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서 퍼온글입니다. 그런데 이글은 분명 다른 어디서에 퍼온듯한테 이글을 올리신분이 출처를 밝히지 않으셧군요.
뭐, 어느 정도는 상한 떡밥입니다. 유고사태에서의 아래의 이중면 면모는 (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아니라) 평화유지군의 파견자체에 의해 서구 사회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 파견된 현지최고급장성이 클린턴대통령에 의해서 해임되는 사태까지 벌어지죠. 글쓴이의 제국주의나 그런것에 대한 시각은 적당히 알아서 걸러보시면 될듯
2. 발칸사태의 배경 : 발칸은 어떻게 재발칸화되어 왔는가?
<1> 정치·군사적 배경 : 밀로세비치와 세르비아인들의 쇼비니즘인가? 아니면 제국주의의 간섭과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인가?
미국-서유럽의 정부들과 언론들에 따르면 이번에 자신들이 유고와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은, 오로지 밀로세비치가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소수민족인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에 대해 민족적 탄압과 민족청소*주14)를 자행한 때문인 듯이 보인다. 그러한 잔혹행위가 빚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에서는 밀로세비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 이외의 여러 측면들은 철저히 가려지고 만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도, 보스니아-이슬람계의 민족주의도, 알바니아 민족주의도! 그리고 그들이 자행하고 있는 타민족에 대한 탄압과 민족청소도!
발칸반도는 지금 다시 '발칸화' 되고 있다. 여러 민족들간에 영토분쟁을 포함한 치열한 민족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분쟁에 강대국들이 개입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다. 이같은 발칸의 '재발칸화'는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지역을 식민지화하려는―과 이 지역내 각 민족의 부르조아 계급―사회주의 제도를 완전하게 해체시키고 자본주의 제도를 정착시키려는―에 의하여 조성되고 있다.
(1) 모두가 민족청소를 자행해 왔고, 모두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민족청소는 밀로세비치와 세르비아만이 자행한 것이 아니다. 지난날 크로아티아는 그 못지 않게 대대적인 민족청소를 자행했다. 보스니아-이슬람계도 또한 민족청소를 자행했다.
"구-유고연방 해체가 초래한 비극적인 귀결들을 돌이켜보면, 인도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은 강대국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하게 만든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 거의 아무런 관심사도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유고연방의 해체가 시작된 이래 단일한 민족청소로서 가장 큰 것을 들자면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5년 여름에 친독일적이고 친나치 성향이 있는 투지만 대통령의] 크로아티아군이 크로아티아의 크라지나(Krajna)지역에 살던 십만 명의 세르비아 인들을 보스니아 지역으로 추방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이 민족청소는 독일과 미국 정부의 승인 하에서 이루어졌으며, 미군 병력의 직접적 감독 하에서 행해졌다." *주15)
<뉴욕타임즈>가 금년 3월 21일자에서 보도하고 있듯이 헤이그에 있는 전범재판소는 그 당시 크로아티아군이 즉결처형을 행했고, 민간인에게 무차별 포격을 가했으며, '민족청소'를 자행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클린턴과 팬타곤의 승인 하에 크로아티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군 퇴역장교들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미국정부가 빌칸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혹행위들에 대해 자신의 군사적 및 지정학적 당면목적에 맞추어 선별적으로 격분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즉 크로아티아 군장성들은 크라지나 공격 기간에 그들이 자행한 잔혹행위를 이유로 기소되어 있는데, 팬타곤은 이들에 대한 어떠한 법적 조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대하는 근거로서 팬타곤은 "세르비아계 읍들과 마을들에 대한 포격은 '적법한 군사행동'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잔혹행위는 '반인륜적 전쟁범죄'이지만 크로아티아의 잔혹행위는 '적법한 군사행동'이라는 이같은 아전인수격 논리가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왜 이런 억지논리를 내놓는가?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만약 그 장성들이 기소된다면 인권상황이 열악한 보스니아에 평화를 유지시키는 데 있어서 미국의 우방인 럼으로써 정치적으로 골치아파진다는 것이다." *주16)
그러면 크로아티아는 왜 민족청소를 자행하는가? 크로아티아는 지금 투지만 정권의 통치하에 있다. 이 투지만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친독일적이고 대내적으로는 친파시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서 세르비아계가 주도하는 유고연방에서 이탈하여 분리독립하기를 추구해 왔을 뿐 아니라 영토확장을 통한 대-크로아티아 건설을 꾀하고 있다. 즉 옛날 나치 지배 당시 나치에 협력한 대가로 얻었던 보스니아-헬체고비나 지역(그 일부라도!)을 자신의 영토로 차지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주17)
이러한 성향과 야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발칸에서의 민족분규는 사실 크로아티아계가 선도했다고 할 수 있다. 유고연방의 해체는 1991년 크로아티아의 분리독립으로부터 촉발되었던 것이다.
민족청소는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만이 자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족청소와 영토분쟁은 발칸 지역의 일반적인 현상이고 추세이다. 구-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내전을 겪었고 지금 또다시 내전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는 보스니아에서도 민족청소가 자행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이 내전이 재차 격화되면 지난번보다 더욱 격심한 민족청소가 이루어질 것이다.*주18)
그런데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이슬람 연합정부를 대표하고 있는 이제트 베고비치 (Izetbegovic)는 '이슬람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민족주의자이다.
