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콜A
한만수
어제 영업관리팀 회식이 있어서 흥청망청한 얼굴로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로 두 시였다. 회사 근처에 있는 태릉갈빗집에서 저녁을 먹고, 이 차는 요즘 대세를 이루는 맥주창고에 갔다. 맥주창고에서는 안주는 팔지 않고 맥주만 파는 곳이다. 저녁을 갈비와 배부르게 먹은 후라서 간단한 땅콩이며 쥐포에 오징어땅콩을 안주 삼아 밤 11시까지 마셨다.
“내가 왜 당신들한테만 삼차 가자고 한 줄 알어? 당신들은 내 친위대라 이거야. 나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친위대……”
팀장은 이미 맥주창고에서 혀가 돌아갈 정도로 취해있었다. 그러나 삼차로 간 포장마차에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얼굴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파도타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티…… 팀장님, 치 친위대라면 나치의 그 뭡니까? 히틀러의 직속 부대인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가 아니고, 그 뭡니까? 우린 팀장님의 손과 발이라는……”
“유 과장, 지금 안 과장 나한테 개기는 거 맞지?”
“개…… 개기는 것이 아니라, 팀장님이 짤리면 우리도 짤리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만 짤리고 팀장님은 건재하다는, 뭐 그런 말입니다.”
“자, 안 과장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안 과장이 명문대 나왔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어서 내 술이나 마셔.”
“유 과장! 지금 여기 명씨가 있나? 명씨 있으면 손들어봐. 명문대씨 있으면 손들어!”
안락한은 입사동기인 유익한이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취중에 떠오른 아버지가 냇가 둑에 앉아서 하염없이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고 계셨다. 순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만 갑자기 나는 것이 아니고 취기가 한꺼번에 눈으로 몰려왔다. 팀장이며 유익한, 김 대리의 얼굴이 둘로 보였다가 셋으로 보였다. 눈을 깜박깜박거렸다가 눈자위에 힘을 주고 바라봤다. 팀장의 얼굴이 멀어져 보였다가 가까이 다가오는가 하면 두 겹 세 겹으로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까 소파 위였다. 중학교 다니는 딸애는 벌써 학교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따라준 과일주스를 바쁘게 마셔버리고 나서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옷을 갈아입었다.
“설마 오늘까지 고주망태로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안락한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넥타이를 매는 둥 마는 둥 구두를 찾았다. 구두 한 짝은 아내가 시장갈 때 신는 운동화에 다정하게 엎어져 있고, 다른 한 짝은 현관문에 배를 기대고 서 있다. 아내가 볼세라 얼른 바쁘게 구두를 신고 있는데 기어이 등 뒤로 날선 목소리가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오늘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시장통에 감자탕집 새로 개업했던데……”
안락한은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이번 주 들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셈이다. 차마 아내의 얼굴을 마주 바라볼 수가 없어서 신발장에 달린 거울로 훔쳐봤다.
“감자탕만 먹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아내가 팔짱을 끼고 심문을 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혼자 마시는 것이 아니고, 당신하고 같이 마시는 건데 뭐.”
“됐고요. 됐으니까 퇴근할 때 판콜에이나 사다주세요.”
안락한은 거울 안으로 아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두통이 간헐적으로 밀려와서 그런지 아내의 얼굴이 수척해보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퉁퉁 부은 것 같기도 했다. 아내가 애용하는 판콜A는 굳이 퇴근길에 사오지 않아도 아내가 자주 가는 마트에서 오십 미터 정도만 가면 지하철역 부근에 약국이 있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서 찬바람이 팽팽 부는 것 같아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은 오늘도 자기 책상 옆에 있는 회의용 탁자에 앉아서 경제신문을 보고 있었다. 일회용 커피컵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유익한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아침부터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찍 출근하셨네요?”
안락한은 어제 같이 술을 마셨던 팀장과 유익한을 보니까 울컥! 거리며 속에서 메스꺼운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술 좀 작작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돌아섰다.
“안 과장 속 괜찮아?”
팀장이 시선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어제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안락한은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 파워 스위치를 눌렀다. 모니터가 살아나는 동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책상 서랍을 열며 대답했다.
“그럼, 나한테 형편없는 좀비족 같은 놈이라고 한 말도 기억 안 나겠네?”
팀장이 미지근하게 식은 자판기 커피를 홀짝 마시고 나서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설마 제가 팀장님한테 좀비족이라고 했겠습니까?”
안락한도 일부러 팀장을 바라보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일정을 살피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유익한이 명문대 운운하며 빈정거리는 말에 화가 벌컥 난 이후로는 기억이 깜깜했다.
