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인 범죄로 배도하는 자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경고한 후, 믿음으로 승리해온 삶을 상기시키면서 끝까지 뒤로 물러서지 말고 인내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6-31절 고의적이고(“짐짓”) 지속적인[“범한즉”(헬. 하마르타논톤, 현재진행형)] 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하고 최종적인 속죄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은, 그 완전한 제사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반복되는 죄를 부끄러워 할 줄 알고, 그분의 피로 활짝 열린 회개의 성소로 ‘나아가야’(10:22) 함을 뜻합니다. 이 속죄제사의 의미를 알면서도 죄의 길을 선택하고, 속죄제사의 효력을 명분 삼아 죄의 습관을 합리화하는 것은, 예수님을 짓밟고 그분의 피를 더럽히고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한 영원한’ 제사를 업신여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심판뿐입니다. 예수님이 속죄제사를 종결하셨으므로 더는 마련될 속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나는 죄와 싸웁니까, 아니면 죄와 타협합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2-34절 고난으로 믿음이 흔들릴 때 애초부터 믿음이 ‘고난의 큰 싸움’임을 기억해야 하고, 견디고 또 견뎌왔던 승리의 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란 믿는 대로 살다가 세상에서 소외되어 구경거리가 된 이들끼리 사귀는 곳이었고, 믿음을 지키다 투옥된 이들을 돌보는 곳이었고, 믿음 때문에 입은 경제적 손실을 천국의 재물로 쌓아 가는 곳이었습니다. 믿음이란 함께라서 견딘 길이었고, 현재의 고난에 잠식되지 않도록 미래의 보상을 꿈꾸며 인내한 길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승리의 기억이 내게도 있습니까?
35,36절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담대함’(‘담력’, 10:19)을 얻은 이들은, 세상에 나아가서도 그 ‘담대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하늘의 큰 보상에 대한 약속을 담대히 확인하고, 땅의 회유와 겁박을 담대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37-39절 주께서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됩니다. 살리는 믿음, 멸망치 않게 하는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견디어 낸 것’(32절)을 지속하는 삶의 발걸음입니다. 믿음은 결코 인내의 포기와 영적인 퇴보를 합리화하는 도구일 수 없습니다.
기도
공동체-담대함과 인내로 다시 오셔서 믿음의 의인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열방-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의 취업, 입학 등의 권리를 제한하는 새로운 지침을 티베트 자치구에 내렸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을 박해하고 차별하는 정책을 철회하도록
출처 : 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