이러한 보스니아 이슬람 민족주의는 1차 대전 이전에 분할통치 방식―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간의 반목을 부추기고 이용하려는―으로 이 지역을 지배하려던 합스부르크 제국에 의해 충동질되기 시작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08년에 보스니아-헬체고비나를 오스만-터키에서 빼앗아 합병했으나 이를 계기로 강대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약소민족들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이로 인해 1912∼3년에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자, 분할통치 수법으로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굳히기 위해 보스니아-이슬람 민족주의를 고안해 낸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하여 배태된 이슬람 민족주의의 기수로서 1983년에 이슬람 원리주의와 반공주의를 추진하고 보스니아-헬체고비나에서 크로아티아인을 추방하자고 주창하여 구속.재판을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또 1970년에 비밀리에 회람한 한 문건(이 문건은 1990년에 공개 간행되었는데)에서 이슬람 종교와 비-이슬람적인 사회.정치 제도들 간에는 평화도 공존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생각과 전력을 가진 그는 1990년에 보스니아 3민족(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및 보스니아-이슬람계) 연립정부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유고연방 탈퇴로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이 연립정부도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슬람계가 보스니아의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보스니아-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의 유고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강경하게 반대했다. 반면 보스니아-크로아티아계는 연방으로부터 탈퇴한 이후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와 통합해 나가기 위한 수순으로 생각하며 보스니아의 분리독립을 지지했다.
이에서 보듯이 회교 원리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보스니아-이슬람계가 현재의 발칸의 상황 속에서 민족청소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스니아-이슬람계 군대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및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 대한 민족청소를 자행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 93.9.12일자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보스니아군은 보스니아 산업 심장부 전역에서 민족적으로 혼성을 이루고 있는 많은 읍―포리니카 읍과 같은―으로부터 체계적으로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몰아냈다"라고.*주19)
이러한 민족청소 양상은 보스니아에 내전이 재개되고 발칸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면 각 민족들간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자행될 것이다.
(2) 코소보사태에서도 잔혹행위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양측(세르비아 측과 코소보-알바니아계 측) 모두가 저지르고 있다. 이 잔혹행위들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민족청소이기보다는 유고연방군과 코소보해방군(KLA) 간의 내전의 부산물이다.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인권유린과 민족청소를 자행하고 있는 것은 코소보사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르비아만이 민족청소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바니아계도 민족청소를 자행하고 있다. 극단적 민족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쌍방간에 공통이다.
그 동안 유고연방(세르비아계 주도의)에 의한 알바니아계에 대한 탄압과 민족청소에 대해서는 서방언론을 통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작년의 충돌로 인해 코소보 지역 내의 다른 곳으로 추방되거나 난민이 된 사람이 2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천여 명(전투원과 민간인을 합쳐서)이 생명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주20)
이 잔혹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양민학살과 양민에 대한 인권유린이 자행된 한! 그리고 발칸의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역사의 후퇴를 가져올 수밖에 그러나 이렇게 퇴행적인 쇼비니즘을 추구하며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은 세르비아계만이 아니다. 코소보해방군(KLA) 측도 그와 마찬가지로 민족청소와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군사적인 힘의 관계에서 세르비아 군(정규군과 민병대)측이 월등히 우세했기 때문에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주된 피해자가 되고 있을 뿐이다.
서방언론들은 지금도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참상에 대해서는 많은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봄에 민족갈등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이래 약 1만5천 명(총 18만 명의 세르비아계 주민 가운데)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시골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주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코소보해방군의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작년 4월 하순에서 6월 말 사이에 코소보해방군은 일련의 대공세를 취했고 코소보 땅의 거의 40%를 장악했다. 코소보해방군이 통제하는 지역의 시골마을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자신의 극히 가까운 친척이 유괴를 당하고, 자신들의 집이 포위되고 소(小)화기로 공격을 받은 이후에―어떤 경우에는 자유의사로 어떤 경우에는 강제로―살던 집을 떠났다."*주21)
이처럼 코소보의 민족청소 문제는 어느 일방만의 행위가 아니다. 비록 현재의 세르비아계의 잔혹행위가 용서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이들은 미국에 의해 무기와 병참을 지원받고 있다―의 잔혹행위가 시야에서 가려져서는 안된다. "언론은 난민의 홍수를 만들어 내는 폭력행사에 있어서 주요 구성요소의 하나가 코소보 해방군―점점 더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및 병참상의 지원을 받고 있는―과 세르비아군 사이의 충돌이라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군이 코소보 [알바니아계] 민간인들을 타격했으며 사람들의 불행과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세르비아군이 이번 비극에 있어서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다. 언론은 코소보해방군의 역할에 대해 점검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진실을 왜곡하고 미국 개입의 기저에 있는 정치적 목적을 은폐하는 데 공헌하는 역할만을 행하고 있다. [제국주의 세력의] 선전과는 대조적으로 코소보에서의 인간비극은 이 지역을 장악하려고 경합하는 민족주의 세력들간의 격렬한 내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주22)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나토의 공격으로 세르비아측의 민족청소가 멈추어지고 잔혹행위가 없어질 것인가? 미국-나토의 침략행위가 지금까지의 내전보다 더 엄청난 잔혹행위를 낳고 있으며(나토의 무차별 공습이 직접적으로 빚어내는 가공할 파괴와 인명살상은 접어두고라도!), 또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엄청난 잔혹행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코소보-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최근의 잔혹행위와 대규모 난민의 발생은 미국-나토측이 '랑부이예 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습을 하겠다고 위협을 하는 데 대한 세르비아군측의 코소보해방군측에 대한 선제적인 공세에 의해 초래된 측면이 있다. 또 공습이 개시된 후에 더욱 대규모적으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미국-나토군의 코소보 전 지역과 수도인 프리슈티나에 대해 무차별 공습을 함으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측면이 크다.지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단 4일 간의 나토 공습으로 자신의 집을 떠난 코소보인은 5십만 명에 이른다. 이것은 이 지역 인구의 1/4을 넘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백, 또는 어쩌면 수천 명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나토의 개입으로 구하고자 했던 참상 바로 그것이다. 이 전쟁은 지독하게 잘못 흘러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토 공습이 세르비아계 가해자들을 마침내 쳐부수기를 기대했지만, 누구도 [피해자들의] 고통이 끝났음을 제시해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코소보는 사람이 살지 않는 납골당이 될 위험이 있다"라고. 그러면서 이런 상황을 지상군 투입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즉 "[코소보를 가능한 한 신속히 보호령으로 만드는 것을 비롯한] 이 모든 것은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공습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라고.*주23)