“안 과장도 보약 좀 먹어야겠어. 그 정도 마시고 필름이 끊어질 안 과장이 아닌데……”
안락한은 유익한이 빈정거리는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뒷골이 땡기는 것 같아서 문지르며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세균이 득실거리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생각하며 동전을 자판기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그는 10시까지 업무회의를 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12시까지 사우나에서 숙취를 해소할 생각으로 회사 근처 사우나 앞으로 갔다. 팀장과 유익한이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걸음을 돌려서 지하에 있는 이발소로 갔다.
지하에 이발소가 있는 건물은 치과, 안과, 내과, 한의원이 들어서 있는 병원 건물이다. 약국간판이 보이는 순간 아내가 판콜A를 사오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거래처를 방문하는 동안 판콜A박스를 들고 다닐 수는 없어서 그냥 이발소로 들어갔다.
단골 이발소 주인이 의자에서 졸고 앉아있다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반겼다. 그는 어설프게 인사를 하고 커튼으로 칸막이를 쳐 준 룸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 면도사가 간단하게 면도를 하고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마를 하고 나니까 숙취가 조금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안마를 끝낸 여자 면도사가 판콜A를 내밀었다. 안 과장이 나 감기에 안 걸렸다고 말하니까 요즈음은 요구르트 대신 판콜A를 준다고 대답했다.
“여름에 감기 걸일 일도 없는데, 웬 판콜에이?”
“판콜에이가 감기만 낫게 하는 것이 아니고 숙취 제거에도 좋데요.”
안락한은 한 시간 후에 깨워 달라는 부탁과 함께 판콜A를 달게 마셨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오면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아내가 판콜A를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겨울에 옥천 어머니집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판콜A 한 박스를 어머니가 억지로 승용차 안에 넣어주셨다. 그 뒤로 어머님처럼 판콜A를 마시기 시작했다. 퇴근시간까지 거래처 아홉 군데를 들린 그는 커피 여섯 잔과, 녹차 두 잔에 인삼차 한 잔을 마셨다. 점심은 속이 매슥거려서 매운 라면으로 때운 뒤라서 회사로 들어가는데 뱃속이 허전했다.
회사로 들어간 안락한은 속풀이로 딱 한 병만 마시자는 유일한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쳤다. 일층 로비에서 총무부에 근무하는 대학 동기를 만났다. 대학 동기가 부장 놈 새끼 때문에 회사 못 다니겠다며 손목을 잡아끄는 통에 호프 문 앞까지 끌려갔으나 과민성 대장염을 핑계로 간신히 벗어났다.
지하철에는 오늘따라 빈자리가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30분 이상이나 걸리는 거리를 편하게 앉아 가고 싶어서 경로석 쪽을 흘끔거렸다.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어서 얼른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 하는데 통화가 뚝 끊긴다. 오늘 하루종일 쓰린 배를 문지르며 두통에 시달렸더니 회사에서 스마트폰 충전하는 걸 잊어버렸다. 늦어도 한 시간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지하철이 덜컹하며 멈추는 기척에 눈을 떴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경로석 앞으로 왔다. 그를 짧게 째려보고 나서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오늘 같은 날은 나이가 사십 대인 것도 불만이라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내일은 토요일 모처럼 가족들에게 요리솜씨를 보여줄까? 아냐, 아침에 목욕탕에 다녀와서 잠이나 푹 자두자. 그래야 월요일부터 열심히 뛰어서 목표액을 채우지, 아직까지 60퍼센트밖에 도달 못했으니까 술도 자제를 해야겠지…… 내년 초에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데…… 젠장, 사표내고 치킨체인점이나 해? 치킨체인점을 하다 말아 먹으면? 그럼 옥천에 내려가서 포도 농사나 져?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잖아…… 젠장! 가고 싶다고 나 혼자 가나? 아내가 머리띠 매고 반대를 할 건데…….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땅거미가 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궁리, 저런 공상을 하다가 부천역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단골 실내 포장마차 앞을 지나갈 때 노가리 굽는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딱 한 조끼만 마셔!
생맥주 오백 씨씨 정도는 마셔도 흔적도 남지 않는다. 오백 짜리 한 컵만 마시면 아직도 더부룩한 속하며, 지끈지끈거리는 두통이 말끔히 가실 것 같았다.
그래, 딱 한 잔만 마시는 거야.
안락한은 실내 포장마차 앞에서 연신 마른입을 다시다가 마침내 결심한 얼굴로 방향을 틀었다. 출입문을 열고 막 들어서자마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5동 자치회장이 시선에 사로잡혔다. 자치회장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처음 알았다. 그 전에는 이름 석 자는 물론이고 얼굴도 모르는 단순히 고향이 같은 옥천이라는 이유로, 몇 번은 부부끼리 만나서 외식도 하고 양쪽 집을 오가며 저녁을 먹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밖에서는 술자리에 앉았다 하면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라서 기피 대상자다.
