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꽃을 심는 시기다.
가브리엘이 둘째를 낳아 안젤로를 돌보는 게 내 미션이 되었다.
배불뚝이 며느리가 순산으로 몸을 풀어 홀가분하겠다 싶어 안도한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첫정인 안젤로가
동생의 탄생으로 더 예민해졌다.
동생스트레스는 본능인가?
제 신생아 사진을 보고는 예쁘다고 하더니
둘째 신생아 사진을 보고는 밉다고 한다.
동생 싫다고 벌써 질투를 한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며느리 대신 사돈과 나는 교대로 안젤로를 돌본다.
그도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보내야 한다고 해서 가기 시작했는데
아침이면 옷을 입히는 것부터가 마음의 진을 뽑는다.
원래 옷갈아입기란 아기들에게 불편한 행동인데
가기 싫은 어린이집까지 가야 하니 아침밥이고 뭐고 짜증이 덕지덕지다.
"안젤로! 밖에 꽃이 폈네.
어린이집 옆에 멋진 미끄럼틀 타면 재미있겠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맛있는 알쵸코를 사줘야겠네."
온갖 감언이설이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 줄 알면서도
목소리를 한껏 높여 기분 좋은 어투로 기분을 맞추며
가급적 엄마없는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달래고 칭찬하며 진땀을 뺀다.
귀가하는 길.
집을 빙 돌아 오는 길에 벚꽃이 만개했다.
"꽃이 팝콘 같아. "
"우리 안젤로 그렇게 예쁜 말 누가 가르쳐줬어?"
"안젤로 엄마가..."
아이는 집에 바로 안들어 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집에 온 후엔 팝콘 발음에 꽂혀 신나게 웃었다.
아이가 웃으니 나도 웃는다.
며느리는 순산의 달인 같다.
이번에도 네 시간만에 아들을 쑥 낳았다.
첫애를 낳고는
"어머님, 아기 낳기가 생각보다 쉬웠어요.
힘 한 번 줬더니 나오던데요."
하고 너스레를 떠는 며느리 얼굴은 여기저기 핏줄이 터져 있었다.
"얘! 너 얼굴 실핏줄 다 터졌어. 애썼어."
분만실 앞에서 사돈과 나는 왠지 모를 감동으로 눈물이 흘렀었다.
자연분만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며느리가 대단해보였다.
요즘 병원이 보호자 한 명만 출입이 가능해서 아직 아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보내온 사진을 보니 큰애와 엇비슷 닮아 보인다.
세상에 무사히 안착한 거 축하해, 아가야!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반가워.
아기는 얼른 나오고 싶어서인지 예정일보다 10일을 당겨서 세상구경을 했다.
미처 이름이 다 짓기전이라 오빠에게 서두르라 독촉을 했다.
라파엘은 신학교에서 새아기의 세례명을 공모하고
나는 미카엘과 임마누엘, 그리고 솔로몬을 추천해보았다.
아직 유아세례까지는 시간이 넉넉한데
설렘과 희망이 집안 가득찬 것이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마음을 다잡는다.
며느리와 아들이 직업을 가졌으니
나이 들어 뭐하겠나, 자식 사랑하지.
축하한다는 이웃들의 말에 기쁘기도하지만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세대엔 부모 도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요즘 세대는 아이를 낳고는 당연히 부모가 도와주리라 믿으니
힘들다는 말은 그저 사치다.
몸 아프니 살살하라고도 한다.
"이 나이되면 아이 안봐도 아퍼,
손자보면서 아프면 영광이지, 뭐."
나도 힘들다.
그러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싯귀가 문득 떠올랐다.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