그러면 만약 코소보 지역이 나토군의 지원을 받아 코소보해방군측에 의하여 해방될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소보해방군(KLA)은 세르비아측 못지 않게 쇼비니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쇼비니즘은 구-알바니아의 외국인 혐오증에서 보듯이 깊은 역사적.정치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KLA는 유럽 조직범죄 집단과 연루된 마약거래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미 CIA와 검은 결탁관계를 맺고 있다. KLA는 지금 미국으로부터 병참과 무기를 지원받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기술적인 지도를 받고 있다. 크로아티아군의 크라지나 지역 세르비아계에 대한 민족청소를 퇴역 미군장교들이 지도했듯이!*주24) 이러한 코소보해방군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면 민족청소는 더욱 잔혹하게 자행될 것이다. 99.2.20일에 뉴욕에서 있은 KLA를 위한 모금행사에서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한 KLA 지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돈을 모으고, 그들은 그곳에서 전투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이 세르비아인들을 제거하는 방법이다."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세르비아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싸운다"라는 이야기가 아닌가?*주25)
이렇듯 코소보사태는 밀로세비치의 잔인성과 그에 따른 세르비아계의 민족청소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민족주의가 부추겨지고 민족분쟁이 격화되면 각 민족세력은 모두가 잔인해지고 모두가 타민족에 대해 민족청소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민족청소에 제국주의 세력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그리고 만약 먼저 번에 청소당했던 민족이 전세를 뒤엎고 싸움에서 이기는 경우, 저번에 다른 민족을 청소를 했던 민족이 그 보복으로 더 잔혹하게 청소를 당하게 된다.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종족청소에서 볼 수 있듯이! 이처럼 만약 미국-나토군의 공격으로 세르비아군이 철수하게 되면, 그래서 코소보해방군측이 이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 코소보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보복적으로 민족청소를 당할 것이다. 대량 추방될 것이고 대량 학살이 자행될 것이다. 사태는 이렇게 물고 물려 있는 형국이다.
(3) 민족청소와 잔혹행위는 이 지역의 자본주의화 과정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하는 이 지역 부르조아 계급들의 극단적 민족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발칸 지역에서는 코소보사태를 전환점으로 하여 여러 민족들간의 분쟁이 한꺼번에 모두 터져나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알바니아 민족주의, 보스니아-이슬람 민족주의 등이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다. 이 분쟁에 새롭게 불을 지피는 것이 현재로서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이다. 코소보사태를 계기로 알바니아계는 종래의 알바니아에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서부지역(이 지역에 42만 명의 알바니아인이 살고 있다.)을 망라한 대-알바니아를 건설하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세르비아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와도 충돌할 것이다. 한편 마케도니아에 민족분쟁이 생기면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와 그리스도 이 분쟁에 휩싸일 것이다.(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대-알바니아 건설 움직임은 또 대-세르비아 건설을 추구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더욱 부채질하면서 보스니아 내전을 다시 격화시킬 것이다. 이 때에는 보스니아의 일부를 크로아티아에 흡수통합시키려는 보스니아-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를 독립국가로 유지시키려는 보스니아-이슬람계 및 보스니아의 일부를 세르비아에 통합시키려는 보스니아-세르비아계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나아가 신-유고연방의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분리독립움직임에 불을 지필 것이다. 또 여러 민족이 혼재하고 있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에도 내분을 조성할 것이다. 이때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항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이 이 분쟁에 휩싸여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은 나토-유고 전쟁에 그치지 않고 전면적인 발칸전쟁의 서막이 되고 있다.
그러면 왜 발칸반도에서는 민족간의 쟁패가 이처럼 격심하고 마침내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는가? 서방언론은 이 지점을 정확히 말해 주지 않고 있다. 언론과 정부들은 오히려 발칸반도의 이러한 분쟁을 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종교적(그리고 그러한 차이에 기반한 문화-민족적) 갈등의 역사에 원인을 돌리며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유고 주재 미 대사를 역임했던 짐머만(Robert Zimmerma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발칸의 비극은 '공격적 민족주의'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뿌리깊은 문화적·종교적 긴장관계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이러한 문화적·종교적 긴장관계는 [현재의 현실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과연 그런가?*주26)
그러한 갈등이 있고 또 그것의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위기가 이 지역의 지배계급들에 의해서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다. 그러한 식의 설명은, 왜 구-유고연방 시절에는 그러한 뿌리깊은 갈등요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평온하게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여 잘 지내다가 이제 와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는지를 전혀 밝혀주지 발칸의 위기는 이 지역의 부르조아 계급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 밀로세비치의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든 투지만의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든 이제트 베고비치의 보스니아-이슬람 민족주의든 또 알바니아 민족주의든 모두가 그 민족의 부르조아 계급이 주창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결정적인 지점을 빠뜨리는 모든 설명은 현재의 발칸위기의 진실을 은폐하는 데 복무한다.
그러면 발칸 지역의 부르조아 계급들은 어째서 각기 민족주의를, 그것도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되고 있는가?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계급적인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구-유고연방 국가를 해체시켜 작은 민족국가로 쪼개고, 이웃하는 민족과 끝없는 영토분쟁과 전쟁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계급적인 이익에 부합하는가?