그래,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팔잔가 보다.
그는 자치회장과 행여 시선이 마주칠까 봐 얼른 뒤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늦여름 바람이 눅눅하기만 하다. 컵에 차갑게 냉기가 묻어 있는 생맥주컵의 묵직한 감촉이 자꾸만 목을 간질간질거리게 만들었으나 일부러 빠르게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아차! 판콜에이!
안락한은 천신만고 끝에 장애물을 통과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했다.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면 오늘은 말짱한 정신으로 퇴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벽거울에 쓰여 있는 ‘효성약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15층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빨간 숫자들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뒤로 돌아섰다.
아내가 판콜에이를 사 오라는 이유는 감기에 걸려서가 아니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되지 않을 때는 소화제 대신 판콜A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고주망태가 되어서 퇴근한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아플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들어갔다가는 그동안 묵혀 두었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어내느라, 잠도 제 시간에 못 잘 것 같았다.
그래, 판콜에이를 사다 주고 편하게 자는 것이 낫지…….
안락한은 지하철역까지 다시 가는 것이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아내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마른침을 삼키며 어두컴컴해진 아파트 광장으로 내려섰다.
아내가 판콜A를 만병통치약으로 삼게 된 것은 고향 옥천에 계신 어머니 영향 탓이다. 옥천에 혼자 계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로 우울증 때문에 늘 두통에 시달렸다. 하루는 아버지가 혼자 사용하시던 텔레비전 장식장 서랍을 정리하다가 판콜A 몇 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드시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냥 버리려고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생전에 판콜A를 드시던 아버지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셨다고 한다. 눈물을 삼키면서 판콜 A를 마셨다. 그 후로 아버지가 생각이 날 때마다 판콜A를 드셨다. 언젠가부터는 머리가 아파도 판콜A, 소화가 안 되거나, 잠이 안 와도, 하루종일 채마 맡에서 일을 하고 피곤에 지친 몸을 푸는 데도 판콜 A를 드시고 계신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갈 때는 다른 집 자식들은 음료수며, 소고기에, 생선을 사가는데, 일부러 남대문 근처에 산재한 약 도매상에 가서 판콜A를 박스째 사 들고 가면 제일 좋아하신다.
안락한은 실내포장마차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자치회장이 아직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안락한은 걸음을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내 포장마차 앞으로 갔다. 포장마차 안을 살피려고 시선을 돌렸다.
“아이구! 안 과장!”
때마침 맥주컵에 소주를 따르고 있던 자치회장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자치회장은 안락한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십 년 동안 뒤를 쫓던 범인을 공소시효기간 한 시간을 앞두고 발견한 형사처럼 바람처럼 달려나와서 안락한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회…… 회장님, 혼자 술 드시고……”
“마누라가 집을 나갔어! 마누라가 집을 나갔단 말일씨!”
자치회장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 아내가 집을 나간 원인이 안락한에게라도 있는 것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락한은 어서 판콜A를 사 가지고 맑은 정신으로 집에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하얗게 잃어버렸다. 자치회장이 눈물을 펑펑 쏟자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일단 자치회장의 허리를 껴안고 실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글쎄, 그 여편네가……”
자치회장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맥주와 소주를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여주인이 기다렸다는 얼굴로 재빠르게 병맥주와 소주를 가져왔다. 안락한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평소 스타일대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내밀었다.
“사모님이 집을 나가셨……”
“마셔, 마시고 이야기하세.”
자치회장은 눈물을 뿌리며 자기도 소주 삼분의 일에 맥주 삼분의 이 분량으로 섞어서 잔을 들었다. 얼떨결에 잔을 들고 있는 안락한의 잔에 습관처럼 건배를 하고 나서 맹물처럼 쿨쿨 들이켰다.
“저는 도저히……”
안락한이 술을 마시는 동안 술병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자치회장이 잽싸게 다시 소주와 맥주를 섞어 잔을 채워주었다. 안락한은 엉겁결에 술잔을 받기는 받았지만 아내 얼굴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어서 마시라니까?”
술잔을 비운 자치회장이 허리를 일으켜서 안락한이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을 입까지 끌어올렸다.
“아…… 알겠습니다.”
안락한은 자치회장이 억지로 권하는 바람에 얼떨결 잔을 비워버렸다. 시원한 맥주와 섞인 소주 맛이 꿀물처럼 쿨쿨쿨 잘도 넘어갔다. 두 번째 술잔을 말끔히 비우고 나니까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포장마차 안이 환하게 보였다.
