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코스
코스 : [미포-달맞이동산-송정해변-오랑대-대변항] (16.7km)
글 윤문기 (사)한국의길과문화 사무처장, 발견이의 도보여행 운영자
변화무쌍한 길의 조화에 빠져드는 2코스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어 가며 느림보처럼 걸었는데도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1코스 17㎞를 다 마쳤어도 해가 중천이다. 내친김에 해파랑길 2코스, 문탠로드와 삼포길을 걸어 송정해변까지 가보기로 한다. 2코스의 출발점인 미포를 지나자마자 곧 선로 변경으로 기차 운행이 중단된다는 동해남부선 단선 기찻길을 건넌다.
달맞이고개 옆에 조성된 문탠로드는 ‘달빛 아래 걷는 길’이라는 그 뜻과는 다르게 달빛을 보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숲길이다. 남부 해안 숲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스레피나무와 해송이 서로의 영역 구분 없이 푸른 숲을 만들어 낸다. 어두운 밤에도 무릎 이하를 비추는 조명등을 해놓아서 언제나 찾는 이들이 많다. 달빛으로 샤워할 수 있을 만큼 하늘이 툭 터지는 곳은 문탠로드 중간에 있는 전망데크 정도일 만큼 길은 울창한 숲을 따라 흐른다.
문탠로드에서 시작된 숲길은 꼬불꼬불한 오솔길로 이어지다 작은 찻길 하나를 건너곤 다시 삼포길이라는 숲길로 이어진다. 삼포길의 삼포(三浦)는 2코스의 출발지인 미포와 조개구이로 유명한 청사포, 그리고 삼포길의 종점인 구덕포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아득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숲길 걷는 맛은 짜장면도 먹고, 짬뽕도 더불어 먹는 것 같은 오묘한 재미다.
문탠로드와 삼포길을 모두 합친 숲길은 5㎞에 걸쳐진다. 문탠로드가 곳곳에 설치된 조명으로 약간의 인위적인 맛이 있다면 삼포길은 오롯이 사람의 발길로 닦아 낸 수수한 멋이 있다. 유순한 자리만을 골라 흐르고 흐르던 숲길은 결국 송정해변 남쪽인 구덕포 쪽으로 내려선다. 마리나리조트 건설로 북적이는 구덕포는 부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아낀다는 송정해변과 맞닿았다. 한적했던 이곳도 개발의 여파가 밀려들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여백의 미가 남아 있어 걷기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백사장도 넓고 수심도 낮아 실질적인 여름 피서지로는 이곳을 으뜸으로 치는 부산 사람들이 많다.
송정해변까지 왔으니 이날 하루 25㎞를 조금 넘게 걸은 셈이다. 짧지 않은 거리지만 적당한 시점마다 해안절벽길, 도심길, 숲길, 해변길 등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길이 번갈아가며 바통을 이어받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운 걷기의 연속이었다. 바닷가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다채로운 변화를 갖는 것은 해파랑길 부산 구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각 구간을 하나하나 떼어 놓고 봐도 훌륭하기 그지없는 길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며 이어지기 때문에 해파랑길의 대표주자로 손색없다.
이날은 깨끗한 숙소가 많은 송정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송정해변은 세꼬시를 잘하는 영변횟집과 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등대양푼이국수집이 먹을 만한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세꼬시 횟집은 예전에 가본 터라 해변 북쪽 모퉁이에 있는 국숫집의 맛소문을 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기어이 확인하고 숙소로 든다.
시랑대와 해동용궁사, 오랑대로 이어지는 비경길
다음날 일찌감치 일어나 송정해변 죽도공원의 일출로 하루를 시작한다. 송정포구의 어선들도 저마다 작업장을 향해 일출로 붉게 물든 물결을 가르며 포구를 떠난다. 해파랑길을 걷게 되면 이렇게 동해로 떠오르는 일출과 새벽포구를 떠나는 어선이 오버랩되는 풍광과 친해진다.
송정해변을 떠난 길은 작은 뒷동산을 돌아가는 숲길로 향한다. 잘 생긴 해송들이 여러 그루 자라는 것으로 보아 해신당(海神堂)이 있을 법한 곳이다. 역시 ‘공수마을 신당’이 송림 가운데 자리 잡았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미신도 많고, 금기도 많다. 이런 수많은 신의 존재는 힘겹고 거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해신당 숲길은 곧바로 공수마을로 이어진다. 아직 물기가 흥건한 미역들이 포구 공터에 오와 열을 맞춰서 늘어섰다. 이른 새벽부터 미역 말리는 작업을 한 모양이다. 요즘같이 볕이 좋을 때는 하루만 말려도 내놓을 만한 물건이 된다고 한다. 하루 동안 이 어마어마한 양의 미역을 널었다 다시 걷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고단하다. 맛있는 미역국 한 그릇을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의 노고가 앞서야 한다. 걷는 길 역시 그 길을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았겠는가. 어느 길에서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단함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담한 포구의 정겨운 풍광을 지나면 시랑대까지 이어지는 해안숲길이 나온다. 이 숲길은 삼포길과 다르게 바다 쪽으로 전망이 툭 터진 길이어서 해안풍광과 숲길의 청명함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얼마간 숲길을 걷다 임도 같은 길을 오르면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해동용궁사 담장을 만난다. 여기서 담장 직전에 오른쪽의 협소한 길로 들어가면 기장군 7경에 들어간다는 시랑대(侍郞臺)다. 길 입구에 안내판이 붙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곳은 300여 년 전 기장현감이었던 권적(權摘)이 관내 제일의 명승지였던 이곳에 자주 놀러와 풍월을 읊고 바위에 시(詩)를 각자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큰 바위에 자기의 벼슬이었던 시랑(侍郞)을 따라 ‘시랑대’라는 글씨를 새긴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멋지다. 지금은 바다 쪽으로 세운 미끈한 돌탑들이 이런 바다풍광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시랑대와 담장을 사이에 둔 해동용궁사는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절이다. 바닷가 갯바위 지역에 절묘한 가람배치로 자리 잡아 많은 관광객들과 불자들이 줄을 지어 찾는 곳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사찰 중에서 이만큼 바닷가에 근접한 곳을 본 적이 없는 듯싶다. 바다를 앞마당 삼아 전각들을 배치한 모습이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해동용궁사를 거치는 해파랑길은 바닷가 쪽으로 세워진 문수보살 불상을 지나 붉은 다리를 건넌다. 다시 해안을 만나 걷는 길은 일출명소로 알려진 오랑대공원이다.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 다섯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는 오랑대(五郞臺)는 갯바위에 지어진 용왕단(龍王壇)을 넣어서 일출 사진을 촬영하는 명소로 아주 유명하다.
오랑대공원을 지나 만나는 작은 포구 연화리는 해산물 난전이 좋다. 해삼, 멍게, 전복을 쓱쓱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좋고, 출출할 때 즉석에서 끓여 주는 전복죽 또한 그만이다. 전복죽으로 배를 불리며 걸으니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에 당도한다. 대변항은 해파랑길 2코스의 종점이자 3코스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갈치구이가 유명한 집이 있는데, 이미 전복죽으로 배를 채운 터라 곧바로 길을 이어 가기로 했다.
해파랑길 2코스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