잘 알다시피 티토의 구-유고연방은 노동자계급 본위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거기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임금노동자로서 착취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주27) 부르조아적인 성향을 가진 특권관료층(노멘클라투라)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도 아직 자본가 계급이 되지는 못하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 특권 관료층이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하고자 하면서 문제는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특권 관료층이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유고가 소련보다 한걸음 빨랐다. 유고는 비동맹노선을 걸으면서 서구 자본주의와 매우 폭넓은 경제관계를 맺어 왔으며, 그로 인해 경제적인 관계에서 오는(서구 자본의 침투로 인한 이윤논리의 직접적 관철과 더불어 서구 자본과의 경쟁으로 인해 이윤논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제약) 요인의 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주의 사회구성체인 구-유고연방을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로 바꾸는 지점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경제의 재생산을 순조롭게 이루어 낼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었다. 사실 유고경제는 그 당시에 이미 서구 자본주의에 깊숙히 편입되어 있었다. 특히 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이후 오일달러를 많이 빌려쓰고 있었다. 80년대 말에 이르면 그 액수는 2백억 달러에 이른다. 마치 중남미 국가들처럼! 이러한 상태에서,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가 70년대에 심각한 축적위기를 맞이하고 그 돌파구로서 80년대 접어들면서부터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상황에서, 유고의 기업들은 자본주의의 경쟁논리(및 그 바탕에 있는 이윤추구 논리)를 적극 도입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또 이렇게 하여 외화를 벌지 않고서는 외채를 갚아 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사회주의를 유지.강화할 것인가 자본주의화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서 유고의 지배층은 자본주의적 '개혁'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화는 특권 관료층의 지배자적인 지향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내내 심화되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90년대에 들면서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자본주의화 개혁이 어째서 민족주의와 민족분규로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만약 구-유고연방 국가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허물고 자본주의체제로 나아가려 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때에는 특권 관료층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전체 유고연방을 망라하는 범위에서 계급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계급은 물론이고 농민과 나아가 특권관료층 안에서도 사회주의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지 않고서는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민중주도의 민족해방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고에서 이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다.*주28)
이러한 난관에 대한 돌파구가 바로 유고연방의 해체였다. 이러한 연방의 해체는 구-소련의 자본주의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왜 연방국가의 해체는 자본주의화에 유리한가? 연방의 해체는 우선 노동자계급을 민족별로 파편화시켜 무력화시킨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극도로 고취함으로써 탈계급적인 민족주의가 노동자계급의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대신하게 한다. 이렇게 민족별로 분열된 데다 노동자계급의 진보적인 이념이 퇴색하게 되면 대중에 대한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및 정치적 헤게모니가 쉽게 확보된다. 그리하여 구-소련에서나 구-유고연방에서나 특권 관료층은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너나없이 사회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옐친을 비롯하여 그렇지 않은 자가 있는가?
특히 구-유고연방의 경우 지방분권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고 따라서 자본들이 전체 국내시장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주요 기업들이 각 공화국별로 설립되어 있으면서 전체 국내시장을 공화국 지역별로 분할. 점거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본은 유고 전체의 국내시장을 유지하는 데 별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면에 그들은 서구 자본과 밀접히 경제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공화국의 이 특권 관료층들은 연방을 해체하고 제각기 분리독립하기를 원했으며, 연고를 가지고 있는 서구 자본주의 세력(독일, 영국 등)에 통합되기를 원했다. 이처럼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예속적이면서도 겉으로는 민족주의를 표방하고서 연방해체와 분리주의를 요구하면서 대중을 장악해 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주의 연방이 해체되는 틈을 타서 각 독립국가별로 자본주의화를 급속도로 관철시켜 나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흐름의 선두에 섰던 것이 크로아티아의 부르조아였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언어는 세르비아와 같다. 다만 종교가 동방정교가 아니라 카톨릭으로서 친서구적이다. 크로아티아 부르조아는 이 차이를 이유로 크로아티아 민족 제일주의를 선동하며,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화 과정은 종래의 경제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인 것이고, 따라서 이 과정은 곧 경제위기와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극도로 심화되는 과정이다. 노동자·민중이 절망의 늪에 빠지는 과정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IMF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때 당연하게도 자본주의화와 식민지화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절망이 깊을수록 또 저항 가능성이 높을수록 대중을 맹목화시켜 장악할 필요가 커진다. 그리하여 이들의 민족주의는 매우 선동정치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띄게 된다. 즉 파시즘, 쇼비니즘, 원리주의(fundamentalism) 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구-유고연방에서만이 아니라 구-소련 지역과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알바니아 등 여타 동유럽국가들의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구-유고연방의 경우 경제위기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데다 또 같은 지역 안에 여러 민족들이 혼재하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이 극도로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직시해야만 왜 지금 이 시기에 발칸반도에서 민족주의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 이로 인해 민족분쟁이 극도로 격화되며, 비극적인 민족청소로까지 나아가고 있는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주29)
(4) 발칸사태는 미국-서유럽의 제국주의 간섭과 분할·지배 전략의 산물이다.
발칸의 재발칸화는 이 지역의 자본주의화의 산물만이 아니다. 이러한 자본주의화 과정 자체도 제국주의의 개입에 의해 유도되어 왔다. 제국주의는 나아가 이 지역의 식민지화를 꾀해 왔다. 그리하여 발칸지역은 지금 전면적으로 식민지화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유고가 이렇게 자본주의화.식민지화되는 과정은 크게 네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60-70년대의 시기로서, 서구 자본주의에 대외적으로 편입되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추진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8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세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1989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인데, 이 단계는 9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러한 자본주의화·식민지화 과정은 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인 간섭과 분할통치 전략이 일관되게 작용하면서 진행되었다. 단지 구 유고 사회 내부의 요인만에 의해서 빚어진 사태가 아닌 것이다. 비록 '분권적 시장사회주의 체제'를 모델로 함으로써 구-유고 사회주의 내부에 시장지향적이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첫 번째 단계인 60-70년대의 시기 즉 서구 자본주의에 점차 편입되는 단계에서부터 제국주의는 민족분리주의 운동을 충동질한다. "1960년대 중반 광범한 민족분리주의 운동이 크로아티아에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지식인, [기업] 경영층, 스탈린주의 관료에 기반했다. 그리고 카톨릭 교회에 의해 고무.선동되었다.
