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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목눌(剛毅木訥)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剛 : 굳셀 강
毅 : 굳셀 의
木 : 나무 목
訥 : 말 더듬을 눌
(반의어)
교언영색(巧言令色)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드물다. 그럼 어떤 사람이 어진 사람에 가까울까? 공자(孔子)는 강의목눌(剛毅木訥)이라고 이야기한다.
子曰 剛毅木訥이 近仁이니라.
자왈 강의목눌이 근인이니라.
굳세고 꿋꿋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인에 가깝다. 이것이 어진 사람의 모습이라니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것은 회사나 조직 속에서의 좋은 인재의 모습을 설명하는 듯하다.
논어(論語) 제13편 자로(子路)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공자는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인(仁)에 가까우니라(剛毅木訥 近仁)’라고 하였다.
강의목눌(剛毅木訥)은 사람이 지녀야 할 내면적 가치와 외면적 태도에 대한 부분으로 이러한 내외의 부분을 갖추어야만 어짊(仁)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강(剛)과 의(毅)의 뜻은 비슷한 듯하나, 차이가 있다. 강(剛)은 사사로운 욕망과 이익에 물들지 않고 품은 뜻을 굳세고 강하게 하여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의(毅)는 품은 기상(氣象)이 과감하며 결단성이 있음을 뜻한다.
목(木)은 나무를 뜻하나 이 문장에서는 질박(質樸)함을 뜻한다. 박(樸)은 통나무와 같이 투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으로 어진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는 뜻이다. 눌(訥)은 말을 더듬다, 과묵하여 말을 경솔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느리고 둔하다는 뜻인 말더듬을 인(訒)과 통한다고 하였다.
공자는 강의목눌(剛毅木訥)이 어짊(仁)에 가깝다고 하였는데, 강의목눌의 사람은 안으로는 사욕에 굴하지 않고 기상이 과감하며 겉으로는 용모에 꾸밈이 없고 말은 어눌한 듯 신중히 하는 모습일 것이다.
한편 공자는 이와 상반되는 경우를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하였다. 학이(學而)에서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을 어여쁘게 꾸민 이 가운데 어진 이(仁者)는 드물다.’라고 하였다.
강의목눌의 사람은 투박하나 인정이 많고 꾸밈이 없는 뚝배기 같은 사람이며 교언영색의 사람은 현란한 말과 미끈한 용모로 다른 이들을 유혹하며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 사람이다.
그런데 강의목눌 보다는 교언영색이 흘러 넘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직하나 굳은 뜻을 지니고 투박하나 믿음이 가는 사람보다는 언변이 뛰어나고 외모가 출중한 이들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다.
강직(剛直)하고, 과감(果敢)하고, 질박(質朴)하고, 어눌(語訥)한 강의목눌(剛毅木訥) 즉, 자기의 옳은 뜻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어질 인(仁)의 길이라 했다.
우리는 어떤가?
너무 말이 앞서 있지는 않은가?
한나라 때 교현이라는 사람은 청렴하고 강직하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였습니다. 관직에 있을 때 부하가 법을 어기자 즉각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또 태중대부 개승(蓋升)이 황제와 가깝다는 것을 믿고 백성들을 착취한 사실을 적발하여 처벌하도록 상소하였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습니다. 나중에 황제가 태위(太尉)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현의 어린 아들이 강도들에게 붙잡혀 끌려 가고 있습니다. 양구(陽球)라는 장수가 즉시 관병을 데리고 구출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관병은 교현의 아들이 다칠까봐 강도들을 포위하고만 있을 뿐 감히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교현은 “강도는 법을 무시하고 날뛰는 무리들인데, 어찌 내 아들을 위하느라 그들을 놓아 준다는 말인가. 즉시 체포하라.”라고 하며 몹시 화를 내면서 빨리 강도들을 잡으라고 관병을 다그쳤습니다.
결국 강도들은 모두 붙잡혔으나, 교현의 어린 아들은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몸을 던져 악에 대항하는 교현을 존경하였습니다.
나중에 채옹이 교현을 위하여 태위교공비(太尉喬玄碑)라는 비문을 지어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큰 절개에 임하여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다.’라고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강직하여 불의에 굽히지 않고, 의연하여 고난을 잘 참아내며, 가식 없이 소박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인자에 가깝다. 곧 자기의 옳은 뜻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인의 길이라 했습니다.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
사람이 아무리 재능이 많고 이해력이 풍부하더라도 생각한 바를 결행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강직하고 굳세어 굽히지 않고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다. 강하여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剛), 굳세어 어려운 것을 하며(毅), 무뚝뚝하여 질박하고(木), 말이 둔한 듯하여 묵중함(訥)이다.
