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말했다. 다행히 나는 시인의 시집을 20대에 읽어서 서른을 잘 맞이할 전략을 세울 시간이 충분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 '이렇게도 살기 싫고 저렇게도 살기 싫을 때' 서른 살이 되었다. 불안정한 상태로 서른을 맞이한 나는 친구와 함께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들은 대답은 나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30대 후반에 인생의 절정기가 찾아올 거예요." 그러나 사주 선생님의 예측이 빗나갔던 걸까. 39살이 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만 나이로 계산하셨나? 한두 해는 오차가 날 수도 있어." 친구는 희망을 잃지 말라며 상심하는 나를 다독였다. 39살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계속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데다 건강까지 급속도로 나빠졌다. 내 인생의 찬란한 봄을 예고했던 그를 찾아가 따지고 싶을 정도로 혹독한 한 해였다. 마흔을 앞두고 힘든 시기를 통과하던 나는 동물 보호소에 봉사를 다니며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학대받은 동물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고,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 동물에 관한 법이 제대로 입법되고 사법부에서 그 법을 적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내 안에서 들끓었다. 늦은 나이에 꾸는 꿈의 장벽은 높았다. 입시 강사로 10년 넘게 쌓은 경력을 포기하려니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42살 늦깎이로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동안이라고 단단히 오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그건 내 단순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에 들어오는 교수님마다 마흔 넘어 강의실에 앉아있는 나를 궁금해하셨다. 로스쿨 동기들 역시 나와 마주칠 때마다 교수님을 본 듯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심지어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극존칭을 쓰는 동기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동안이라는 착각을 산산조각 낸 사건이 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동기들과 캠퍼스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가 나이 들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언행이 어린 친구들에게 "나 몇 살로 보여?"라고 묻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순간적으로 주변 공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 분위기 속에서 동기들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 나는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더 이상 나이를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로스쿨 생활을 알차게 이어갔다. 그러자 같은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15살이나 어린 동생들이 진짜 동기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역시 나를 동기로 대했다. 우리 사이에는 나이라는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법조인이라는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동지애가 생겨났다. 결국 나는 2024년도 제13회 변호사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가 되었다. 철학관 선생님이 말했던 인생의 절정기보다는 약간 늦었지만 나는 감사해하며 이 시기를 누리고 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든든한 동기도 생겼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그들에게 나는 나잇값을 제대로 할 때는 인생 선배가 되고 나잇값을 거꾸로 할 때는 철없는 친구가 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나이가 되었다. 박진영 인천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재판연구원입니다. 강아지보다 애교 많은 고양이 세마리와 10년 넘게 알콩달콩 지내고 있습니다. 취미는 글쓰기이며, 매주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완성하는 걸 새해 목표로 삼아 실천 중입니다. 나이 덕 (1982년 3월호 샘터)
《샘터》 창간 55주년 연중 기획 코너로 매달 특집 주제와 관련한 1970-80년대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읽은 해설을 덧붙여 여전히 보존돼야 할 삶의 가치를 되새겨 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옛 표기법을 따릅니다.
지난 한 해는 언짧은 일들을 당한 친지들이 많아서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새삼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었다. 과로로 쓰러진 채 한달 가까이 의식불명인 남편의 병상을 지키며 생사의 위기를 함께 넘나든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사업하는 시동생의 재정보증을 섰다가 경매처분을 당해 고생고생 장만한 집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게 된 동창, 늦게까지 독신을 고집하다 설흔을 훨씬 넘기고 겨우 결혼이라고 한 것이 희대의 사기꾼을 만나서 4년째 이혼송사를 벌이고 있는 옛 직장동료 등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듯 여겼던 불해한 일들이 한꺼번에 닥치듯 여기저기서 일어났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서로 수석을 다투던 클라스 메이트와 결혼해서 나란히 유학길에 올라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 K는 박사학위 과정 중 심한 감기 끝에 귓병을 얻어 청신경을 잃어버렸다는 기막힌 소식이 전해져 오기도 했다. 이처럼 남도 아닌 가까운 친구들의 엄청난 재난이나 불행을 놓고 새삼 자신의 안일에 감사를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의리없고 천박한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일른지도 모른다. 인간사의 온갖 불행 따위가 다 무슨 아랑곳이냐는 듯 자신만만하고 겁 없던 이십대 삼십대와는 달리 시내버스 운전석에 붙여진 '오늘도 무사히'란 기도문처럼 좋은 일이 있는 대신 언짢은 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 여길 줄 알게 되었으니, 흰머리가 생기고 잔주름이 느는 것도 꼭 나쁘기만 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글 이경순(주부)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한 살 한 살 먹는 게 달갑지 않아졌다. 노화는 물론 꿈, 열정, 희망 같은 것과 점점 멀어지게 되어서일까. 그나마 세월과 함께 쌓이는 경험을 나이 듦의 미덕이라 여기고 싶지만 이마저도 고리타분한 생각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있게 내세울 나이의 장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며 대단한 지식도 아니고 엄청난 발견도 아닌, 그저 남의 불행에 같이 가슴 아파하며 평범한 하루가 큰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는 어느 주부의 작은 깨달음에 나의 하루를 되돌아본다. 나이가 들수록 더 큰 것을 바라고 좇다 보니 오늘도 떠오른 찬란한 햇살과 뺨을 스치는 바람, 나를 보고 환히 웃어주는 얼굴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또 한 살 나이를 먹은 만큼 하루하루에 감사해 하고 더 넓은 마음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기로 다짐해본다. 더불어 우리 주위에 큰 아픔이 많았던 요즘, 다른 이의 불행에 함께 눈물 흘리고 안아주는 진짜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글 김윤미 기자
|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동트는아침 님 !
편안하고 여유로운
힐링시간 보내시고
늘 평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계속되는 추위에..건강 조심하시고
늘 좋은 일만 함께 하시길 기원해 드립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추위가
몸을 움츠리게합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열어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