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도시락 / 이규리
방울토마토가 쏟아졌다 아침이 계단으로 사정없이 굴러가는데 달아나는 토마토를 멈추어야 하는데 더욱 더 멀리 아득하게 내려가고만 있네 고 작고 말랑한 것이 손쓸 수 없도록 더 내려갈 수 없을 때에 올라갈 수 없는 위가 생겼는데 당신들이 대체로 뻔하고 진부해질 때 방울토마토가 하염없이 굴러가는 일을 한번 생각할래? 계단은 끝없이 쏟아지고 저렇게 경쾌한 노래는 원래 남의 것 같지 않은가? 토마토가 계단을 만들던 일 절망이 명랑하게 굴러가는 일 내 생의 문장이 이토록 힘을 받아 굴러간 적 있을까 왜 나는 여기 있지? 주워도 끝나지 않는 일이 왜 나의 일이지? 고민하는 동안 방울토마토는 두려움을 모르고 구르고 있네 털썩 계단에 주저앉을 때 빨간 방울과 방울들이 목금 소리를 들려주네 방울토마토 따라 굴러가는 월요일 말랑말랑해지는 월요일 토마토는 힘이 없는데 힘이 있지 속도가 근심을 지워버려서
도시락이 사라지면 어때 월요일을 모르면 또 어때 깨어난다면 그것이 꿈인 날들 속에서
여전히 계단은 굴러가고 있는데
— 《시산맥》 2022년 봄호 ------------------------------ * 이규리 시인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현대시학》 등단.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산문집 『시의 인기척』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2015년 질마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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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나 직업 특성 상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규리 시인이 특별히 ‘월요일의 도시락’을 등장시켜 전경화하고 있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보인다. 그것도 도시락 속 방울토마토가 계단에 쏟아져 굴러 내려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가 우리 사회에 경제·사회적 위상에 의해서 계급 지워져 있는‘계단’의 슬픈 현실을 나름대로의 시적 발화로 이야기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자가 방울토마토가 계단에 쏟아져 굴러가는 상황을 “아침이 계단으로 사정없이 굴러”간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도시락이 아침용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아침으로 은유된 어린 나이부터 흙수저의 고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도 그러한 상황은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흙수저로 상징되는‘방울토마토’가 멈추어야하는데 멈추지 않고 “더욱 더 멀리 아득하게” 더 내려갈 수 없는 곳 까지 내려가는 상황 묘사와,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올라갈 수 없는 위”가 생겼다는 진술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즉 이 시는 어찌할 수 없이 고착화 되어버린 우리사회의 ‘위/아래’문제를 엉뚱하게도 아이러니 화법으로 드러내는 묘미를 보여준다. 화자는 이 시의 중반에서 “당신들이 대체로 뻔하고 진부해질 때/ 방울토마토가 하염없이 굴러가는 일을 한번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당신들은 물론 흙수저에는 관심이 없이 무료하게 금수저의 삶의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화자가 이 시의 당신들에게 던지는 화법은 직설적이지 않고 아이러니해서 더욱 슬프다. “계단은 끝없이 쏟아지고/ 저렇게 경쾌한 노래는 원래 남의 것 같지 않은가// 토마토가 계단을 만들던 일/ 절망이 명랑하게 굴러가던 일// 내 생의 문장이 이토록 힘을 받아 굴러간 적 있을까”라는 화자의 진술은, 경쾌한 표현 뒤에 숨어있는 절망과 슬픔을 더욱 증폭시켜 준다. 계단으로 끊임없이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토마토가 계단을 만”든다는 표현은 추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더욱 뼈저리다. 특히 “방울토마토 따라/ 굴러가는 월요일 말랑말랑해지는 월요일/ 토마토는 힘이 없는데 힘이 있지/ 속도가 근심을 다 지워버려서”라는 아이러니 화법은 이 시를 마지막까지 절망과 슬픔 쪽으로 밀고 나간다.
이 시가 말하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통한 계층의 문제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방울토마토를 줍는다고 쉽게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방울토마토가 만들어놓은 계단은 지금도 여전히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격차에 따른 고착화된 ‘계단’의 문제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가 바위를 정상으로 올려놓는 일만큼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 박남희 (시인) *******************************************************************************************************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어느 블로그의 정보에 의하면 1983년, 미국 대법원은 덩굴식물의 열매인 토마토가 후식이 아닌 식사의 일부이므로 채소라 판결했다고 한다. 과채류라고 하면 될 걸 이게 법원에서 다툴 일인가?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고 한다. 오늘 식탁엔 토마토를 올려볼 일이다.
‘월요일의 도시락’은 방울토마토가 쏟아져 계단을 구르는 난감한 상황으로부터 시상이 전개된다. 비타킹, 마니마니, 슈가엘로우, 누리마루, 캐딜락, 러브리240 등 방울토마토의 종류는 수백 가지인데, 이름이 뭔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고 작고 말랑한 것’들이 수십 개 손쓸 새도 없이 마구마구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있다는 거다. 몹시 난처한 상황을 앞에 놓고 “왜 나는 여기 있지?/주워도 끝나지 않는 일이 왜 나의 일이지?/ 고민하는” 화자의 모습은 하루도 바람 잦고 햇빛 반짝할 날이 드문 우리네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닥을 치면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세간의 위로와 달리, “더 내려갈 수 없을 때에/올라갈 수 없는 위가 생겼”다는 시의 고백은 몹시 절망적이다.
하지만 화자는 “당신들이 대체로 뻔하고 진부해질 때/방울토마토가 하염없이 굴러가는 일을 한번 생각할래?”라고 제안한다. 우리가 대체로 뻔하고 진부해질 때는 뭔가를 포기 못하거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거나, 쓸데없는 근심으로 두려움을 키울 때다. 우리가 사금파리를 보석이라 여기며 지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화자는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방울토마토의 ‘절망’이 명랑하다고까지 표현한다. 명쾌하게 자기를 인식하는 “속도가 근심을 다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를 두고 역설적이게도 ‘힘이 없는 힘’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니 쏟아버린 무언가가 있다면 화자를 따라 남의 일처럼 멀찌감치 바라보며 힘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 방울토마토야 주우면 그만이다. 또한 월요일의 도시락이 사라진들, 당신을 포함한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게 마련이니 말이다.
- 신상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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