剛(강)은 덕성이 견고하여 욕심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毅(의)는 강인하여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고, 木(목)은 성행이 질박하여 화미한 것을 삼가고, 訥(눌)은 말이 遲鈍(지둔)하여 묵중하므로 모두 仁(인)에 가깝다. 剛直(강직), 毅然(의연), 質朴(질박), 語訥(어눌)한 사람이 仁(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강한 마음과 의연한 태도로 위기 앞에서도 묵묵하게 정진한다는 뜻이다.
30세에 이립을 선언하고 모국인 노나라를 떠나 중국 전역을 떠돌았던 공자의 신산스러운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자성어다.
제자들과 더불어 진, 초, 제를 비롯한 제후국을 방문한 공자는 군주들을 상대로 왕도정치의 정치철학을 설파했다. 예악이 살아 숨 쉬던 주나라 초기의 태평성대를 구현하려면 패권정치에 골몰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철학을 바꾸어야 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부국강병책에 매달려 종횡가나 병법가들을 중시하던 군주들의 외면을 받는다. 자신의 경륜을 발휘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고향땅으로 돌아온 그가 남긴 명저가 논어(論語)다.
자로(子路)편에 실린 이 대목이 바로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이다. 제후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재천명이다.
또한 사람을 잘못봤던 공자의 새로운 다짐이다. 오성과 이성을 좌우에 두고 있는 판단력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부실한 것인가를 공자가 잘 보여준 일이 있다. 공자는 ‘나는 말주변에 현혹되어 재여를 과대평가해 버렸고, 못생긴 용모 때문에 자우를 과소평가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
오이언취인 실지재여, 이모취인 실지자우.
다시 말하면 신언서(身言書)도 결국 판단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판단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자는 판단 기준을 바꾼다. ‘의지가 굳세고 용모는 꾸밈이 없어 소박하고 말은 서툴러서 더듬거리는 사람이 어진 사람에 가깝다.’
剛毅木訥 近仁.
강의목눌 근인.
공자는 ‘교묘한 말솜씨에 아름답게 꾸민 얼굴을 한 사람 치고 어진 사람은 드물다.’고도 주장한다.
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
그야말로 종래의 사람 판단 기준인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 곧 신언서판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견해다.
중국 서부 실크로드의 투루판에서 화염산으로 향하는 길에 아스타나 고분군이 있다. 이곳에는 고창국(高昌國)의 후예로 당나라 태종 때 중국에 복속하여 장씨(張氏) 성을 가진 이민족 귀족이 묻혀 있다.
무덤의 벽화에는 옥인(玉人), 금인(金人), 석인(石人), 목인(木人)의 네 인물이 부조(浮彫)돼 있는데 현지에서는 인간의 일생을 단계별로 표현한다고 해설한다. 금인(金人)의 입에 세 번 끈이 감겨 있고 그림에 신언인(愼言人; 말을 삼간 사람)이라 적혀 있음을 보면 현지의 해설은 따르기 어렵다.
금인(金人), 곧 신언인(신언인)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함구(緘口)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공자가 주(周)나라로 관광 가서 태조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갔는데 오른쪽 계단 앞에 서 있는 금인(金人)의 입에 끈이 세 번 둘러 있고, 등에는 ‘옛날의 신언인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뒷날 입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을 함구(緘口)라 했다. 곧, (金人)은 말을 삼가는 눌(訥)의 덕목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로부터 옥인, 석인, 목인은 각각 강(剛)의 인간, 의(毅)의 인간, 목(質樸)의 인간을 상징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스타나 고분 벽화의 옥인, 금인, 석인, 목인은 논어에서 말한 인(仁)에 가까운 덕목을 형상화했다.
공자는 학이(學而)편에서 ‘말과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는 사람 치고 어진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강의목눌(剛毅木訥)은 서로 상대되어 구별하기 쉽거늘, 우리는 자주 그 분별을 그르친다.
말 잘하는 자를 싫어하신 공자(孔子)
논어(論語)가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간의 나눈 대화를 발췌(拔萃), 논찬(論纂)하여 만든 책(冊)임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지만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 예절, 관습 등을 총망라한 사회상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또 논어 속에는 공자 개인의 개인적인 성향과 성격, 취미등도 나타나는 것을 종종 엿볼 수 있다.
