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며칠이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은 위의 날짜를 알기위하여 오늘도 핸드폰을 열어본다. 날짜에 무감각해지는건 무슨 이유일까? 매일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머리가 나쁜 이유인가?
휴.......
고된 육일간의 노동후 맞이하는 달콤한 하루의 휴식. 즐겁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동안 미루어 왔던 빨래를 시작한다. 물론 세탁기.
세제 사는 걸 하루, 이틀 미루다 어제서야 겨우 가루비누를 샀다.
190엔, 호마크에 들렀다. 호마크의 기획 상품 그런 비슷한 상품인듯 하다.
어쨌든 가루비누, 그리고 변기 위에 놓는 물을 깨끗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샀다 88엔
집에 돌아와 상쾌한 마음으로 변기 위 물 투입구에 설치하려 하니 캐이스가 없었다. 이런 캐이스가 따로 필요한 모양이다. 조만간 다시 호마크에 들리리라.
플러그를 꼽고 물 투입구에 연결된 호스를 수도꼭지에 연결한다.
자! 이제 빨래 시작....
아참.. 가루 비누를 빠뜨렸다. 비누 한스푼 그리고 삼분의 일.
신기하게 세탁기 고유의 소리를 내며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윙윙!..
신기하다.
촌놈 한참동안 세탁기를 바라본다.
물이 세탁조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다.
아침을 챙기기 시작한다.
일회용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밥 한공기 그리고 낫또 한개.
낫또를 잘 비비기 시작한다. 간장을 치고 잘 비빈다음 밥 위에 얹고, 미역국과 함께 아침을 대신한다. 너무 소박한 아침이지만 낫또 하나면 영양 만점.
점심은 좀더 잘 먹으리라.
띠띠띠!....
세탁기라는 신기한 녀석 빨래가 끝났다고 알려온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받았던 Y, 그로부터 함께 받았던 철사로 된 옷걸이에 빨래를 걸어 널기 시작한다. 밖에 널까 하는데 이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왼쪽을 돌아보면 보이는 커다란 YEBISU BEER 포스터, 빨간색 톤의 포스터가 하늘색 카페트 위에 놓여진 정사각형의 호피무늬의 카페트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TV옆에 창문이 있다. 혹은 창문 옆에 TV가 있다고 말을 해야할까? 무릅 높이에서 부터 시작되는 창문 밑에 3리터 잭 다니엘스, 헤르메스 슬로진, 메론 리큐르, 경월 소주 네모난 병, 읽기 어려운 한자로 쓰여진 일본술, 어제 회사로부터 받은 포도주 한병 그리고 며칠전 혼자서 마신 YEBISU 500미리 빈 캔이 나열되어 있다. 안쪽의 노락색 커텐과 밖의 회색빛 케텐과 절묘한 분위기이다. 좁지만 아늑하고 멋진 공간에 원색의 녹색 빨래줄을 가로 질러 건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방안의 모든 물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랫만에 빤 작업복, 내일 입어야 하기에 비를 맞으면 큰일이다.
방안을 멋없게 가로 지르는 녹색의 빨래줄위에 파란색 작업복이 축 늘어진 시체처럼 걸려 있다.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 오늘만 참자.
연이어 시체 옆으로 사각 팬티. 양말, 수건. 그리고 평범한 옷들....
빨래를 다 널었다.
하하하.. 이런 방 분위기가 묘하다. 이런날 누군가가 찾아 온다면 큰일이다.
세탁기란 녀석 참 신기하다. 손빨래 해서 널던 빨래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이 없다.
세탁기란 녀석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해진다. 상쾌한 마음에 자전거를 밟는다.
일요일날 도서관 직원은 언제나 같은 얼굴이다. 이제 나의 얼국이 낯이 익은 탓일까?
굳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다. 연하게 화장을 한 그녀, 언제나 책을 읽고 있다.
그녀를 지나,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20미터 정도를 걸으며 컴퓨터가 있다.
아침 일찍이라 아무도 없다.
오늘도 일등 출근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메일함을 열어본다.
피의 끈적거림이 느껴지는 누나의 메일.
