이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애타게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 시는 강남곡 오수(江南曲 五首)중 2수로 강남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 악부(樂府)의 명칭을 빌려
한 여인의 애타는 기다림을 읊고 있다.
〇 곡자(哭子) - 許蘭雪軒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작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고 슬프도다,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한 쌍의 무덤이 서로 마주하고 일어섰네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귀신불은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밝히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종이돈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맹물을 너희들 무덤에 따르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알고 말고, 너희 자매의 혼이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 따라 노니는 것을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비록 배 속에 아이가 있은들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랴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헛되이 「황대사」를 읊조리니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이 나와 슬픔으로 목메네
◀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애달픈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〇 기부강남독서(寄夫江南讀書) - 許蘭雪軒
燕掠斜簷兩兩飛(연략사첨양양비) 제비는 비스듬한 처마를 지나 쌍쌍이 날고
落花撩亂拍羅衣(낙화료란박라의) 떨어지는 꽃잎은 어지럽게 비단 옷을 때려요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규방엔 눈이 미치는 곳마다 정을 잃고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풀 푸른 강남의 임은 돌아오지 않네요
◀ 이 시는 강남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남편 김성립(金誠立)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〇 채련곡(采蓮曲) - 許蘭雪軒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란주)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네
◀ 이 시는 연밥을 따며 부른 노래로
〚작자〛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년(1563년)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시인.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 홍세태(洪世泰)
〇 눈죽 (嫩竹) - 洪世泰
嫩竹纔數尺(눈죽재수척) 어린 대나무 겨우 몇 척
已含凌雲意(이함릉운의) 구름을 넘어설 뜻 이미 머금었네
騰身欲化龍(등신욕화룡) 몸을 올려 용이 되고자
不肯臥平地(불긍와평지) 평지에 누우려 하지 않네
〇 만흥 이수 (漫興 二首)
其二(기이)
高閣深深夏氣淸(고각심심하기청) 높은 누각 깊고 깊어 여름 기운 맑은데
雲流雨去日微明(운류우거일미명) 구름 흘러 비는 개고 해는 희미하게 밝네
閉門寂寞靑山近(폐문적막청산근) 문 닫으니 적막하여 푸른 산이 가깝고
隱几蕭條芳草生(은궤소조방초생) 서궤(書几)에 기대니 쓸쓸하여 방초가 피어 있네
夢裏不知爲化蝶(몽리부지위화접) 꿈속에서 나비로 변화한 걸 몰랐는데
酒醒何處有啼鶯(주성하처유제앵) 술이 깨자 어디선가 꾀꼬리 울어대네
林風夕起吹雙袂(임풍석기취쌍몌) 숲 바람이 저녁에 일어 양쪽 소매에 불어오니
矯首晴天緩步行(교수청천완보행) 머리 들어 갠 하늘에 천천히 걸어가네
〚작자〛 홍세태(洪世泰, 1653, 효종 4~1725, 영조 1):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유하(柳下). 경사(經史)에 밝고 시(詩)에 능하여 1682년(숙종 8)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묵(詩墨)을 얻어 가보(家寶)처럼 간직하였다.
저서로 《해동유주(海東遺珠)》, 《유하집》 등이 있다.
□ 황정욱(黃廷彧)
〇 증거정주인구리김진(贈居停主人舊吏金珍) - 黃廷彧
少年刀筆吏稱佳(소년도필리칭가) 젊어서 서기로 명성이 있었으나
老去還悲五色迷(노거환비오색미) 늙어서는 도리어 슬프게도 오색도 구분 못 하네
迷路世間吾亦爾(미로세간오역이) 세간의 미로에선 나 역시 그러하니
白頭筇杖笑相携(백두공장소상휴) 흰머리에 지팡이 짚고 웃으며 서로 끌어 주네
〇 차옥당소도운 (次玉堂小桃韻)
無數宮花倚粉墻(무수궁화의분장) 무수한 궁궐 꽃 흰 담장에 기대어
遊蜂戱蝶趁餘香(유봉희접진여향)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은 향기를 찾는다
老翁未及春風看(노옹미급춘풍간) 늙은이 마음 봄바람 다 보지도 못하면서
空有葵心向太陽(공유규심향태양) 공연히 마음은 접시꽃처럼 태양을 향한다오
〚작자〛 황정욱(黃廷彧, 1532~1607) 조선 중기의 문신. 그의 시는 “크고 넓어서 나약한 시들을 모
두 씻어 버린 듯하다”, “마음껏 내놓아 종횡(縱橫)하는 듯하다”, “갑자기 우뚝 솟은 듯하다”는 등
시의 풍격이 웅장(雄壯)하고 기위(奇偉)한 것으로 평가된다.