“그랑께 말일씨. 안 과장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니까 내 말이 뭐가 틀렸는지 말 좀 해줘. 요새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는 것이 내 탓인가? 아니잖아. 그럼 내가 돈을 벌었는데 마누라가 미워서 일부러 안 갖다주는 건가? 아니잖아. 내가 집구석이 싫어서 매일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가? 그건 순전히 비즈니스 차원에서 마시는 술이니까, 그것도 아니잖아. 내 나이가 올해 딱 육십일세, 나이 육십에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밤일 해주면 됐지, 내가 제가 미워서 일부러 안 해주는 건가? 아니잖아.”
안락한은 자치회장이 같은 옥천 사람이라 그런지 명문대라는 말에 화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35년 동안이나 경찰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지구대장을 끝으로 퇴임을 하셨다. 35년 경찰 생활 중 가장 오랫동안 근무를 한 곳은 고향 면소재지에 있는 지구대다. 어린 시절에 지구대에 놀러 가면 아버지는 동네 사람 누군가의 고소장을 쓰고 계셨다. 혹은 누군가와 누군가의 폭력사건을 무마하는 합의서를 썼다.
“너는, 반드시 명문대를 졸업해서 판, 검사가 돼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처럼 되지 않지.”
아버지는 고소장이나 합의서를 작성하는 일이 있으면 점심을 거르는 때도 많았다. 점심 드시러 오시라고 지구대에 들어가면 가끔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대에 찬 눈짓으로 바라볼 때가 많았다.
정년퇴직 후에도 고소장을 쓰거나, 합의서를 작성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 할 때는 음료수 박스며, 과일 박스, 어느 때는 박카스며 드링크 종류를 사 들고 온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 중 누가 부탁할 그 무엇을 들고 오면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아무리 늦은 밤에 방문을 해도 백년손님을 반기는 장모처럼 반겼고,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몸살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판콜A 한 병만 쭉 들이키고 부탁한 문서를 작성해주셨다.
몇 년 후에 영역이, 단순한 고소장이나 합의서에 그치지 않고, 전답이나 주택의 매매계약서, 차용증에 각종 문서까지 넓어졌을 때였다. 언젠가부터 동네 사람들은 읍에 있는 사법서사 사무실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돈 만 원짜리 드링크 한 박스, 과일주스 몇 병, 막걸리 두어 병, 쇠고기 두어 근이면 원하는 문서를 얻어갔다.
“내가 남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굉장한 복이라구. 세상에는 타인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장 당신도 그렇잖아.”
어머니는 정년퇴직 후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동네 사람들의 대서사 역할을 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은근한 자부심으로 어머니의 말을 제압해 버리셨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일단 형수님을 만나서 잘 설득을……”
자치회장은 쉬지 않고 말을 하면서도 안락한의 잔이 비는 즉시 채워주었다. 안락한은 딱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 하다 보니까 얼큰하게 취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
“바로 그걸세, 지금 마누라가 처제 집에 가있는 모양인데, 나하고 좀 같이 가서 데리고 옴세. 마누라가 원래 명문대 출신이라면 껌벅 죽는 편 아닌가? 아들놈이 고등학교 때는 공부 좀 했는데 마누라가 명문대 타령을 하는 통에 세 번 제수하다가 지금은 제 엄마 꼴 보기 싫다고 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하고 가서 마누라 좀 설득해주게. 우선 이 잔부터 비우고.”
“글쎄요……”
안락한은 자치회장이 따라주는 술잔을 들기는 했지만 더 이상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서 망설였다.
“그럼, 안 과장? 아니지 고향이 같으니까 동생이나 마찬가지지. 동생은 내가 이혼해도 좋다는 말인가? 고향 사람이 좋다는 것이 뭔가? 천만 사람이 산다는 서울에 옥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명문대 출신이니까 머리도 좋을 테지, 도대체 몇 명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잔부터 비우고 생각해봐.”
“알겠습니다. 저도 회장님이 이혼하시는 거 결사반댑니다. 일단 건배를 하고 처제분의 집으로 가죠.”
안락한은 이혼이라는 말에 아내의 얼굴이 번뜻 떠올랐다. 오늘도 술 마시고 오면 이혼하자고 겁을 줄지도 모른다. 이왕 버린 몸 잔뜩 취해서 들어가면 아내도 별 수 없이 내일을 기약할 것이라는 생각에 맥주컵 가득 담긴 술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마누라 잡으러 가자!”
“형수님을 모시러 갑시다. 그런데 처제분 댁이 어딥니까?”
“응, 수원.”
“엥?”
안락한은 자치회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나가다가 출입문 문턱을 넘기도 전에 깜짝 놀라 멈춰섰다.
“택시 타고 가자구. 택시 타고 가면 한 시간도 안 걸려.”
“그래도 너무 먼데……”
안락한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아파트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빠르게 흔들며 시선을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
안락한은 비틀거리는 자치회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택시를 잡았다. 자치회장은 운전석 옆 자리에 앉고 안락한은 뒷자리에 앉았다.