이 운동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학생시위로 정점에 달했다. 그리고 이로써 1971년 크로아티아 당은 벨그라드(유고공산당 중앙)로부터 사실상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당시 시위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학생이 중심이 되었는데 이들은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크로아티아 군의 창설, 연방에 의한 수탈 반대 등의 슬로건을 내걸었다.*주30)
그런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유고연방 내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들로서 자신들의 소득이 가난한 남부지역(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등)을 위해 사용되는 데 (이것을 수탈이라고 하면서!) 반대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에 더욱 확고하게 통합되기를 요구했다. 오늘날 이태리의 부유한 바르디 동맹을 결성하여 분리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이처럼 이들은 아주 이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한 서구 지향 즉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지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개입은 이 때까지는 아직 간접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제국주의의 개입은 제국주의와 밀착되어 있는 로마 교황청의 지휘를 받는 현지 카톨릭 교회가 개입하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쨌건 사회주의 유고에 이렇게 민족주의가 부채질됨으로써 민족간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쪽의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그리고 코소보 등에서도 민족주의 기운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인 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제국주의의 개입이 보다 노골화한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유고 사회주의의 해체라는 전략에 입각하여 접근한다.
"[유고에서는] 1980년대부터 몇 개의 단계를 거치면서 개혁이 실시된다. 이 개혁은 벨그라드(유고의 수도)에 대한 [해외] 채권자들이 강요한 것으로서, 유고에 경제적 및 정치적인 대(大)황폐를 가져왔다. 산업부문은 허물어졌고 '유고 복지국가'는 차츰 해체되었다. 벨그라드의 비동맹 정책과 미국 및 유럽공동체와의 다방면에 걸친 교역관계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행정부는 '유고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라는 제목이 붙은 '<극비> 1984 국가안보결정 지침(NSD133)'에서 유고경제를 공격목표로 지정했다. 이 문서의 검열판(공개하기 곤란한 사항들을 삭제하고 공개한 판본)이 1990년에 비밀에서 해제되었는데, 이것을 보면 1982년에 발행된 동유럽에 관한 종전의 '국가안보결정 지침(NSD54)'과 같은 내용으로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즉 이 정책의 목표들 속에는 '공산주의 정부와 당들을 전복시키기 위한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을 촉진하는 노력을 확대.강화하는 것'과 '동유럽 나라들을 세계시장의 영향권 안으로 재통합시키는 것'이 들어 있다." *주31)
제국주의의 이러한 공세는 주로 정치·군사적 개입의 형태를 취하기보다 경제적 개입의 형태를 취했다. 즉 신자유주의 공세의 모습을 띄고서, 유고 사회주의 경제에 대해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서구 자본주의로의 통합을 압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뒤에 이어지는 '발칸사태의 경제적 배경' 부분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유고 사회주의 연방을 해체시키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미국과 더불어 독일 제국주의가 깊숙히 개입한다.
유고연방의 해체에 있어서는 독일과 근접하고 있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92년에 있은 마케도니아의 분리독립과 보스니아 분리독립 및 내전에 불을 당긴 것은 1991년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분리독립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동서독 통일을 이룩하여 기세를 올리던 서독 정부가 직접 이것을 부채질하고 지원했다. 당시 독일 외무장관 겐셔는 크로아티아의 분리독립이 국제적으로 승인되게 하기 위하여 미국-영국의 소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밀어붙여 이것을 관철시켰던 것이다.*주32)
이렇게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분리독립하고 뒤이어 마케도니아, 보스니아가 분리독립함으로써 구-유고연방은 해체되고 만다.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의 분리독립에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분리독립의 경우와는 달리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여하튼 이렇게 하여 구-유고연방 안에서 남은 것은 세르비아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 둘뿐이게 되었다. 그리고 영토문제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사실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인데!) 이러한 분리독립이 이루어짐으로써 격렬한 민족분쟁이 터져나오게 되었다. 이 분쟁은 어느 민족도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보스니아-이슬람계가 주도하여 분리독립한 보스니아에서 마침내 내전으로 터져나왔다.
이때부터 발칸지역은 민족별로 쪼개지면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되는 네 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연방이 해체되면서 민족간의 분쟁이 격화된다. 그러면 여기에 여러 열강이 경쟁적으로 개입하여 다. 그리고 이렇게 민족분쟁이 악화되어 모든 민족국가들의 존립이 불안해지면, 이 틈을 타서 제국주의 열강이 다투어 더욱 깊숙히 개입한다. 그리고 각 민족국가들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는다. 민족분쟁과 식민지적 예속의 악순환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 단계에 오면 영·미 제국주의 세력이 팔을 걷어붙이고 민족분리주의를 사주하며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한다.*주33)
보스니아 사태는 이러한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스니아의 분리독립은 격렬한 민족분쟁(보스니아 안에서는 내전을, 보스니아 밖으로는 크로아티아 및 세르비아와의 영토분쟁을) 불러일으키고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다투어 개입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주34)
이렇게 보스니아를 식민지로 만들어 놓은 이후 신-유고연방의 위협에 대비하여 이슬람-크로아티아측, 특히 이슬람측의 군사력을 집중 강화해 주고 있다. 96년 이후 이슬람측에 대해 무려 4억 달러의 군사원조가 제공되었던 것이다.*주35)
이처럼 유고 사회주의를 해체시키는 과정에서부터 보스니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서구 제국주의는 집요하게 공작을 해 왔다. 경제적 압박과 외교적 음모를 포함하여! 나아가 군사적 점령을 통하여! 이처럼 발칸의 현 상황, 즉 재발칸화는 이 지역 부르조아와 서구 제국주의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회주의 구성체를 해체시키고 자본주의 구성체로 개편하는 단계를 거쳐 이 지역 전체를 전면적으로 식민지화하는 단계를 밟아 가고 있다.
