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화 혁명에 앞장선 종북세력과 종교지도자의 최후!
"김정은, '박근혜 정부 타격' 선전전 확대 지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0월 초 대남 공작부서에
'박근혜 정부 타격' 선전전을 확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2091059
공식적으로 대놓고 대대적인 대남선동을 일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
1989년 평양에 도착한 임수경(현 민주당 국회의원) 전대협 대표
지난 해 3월, 야권연대 출범식에 참석한 범민련 부의장 노수희,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북한에 불법 방북하여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쳤다.
조중동,종편과 정권의 언론장악을 반대하는 언론노동조합의 총파업 결의대회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부르짖으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좌익세력들
"2013년 11월 현재까지 좌익세력들의 반정부 운동이
1973년 패망한 월남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월남이 패망하던 당시와
매우 흡사한 대한민국의 현 실정!
대한민국 시민들의 반응:
"아프리카?", "베트남 쌀국수", "아뇨 몰라요",
"월남은 아는데 월맹은 모르겠어요"
베트남 적화통일 역사를 통해 우리가 눈을 떠야 합니다.
1954년 7월 제네바 협정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 된 베트남
월맹은 공산주의, 월남은 자유 민주주의
월맹은 가장 먼저 월남의 농촌 사회에 침투했다.
당시 토지개혁 실패등 월남 정부의 각종 정책에 불만을 느낀
대다수 농민들이 반정부 세력에 동조하게 되었고,
공산세력은 이 같은 상황을 틈타, 교묘히 침투 공산화를 추진했다.
또한, 월남의 도시에서는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이 연일 반정부 시위를 전개
베트콩 여성운동가 출신인 응오 바 타인 등은
자유 월남은 공산주의를 선전할 수 있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
티우 정부가 부당하게 이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궂이 한국을 예로 들자면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
그러자 월남 언론들은 이 주장이 옳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이에 정부는 언론의 이적행위를 다스리기 위해 법률안을 만들었다.
그러자 언론인들은 언론 탄압이라며 데모를 벌였고,
병역법을 제정하자 학생들은 군대를 안 가겠다고 데모를 벌이고,
종교인들 역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시위에 가담
선거 때마다 국론 분열은 더욱 심해지고 반정부 운동은 더욱 가열되어 갔다.
애국을 표방하는 100여개의 좌익단체와 통일운동 단체들이 난립하였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며 수십개의 언론사가 양산되어 베트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고
이들에 대한 수사는 소위 양심적인 반전 민주 평화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매도당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암살이 생각나는 대목...
이쯤에서 보는 월남과 월맹의 전투력 및 경제력 차이
월맹은 하루에 두 끼를 소금밥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탱크 및 장갑차 400대와 비행기700대 경제원조70억 달러
월남의 군사력은 세계 3위, 해군 3위, 공군 4위, 115만명의 병력,
월남 공군은 1800대의 최신 공군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월맹군은,
베트콩을 합해 약 40만명, 낡은 재래식 장비 및 제대로 된 신발 하나 없는 병력,
그러나 월남군은 월맹에게 너무 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대한민국 같은 경우 故황장엽 선생의 말에 의하면,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에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단 하루만에 정부의 회의내용이 북한으로 전달됐다는 말이다.
1967년 대선에서 반 티에우 당선 낙선한 야당후보 딘쥬는 이같이 말함. [간첩]
전쟁 후 밝혀진 간첩들!
공산당원 9,600여명, 인민혁명당이 바로 간첩들이 세운 정당
당원 4만여명, 총합 5만여명이 바로 간첩이었다.
[故황장엽 선생의 말에 의하면
대한민국내 고정간첩도 5만여명, 이중 권력 핵심부에도 있다고 말하였다.]
이들은 친북, 반미 감정의 선봉장으로 활약
이들은 반미, 반전, 반정부, 미군 철수 시위를 미친듯이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위의 모습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던가?
그렇다.
반미, 한미동맹 해체,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월맹의 월남 무력화 선전 선동은
주로 작가, 연예인들로 구성된 문화 예술 위원회를 통해 은밀히 지속하였다.
