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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어떻게 고전이 되었나
글쓴이 조운찬 / 등록일 2026-06-30
1780년 5월 한양을 떠나 심양·북경·열하를 여행하고 그해 10월 돌아온 연암 박지원은 귀국 즉시 연행록 저술에 착수했다. 서대문 밖 평계(지금의 평동)의 처남 집과 연암협을 오가면서 연행 중 기록한 원고를 정리·보완한 끝에 1783년 《열하일기》를 1차 탈고했다. 탈고 후에도 수정과 첨삭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초본들은 연암의 벗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필사본의 유통은 연암을 조선 최고의 작가로 올려놓았다. 오늘날 전하는 사본만 해도 최근 보물로 지정된 친필 초고본을 포함해 50종이 넘는다. 궁궐 여인과 사대부가 부녀자들을 위한 한글 필사본까지 돌아다녔다.
금압을 비웃듯 퍼진 베스트셀러
인기만큼 논란도 거셌다. 당대의 문인 유만주는 자신의 일기 《흠영》에 ‘기발하다’, ‘아정(雅正)하지 못하다’는 상반된 감상을 나란히 적어두었다. 연암의 족손 박남수는 《열하일기》를 패관기서라 하여 초고를 태우려 했고, 정조는 ‘문단을 어지럽힌다’며 순정한 정통 문장을 지어 올리도록 명했다. 찬탄과 비난이 교차하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열하일기》의 필사는 멈추지 않았다. 텍스트는 금압을 비웃듯 더 넓게 퍼져나갔다.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으나 지배층의 비판에 막혀 조선왕조 내내 활자본을 내지 못했다. 필사본으로만 떠돌던 텍스트에 공식 지위를 부여한 것은 한말의 지식사회였다. 문장가 김윤식은 연암을 서양 제도의 선각자이자 계몽주의자로 조명했고, 신채호는 보존·간행해야 할 옛 서적으로 꼽았다.
김택영은 20세기 초입에 《연암집》·《연암속집》·《중편연암집》을 잇달아 간행하며 《열하일기》를 알렸다. 1911년 육당 최남선은 조선광문회를 통해 《열하일기》를 신활자본으로 펴내 대중 보급에 나섰다. 탈고로부터 근 130년 만에 이루어진 첫 공식 간행이었다. 조선왕조가 끝내 허락하지 않았던 책이 봉건시대가 끝나가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1932년에는 부호 박영철이 사재를 털어 《열하일기》가 포함된 《연암집》을 출판함으로써 박지원의 글은 근대 지식사회의 공인을 얻었다.
활자본 등장은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열었다. 1930~40년대 양주동·이윤재·김성칠 등 국학자들이 선편을 잡았다. 양주동이 1939년 〈호질〉을 옮겼고, 이윤재는 1940년부터 잡지 《문장》에 제1편 〈도강록〉을 연재했는데 그의 사후인 1946년 단행본으로 묶였다.
한국인 최초의 완역에 도전한 역사학자 김성칠은 1948~1950년 정음사에서 문고판 《열하일기》(5권)를 펴냈으나 한국전쟁 중 불의의 타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체의 3분의 1 남짓에 해당하는 그의 번역은 철저한 원문 고증과 감칠맛 나는 우리말 구사에서 열하일기 번역사의 한 기준으로 기억될 만하다. 고전은 이처럼 여러 세대의 번역자들이 릴레이를 이어가며 비로소 독자 앞에 섰다.
번역 릴레이와 정본 발간에 답사까지
완역의 꿈은 1955년 북측 학자 리상호에 의해 실현되었다(1957년 완간). 이후 남측에서는 한문학자 이가원이 1973년 완역본을 내놓았고, 김혈조는 새로운 완역본(2009)에 이어 원문을 교감한 《정본 열하일기》(2025)까지 발간했다. 이와 함께 연암 연구자 김명호·박희병은 심도 깊은 학술서로, 정민·고미숙·박수밀은 대중에 다가서는 해설서로 《열하일기》의 깊이를 더하고 폭을 넓혔다. 남과 북의 학자가 같은 텍스트를 두고 경쟁하듯 완역에 매달린 것도 이 책의 특별한 이력이다.
초고본과 필사본으로 흩어져 있던 텍스트가 정본으로 수렴되고 번역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열하일기》의 독자층은 두터워지고 있다.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이어가는 통독 모임이 곳곳에서 열리고, 단동~심양~산해관~북경~승덕(열하)으로 이어지는 연행 노정을 따라가는 ‘열하일기 답사’가 새로운 인문 기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열하일기 읽기가 고전으로 들어가는 입문이라면, 열하 답사는 고전을 완성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일기·소설·평론·시·전기·에세이를 가로지르며 역사·지리·풍속·종교·경제·문학·과학·국제정치를 종횡무진 이야기한다. 18세기 중국과 동아시아에 관한 인문사회과학 보고서이자 해학과 풍자의 문학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독자, 비평가, 연구자, 출판인의 노력이 이룬 성과이지만, 그 모든 것의 원천은 결국 텍스트 자체다. 《열하일기》가 한국의 대표 고전이 된 이유다.
■ 글쓴이 : 조 운 찬 (문화 칼럼니스트)
- 문화 칼럼니스트
-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저서]
《망우리 비명록》(파이돈, 2025, 공저)
《우리 문학을 이끈 11명의 작가들》(빈빈책방, 2024)
《옛글의 풍경에 취하다》(역사공간, 2019)
《문집탐독》(역사공간, 2018) 등
첫댓글 고맙습니다