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의 자긍심은 현실의 불편한 민낯을 드러냄으로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자존심이었다.
특히 세계 3대영화제 중 진보적 취향의 베를린영화제나 베니스영화제는 김기덕 감독을 세계적 거장으로서 폭풍같은 지지를 해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적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첫번째로 삶의 부조리에 대한 브레이크없는 돌진이다.
내 경험을 예를 들자면 영화 `사마리아'를 보는 도중 중간에 멈춰버렸다. 여린 감수성때문에 영화를 끝까지 감당해낼수 없었던 탓이다.
예전 사춘기시절에, 소설 `폭풍의 언덕`을 읽다가 악의 `생동감'에 놀라 멈춰버린것처럼.
두번째는 이글의 결론이다.
김기덕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존중받았던 그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낯섦' 이다.
그 `생경함'을 길들여지지않은 `야생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평소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천재가, 예술상의 클리쉐를 어떻게 피해가는가에 대한 모범적 답안이 바로 김기덕감독이라고 생각해왔다.
가령 영화 매니아들은 그 `낯섦'에 환장한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수많은 영화적 모티브와 이미지를 베껴쓰지만, 어떤 `한끗'이 다르다.
김기덕의 영화도 몇몇의 영화천재들이 그러하듯이 그 `한끗' 이 다른것이다.
하지만 `미투운동'의 가해자로서 몰락해버린 천재의 현실에서 또다른 깨우침을 얻는다.
예술적 측면에서 ` 낯섦'은 천재의 인장과도 같은것인데,
혹시... 김기적 감독의 `낯섦' 그 중요부분 중 한줄기는,
`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
아무리 예술작품을 찬양한들 일상의 진정성을 뛰어넘을수 없는 것처럼,
`악'을 기반으로한 예술은 찬성할수 없다.
첫댓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친일파를 받아들일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그냥 나쁜놈일 뿐!
그 “낯섦”의 또다른 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감독이 홍상수 입니다. 홍상수 감독 또한 대형스캔들의 중심에 서고 김기덕 감독의 미투 이슈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진하게 들었습니다. 결국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도 한 개인의 철학과 관심사와 체험이 녹아들 수 밖에 없나봅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는 “섬”과 “봄여름.....”을 좋아합니다.
특히 섬의 “낯섦”과 “야생성”은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너무 실망한
그래서 보고싶지않은
한사람 이지요 !
잘읽었습니다.
두가지 반문을 하게 됩니다.
선과 악을 판정하는 준거를 예술을 바라볼 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예술은 찬반의 대상인가?
평소 사르트르님이 올리시는 글과 아뒤로 미루어 짐작해서 재미삼아 댓글을 써 봅니다. ^.^
되묻고 싶네요.^^
1. 선과 악을 판정하는 준거를 예술을 바라볼때 적용하면 안되는 것인가?
2. 왜 예술은 찬반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가?
가령,` 시뻘겋다'와 `시뻘건색은 아름답지 못하다' 에 대해서요.
@사르트르 ^.^ "안되는" 것은 없지요.
예술은 선과 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첫번째 질문을 한 것이구요.
두번째는 좀 다른 찬반은 좀 다른 의미인데요.
사르트르님이 재미있는 예를 주셨으니, 준용하면 저는 '시뻘겋다'에 찬반을 말하긴 어렵네요.
예술의 가치는 높거나, 낮거나, 혐오스럽거나 뭐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표현할 수는 있을텐데요.
찬반을 물으면 전 선택할 수 있는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근래 사람들간 회자되는 몇몇 이슈중에는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아니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을 우격다짐으로 그리 강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생각하구요.
형식(말)이 내용을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별을보라 네~ 예술에 대하여 우격다짐으로 강제하는 경우는 저도 종종 봐왔습니다.^^
예를 들면 마광수에 대한 이문열의 논평이 있겠죠.
음...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성향인데요.
저는 예술성이 다른 가치에 비해 높이 평가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예술이 뭐그리 대단하기에 , 선악이나 찬반의 영역안에서 붙잡으면 안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조금 드네요.
'나쁜 남자'의 예술적 모티브에 대하여 나는 찬성한다, 반대한다라는 의견은 개진할수 있지 않을까요?^^
@사르트르 당연 그런 의견을 가지실 수 있고 또한 개진하실 수 있습니다. ^.^
오랜만에 날씨가 좋네요. 즐탁하세요.
연결지어지지 않습니다.
범죄자가 만든 작품과 범죄자는 어떤 관계일까요?
노역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은 죄수와 관계되어 평가받나요?
유대인을 학살했던 히틀러가 만든 비누와 유대인이었던 안네(`안네의 일기')가 만든 비누는 별차이 없겠죠. 어차피 잘 씻기면 되잖아요.
하지만...`비누'와 `그림'은 다르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이겁니다.
히틀러랑 안네가 둘다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칩시다.
히틀러가 그린 유대인과 , 안네가 그린 유대인.
@사르트르 그러나 우리는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물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비누가 본연의 기능은 잘하더라도 유대인을 착취한 대가라던가, 혹은 인간기름을 사용했다면 거부하고 지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기덕의 영화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극도의 남성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였다면 그 영화는 고민의 흔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성도착의 수단이고 개인적인 타락의 결과물이라면 보기에 아름다움과 관계없이 우리는 지탄하고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어마인드 제 댓글이 모호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는것 같아서, 좀더 구체적으로 수정했습니다.
@사르트르 네, 사르트르님의 이야기는 본문에서 충분히 느꼈습니다. ^^
미친감독이죠
남에게 피해주며 그걸 즐기는 안간..
평범한 사람들속에서 그런 감독아라면 존경받겠지만...
그는 그냥 똘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