(5) 맺음말
보스니아는 이미 식민지로 되었다. 그 다음은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구-유고연방의 전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순서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이른바 '깡패국가'인 세르비아이다. 그리하여 세르비아의 내부와 외부에서 민족분쟁을 불붙이고 이를 계기로 군사적 지배를 관철시키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폭발 가능성이 큰 코소보에서 민족분규를 폭발시킨다.
그러면 이는 신-유고 연방 안의 보이보디나 자치주와 몬테네그로 공화국에서 세르비아계와 비 세르비아계 간에 민족분쟁을 불붙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신-유고연방 밖으로는 알바니아(이미 코소보 보호군이 속속 들어가고 있다!), 마케도니아(이곳에 이미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다!), 보스니아(내전 재발의 위험이 이미 조성되고 있다!)가 이 분쟁에 끌려들어 온다. 나아가 위에서 말한 분쟁들을 둘러싸고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항가리 등도 이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스와 터키도 이 분쟁에 연루된다. 나아가 러시아까지도! 그리하여 발칸반도는 재발칸화된다. 이 지역의 모든 민족이 분쟁에 휩쓸려 들어가고, 서구 제국주의(기독교), 러시아(동방정교), 터키(이슬람교) 등 3대 문명권이 각축전을 벌인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하여 촉발된 문명충돌이! 미국-나토는 이러한 사태전개를 내다보고 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전쟁을 확대시키고 지상군을 투입한다. 구-유고 연방의 전 지역에! 분쟁을 억제시키고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발칸을 재발칸화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통해 남동 유럽 지역을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확보하기 위하여!
□ 주 ----------
14) '인종청소'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 표현은 나치의 인종말살(genocide)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며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나 발칸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은 주로 주민의 대량추방이지 인간말살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인종주의(racism)와 인종간의 대립이 아니다. 인종차별과 인종문제는 지난날 나치 치하에서 극성을 부렸고, 오늘날 미국과 서유럽에서
부쩍 번성하고 있다. 한편 이 지역에서 야기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민족'의 문제이다. 이것은 영어로 표현하면 ethnicity이다. 이는 동일한 역사적 경험과 그에 따른 언어의 동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nationality와 다르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민족주의는 보다 큰 사회구성체를 지향하기보다 그것을 파편화시키는 방향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류공동체 형성을 향한 역사의 진전에 있어서 퇴행적이다.
15) 99.3.25, Editorial Board, "US-NATO bombs fall on Serbia : 'New World Order' takes shape" 및 99.4.15, David North, "The US and ethnic cleansing―the case of Croatia"를 참조. 일설에 의하면 크로아티아에서 추방된 세르비아인의 숫자는 50만 명에 달한다고도 한다. "50만의 사람
들이 크라지나에서 크로아티아군에 의해 추방되었다. 클린턴과 미국 정부는 크로아티아 정부가 50만 명의 세르비아인을 6백년 동안 살아오던 땅에서 쫓아내는 것을 방조했다. 이 사태에 대해 어느 누구도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라고 런던에서 있은 반전(反戰)집회의 한 세르비아인 참여자는 지적하고 있다. 1999.4.9, Vicky Short, "Protests in London against US-NATO
bombing"을 참조.
16) , 99.4.15, David North, 위에서 인용한 글을 보시오.
17)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1차대전 이전의 순-우익당의 범-크로아티아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1차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왕국 시기의 크로아티아 농민당의 반-세르비아 민족주의, 1940년대 나치스 치하 괴뢰국가 시절의 우스타쉬(Ustashe : 이것은 뭇솔리니의 파시즘에 고취된 크로아티아의 테러조직이다.) 체제하의 파볼리치(Pavolic) 정권의 극우 민족주의, 티토 치하에서 가톨
릭 교회가 선동한 '크로아티아 제일주의'를 거쳐 지금의 투지만 정권의 우익 민족주의로 이어진다. 우스타쉬의 기질은 나치의 야수성을 무색케 하는 극단적인 인종말살(genocide) 갈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스타쉬는 75만 명의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 및 반-파시스트 크로아티아인을 몰살시켰다. 우스타쉬는 보스니아에 인접한 자세노바치(Jasenovac)에 자체의 '죽음의 수용소'를 운영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것들 중의 하나였다. 우스타쉬 체제는 또 보스니아-헬체고비나를 합병하고 이 지역에서 인종말살을 통해 세르비아인들을 일소하고자 했다. 그런데 티토 치하의 '크로아티아 제일주의' 운동은 독일에 있는 우스타쉬 망명조직들과 폭넓게 연계관계를 맺어 왔고, 이것이 현재의 투지만 정권으로 이어진다. 이런 연유로 투지만 정권은 우스타쉬 체제를 찬양하고, 자세노바치 나치 수용소(death camp)에서 인종말살을 자행한 전범들을 석방하고 명예회복시켰다. 또 크라지나 민족청소를 자행한 전범들을 보호하고 있고, 극우 민족주의 조직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있다. 한편 세르비아가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아 왔다면 크로아티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이 두 민족(ethnic)은 언어는 같고 종교만이 다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민족(nation)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앞에서 인용한 '동유럽사' 및 , ICFI, Statement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Fourth International 7 May 1994.를 참조.
18) 보스니아는 내전이 휴전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서구의 식민지가 되었다.