판콜A!
택시가 지하철역 앞을 지나가면서 그 뒤로 푸른약국이 보였다. 안락한은 자신도 모르게 뒷문 유리창 앞에 얼굴을 붙이며 빠르게 스쳐가는 붉은 네온으로 번쩍이는 푸른약국 간판을 바라봤다.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이 되었는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택시 계기판에 있는 디지털시계가 9시다. 푸른약국은 지하철에서 내리고 타려는 손님 상대 장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12시까지는 문을 연다.
“회…… 회장님 열두 시 까지는 돌아올 수 있죠?”
자치회장은 택시를 탄지 5분도 경과하지 않았는데 벌써 끄덕끄덕 졸고 있다. 안락한이 그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동생하기 달렸어. 처제 집에 마누라가 있으면 내가 손목을 잡아 끌 테니까, 동생이 뒤에서 등을 떠밀란 말이야. 나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눈을 빨갛게 뜨고 사는데, 여핀네는 집구석에서 매일 처먹기만 하는 통에 힘이 황우장사여…… 나 혼자는 못 당한다니께.”
안락한은 어젯밤에도 술에 취해 잠을 설쳤다. 오늘 하루종일 먹은 것도 부실한데다 취하도록 술을 마셨더니 졸렸다. 자치회장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고향 옥천에 갔다. 사표를 내고 내려왔다는 말에 어머니가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세를 내주었던 포도밭을 경작주가 자기 앞으로 등기를 냈다고 해서 싸운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포도밭에 계셨는데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일주일만 있으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신다며 판콜A를 마시는 등 어수선한 꿈을 꾸다가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눈을 떴다.
“여…… 여기가 어딥니까?”
안락한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두통에 갈증이 밀려왔다. 택시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갈증이 밀려오는 것으로 봐서는 제법 잠을 잔 것 같다며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컴컴한 동네가 낯설게 다가왔다.
“목포지, 어디건 어디여.”
“수원에 목포라는 동네도 있습니까?”
“동생 취했구먼. 수원에 도착해서 처제 집에 들어가봉께, 대전에 있는 막내 처제 집으로 갔다지 머여. 그래서 이왕 내친김이니까 오늘 끝장을 내자는 생각에 동생한테 물어봤잖여. 그랑께 수원서 대전까지 두 시간이면 끊을 수 있는 거리니까 동생이 당장 달려가자고 했잖아. 하지만 대전에 있는 처제한테 물어봉께 목포에 있는 둘째 언니 집에 갔다고 하지 뭔가. 그래서 나 혼자서 결정을 할 일이 못돼서 동생한테 또 물어봤잖아. 동생이 목포가 아니고 제주도를 가는 한이 있드래도 형수님을 모셔 오자고 맞장구를 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일씨.”
“제가요?”
안락한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반문했다.
“손님, 저도 들었습니다.”
운전사가 룸미러를 바라보며 점잖게 끼어들었다. 안락한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계기판의 시계를 봤다. 어둠 속에 있는 디지털시계가 03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니 목포에 온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수원에서 대전에 전화를 해 보시지……”
“사람두 참, 전화를 하면 딴 데로 도망가 버리지. 나 여기 있응께 어서 와유, 라고 있을 사람이면 애당초 집을 안 나가지. 어서 요금이나 계산하게.”
“요금이라니?”
안락한은 꼭 꿈을 꾸는 기분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또 놀랐다.
“동생 정말 취했구먼. 대전에서 이 기사 분하고 삼십만 원에 합의했잖여. 내가 가진 돈이 없다고 하니까 동생이 우선 카드로 결제를 하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안락한은 자치회장이 하는 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기사와 사전 모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보가 된 기분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내일 아침 기차는 꼭 부인하고 타시길 빕니다.”
택시운전사는 히죽 웃으며 카드를 받아서 결제를 했다. 영수증을 빼서 안락한에게 건네주고 어서 내리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락한은 택시기사에게 돈을 빼앗긴 기분으로 내렸다. 어디선가 바다 냄새가 바람에 섞여 풍겨왔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른 입맛을 쩝쩝소리가 나도록 다셨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안락한과 자치회장은 멀어져 가는 택시를 잠시 지켜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마주 바라봤다. 안락한은 자치회장의 입에서 술 냄새가 몹시 풍긴다고 생각했다. 자치회장은 어디 가서 소주를 맥주컵으로 딱 한 컵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목젖이 꿈틀거리도록 침을 삼켰다.
“좌우지간 내가 신세는 잊지 않을 모양이구먼.”
자치회장이 골목 쪽으로 방향을 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골목 안에서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앞으로 길게 빼며 멈췄다. 긴장한 얼굴로 안락한을 바라보다 다시 골목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 있어봐. 거기 오고 있는 양반이, 동서 아녀?”