집안은 별일 없고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다 한다. 말린 벼를 전부 다 담으셨다 한다.
올해도 풍년일까? 쌀값이 좀 올랐으면 좋겠다.
젊음의 땀냄새가 베어있는 친구의 메일.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모양이다.
덩달아 나의 심장도 그 녀석과 함께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향기를 발산하는 여러 메일들,
일주일에 한번씩 소식을 확인하는 일은 퍽 즐거운 일이다.
큰 즐거움이다.
이번주는 지난주 보다 메일이 줄었다.
흑흑흑.. 무심한 녀석들....
하하하...
이내 활기를 되찾아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린다.
두두두두둑... 타타타타..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닌다.
나를 알고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의 소식을 전한다.
휴..... 한글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나이을 먹어감에 따라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진다.
한글을 사랑해야 하는데...
며칠전 L, 그를 만났다.
처음 일본에 왔을때 자주 전화재주고, 자전거를 구해준 유학생 J, 그로부터 며칠전 연락이 왔다. 워홀로 온 친구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보라 한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시 한번, 바쁜 모양이다.
저녁을 먹을 무렵 L, 그로부터 전화가 온다.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11시 경 그를 만났다. 미나미 1 니시 22에 있는 세이코 마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보이지 않는다. 그 근전 세이코 마트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 돌았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그를 만난적이 없으니 그를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L로 예상되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한다. 기타 1 니시 22에 있는 세이코 마트에 있다 한다.
바보!
아니면 나의 혀가 짧은 탓인가?
그와 함께 방안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분위기 깨는 녹색 빨래줄이 방안을 가로지르기 며칠전의 밤이다.
그의 이야기를 지금 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 L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워홀 비자를 받아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정도, 그리고 그가 빡빡 머리라는 정도, 그리고 한국인들과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정도,
위스키를 붓자 얼음이 따각 따각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몇시간 전에 산 우유도 함께 내 놓았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 일본에 오게된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나를 만나러 오게 된 이야기.
일본어 학원은 3개월을 끊었다. 한다. 11월말에 학원은 끝나고 12월 3일 부터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한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은 학원 기숙사 한달에 5만 8000엔. 11월 기숙사에 머무를 여유가 없다 한다. 간신히 기숙사 비는 치를 수 있지만 그렇 경우 생활이 많이 힘들다 한다. 스키장에서 일을 시작하기전까지 한달 정도 같이 살 수 없는냐는 그의 부탁...
순간 머리속을 스치는 많은 기억들.
내가 처음 삿포로에 왔을때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의 방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머무를 수 있기를 간절해 바랬던 적이 있다. 물론 자존심상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간절한 눈길을 보냈던 적이 있다. 물론 차가운 유스호스텔 밖에 내가 머무를 곳이 없었다.
그때의 그 절박했던, 간절했던 마음을, L, 그를 만나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감정을 새삼 다시 떠올린다. 그때 내가 느꼈던 이유없는 야속함, 절망감을 L, 그가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L, 그는 처음 일본에 와서 굳이 한국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한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먼저 인사하고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한다. 한국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삿포로에 그러한 이유에 왔고 지금 여기에 있는 이상 굳이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한다. 아르바이트를 생각처럼 쉽게 구할 수 없고, 경제적인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은 역시 한국사람들 뿐이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지금 여러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그날밤 나를 만나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군 제대하고 7월 부터 11월까지 이스라엘 키부츠에 있었던 적이 있다. 처음 거기에 갔을 무렵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며칠후 한국사람이 왔었고, 최정적으로 4명이 이르게 되었다. 처음 그들이 한국말로 이야기 해도 일부러 영어만을 사용해서 이야기 했다. 그러 인해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한참이 지난 후 한국말로 그들과 이야기 한 후이다.
낯설고 먼 그 곳까지 가서 굳이 한국말을 쓰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걸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오해도 받았었고 그들과 친해지는게 힘들었다. 그때의 기분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때 그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낯선 곳, 각자, 자신의 꿈을 찾아 거기에 왔고 거기에서 만난것도 큰 인연인데, 그 중요한 만난을, 소중한 추억들을 같이 공유했던 사람들인데, 그들과 좀더 친해 지지 못했던게 못내 아쉬었다.
