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마태오는 복음서 전체의 구성을 천을 짜듯 치밀하게 다듬으면서,
독자들에게 올바른 그리스도의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별로 모아 다섯 개의 담화문으로 정리합니다.
복음적 담화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 설교(5―7장),
제자들에 대한 파견 설교(10장),
하늘 나라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를 모아 놓은 설교(13장),
예수님께서 교회에 관하여 하신 말씀만 모아 놓은 교회 설교(18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말론적인 담화문인 심판 설교(23―25장)입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 설교 가운데 두 부분을 전해 줍니다. 곧 ‘겸손하여라.’로 시작하여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로 이어진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시어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잘난 신자들에게
공동체 안에서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도 이르십니다.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되찾은 양의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아무리 못난 신자라도 구원을 받도록 공동체 모두가 돌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입니다.
1210년,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한 클라라 성녀는 2년 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밤에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속의 수도복’을
받아 입고 순명을 서약한 뒤,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절대적 가난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난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삶으로 밝혀 준
성녀야말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잘난 체하는 마음으로 작은 이들을 쉽게 업신여기는
우리에게 겸손의 참 본보기가 됩니다.
클라라 성녀는 말합니다. “그대는 다른 이들이 바라보고 따를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가고 있는가?” 답은 오늘 복음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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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곧 유다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썼다고 알려진 마태오 복음사가는, 구약의 모세 오경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산상 설교(5,1─7,29 참조)를 필두로, 선교에 관한 말씀(10,1-42 참조),
비유로 전하신 말씀(13,1-52 참조), 교회 공동체를 위한 말씀(18,1-35 참조),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미래에 관한 말씀(24,1─25,46 참조)으로,
이렇게 모세 오경의 가르침에 대응하려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한 예수님 말씀의 첫 부분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맨 먼저 다룹니다.
말씀의 첫 부분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질문에는 세상에서와 같이 교회에서도 큰 사람, 높은 사람, 더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제자들의 본능적인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 자리를 탐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은 이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말씀의 연결성을 생각해 보면 모든 회개의 종착점은 우리가 어린이와 같이 되는 데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마치 아버지의 품 안에 있는
갓난아기처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믿는 이들의
겸손한 마음과 태도라고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우리를 참된 신자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비결이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온갖 유혹을 떨쳐 내시며 하느님을 신뢰하신 원동력입니다.
이른바 ‘어른들’과 ‘주인들’만 가득한 공동체는 미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묵상하며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가장 작은 이가 되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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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오늘 복음인 마태오복음 13장은 마태오복음 사가에 의한 네 번째 설교 집성문인 교회 설교
혹은 공동체 설교라 불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역에서 유다 지역으로 가시기
직전에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다루십니다.
곧 교회공동체 안에서 차지하는 작은 이들의 가치(마태오 18, 1-14절)와
공동체 안에서의 형제애(마태오 18, 15-35절)를 다룹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전반부로서,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오 18,1)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세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는 우선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밝히십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이라야 그곳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오 18,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이’란 열두 살이 되기 이전의 아이를 가리는데,
고대인들은 ‘어린이’는 오늘날 우리가 여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천진무구하다고 여기지 않고,
손이 많이 가고 책임감도 없고 늘 어른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하찮은 존재요,
율법을 모르는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사람이란, 어린이가 어른에게 의지하고
지시에 따르듯이,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겸손한 태도를
취할 뿐 아니라, 회개한 죄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곧 어른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함을 받아들이고
주인께 신뢰로 의탁하는 죄인을 말합니다. 이를 산상설교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오 5,3)고 선언하셨습니다.
둘째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지’를 밝히십니다.
곧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오 18,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는 명예나 권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결국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주님을 예배하는 이가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마태오 5,19)이라고 제시하셨습니다.
셋째는 ‘누가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곧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오 18,5)
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무력하고 미천한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요 죄인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은 회개한 죄인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사실 당신께서는
먼저 미천하고 무력한 이들을 당신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시며,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오 18,10)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되찾은 양의 비유'(12-14절)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마태오 18,1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작은 것 하나마저도 귀중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말해줍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작은 이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하찮고 비천한 이일수록 더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게 하소서.
아기가 어머니께 소중한 것처럼,
제가 당신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아기가 어머니께 속해 있듯, 당신께 속해 있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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