1995년 '데이톤 평화협정'으로 두 개의 국가(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Srpska) 공화국과 이슬람-크로아티아 연합)로 나뉘어졌고, 이 두 개의 국가는 각기 독자의 군대를 지니고 있다. 그 상층에 명목상의 중앙정부가 있어 세 개의 민족을 대표하는 대통령단(團)이 있다. 이처럼 보스니아는 지금 특이한 병렬국가(parallel state) 체제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실권은 강대국들이 가지고 있다. 강대국들은 나토군을 배경으로 민간인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한다. [선출직까지도 사실상!] 강대국들은 최고대표(Supreme Representative)를 두고 있는데, 현재 그 직을 맡고 있는 자는 웨스텐돌프(Westendorp)이다. 웨스텐돌프는 지난 3월 5일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의 대통령 니콜라 폽라센(Nicola Poplasen)을 해임했다. 또 그 동안 관할권을 놓고 쟁점이 되어 왔던 부르추코(Breko) 읍 지역을 세르비아계로부터 빼앗아 중립지대로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세르비아계의 땅은 동서로 양분되고 서로간의 연결이 끊어지게 된다. 이에 세르비아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내전이 다시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나토 사무총장 솔라나(Solana)는 필요하면 무력으로 이 결정을 강제로 부과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강대국들은 보스니아를 사실상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세르비아계를 차별하고 있으며, 이렇게 선별적차별이라는 분할통치 수법으로 민족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 99.3.13, "Bosnia's Serbs, Two on the chin"을 참조. 아울러 99.3.24, Justus Leicht, "Dayton Accord near collapse : the political crisis in Bosnia"를 보시오.
19) (주19) (19) , ICFI, " Marxism, Opportunism and Balkan Crisis : Statement of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Fourth International 7 May 1994"를 참조..
20) 쌍방간에 현대식 무기와 장비를 갖춘, 세르비아 군대와 1만5천 명의 KLA간의 13개월에 걸친 격렬한 내전 과정에서 이런 비극이 자행되었다. The Internet Anti-Facist, 24 Mar 1999, "Dealing With Pro-war Arguments" edited by Jared Israel.을 참조.
21) 99.3.25, Editorial Board, "US-NATO bombs fall on Serbia : the 'New World Order' takes shape".를 참조.
22) 99.4.2, Editorial Board, "Behind and beyond the propaganda : Why is the US Bombing Serbia?"를 참조.
23) 99.4.3, "Victim of Servia―or NATO?"를 참조.
24) 코소보해방군이 마약거래 및 무기밀매와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피라미드 판매로 내전을 일으킨 바 있는 알바니아의 지배층과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벨그라드의 유고연방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발칸지역 전체를 식민지화하려는 미국-서독의 정보기관들과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그리고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이 자금을 대는 이슬람 용병들과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99.4.10, Michel Chossudovsky, "Kosovo 'freedom fighters' financed by organised crime"을 보시오.
25) The Internet Anti-Facist, 24 Mar 99, 앞에서 인용한 글을 참조.
26) Michel Chossudovsky, "Dismantling Former Yugoslvia, Recolonising
Bosnia"를 참조
27) 구-유고연방은 '자주관리형 사회주의' 체제를 취했다. 중앙집권적 계획 대신에 분권화를 택했고, 시장관계를 상당히 허용하는 '시장사회주의'를 취했다. 한마디로 '분권적 시장사회주의' 경제였다. 그러나 각 기업은 사회적 소유로 되어 있었고, 각 기업마다 '노동자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노동자 위원회'가 기업경영을 통제했다.
28) "1990년 1월 IMF와의 대기성차관 협정(Stand-by Arrangement) 및 세계은행과의 구조조정 차관(Structural Adjustment Loan)으로 경제[개혁] 패키지가 시작되었다. [이 패키지에는] 연방정부의 수입을 부채상환에 돌리도록 요구하는 정부지출 삭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지출이 삭감되면 벨그라드 연방정부에서 각 공화국 및 자치주에 대한 이전지출을 중지시키게 될 것이었다. ... 세르비아 공화국 정부는 마르코비치의 이 긴축 프로그램에 공공연히 반대했으며, 65만 명의 세르비아 노동자들이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파업으로 항의했다. 노조운동은 이 투쟁에 있어서 단결되어 있었다. 노동자의 저항은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졌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노동자들이 모두 다른 민족의 노동형제들과 어깨를 걸고 함께 떨쳐나섰다." 이상 Michel Chossudovsky의 앞에서 인용한 글을 참조.
29) 물론 이 때에도 모든 민족주의가 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만약 모두가 동일하다면 서방측은 이들 민족주의들간에 어느 한편만을 편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싸움을 붙이고 그 틈을 타서 이 지역 전체를 식민지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계급적으로 모두들 자본주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 자본주의가 어떠한 특성을 가지느냐, 특히 서구 제국주의와 어떤 다. 거기에는 각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성향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의 현재의 이해관계가 보다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는 친서방적인 성향에서 가장 앞장서 있다. 문화. 종교.역사의 여러 측면에서 그러할 뿐 아니라 현재 독일 자본과 가장 밀접하게 시장(자본 및 상품)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세르비아는 그 점에서 서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하여 세르비아계 자본은 구-유고연방의 나머지 부분이라도 가능한 한 크게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시장을 유지.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세르비아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하여 서구에 대한 일체감이 적고(동방정교를 믿고 있다), 치열하고 오랜 민족해방투쟁 경험으로 민족적 자긍심이 아주 높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르비아 부르조아계급은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걸고 서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서구 제국주의가 세르비아를 타킷으로 하여 발칸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고 있다.
30) 31) Michel Chossudovsky, 앞에서 인용한 글을 참조.
32) "1990년에 실시된 다당제 선거에서 경제정책이 정치쟁점의 중심이 되었다. 민족분리주의 세력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헬체코비나에서 공산당을 밀어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1990년 5월 프란죠 투지만이 이끄는 우파 민주연합이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자, 이 분리주의자들은 독일 외무장관 디트리쉬 겐셔로부터 분리독립을 공식 승인받았다. ... 독일은 자신이 크로아
티아를 승인했을 뿐 아니라 서구 동맹국들에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승인하도록 '외교에 속력을 내어' 밀어붙였다. 이리하여 유고의 국경은 2차 대전 당시 크로아티아(보스니아-헬체코비나를 포함한)가 우스타쉬 체제하에서 추축국측의 위성국이었던 시절의 국경선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을 갖추었다.