골목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중년의 남자가 엉거주춤 속도를 줄이고 있을 때였다. 자치회장이 남자 앞을 가로 막으며 말을 걸었다.
“동서라니?”
골목 안에서 걸어나온 남자는 자치회장의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옆으로 돌아서서 자치회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제기럴! 내 이럴 줄 알았당께. 처형 찾으시러 오셨구먼. 허지만 열 시나 돼야 만날 수 있을 거요. 아까 내자하고 절에 불공드리러 갔소.”
자치회장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중년 남자가 먼저 쓴 웃음을 지으며 자치회장의 손을 잡았다.
“배 타러 가는 모양이구먼.”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해장국집에 가서 뭐 좀 먹읍시다. 나도 배를 타려면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하니까, 근데 이 분은?”
자치회장의 동서가 안락한을 뒤늦게 바라보며 물었다.
“사연이 길어……”
자치회장은 그렇지 않아도 소주 한 잔이 간절하던 참이었다. 마침 잘됐다는 얼굴로 동서의 등을 떠밀며 걸었다.
자치회장은 안락한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과장이며, 같은 고향 사람으로 나하고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라며 간단한 소개를 끝냈다. 이어서 바쁘게 집을 나간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동서는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걸었다. 자치회장이 내 말이 틀렸냐고 반문을 했다. 동서는 일단 배 좀 채우고 이야기해보자며 말을 아꼈다.
자치회장의 동서가 걸음을 멈춘 곳은 수산물 공판장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이다. 아직 어둠이 물러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도 작은 식당 안에는 해장국을 먹고 있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맑은 정신에 목포까지 달려오셨을 리는 없고, 해장 한잔 하슈. 나도 한잔 할 테니까.”
동서는 안락한이며 자치회장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해장국을 특으로 세 그릇을 주문했다. 해장국 주인에게 말도 하지 않고 냉장고 안에 있는 소주 두 병을 손가락 사이에 껴서 주방 카운터 앞으로 갔다. 맥주컵 세 개를 들고 와서 식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이 사람 술 실력은 여전하구먼, 동생 어차피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한 숨 푹 자게 될 테니까 간단하게 한잔 하지.”
자치회장은 동서가 비록 아랫동서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은데도 아랫사람을 대하는 목소리로 말하며 술잔을 받았다.
“전 쏘맥으로 하겠습니다.”
안락한은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맑은 정신으로 집에 들어갔다가는…… 그 후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는 형님이 크게 실수를 한 것 같소. 처형 말로는 형님이 그 머요. 다방 마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하던데. 아무리 나이가 환갑 다 되어가는 처지라도 여자는 여자요. 그러니까 오늘은 딴소리하지 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쇼. 그게 장땡이니까.”
안락한과 자치회장은 소주와 섞은 맥주를 한 컵씩 단숨에 비웠다. 동서는 소주만 한 컵 그득 따라서 마시고 소금으로 안주를 했다. 안락한과 자치회장이 김치든, 젓갈 종류든 안주가 오길 기다리며 입을 짭짭거렸다. 동서가 소금 몇 알을 입안에 톡 털어 넣은 후에 드디어 내가 말을 할 때가 됐다는 얼굴로 말을 하고 나서 피식웃었다.
“회…… 회장님이 바람을 피웠습니까?”
안락한이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한 통도 없이 외박을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목포까지 내려왔다. 목포까지 내려온 것도 부족해 바람을 피우다 걸려서, 집을 나간 아내를 찾으러 목포까지 내려갔다는 사실을 아내가 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당장 자치회장의 아내가 귀가를 하면 그 동안의 스토리에 살을 붙여서 아내에게 생생하게 중계를 할 것이 뻔했다. 술이 확 채는 것 같은 기분 속에 얼굴이 화끈화끈거려서 눈을 끔벅끔벅거리며 자치회장에게 물었다.
“바람을 피우기는 누가 피워. 동생도 잘 아는 여자여. 작년 가을에 우리 자치회에서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을 열었던 엘지전자 이 층 원두막 커피숍 있잖여. 그 오 마담하고 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여?”
안락한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자치회에서 일일찻집을 할 장소를 안건에 붙였을 때 회장이 굳이 원두막 커피숍을 고집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젊은 여자들은 커피숍에서 하면 좋은 의미가 퇴색할 수 있으니까 동사무소 강당에서 열자고 주장했었다.
“에이! 처형이 그러는데 형님이 시장 안에 있는 갈빗집에서 갈비를 상추에 싸서 오 마담인가 하는 그 여자 아가리에 처넣는 것을 봤다고 하던데……”
뚝배기에 담긴 해장국이 왔다. 동서가 스스로 소주를 맥주컵 가득 따라서 쿨쿨쿨 마셔버린 후에 수저를 들며 능청떨지 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사람 보게, 아가리라니? 오 마담이 바다에서 건져올린 아귀여? 물메기여.”
