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희망과 늦깎이의 열망.
삼성 신인투수 이정호(19)와 한화 중고참 투수 지연규(32)는 열세살 차다. 얼핏 보아 비슷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정호가 부푼 꿈을 안고 당당히 첫 발을 내딛는다면 지연규는 좌절의 밑바닥에서 마지막 한가닥 희망을 잡고 새롭게 마운드로 돌아왔다.
전혀 다른 처지에 놓였으나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두사람은 같은 출발점에 서있다. 팀의 히든 카드로 쓰여질 것이라는 점도 같다.
◇ 미래를 향해 쏴라
"저런 공을 고교 애들에게 던졌으니 칠 수가 없지…. "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장에서 이정호의 연습 투구를 볼 때마다 삼성 이선희 투수코치는 혀를 내두른다. 최고 구속 1백51㎞, 거기에 커브.슬라이더는 물론 포크볼까지. 아무리 그가 초고교급 투수였다지만 고졸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에 괜한 노파심이 들 정도다.
그는 1982년생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어릴 적부터 프로야구를 보면서 스타 플레이어를 꿈꿔 왔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무대에 서기를 고대해 왔다.
대구상고 졸업을 앞두고 입단한 이정호는 "그 꿈이 펼쳐질 날이 멀지않다" 며 "최선을 다하겠다" 고 다짐했다.
◇ 과거를 묻어 버린다
1백44㎞. 지난 19일 연습경기 도중 스피드건에 찍힌 지연규의 투구 속도를 보자마자 이광환 감독은 "연규 그만 내려보내" 라고 소리쳤다.
"저러다 다시 다칠까 겁이 나요. 또 고장나면 젠 영원히 끝입니다. "
그랬다. 92년 당시 역대 신인 최고연봉을 받고 프로에 뛰어든 지연규는 겨울 스프링캠프 도중 지나친 연습 투구로 팔꿈치에 고장이 났다. 그리고 98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될 때까지 거둔 성적은 고작 3승4패. 그는 쓸쓸히 마운드를 떠났다.
이후 대전고 코치로 지내면서도 '내가 얼마나 던졌다고 후배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쳤다. 하지만 번번이 전국 무대에서 탈락하자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았다.
자격지심을 덜고자 후배들과 같이 뛰면서도 그는 다시 한번 던지고 싶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한화 연습생을 뽑는 테스트에 그는 응시했다. 거짓말처럼 1백45㎞를 던졌다.
그는 10년이나 어린 후배들과 같이 신인 대우를 받으며 애리조나 전지훈련장을 뛰고 있다.
"다섯살 된 딸 아이는 제가 야구했다는 걸 믿지 않아요. 그 애에게 자랑스런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