□ 황진이(黃眞伊)
〇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古寺蕭然傍御溝(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도랑 곁에 조용하고,
夕陽喬木使人愁(석양교목사인수) 석양의 큰 나무 사람을 시름케 하네
煙霞冷落殘僧夢(연하냉락잔승몽) 연기와 놀은 스님의 남은 꿈에 차갑게 내리고
歷月崢嶸破塔頭(역월쟁영파탑두) 세월은 부서진 탑머리에 아득해라
黃鳳羽歸飛鳥雀(황봉우귀비조작) 누런 봉황새는 깃을 접고 새와 참새만 날며
杜鵑花發牧羊牛(두견화발목양우) 진달래꽃 떨어진 곳엔 양과 소가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신송억득번화일) 신성한 송악산이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기의여금춘사추) 어찌 이제 봄조차 가을일 줄을 생각이나 했으랴?
◀ 이 시는 개성(開城) 송악산 기슭에 있던 고려시대 궁궐터인 만월대를 돌아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것이다.
〇 박연(朴淵) - 黃眞伊
一派長天噴壑礱(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하늘이 골짜기에서 뿜어 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물이 쏟아져 나오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 나는 샘이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는 가로로 드리워 완연히 흰 무지개네
雹亂霆馳彌洞府(박란정치미동부) 어지러운 우박과 날뛰던 번개가 골짜기에 가득하고
珠舂玉碎澈晴空(주용옥쇄철청공) 부서진 구슬과 옥이 맑은 하늘에 맑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여산승) 나그네야, 여산이 낫다고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 모름지기 천마산이 해동에서 으뜸임을 알아야 하리
◀ 이 시는 하나인 박연폭포의 아름답고도 힘차며 깨끗함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〇 별김경원(別金慶元) - 黃眞伊
三世金緣成燕尾(삼세금연성연미) 영원한 굳은 인연 제비 꼬리처럼 갈라지니
此中生死兩心知(차중생사량심지) 이 중에서 살고 죽음을 두 마음만은 알리라
楊州芳約吾無負(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약속 내 어기지 않으려니
恐子還如杜牧之(공자환여두목지) 그대 도리어 두목지와 같음이 두렵네
〇 상사몽(相思夢)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서로 그리워 만나는 건 다만 꿈에 의지할 뿐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 찾으러 갈 때 임은 날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바라노니, 아득한 다른 날 밤 꿈에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동시에 함께 일어나 길에서 만나지기를
◀ 이 시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꿈을 매개로 하여 이루려는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황진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〇 소백주 (小栢舟) - 黃眞伊
汎彼中流小栢舟(범피중류소백주) 저 중류에 떠 있는 작은 잣나무 배
幾年閑繫碧波頭(기년한계벽파두) 몇 해나 한가로이 푸른 물가에 매었던가?
後人若問誰先渡(후인약문수선도) 뒷사람이 만약 누가 먼저 건넜냐고 묻는다면
文武兼全萬戶侯(문무겸전만호후) 문무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라
〇 영반월(詠半月) - 黃眞伊
誰斷崑山玉 (수단곤산옥) 누가 곤륜산옥을 잘라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牽牛離別後 (견우이별후) 직녀는 견우님 떠나신 뒤에
愁擲壁空虛 (수척벽공허) 시름하며 허공에 던져 두었네
〚작자〛 황진이(黃眞伊) 본명은 황진(黃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