“어어! 형님 열 내는 거 봉께 참말로 바람피우고 있구먼. 아따 나도 남자요. 우리 나이 때 남자가 바람 좀 피울 수도 있지. 나도 한참 경기가 좋을 때는 바람께나 폈소. 톡 깨놓고 야기해보소. 오 마담인가 하는 계집이 삼삼하게 생겼소?”
동서가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해서 자치회장의 잔에 콸콸 따라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순 후레아들놈 아녀. 내가 너 같은 뱃놈하고 똑같은 놈인 줄 알어? 나 이래봬도 대학 물 먹은 놈여!”
해장술에 취하면 제 에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자치회장은 갑자기 머리가 홱 돌아버리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술잔을 집어던질 것처럼 삿대질을 하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동서는 자치회장의 술버릇을 잘 알고 있는지 싱긋 웃으며 해장국을 퍼먹었다. 주변에서 해장국에 소주를 마시던 무리들이 인상을 쓰면서 자치회장 쪽으로 몰려들었다.
“참아, 다들 참으라고. 여기는 내 손위 동서분여. 술이 좀 과해서 헛소리가 나왔나 본데……”
동서가 수저를 든 채 일어서서 몰려든 뱃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뭐! 헛소리, 뱃놈보고 뱃놈이라고 한 것이 헛소리로 들리니까 뱃놈들은 무식하다는……”
자치회장이 동서의 말을 끊어버리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도 말을 끝까지 못했다. 해장국은 건들지도 않고 꼭두새벽 해장술에 취한 삼십 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 주먹이 자치회장 콧잔등을 갈겨버렸다.
“차…… 참으라고 했잖은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낀 동서가 삼십 대를 가로 막으며 진정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얼굴에 피범벅이 되어있는 자치회장의 콧날은 벽에 붙여놓은 껌처럼 납작해진 상황이었다.
“아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나이 드신 분이 술김에……”
안락한은 얼굴을 감싸고 있는 자치회장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니까 정신이 아늑하게 주저않는 것을 느꼈다. 이건 꿈이야! 현실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다르게 삼십 대에게 태클을 하듯 달려들었다. 누군가 발목을 슬쩍 거는 것을 느끼는 순간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자치회장의 동서가 재빠르게 허리를 잡기는 했지만 미끄러지는 통에 시멘트 바닥에 턱을 찍고 말았다.
“용식아! 빨리 피해,”
“용식이 또 사고 쳤네.”
“저 놈은 술만 마셨다 하면 사람을 치는 통에……”
안락한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고함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턱을 만져 보았다. 턱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은데 손바닥이 끈적거렸다. 눈을 떠 보니까 턱이 찢어져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해장국집 밖은 새벽의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안락한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부축을 받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의 끝은 어둠에 묻혀있었다. 부지런한 갈매기 몇 마리가 바닷가에 앉아서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병원에서 콧잔등에 붕대를 감고 나온 자치회장은 동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안락한도 턱에 붕대를 감은 얼굴로 자치회장을 따라서 경찰서로 향했다. 거리는 토요일이라서 한산했다. 오늘 하루도 무더위가 이어질 것인지 아침 바람이 무겁게 얼굴을 스쳐갔다.
자치회장은 경찰서 민원실에서 고소를 하겠다고 악을 썼다. 안락한도 턱에 얼굴로 퍼져나가는 통증에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다.
“육하원칙에 쓰면 됩니다. 육하원칙 아시죠?”
정복을 입은 담당 경찰이 하품을 참는 얼굴로 자치회장이 쓰는 내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치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락한이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안락한도 처음 쓰는 고소장이라서 잘 써지지가 않았다. 자치회장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얼른 고개를 숙이는 자치회장의 입에서 술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아버지는 포도밭에서 일을 하지 않는 날은 거의가 온전히 누군가의 계약서나, 문서를 작성하고 계셨다. 그 무렵 읍내 변호사 사무실에서 합동으로 아버지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소를 했다. 아버지는 대가성 없이 단순한 대필행위였다고 주장을 했지만 법원에서는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변호사에게 의뢰를 하지 않고 직접 자신을 변호하며 긴 법정 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도 변호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동네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이런저런 문서를 작성하던 시간에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냇가며 둑에 나가 초점이 없는 얼굴로 하염없이 먼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가 판콜A를 습관성으로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가슴이 터져나가 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 때는 판콜A를 마셨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다.