그 공자의 개인적 성격과 성향 중에서도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때론 혹독한 비판까지 서슴지 아니 하셨으니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는 바가 없지 않지도 않다.
그런 예는 논어 속 곳곳에 그 예가 보이는데 한 둘이 아니라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하여 논어 제일 첫 장인 학이(學而)편 제3장에서도‘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을 공교롭게 하면서 얼굴색을 예쁘게 꾸미는 자는 어진 이가 드물다(子曰 巧言令色 鮮矣仁)’이라 하였고,
자로(子路)편 제27장에서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굳세고, 꿋꿋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인(仁)에 가깝다(子曰 剛毅木訥 近仁)’이라 하여, 아예 어눌하고 질박한 말솜씨가 오히려 인(仁)에 가깝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와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 그 머릿속에 정리, 정돈되어 있는 사고와 생각들을 밖으로 잘 표현하여 더구나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와 감동을 준다면 이 보다 더한 재주가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공감까지 구해 낸다면 이는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어찌하여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 잘하는 이를 미워하고 싫어 하셨을까?
이는 오늘 말하고자 하는 바로 논어 팔일(八佾)편 제21장, 이 글의 주인공 재아(宰我)로 보터 연원(淵源) 한다고도 할 수 있으니 그 글이 바로 이 글이다.
애공(哀公)이 재아(宰我)에게 사(社; 토지신)에 대해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후씨는 소나무로써 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로 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로써 하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한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이라 간하지 못하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허물치 않겠다.”하였다.
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 以松 殷人 以柏 周人 以栗 曰使民戰栗.
子聞之 曰成事 不說 遂事 不諫 旣往 不咎.
애공(哀公)은 노(魯)나라의 임금으로 이름은 장(蔣), 기원전 494년에 즉위했다. 애공이 사(社; 토지신)에 대해 물었을 때, 재아(宰我)가 답하기를 하(夏)나라에서는 소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았고, 은(殷)나라에서는 잣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았는데, 주(周)나라에서는 밤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은 이유는 밤나무 율(栗)이 몸을 떤다고 할 때의 율(慄)과 음이 같다는 데 착안하여 백성들을 떨게 하기 위해 밤나무를 토지신으로 삼았다고 은근히 주나라의 정치 형태를 비꼬아 대답을 한 중에는 정치에는 어느 정도 공포정치가 필요하다는 재여 개인의 정치적 견해까지 곁들여 있는 말인 것이다.
이를 전해들은 공자께서는 대단히 불쾌한 생각을 하신 것이다. 덕(德)과 예(禮)로 하는 정치란 나라의 온 백성들이 살기 좋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에 모든 의미와 뜻이 있는 것이지, 백성들을 여하히 부리고 다스리기 위해 두렵게 만들어 통제하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어서는 올바른 인(仁)의 정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대답을 한 재아를 공자님께서는 대단히 크게 꾸짖고 싶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고 시위 떠난 화살이니 더 이상 재론하여 재여의 변설을 거론하기 조차 싫으신 것이었다. 하면, 이렇듯 언변(言辯)과 변설(辯舌)에 능한 재아(宰我) 그는 누구인가?
재아(宰我) 노(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 공자님의 제자중 하나이고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일인이기도 한 언변과 외교에 대단히 뛰어난 재질을 보인 공자 제자 중에서도 빼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인물인데, 공자는 그를 칭찬하기 보다는 야단치고 꾸짖은 바가 더 많은 제자 중 한명이기도하다.
그 예로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 제 9장에서는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재여에 대해서는 무엇을 꾸짖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에게서 이것이 바뀐 것이다.”라 하였다.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
이렇듯 재아는 그의 재주를 믿고 자주 공부를 등한히 하는 바가 있으므로 공자께서는 그런 재아의 행동을 보고 더 이상 말 잘하는 재아의 변설과 변명을 믿지 못하는 바가 되었다 말씀하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논어 양화(陽貨)편 제21장에서 부모의 3년 상(喪)에 대하여 재아의 1년이면 가(可)하다는 반론(反論)에 대한 공자님 답변 중에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하라고 말씀하신 후 재아가 방을 나간 후 재아의 인(仁)하지 못함을 토로 한 적도 있다.
