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은 2019년 3월 제네바모터쇼에 여러 대의 콘셉트카를 선보이며 헤드라인을 장악했다. 6월에는 2021년 완성될 발키리를 앞세워 르망 챔피언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애스턴마틴의 대담한 도약의 중심에는 하이퍼카 발할라, 미드십 슈퍼카 뱅퀴시, 전기차 라곤다, SUV DBX, 여전히 성장 중인 앞 엔진 모델이 있다. 이런 야망에 애정과 박수를 보내지만, 줄어드는 수익과 늘어나는 채무는 투자자의 확신마저 떨어뜨린다. 발할라는 기대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고 밴티지도 마찬가지다. DBX에 많은 기대가 쏠리지만 후발주자인 탓에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려면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하이퍼카 급 가격표를 단 역사적인 레플리카,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으로 수익을 내는 데 만족해야 한다.
혼란 속 유럽 자동차 제조사의 선택
자동차산업 종사자에게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4500명에 이르는 재규어·랜드로버 직원이 2월부터 일자리를 잃는다. 회사는 추락하는 시장 상황을 이유로 든다. 유럽에서는 디젤차 인기가 떨어지고, 중국에서는 무엇이든 줄어들고…. 경쟁 브랜드도 똑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오히려 판매량은 늘어났다. 시장에 맞게 라인업을 짜기 위해 공을 들였고, 독일 브랜드는 군살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다. 브렉시트 판토마임은 시간 낭비였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갈팡질팡 행동했고, 불확실성은 몰아내야 할 적이었다.
2019년이 끝나갈 무렵 재규어· 랜드로버에 회복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 정책이 효과를 봤다. 거대한 디자인센터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디펜더를 선보였다. 혼다의 노선은 다르다. 혼다는 영국 스윈던 공장을 2022년에 문 닫기로 했다. 브렉시트라는 폭풍이 불기 전, 터키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우리는 판매하는 곳에서 만든다’ 라는 혼다의 철칙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닛산은 눈에 띄게 자동차 비즈니스와 정치를 연결했고, 차세대 X-트레일을 선덜랜드에서 만들겠다는 약속을 깨버렸다. X-트레일은 현재 일본에서 생산한다. 유럽 공장을 영국에 지으려고 검토하던 테슬라는 결국 독일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엘론 머스크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브렉시트를 꼽았다.
알파로메오의 선택과 집중
애스턴마틴의 야망과 명확하게 반대되는 사례로 알파로메오를 꼽는다. 알파로메오는 모델 계획을 줄였다. 156 등장 이래, 취임하는 수장마다 분위기 반전과 브랜드 부흥을 외친다. 2015년 줄리아를 선보였을 때는 2018년 말까지 8개 모델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수정된 계획에 따라 2019년 9월에 줄리에타 후속 모델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V8 엔진 얹은 커다란 쿠페로 고급 스포츠카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크로스오버 모델 토날레를 양산할 예정이고 더 작은 크로스오버도 계획 중이다. 알파로메오의 최신 소식은 PSA와 FCA의 합병 소식 이후 공개됐다. 이런 상황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을 벌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자율주행기술과 모터쇼의 현 주소
자율주행 자동차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진행 과정은 더디다. 닛산, 메르세데스-벤츠, 르노, BMW를 비롯한 브랜드가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기를 ‘2021년’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2021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완전자율주행 실현이 임박한 브랜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화제를 만들어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의심된다. 테슬라가 그나마 좀 발전했지만, 하드웨어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저가 센서 사용 비중이 높다. 미래 예측 또한 계속 빗나간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합법적으로 돌아다닐 날이 언제 올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결과는 보장하지 않는 허무한 과학 실험처럼 보인다. 주요 모터쇼 가운데 제네바모터쇼만 볼만했다. 애스턴마틴과 몇몇 업체의 활약 덕분이다. 그 외 다른 모터쇼들은 부진했다. 해마다 허세를 부리던 프랑크푸르트모터쇼도 10개가 넘는 주요 업체가 자리를 비우면서 김이 샜다. 주인을 잃은 큰 홀은 급하게 클래식카 전시회를 유치해 채웠는데, 그래도 빈자리가 남아서 음식 가판대로 간신히 메웠다.
모터쇼에 불참한 페라리는 개막일 전날, 마라넬로에서 신모델 두 종의 출시 행사를 열었다. 대중의 관심이 프랑크푸르트보다 마라넬로로 쏠린 이유다. 도쿄모터쇼 규모도 작아졌다. 전부터 보이던 모습이지만, 이번엔 더 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제 모터쇼의 업체별 참가비는 300만파운드(45억원) 정도다. 마케팅 비용을 지역 팝업스토어나 라이프스타일 이벤트 등 타깃이 명확한 곳에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제조사가 늘고 있다. 실제 모터쇼 현장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제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묻히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