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주네(윤수종, 2026년 은퇴 예정)는 2024년 봄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의 <성격분석>을 출판했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넘어 오르곤 생체신체학을 지향한다고 한다. 2023년 대학원 수업에서 우리는 사드주네와 함께 교정과정에 있던 <성격분석>을 읽었다. 이때 사드주네는 MBTI 검사가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16개로 분류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성격을 규정, 고착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면서 비판했다. 나는 사드주네의 MBTI 비판이 다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이 타인을 16개로 나눠서 이해해주면 평소처럼 주로 이분법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문명의 발전과 진보된 선량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사드주네의 MBTI가 너무 궁금하다. 언제 사드주네의 기력이 쇠약해지면 불시에 찾아가서 묶어놓고 MBTI 검사를 해야겠다. 휴대폰을 훔쳐서 MBTI 검사 결과 알려주면 돌려준다고 하면 검사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사드주네의 MBTI를 추정해봄으로써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첫째는 안티MBTI인 사드주네 긁기, 둘째는 사드주네와의 일화 회고하기.
사드주네는 E인 것 같다. 주말마다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파워 외향 느낌. 또 수업에 와서 영감을 받고 자극을 받아 자기 머리를 굴린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공부라는 게 누군가의 똑똑한 말은 물론 누군가의 헛소리까지 모든 게 공존하는 그런 공간에 가서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단 이야기였다. 그는 맞는 말, 옳은 말만 있을 때는 토론이 풍부해지지 못한다고 여긴다. 역시 그는 개소리도 자기 자양분으로 쓰는 인간이다. 깔깔대는 태도로 모든 걸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진정한 욕심쟁이. 그런데 사실 수업에서 쓸데없는 말이란 건 하나도 없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도 그걸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것들이 다시 점검된다. 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존재일 때 내 의견을 어떻게 설득력있는 것으로 다듬을 수 있는지 역시 필수적인 과정이다. 여기서 내 머릿속 어떤 생각이 끌려나오고 다른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수정되고 교정되고 그런 과정 자체가 공부에 큰 도움을 준다. 수업이라는 장면은 그러니까 공부하는 이에게 관객같은 역할을 해주는 건데 이런 식으로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라는 게 너무나 E처럼 들렸다.
사드주네는 보통 싱글싱글 웃는 태도로 앉아서 자기가 하고싶은 말은 다 하기 때문에 타인이 줄 수 있는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는 반대로 사드주네가 종종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교정할 의지가 없으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사드주네는 타인을 바꾸려고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쯤에서 아마 사드주네의 주장대로 그가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것 같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관습적인 생각이 변화되길 바라는 교수가 사드주네인데 그가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바꾸려고 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더 강하게 믿을수록 타인이 자신의 진심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망하고 화를 낸다. ‘결국 쟨 뭐라고 좋은 말 해줘도 안 들어. 그래서 나도 조언 안할거야.’ 여기서 본인의 조언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는 의심이 없다. 물론 세상의 경험적 차원에서 보면 그런 조언들이 대부분 현실적이고 유용한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이런 조언들은 모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타인이 그 견해나 행동을 바꾸길 바라는 틀 안에 있다. 반면 사드주네는 현재적인 방식으로만 counter역할을 한다. 수업에서 모두가 자신의 관습적 사고의 벽을 마주하는 순간을 겪게 만들어주려고 사드주네는 애쓴다. 그럼 이건 어때, 저런 어때 하면서 나의 반동성을 마주할 때까지 끌고간다. 그는 현재의 토론 장면에서는 열렬하지만 학생이 그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이 자극이 미미할지라도 혹은 영향이 전혀 없어보일지라도 삶을 길게 놓고 보면 언젠가 자신의 학생이 이런 자극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드 주네는 그거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자신의 수업이 나비효과 역할을 했다면, 그런 잠재적 진실만으로도 신이 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드주네가 N이라고 추정한다.
사드주네의 기억력은 정말 나랑 똑같아서 동질감이 느껴지는데 기억력만 그렇고 공부 부분은 다르다. 내가 서울대랑 같을 수는 없쟈나? 사드 주네는 나를 2년 가까이 봤는데 내가 ‘둥이가 둥이가’ 할 때 그걸 ‘애기 이름을 대충 둥이라고 부르나보다’라고 생각했다더라. 관심없어서 흘려듣고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나는 쌍둥이 엄마고 카톡에 쌍둥이 사진이 300장 있고 ‘둥이 하원 때문에 오후에 수업 하면 좋겠어요’ 한 적도 있고 ‘둥이 하원 때문에 일찍 가야돼요’ 한 적도 있는데 우리 사드주네는 그걸 하나도 기억 못하다가 최근에 나한테 아 그 둥이가 쌍둥이냐며 묻더라. 와, 기억력 너무 나같아. 자기가 관심있는 거만 기억하는 저 선택적 기억력. 나는 그래서 왜 사드주네가 매일 그렇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니체가 말하길 행복하려면 기억력이 나빠야 된다고 했다. 난 사드주네의 저 기억력, 나에게 관심없음을 분명히 증명해주는 저 기억력이 너무 사랑스럽다. 동시에 사드주네가 나에게 자기 방식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관심이 나의 방식이 아닌 것까지 사랑스럽다. 어쨌든 사실 정보 기억에 대한 저 빈약한 능력을 보면 역시 N인 것 같다.
MBTI에서 T와 F구분, 그리고 J와 P구분이 남았는데 증말 T일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 언젠가 교수님 공감능력이 좀 떨어지시죠? 하니 자기는 공감이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며 눈을 부라리더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의미에서의 공감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사드주네는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게 성립하는지 궁금하면 저도 쓰기 귀찮으니 직접 겪어보세요. 이제 MBTI 분류법으로 사드주네를 규정하는 만행과 더불어 사드주네 톤 분석을 해볼까. 사드주네는 겨쿨인 것 같다. 반짝거리는 귀걸이도 잘 어울리고 네이비 정장도 예쁘게 어울리는 걸 보고 아마도 겨쿨이겠지 생각했다. 사드주네가 눈부시게 하얀 모피를 입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잘 어울리더라. 교수가 입으면 두고두고 회자될 스타일이니까 은퇴하고 입으면 될 것 같다. 향수 뭐 뿌리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디올이랬던가. 디올도 잘 어울려. 구 맑시스트, 현 욕망주의자 사드주네와 디올, 이미지가 딱이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란, 타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사드주네는 외모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진 못했어도 매력덩어리가 된 특별한 사람이다. 사드주네, 당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당신의 건강과 즐거움과 죽을 때까지 생기로 가득한 삶을 기원합니다. 제가 기원하지 않아도 잘 하시는 것 같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미끄러지는 법이 있다고 하니, 외롭고 우울한 때가 있다면 언제든 당신의 제자들을 찾아주세요. 이렇게 저에게 감히 사드주네의 “제자” 호칭을 붙여봅니다, 사랑을 전하며.
+ 이 글은 <성격분석> 출판 즈음에 작성한 것이라 그때의 일화부터 시작하는데 은퇴하실 때 올리려고 기다렸어요. 이제 2026년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으로 더는 미룰 수 없기에 올립니다.
첫댓글 요즘은 외모의 축복도 가끔 느낍니다. 열심히 피부성형하고 목사처럼 미소지어 얻은 결과. ㅎㅎ.
와 맞아요 저한텐 사이렌같은 사람이신데요 🚨한 번의 수강만으로 매료됐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보기만 하다가 이제서야 말을 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