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망해암(12.8) 오늘은 오래간만에 망해암에 가보기로 했다. 지난 4월 초순에 갔으니 꽤 된 것같다. 4월초는 진달래꽃이 막 피어나던 때 였고 지금은 벌써 첫눈이 왔으니 겨울이 깊어진 것이다. 대림대학 뒤의 철계단을 통해서 올라가기로 했다. 대우아파트 맞은 편으로 해서 정자를 거쳐 가는 길도 있지만 대림대학 뒤로 올라가기로 했다. 날씨가 그리 청명한 편은 아니어서 안양시내의 조망이 흐린 편이었다. 거기다 오후가 되었으니 빛조차 역광이어서 조망을 별로 일 것같았다. 날씨가 추우므로 목도리에 쪼끼에 완전 무장을 하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더워서 땀이 다 났다. 그런데 올라가면 추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대림대학 바로뒤의 봉우리를 올랐다. 거기만 올라도 전망이 좋은 편이다. 안양이란 지명이 부처님이 사시는 극락정토를 의미하니 참으로 좋은 지역이고 이름도 좋다. 거기만 올라가도 평촌도 보이고 안양시 만안구 지역도 보이며 수리산도 보인다. 일단의 봉우리를 올라가니 소나무길이 이어지고 거기를 지나면 또 봉우리 하나를 올라야 한다. 봉우리 올라가는 길은 바위로 되어 있는데 멋있는 소나무 하나가 바위에 자라고 있다. 그곳에서 올라가서 만안구 지역과 석수동 방향을 보는데 어느 산악인을 추모하는 비석이 하나 있다. 지난 번에도 발견을 했는데 이번에도 보이는 것이다. 어느 나쁜 친구가 비석의 머리를 깨뜨렸다. 그곳에서 내려가면 포장된 도로를 만난다. 그 도로는 대림대 앞으로 해서 , 임곡중학교, 임곡주공아파트 단지옆을 지나 망해암과 국가시설로 올라가는 길이다. 포장된 도로에서 조금 가면 만안구민들이 산에서 약수도 뜨고 운동도 하는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날씨가 추워서 한분이 운동하고 계셨다. 거기서 조금가면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폐가 같은 주택이 하나있는데 포장된 도로는 그 위로 가고 그 밑의 오솔길이 지름길이다. 오늘은 오솔길로 가보기로 했다. 오솔길로 가면 망해암 화장실 부근에 도달한다. 길다란 막대같은 돌에 절만자가 세겨져 있다. 그 옆에 망해암 안내판이 서 있기도 하다. 겨울철이라서 그런 지 절에 기도온 신도 한명을 보았다. 나머지 분들은 저녁을 하시느라 분주하신 듯 바쁘게 움직이신다. 망해암은 법당은 용화전이다. 용화전은 미륵불을 모시는 절이고 용화전 옆에 관음전이 하나 있다. 용화전의 미륵불은 상체만 모셔져 있다. 하체는 바위에 있는지 어떤 지는 알 수가 없다. 용화전 좌측에는 삼성각이 있고 그 앞에는 망해암 사적비와 안내문이 있다. 용화전 외벽에는 심우도와 팔상전이 그려져 있는 것같았다. 관음전 오른쪽에는 범종각이 있었고 관음전 옆 볼에는 불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마침 시간이 되어 망해암에서 바라보는 안양제1경인 일몰을 보고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망해암 종무소 건물에서 바라볼려고 했는데 그 오른쪽에 바위에 가서 보기로 했다. 바위에 가니 무서워서 계속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바위 밑으로 내려가니 전망도 좋고 안전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석수동쪽으로 살펴보니 1번국도가 에스자 모양이다. 저거 한밤중에 야경으로 찍으면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해암 일몰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다가 눈 있는 곳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정자쪽으로 해서 대우아파트쪽으로 내려왔다. 아래 내용은 안양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망해암(望海庵)은 봉은사말사지(奉恩寺末寺誌)에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때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가람고(伽覽考)에도 기록이 되어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조선 순조 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洪大妃)께서 중건(重建)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세종대왕 재위시 삼남지방(山南地方)에서 한성(漢城)으로 여러 척의 곡물선이 인천 팔미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뒤집힐 지경에 돌연 뱃머리에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배를 안정 시키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선원 일행이 스님의 거처를 물으니 관악산 망해암이라 답변하였고 그 후 망해암을 찾은 선원이 법당에 모셔진 불상이 법당에 모셔진 불상이 스님과 용모가 닮음을 알고 놀랐으며 이를 아신 대왕께서 매년 한섬씩 공양미를 불전에 올리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망해암의 중심건물인 용화전에는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조성된 석조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보개(寶蓋)를 쓰고 도톰한 코와 입, 길게 늘어진 귓볼에 법의(法依)는 통견(通肩)이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선이 조밀하게 표현 되어있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호(相好)등은 당시의 불교신앙과 대불조성(大佛造成)에 의한 시대적 유형을 살피는 자료로 평가된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고 갈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소리와 어우러져 회상속에 빠져들게 하는 곳, 반짝임을 잃은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재빨리 날아가는 산새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낮과 밤의 공존을 숙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 낙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흠씬 느끼게 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다정한 사람과 손잡고 함께 거닐 산책로가 있는 망해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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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수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청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