L,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나와 나이가 같은 L, 그와 뭔가 통하는 게 있었던 탓일까? 이야기가 길어져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방을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서 잘 생각해 달라는 마지막 간절한 부탁과 함께 빡빡 머리에 솟아난 밤송이처럼 짧은 머리로 밤공기를 헤치면 그는 사라졌다.
월요일까지 최종 결정을 해서 그에게 연락 하기로 했다.
방값과 생활비는 절반 그가 부담한다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다. 혼자만의 공간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함께 방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의 기분을 충분히 알면서도, 처음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엇던 유학생들의 기분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12월 3일부터 일하기로 되어 있다던 스키장에서 급여와 근무 시간 등의 조건을 담은 편지가 아직 도착 하지 않았다 한다. 스키장에서는 벌써 보냈는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라며, 스키장에 연락해서 다시 보내기로 했다한다. 그가 스키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90%
이상의 확실성이 있다 해도 아직 확실히 편지가 도착한게 아니다.
만약 그와 함께 방을 공유해 같이 생활해 나간다 했을때 만약 나머지 10%의 불확실성에 의해 그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12월이면 한겨울이다. 눈이 쌓여 도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빙판길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 그런 상황에서 L, 그를 12월 3일이 되었을때 나가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한달만이라면, 꾹 참고 살 수 있겠지만 상황이 잘 못되어서 정말로 그 이후가 확실하지 않다는 불확실성이 날 망설이게 만든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예전 같은면 끓어 오르는 그의 피의 온기를 느끼자 마자 당장 같이 살자고 이야기 했을 나인데 월요일까지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어느정도 같이 살리라 마음이 기울었지만 월요일까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에게 너무 잔인한 일인가?
현실적이 되어 간다는 것은 퍽 슬픈 일인듯 하다.
포마이커 책상처럼 딱딱한 느낌이다.
손때가 묻어, 반질 반질 윤이나는 나무 책상이 그리운 것일까?( 예전 중학교때인가? 비슷한 냉용의 수필을 읽은 듯 하다)
살다보면 그렇게밖에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삶이 힘들다는건, 어쩌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 슬프다는 건 어쩌면 딱딱해져가는 자기 자신, 현실적이 되어버리는 자기 자신을 참기 힘들다는 걸지도 모른다.
"탁한 강물에 비치는 맑고 파란 하늘 처럼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
어려운 상황에 있는 그에게 과연 방값과 생활비 절반을 다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감상적인가?
감정적으로는 그에게 방값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현실은 나도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방값을 받으면 사고 싶었던 M.D Player를 살 수 있다는 현실적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상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가?
탁한 강물에 비치는 맑고 파란 하늘을 느낀 밤이다.
괴로운 밤이다.
피로감과 술기운에 잠에 빠져든다.
.......
......
눈을 떴다.
시계를 바라본다.
이런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부비며 다시한번 확인한다.
....
8시 32분.
이런 큰일이다.
보통 8시 30분 40분까지 출근하던 나인데, 늦어도 9시까지는 출근해야 하는데,
지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나인데,
커다란 위기이다.
세수를 하지 못했다.
아침을 먹지 못했다.
컵라면 한개와 하얀 쌀밥을 그냥 담아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달리기 시작한다.
드드드득...
출근 카드에 출근 시간이 찍힌다.
8시 56분.
완전 기리기리다.
온몸에 땀이 쫙 흐르고 순간 긴장이 확 풀린다.
꽤 빨리 달린 듯 하다. 신호 무시,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평소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13분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
자전거 폐달을 정신없이 밟는 동안 머리 속엔 L, 그와 방을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뿐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자전거 바퀴처럼 어려운 생각이 나의 머리속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다....
....
끽........끼긱..
신호등이다.
가로질러 차들이 달린다.
멈출 수 밖에 없다.
월요일, 내일까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제는
머리속의 어지러운 소용들이를
멈출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