... 독일의 이러한 팽창은 유고에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부풀어오르게 했다. ... 독일은 중부유럽 전역에 걸쳐 배타적으로 경제적 지배권을 가지는 것을 추구해 왔다. ... 반면 미국은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느슨한 통일체를 선호했다. 미 국무장관 베이커는 크로아티아 대통령 프란죠 투지만과 슬로베니아 대통령 밀란 쿠칸에게 미국은 일방적인 분리독립을 격려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나 만약 분리독립을 해야 한다면 [유고연방과의] 협상을 통한 동의 하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상 Michel Chossudovsky, 위에서 인용한 글을 참조.
33) "영국에서는 초기에는 독일 제국주의를 견제하고자 발칸 지역을 자신과 오랫동안 동맹관계에 있던 세르비아를 통해 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독일 주도하에 유럽통합이 전전되고, 유고에서 크로아티아가 분리독립 하고, 보스니아가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등 사태가 급진전하자 커다란 정책선회가 일어났다. 영국 부르조아의 강경파―보수당의 대처와 노동당의 좌파―는 독일자본
의 경제적 우위를 상대하는 방법으로서 영국의 군사력을 적극 사용하는 입장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기조 위에서 이들은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세르비아에 반대하여 군사개입을 하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보스니아-이슬람계 정부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당시 노동당 좌파는 보스니아 내전은 억압민족의 민족주의에 대한 피억압민족의 저항적 민족주의이고, 민족자결권 확보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마치 우리나라에 한때 유행했던 '저항적 지역주의'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영국 노동당은 유고에 민족분리주의를 원조하고 제국주의의 개입을 부추기는 역할을 앞장서서 수행했다. , ICFI, 위에서 인용한
글을 참조.
34) 보스니아에 대한 영.미 제국주의의 개입은 다음과 같은 방향을 취했다. 즉 이슬람측 이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화에 순응하지 않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독일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92-95년 기간 동안 내전이 충분히 격화되도록 방치한 이후 나토군을 투입하였다. 그리고 군사적 지배를 바탕으로 보스니아에 대한 지배권에서 독일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영.미는 결코 일방적으로 이슬람-크로아티아 편만을 든 것이 아니었다. 이슬람-크로아티아계를 지원하여 세르비아의 공격(민족청소라 불릴 잔혹행위가 포함된)으로부터 살아남게 하면서도 이번 코소보사태의 경우처럼 세르비아계를 상대로 직접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세르비아계와 이슬람-크로아티아게가 각기 별도의 공화국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이렇게 병렬국가로 만드는 데(세르비아계가 관할하는 지역을 신-유고연방에 합병시키지 않고) 협조한 대가로 밀로세비치의 전범혐의를 면제해 주었다. (만약 보스니아-세르비아계가 신-유고연방에 통합되면 이슬람-크로아티아계가 관할하는 지역은 자연히 크로아티아에 통합될 것이고, 그러면 이 지역에 대한 영.미의 군사개입의 발판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보스니아는 사실상 분단국가로 되었다. 이렇게 보스니아를 동서로 분단한 이후 그것의 상위에 세 민족을 대표하는 세명의 대통령단으로 구성된 명목상의 중앙 행정부(parallel government)를 두었다. 그리고 이것의 상위에 점령군의 통치기구를 두었다.
그리고 이 최고 통치기구를 나토 세력이 파견한 최고대표(Supreme Representative)가 이끌고 있다.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의 점령군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 통치기구가 보스니아의 정치와 행정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의 (주18)을 보시오.) 그리고 정
치뿐 아니라 경제까지도 완전히 식민지 통치를 하고 있다. "[서구가 강요해서] '데이톤 협정'에서 동의가 이루어진 헌법에 따르면, 경제정책의 지휘권은 브레튼우즈 기관들(IMF와 IBRD 같은)과 런던에 위치하는 유럽개발은행(EBRD)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 이 헌법 7조는 '보스니아-헬체고비나 중앙은행 총재는 IMF에 의해 임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스니아-헬체고비나인이거나 그 이웃 국가의 시민이 아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중앙은행의 총재를 IMF가 지명할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은 이 헌법 하에서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협정 발효 후 6년간 ... 중앙은행은 화폐발행에 의해 신용을 확장할 수 없으며, 이런 점에서 통화위원회처럼 운영된다.(제7조)' 새로이 '주권국가'로 분리독립한 이 신생국은 자신의 통화를 가지지 못할 것이며(외환에 의해 전적으로 뒷바침될 때에만 지폐를 발행할 수 있다.),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국내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여타의 신생 분리독립 공화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스니아도] 국가의 재건을 위해 자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외채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첫댓글 에휴 세계엔에서 나오는 글은 거의다 쓰레기에요... 뭐 다 읽지도 않았지만 이글도 1. 서구 제국주의에만 책임을 묻고 러샤에는 면죄부를 주는 점에서 2. 사회주의 (ㅡㅡ;;; 실제로 서유럽이 동유럽보다 더 사회주의적이지 않나요)의 잔재를 몰아내고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서방의 음모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에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뭐 그나마 정리된 글이고 제국주의니 서방음모론의 시각은 문제가 있지만 애초에 왜 유고가 분리되게 되었는가? 과연 분리주의자들의 동기는 무엇이었느냐에 관해서는 나름 설득력 있는 시각을 제기하는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적어도 이런 글은 그 시각의 넓고 좁음의 유무를 떠나서 그러한 시각까지 통합해서 나름 소스로서 쓸만한 글이죠. 출처를 안밝혀서 안습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