의사는 아버지의 가슴 통증은 의학적으로 규명을 할 수 없는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 통증을 판콜A로 가라앉힐 수 있는 것도 의학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감기 증상이 없을 때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락한은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서 고소장을 쓰다가 찢어버렸다. 지치회장이 동생은 이 먼 목포까지 와서 턱을 다섯 바늘이나 꽤매고 가는 것이 억울하지 않느냐며 고소장 용지를 새로 내밀었다.
“잘하셨소. 그냥 액땜했다 쳐야지.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다리를 건 놈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내가 수소문해서 놈을 잡아 치료비라도 올려 보내겠소. 그러니 너무 애태워하지 마슈.”
담당 경찰관과 자치회장이 번갈아가며 안락한을 위로했으나 자치회장은 코의 마취가 풀려서 끙끙 앓으면서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경찰관은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친 두 명의 부상자를 끝까지 시답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접을 하고 나서 등을 돌렸다.
“이런 얼굴로 처형 만났다가는 화약고에 불을 집어던진 꼴이 될 테니까 일단 서울로 올라가슈. 처형은 어떡하든 내가 책임지고 모시고 갈 모양이니까.”
자치회장의 동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서 무조건 목포역으로 가자고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고…… 러는 고로는 곳이 좋을 것 같고몬.”
턱을 다섯 바늘이나 꿰맨 안락한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자치회장하고 헤어져야지, 같이 있다가는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몰랐다. 동서의 말에 찬성을 했다.
안락한과 자치회장이 코와 턱을 붕대로 싸맨 얼굴로 목포역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술이 덜 깬 두 명은 부끄럽다거나 창피하기보다는 어서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운행하는 KTX는 많지 않았다.
“앞으로 두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지? 형님이야 목적이 있어서 오신 분이라서 덜 미안하지만, 안 과장님은 어디 가서 죽이라도 좀 드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치회장의 동서가 벌겋게 취한 얼굴로 안락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난 죽보다는 어디 가서 시원한 소주 한 잔했으면 좋겠네.”
“아따! 해장술 때문에 코가 그 지경이 됐으면 참을 줄도 알아야지. 아직도 술을 마시고 싶소?”
“동서도 팔자에 없는 목포까지 와서 요 지경이 돼봐. 수…… 술이 아니라, 양잿물이라도 마시고 싶을 테니까.”
“하긴, 나라도 못 참지. 과장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잔 더 하시고, 안 좋은 감정은 목포역전에 버려두고 갑시다.”
안락한은 자치회장의 말에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는 얼굴로 따라 나섰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빠르게 역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의 얼굴이 생각났다.
“엄마, 판콜에이 떨어졌어!”
딸은 아내가 너는 아빠처럼 반드시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줄 때마다 판콜A를 찾았다.
“잠깐만!”
안락한은 광장 근처에 있는 약국이 시선에 사로 잡혔다. 얼굴은 엉망이 된데다 판콜A까지 안 사들고 가면 아내의 분노가 극에 달할 것 같았다. 자치회장과 동서를 세워두고 빠른 걸음으로 약국 앞으로 갔다.
“이거 서울에서는 한 병에 삼백 원씩 받던데……”
약사는 판콜A를 달라는 안락한의 말에 한 병에 사백 원씩이라며 약병을 내밀었다. 안락한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서울 어디서 삼백 원씩 샀는지는 몰라도 목포에서는 사백 원입니다.”
약사가 비싸면 사지 말라는 표정으로 약병을 다시 진열장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이, 김 양. 소금 뿌려. 아침부터 웬 걸어지 같은 놈이 와서 재수 없게스리……”
안락한이 동네에 있는 약국에서 판콜A를 사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서서 나가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약사가 혼잣말로 내뱉는 목소리가 등에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순간 잠자고 있던 술기운이 벌떡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다…… 당신!”
“내가 뭐라고 그랬는데?”
안락한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려니까 턱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턱을 감싸며 고개를 숙이는데 약사가 화난 얼굴로 쏘아 붙였다.
“그…… 그만두자. 그만둬. 내가 참고 말지.”
“야 이, 양반아!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그만두기는 뭘 그만둬.”
안락한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돌아섰다. 약사가 진열장 밖으로 뛰어나가서 안락한의 앞을 가로 막으며 삿대질을 했다.
“그…… 그만둡시다.”
안락한은 자치회장과 동서가 바쁘게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약사를 거칠게 옆으로 밀었다.
“어! 이 자식이 사람을 쳐!”
흥분한 약사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자치회장의 동서가 재빠르게 사이를 가로 막아서 안락한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듬직한 동료들이 왔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이 약사의 코를 정통으로 가격하는 순간 퍽!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계간 『시에』 2013년 봄호
한만수
충북 영동 출생. 1990년 『한국시』로 시, 2002년 『실천문학』으로 소설 등단. 장편소설 『하루』, 『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