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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서 22장 1~14절
주제 : 천국으로 초대하는 예수
1~7) 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
唯一神(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律法(율법)을 행하는 選民(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비유로 경고하고 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것이며, 그 잔치에 초대함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다. 헬라어 ἡ βασιλεία τών οὐρανών(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는 주 하나님을 믿다가 죽은 후 復活(부활)하여 가는 永遠(영원)한 내세와 하나님의 통치라는 의미가 있다.
어떤 임금은 하나님을, 자기 아들은 예수를, 혼인잔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청한사람들은 선민(選民 : 먼저 택함을 받은 유대인)을 상징한다(κεκλημενους 케클레메누스 : 초청하다의 현재 완료분사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인간들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처음으로 보냄을 받았던 종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오실 메시야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증거 했던 예언자 등)들을 가리키며, 다시금 보냄을 받은 다른 종들은 오신 메시야인 예수와 및 복음을 증거한 신약의 사도들과 및 미래의 전도자들까지를 상징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1-7절까지의 비유는 선지자들과 및 오신 메시야께서 복음으로 거듭 초대하였으나 거절한자들에게 주어질 것은 심판과 멸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혼인잔치 γαμους(가무스)는 복수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러 날 계속되는 잔치이기 때문이다. 유대의 결혼 축제는 대개 7일이나 그 이상 밤낮으로 계속된다. 천국을 이런 혼인잔치에 비유한 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그리고 혼인 잔치로서의 천국의 묘사는 요한 계시록 19:7-9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자신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신부로 말씀하고 있다(이사야 54:5 호세야1장 에베소서 5:23-32). 이렇게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인간 최고의 기쁨의 잔치인 혼인과 결부시키는 것은 신. 구약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첫 이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척국잔치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알 수 있다(요한복음 2:1-11).
5~6)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여기서 유대인들의 表裏不同(표리부동)한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메시야와 및 그의 나라가 누구이며 어떤 나라인지들 알고 대망해왔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의 나라가 자신들이 바라던 현세적 해방과 독립과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자 복음의 소식을 듣고 서도 무관심하거나 뒤돌아서고 배척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층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고 인기를 얻기 위해 권위를 남용하여 올무에 걸려고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한 1차적인 심판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이루어졌으며, 또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종말론적 심판이 있을 것이다(마25:31~46).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의 복음을 듣고 통회 자복하며 무릎을 꿇어야만 했었다.
8~14)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혼인 잔치의 비유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제 온 인류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종들을 보내시어 모든 세상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하고 있다(좁은 의미로는 可視的(가시적)인 敎會(교회)를 象徵(상징)하는 것으로 理解(이해)해도 무방하다).
오늘날 교회 내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는 반면에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있으며, 선한 그리스도인이 있는 반면에 육신에 속한 교인들도 섞여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간적 선악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포괄적인 사랑에 의한 것(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또한 거듭나지 않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일지라도 교회 공동체에서 말씀과 교육을 통하여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서 3:6-8)
그러나 끝까지 혼인 잔치자리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요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오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다른 표현으로 의의 옷이다(이 옷을 입는 무리는 넓은 의미로 불가시적인 교회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13)
따라서 이러한 의의 옷을 입지 못한 자는 필연적으로 홀대(忽待(홀대)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대접을 소홀히 한다이다. 본래 이 말의 원 뜻은 笏袋(홀홀자루대)벼슬아치가 왕의 부름에 반드시 의복을 입고 홀대(서판에 왕의 명령을 기록하기 위해)를 두 손으로 받들어 가지고 들어간다. 이때 홀대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 갈수가 없었다. 1품에서 5품까지는 상아로 만든 홀대를 6품에서 9품까지는 대나무로 만든 홀대를 가지고 들어간 것에서 변천했음을 알 수 있다.)를 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배재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바깥 어두움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비유(천국 잔치를 열어놓고 문을 활짝 열어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모습)를 통하여 죄악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부르심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형벌을 당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불신앙과 불성실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11,12)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각각의 우리로 들여보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청한 백성들 가운데서 의인과 악인(믿고 영접한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임시신앙인)을 구분하실 것을 말씀한다. 지금은 누가 참신자인지 거짓된 신자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곡식이 익어 거둘 때는 알곡과 가라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과 어둠의 사람이 드러날 것이다(신앙생활 하던 중에도 시험이 다가 오면 드러나게 된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7:26,27)
그리고 심판의 때에 죄인은 유구무언(έΦίμώθη-에피모데 : 재갈 물리다는 뜻으로 즉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것을 가리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가 보고 듣고 깨닫도록 확실하게 그리고 여러번 초청했기 때문이기에 한 말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긍휼과 자비가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그러나 무작정 사랑하거나 마냥 오래 참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기준이 되어 있고, 오래 참으심과 끝없는 사랑 속에는 심판의 잣대가 함께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께서는 천국으로 초대하려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초대 받은 자로서 천국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그 순례의 여정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과 및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 강퍅한 인간 심성은 이를 거부한다. 이것은 전도자의 전도를 거부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 부르심의 사랑마저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감화 감동 역사하심에 마음을 완악하게 하거나 인간적 본성으로 거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마음을 기경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옥토에 씨앗을 뿌린다 잡초가 무성하고 기경하지 않은 딱딱한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다. 갈아엎고 잘게 부수고 씨앗이 뿌리 내려 자랄 수 있는 상태를 만든 후에 씨를 뿌린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늘 마음을 기경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죄와 허물과 육신 중심의 행위를 그날 그 때 통회 자복함). 그래야만 우리의 영혼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마음의 밭을 기경하는 자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고 복음과 및 그 말씀이 그들의 마음 밭에 떨어질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허락하신 모든 적당한(합당한) 은혜를 나누며 기경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때 복음을 특정한 사람 특정한 무리들에게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겠으나 우리가 복음의 영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소부재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 人格的(인격적)인 만남과 持續的(지속적)인 交際(교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복음 듣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옛 사람 육신의 본성이 삶에 그대로 배어나고, 의의 열매(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다시금 우리의 심성과 신앙을 점검해야할 필요가 있다. 형식적인 예배나 행위가 아닌, 인격적인 만남과 지속적인 교제(交際의 한문을 분해하면 계시의 말씀과의 교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원한다면 그 분 앞에 날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머물러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말씀드리고 그리고 그분의 임재와 음성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셋째 : 천국잔치에 참여하기 전에 분명한 심판이 예비 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그 심판의 기준은 인간적인 윤리와 도덕에 있지 아니하고 예복을 입었느냐 입지 않았느냐로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앞서 말한 그대로 예수를 그리스도(나의 죄를 대속한 어린양 되신 구속주요 구세주)로 믿는 의의 옷 즉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심판하신다. 의의 옷을 입은 자는 영생에 입지 않은 자들은 영벌(지옥)에 처할 것이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5:45,46)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21:7,8)
다시 한 번 강조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긍휼과 자비가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그러나 무작정 사랑하거나 마냥 오래 참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기준이 되어 있고, 오래 참으심에는 심판의 잣대가 함께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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