그들은 허위사실을 날조한 선전물로 반미,반전,징병제 반대,베트콩 협력 등을 선전
[이 대목도 대한민국의 누군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월맹에 포섭된 민간인들은 외국의 기자들에게
미군과 한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베트콩이 피난중인 민간인들을 처참하게 학살한 사실은 보도되지 않음>
오히려 미군과 한국군이 양민 학살의 죄를 뒤집어쓴 것인데,
사실상 월남 좌파들은 미국군과 한국군을 적이라고 방송한 것이다.
린선사 사건이라고 베트콩이 절의 사람들을 다 학살했는데
한국군이 학살했다고 전단을 뿌리며 선전했다.
한.미.월 합동수사대를 조직해 조사를 하는데 조사 과정에서
학살한 베트콩이 월맹으로 부터 지령을 받아 학살을 자행했다고 한다.
그 베트콩은 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았다.
그로써 후에 한국군의 양민학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누명도 쓰고 미국내의 반전 시위도 있었고
월남에서 미군철수 시위가 끊이질 않아서
결국 1973년 파리평화협정 후 미군이 철수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바로 2년 후
월맹의 기습 공격을 받은 월남은 힘 한번 못 쓰고...
티우 대통령이 월맹군을 막아내자고 방송을 하지만
좌경화 사상에 물든 국민들은 오히려 대통령을 X신 취급하며 욕하기만 바빴다.
월남 패망 후 무자비하게 벌어진 숙청
월남내 종북좌파들도 죄다 감금하며 머리털을 물에 타 마시게 하며
피부를 날카로운 대나무 죽창으로 찌르고,
독성 화학 물질을 강제로 혈관에 주입해 정신을 파괴하는 등 고문하며 숙청했다.
적어도 수용소에서만 16만 5천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베트남이 공산화 되고 바뀐 사회
언론 출판의 자유를 박탈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제안
종교의 자유 불허
사회활동을 금지
또한, 230만명이 강제 이주되어 밀림과 늪지대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월남의 전 대통령과 장관, 장군 등
고위 인사들의 무덤까지 파헤쳐지며 불태워졌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해체하고 공산 사회주의식 통제 경제로 강제 전환,
먼저 500:1로 화폐개혁이 단행,
이로 인해 개인이 쌓아올린 재산은 모두 몰수,
<자본가들의 재산도 강제 몰수>
농민들의 토지는 물론 농기계와 가축까지 몰수되어 집단 농장화,
공동생산 배급제로 강제 전환,
이로 인해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어
세계 2~3위의 쌀 수출국이였던 베트남이
매년 100만t의 쌀 수입국으로 전락함.
보트피플: 월남의 패망을 전후하여 해로를 통해 탈출한 베트남의 난민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하늘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돕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평안하다 안락하다 하며,
풍요롭고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면서
안일하고 태만한 삶, 믿음생활을 해나가면서
그냥 기도안하고 관심안가져도
"하나님이 다 지켜주시겠지?
선교 많이 하는 나라니깐, 설마 무슨일 나겠어?"
라는 안일주의에 빠져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은 현실이다.
교회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며,
잘못된 구원론과 죄에 대한 경각심의 실종,
회개가 사라진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에
왜 하나님이 지난 70여년 동안
남과 북이 서로 나뉘어서
과거 베트남과 같은 비슷한 상황을
지금 우리에게 살아가도록 허락하셨는지,
우리는 절대 잊어선 안될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라없이 교회없고, 나라없이 가정 없다...
나라와 민족이 처한 현실을 분명하게 분별하고
관심갖고 기도하며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돈으로는 절대 안보와 평화를 살 수 없다.
나와 우리의 안위를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영상으로 보는 월남 패망과 지금 우리의 상황>
반미운동, 반정부운동, 방첩기관 무력화 운동하던 종북세력들이
토사구팽 당해 수용소에서 고문당하고 굶주려갈때 하던 말....
"미군은 언제 오나, 미군은 왜 안 오나"...
[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