이렇듯 공자님께서 말 잘하는 변설자들을 싫어하신 연유는 모두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말만 앞세운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바로 마땅히 군자가 행하지 말아야 할 언행의 불일치를 경계하신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 剛(강)은 형성문자로 㓻(강)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岡(강; 단단하다)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굽거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칼이, 전(轉)하여 강하다는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셀 간(侃), 굳셀 건(健),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드러울 유(柔)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곧고 뜻이 굳세며 건전함을 강건(剛健), 성품이 단단하고 빳빳함을 강견(剛堅), 성품이 단단하고 꿋꿋함을 강경(剛勁), 과단성 있게 결단하는 힘을 강단(剛斷), 금속성의 물질을 잡아당기어 끊으려 할 때 버티는 힘의 정도를 강도(剛度), 물체의 단단한 성질을 강성(剛性), 굳세고 용감함을 강용(剛勇), 굽히지 않는 굳센 의지를 강지(剛志), 성미가 깐깐하고 고집이 셈을 강퍅(剛愎), 스스로의 재능과 지혜만 믿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음을 강려자용(剛戾自用), 강하고 부드러움을 아울러 갖춤을 강유겸전(剛柔兼全),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을 비유하는 강의목눌(剛毅木訥), 마른 나무에서 물을 내게 한다는 강목수생(剛木水生), 굳센 창자의 뜻으로 굳세고 굽히지 않는 마음을 비유하는 강장(剛腸) 등에 쓰인다.
▶ 毅(의)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갖은등글월문(殳; 치다, 날 없는 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豙(의)로 이루어졌다. 본디 쓰러 뜨린다는 뜻을 나타내었으나 仡(날랠 흘)과 통하여 사납다의 뜻으로 쓰인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셀 간(侃), 굳셀 건(健), 굳셀 강(剛), 굳셀 경(勁), 굳셀 강(彊), 굳셀 환(桓), 강철 강(鋼)이다. 용례로는 의지가 강하여 사물에 동하지 않은 모양을 의연(毅然), 마음이 부드러우면서도 굳셈을 우의(優毅), 매우 굳세고 의젓함을 호의(豪毅), 충성스럽고 꿋꿋함을 충의(忠毅), 뜻이나 의지 따위가 강한 모양을 맹의(猛毅), 결단성이 있어 강함을 과의(果毅), 엄숙하고 굳셈을 엄의(嚴毅), 뛰어나고 굳셈을 웅의(雄毅), 강직하여 굴하지 않음을 강의(剛毅),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을 비유하는 강의목눌(剛毅木訥) 등에 쓰인다.
▶ 木(목)은 상형문자로 땅에 뿌리를 박고 선 나무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무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수풀 림/임(林), 수풀 삼(森), 나무 수(樹)이다. 용례로는 나무 인형을 목상(木像) 또는 목우(木偶), 나무그릇을 목기(木器), 나무 도장을 목도장(木圖章), 나무를 다루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공(木工), 나무와 풀을 목초(木草),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를 목침(木枕),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을 목수(木手), 술청에 목로를 베풀고 술을 파는 집 목로주점(木壚酒店),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목석(木石),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데가 없다는 목석난득(木石難得), 나무나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목우석인(木偶石人), 나무 인형에 옷을 두른 것이라는 목우인의(木偶人衣), 나무 껍질이 세 치라는 목피삼촌(木皮三寸) 등에 쓰인다.
▶ 訥(눌)은 회의문자로 讷(눌)은 간자(簡字), 㕯(눌), 吶(눌), 呐(눌)은 동자(同字)이다. 言(언)과 內(내)의 합자(合字)로, 말이 안에 있어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內(내)가 눌의 음(音)을 나타낸다. 그래서 訥(눌)은 말을 더듬거리다, 말을 더듬다, (입이 무거워)말을 잘 하지 않다, 소리가 나오지 아니하는 모양을 뜻한다. 용례로는 더듬거리는 말을 눌언(訥言), 말이 더듬거려 잘 나오지 않아 듣기에 답답함을 눌삽(訥澁), 더듬거리는 말씨를 눌변(訥辯), 말이 술술 나오지 못하는 모양을 눌눌(訥訥), 말없이 잠자코 있음을 눌묵(訥默), 고지식하고 둔하며 말 재주가 없음을 목눌(木訥), 재주가 둔하고 말을 떠듬거림을 졸눌(拙訥), 꾸민 티가 없이 수수하고 말이 없음을 박눌(朴訥), 말을 더듬어 유창하지 못함을 어눌(語訥),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을 강의목눌(剛毅木訥), 더듬는 말과 민첩한 행동이라는 눌언민행(訥言敏行), 워낙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말더듬이처럼 보인다는 대변여눌(大辯如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