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환 바오로 신부
연중 제19주일
1열왕기 19,4-8 에페소 4,30─5,2 요한 6,41-5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
초○파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아시나요? 정답은 ‘군대에 간다!’ 입니다.
특히 군(軍) 성당에서 나눠주는 초코○이는 정말 끝내줍니다. 거기에 달짝지근한 믹스 커피 한 잔
곁들이면 절(불교)에서 주는 샌드위치와 콜라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빵이라도 억지로 먹는다면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아무리 흔한 빵이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면 꿀맛이겠지요.
군 성당에서 먹는 초코파이가 바로 그런 꿀맛이었습니다.
성당에서 주는 커피의 단맛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을 때쯤 절에서 샌드위치 대신 햄버거를
준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마침 식당에서 옆 중대 신학생을 만났고 우리는 심각하게
논의했습니다. “그래, 일부러 다른 종교를 체험하기도 하잖아.” 그날 우리는 성당이 아니라
법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갈등했습니다. 예수님이냐 부처님이냐, 신부님이냐 법사님이냐….
사실 초코파이냐 햄버거냐 였죠.
그날 저녁 종교 활동 시간에 그 신학생과 저는 성당 입구에서 성수를 찍다가 만났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씨익 웃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고요.
그날 군종 신부님의 졸린 강론을 들으면서도 뿌듯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다 내어주시는데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6,6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함께 먹는 빵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지는 방법을
가르치겠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나누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혹시 지금도 냉장고 안에 언제 넣어뒀는지도 모를 많은 비닐봉지가 있지는 않나요?
더 쌓아두지 마시고 나눕시다. 새로 시작되는 한 주,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더 넉넉해지시길 바랍니다.
춘천교구 이일환 바오로 신부
2024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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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제노 신부
연중 제19주일
1열왕기 19,4-8 에페소 4,30─5,2 요한 6,41-51
줄서는 식당
찬미예수님!
텔레비전을 보면 연예인들이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식당을 찾아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줄을 서거나 예약표를 받는데 대기시간이 적어도 1시간,
많게는 2시간을 넘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디어 내고는 음식을 먹으며 기뻐합니다.
많은 이들이 유명한 음식을 찾고, 먹고, 즐기며 살아갑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은 하나의
문화인 것처럼 보입니다. 먹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이지만 사람은 먹는 것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삶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식음을 전폐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좋은 입을 거리가 있어도 마음에 평화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달지 않고, 예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삶을 마주합니다.
우리안에 죽음이 죽치고 앉아 육신은 살아도 영혼이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걱정과 슬픔, 우리를 둘러싼 악의 문제, 자기 안의 죄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창조된 우리들은 온전한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음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성체와 성혈을 통해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에로 나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예수님께서는 첫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은총을 회복하고 영원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의심하고 방황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두고도 우리는 죽어 없어질 빵만을 갈구하며 살아갑니다.
현세적인 기쁨과 만족만을 찾아 다니며 줄을 선다면 우리는 만나를 먹고도 죽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맛보고 깨달은’(화답송)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으로 힘을 얻고 회복한 엘리야 예언자처럼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사람’, 온전한 생명을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을
찾아가 줄 서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생명의 빵(호 아르토스 테스 조에스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일상의 양식인 ‘빵’으로 하느님은 오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이 우리의 역사 안에,
우리 삶 한가운데 먹히러 오셨습니다. 생명의 빵은 우리의 양식이고 우리의 생명 그 자체입니
다. ‘빵’의 형상은 초월적인 하느님과 현실의 인간이 서로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는 나눔의 삶이 하느님의 생명을 살아가는 일이 됩니다.
대구대교구 김병주 제노 신부
2024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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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예로니모 신부
연중 제19주일
1열왕기 19,4-8 에페소 4,30─5,2 요한 6,41-51
익숙함에 대한 불신앙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유대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6,41-42)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은 익숙함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성장 배경이나 부모나 친척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런 배경에서는 저런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가족에 대한 불신, 이웃에 대한 불신, 이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불신입니다.
이러한 불신은 결국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누구와 비교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는 멀리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비교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불신앙을 타파하기 위해서 일생을 사셨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늘 나라는 예수님의 복음 자체입니다. 하늘 나라가 여기 있다고, 우리 손이 닿는 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하늘 나라에 갈 사람과 가지 못하는 사람으로 갈라놓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갈라놓고 성한 자와 병자를 갈라놓고 의인과 죄인을 갈라놓습니다.
하늘 나라가 여기에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살과 피를 내놓으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빵은 먹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우리의 빵으로 오셨습니다.
차디찬 마구간에서 탄생하시고 공생활 하시면서 가난한 사람과 병자, 창녀, 세리, 죄인들과
먹고 마시며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서로의 마음속에 와 있는
하늘을 보아야합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늘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차별이 없는 하늘을 살기 위해서 성체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아멘.
부산교구 김현일 예로니모 신부
2024년 8월 11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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